여름휴가를 맞아 산사를 찾아 몸과 마음을 정화하는 사람들이 늘고 있다. 며칠간 템플 스테이(temple stay)를 하다 보면 해가 지고 난 뒤 세상이 얼마나 조용해지는지, 밤이 얼마나 어두운지, 밤하늘에 별이 얼마나 많은지, 즉 자연의 본모습을 알고 놀라게 된다.
밤하늘이 어두운 이유는 물론 햇빛을 받지 못하기 때문이다. 19세기 독일의 천문학자 하인리히 올버스는 이 당연해 보이는 현상이 실제로는 설명하기에 만만치 않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올버스는 만일 무한한 우주에 별이 고루 분포해 있다면 어떻게 될까를 생각해봤다. 그 결과 놀랍게도 해가 진 뒤에도 대낮처럼 밝아야 한다는 결론에 이르렀다. 별 하나에서 오는 빛의 양은 지구에서 떨어진 거리의 제곱에 반비례하지만 별의 개수가 거리의 제곱에 비례하므로 모든 공간에서 빈틈없이 별빛이 들어오기 때문이다.
물론 현실에선 이런 일이 일어나지 않기 때문에 이를 ‘올버스의 패러독스’라고 부른다. 100여 년이 지난 1929년 미국의 천문학자 에드윈 허블은 윌슨산 천문대에서 관측한 결과를 토대로 올버스가 가정한 우주에 대한 전제가 잘못이었음을 밝혔다. 즉 밤이 어두운 이유는 우주가 무한하지 않을 뿐더러 먼 곳에 있는 별에서 나오는 빛이 지구에 순탄하게 도달하지는 못하기 때문이다.
허블은 별들의 무리인 은하가 우주를 구성하는 단위임을 밝혀냈으며 지구에서 멀리 떨어진 은하일수록 더 빠른 속도로 멀어진다는 사실을 발견했다. 멀어지는 천체에서 나오는 빛은 도플러 효과로 파장이 길어지므로(적색편이) 태양과 비슷한 별이 가시광선을 내뿜더라도 지구에 도달할 즈음에는 별빛이 눈에 보이지 않는 적외선으로 바뀐다.
초거대 블랙홀의 존재 이유
“우주가 팽창하고 있다는 허블의 관측 이래 천문학자들은 우주의 형성과 진화에 대해 많은 사실을 밝혀냈습니다. 물론 이 과정에서 새로운 궁금증이 더해지고 있습니다만.”
초기 우주의 모습을 연구하고 있는 서울대 물리천문학부 임명신 교수는 우주의 베일을 살짝 들췄을 뿐 여전히 신비에 싸여 있다고 말했다. 허블의 관측을 토대로 정립된 빅뱅이론이 우주의 역사를 대강 설명하고 있지만 구체적인 진화과정은 역시 더 많은 ‘관측’을 통해서만 밝혀질 수 있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 최근까지 천문학자들은 우주의 가스와 먼지가 모여 별과 은하가 형성된다고 막연하게 생각했다. 그런데 2000년대 들어 130억 광년이나 떨어진 퀘이사가 발견되면서 초기 은하의 형성과정에 대한 시나리오를 다듬는 손길이 바빠졌다.
“퀘이사란 은하 중심에 있는 초거대 블랙홀로 물질이 유입되면서 생긴 마찰열로부터 나온 빛을 발하는 천체입니다. 워낙 빛이 밝아 130억 광년이나 떨어졌는데도 실체가 포착됐죠.” 2005년 국내에서 처음 퀘이사를 발견한 임 교수는 최근 110억~130억 광년 떨어진 퀘이사 속 블랙홀의 질량을 계산했는데, 태양 질량의 10억~30억 배에 이르는 걸로 확인됐다.
임 교수팀이 가시광선이 적색편이된 빛인 적외선을 분석해 초기 우주의 은하를 연구하고 있다면 연세대 천문학과 이영욱 교수팀과 이석영 교수팀은 가시광선보다 파장이 짧은 자외선을 분석해 은하 진화 과정을 탐색하고 있다. 2003년 우주에 올린 자외선망원경 갤렉스(GALEX)는 이들이 미국항공우주국(NASA)과 함께 만든 작품이다. 갤렉스는 파장이 177~283nm(나노미터, 1nm=10-9)인 자외선 영역을 볼 수 있어 이 영역대 빛을 많이 내는 고온의 별들을 높은 감도로 관측할 수 있다.
이영욱 교수팀과 이석영 교수팀은 2006년 영국 옥스퍼드대를 비롯한 다국적 연구팀과 공동으로 ‘네이처’에 발표한 논문에서 초거대 블랙홀이 별 형성을 억제한다는 사실을 발표했다. 초거대 블랙홀이 너무 클 경우 물질 유입으로 인한 마찰열 때문에 별 형성에 필요한 가스의 온도가 높아지고 가스가 사방으로 흩어져 별이 제대로 형성되지 않는다는 것.
연구자들은 “초거대 블랙홀의 질량은 은하의 질량에 비하면 무시할 수준이지만 은하에서 별이 형성되는 데 결정적인 역할을 하는 것으로 보인다”고 설명했다. 실제로 중심에 거대한 초거대 블랙홀이 있는 타원은하의 경우 젊은 별이 거의 없는 ‘초고령 집단’이다.
밤하늘에서 우주 전부를 볼 수는 없겠지만 별빛 너머에서 벌어지고 있는 우주의 역동적인 모습은 마음의 눈(心眼)에 떠오르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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