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머리에 인공지능, 가슴엔 분자엔진

[ 과학동아가 선정한 이달의 책 ]


 
국내 몇 안 되는 과학 고전 시리즈물 ‘모던 앤드 클래식’ 2차분 두 권이 새로 나왔다. 공교롭게도 이번에는 과학자가 예언하는 낯설고 충격적인 미래에 대한 책이다. 데이터 저장 기술과 계산 기술의 발달이 가져올 의식의 기계화를 다룬 한스 모라벡의 ‘마음의 아이들’과, 나노 수준의 분자 구조물을 이용해 스스로 복제하는 기계가 탄생하는 미래를 그린 에릭 드렉슬러의 ‘창조의 엔진’이다. 80년대 중후반에 발표된 두 책은 지금 봐도 섬뜩할 정도로 설득력 있고, 시대를 앞선 영감과 혜안으로 가득하다.

‘마음의 아이들’은 인공지능의 출현과 의식의 ‘백업(복제)’ 가능성을 탐구한 책이다. 책에 등장하는, 가상으로 묘사된 의식의 백업 과정은 기괴하다. 의사가 뇌의 전기 신호를 컴퓨터에 재현하고, 세밀한 조절이 끝나면 육체는 버려진다. 의식은 기계 두뇌와 몸속에서 생명을 이
어간다. 여느 과학소설이나 영화보다 세밀한 묘사다. 더구나 인간의 신경망이나 망막 구조를 응용해 생체 컴퓨터를 구성하려는 아이디어
는 오늘날 인지공학이나 뇌과학이 제시하는 아이디어를 한참 앞서가고 있다.

‘창조의 엔진’은 나노 기술을 예언하고 있다. 생명에 대한 탐구가 점차 분자 수준으로 접어들던 시절, ‘사람이 만드는 기계가 나노 크기가 될 수는 없을까’라는 의문을 재료공학과 생물학, 에너지물리학 등 다양한 분야의 연구 성과를 바탕으로 해결하고 있다. 드렉슬러는 충분히 만들 수 있으며 심지어 유전자처럼 자기 복제하는 기계도 가능하다고 주장한다. 그가 생각하는 자기 복제 기계는 생물의 세포와 닮을수도 있고, 그렇지 않을 수도 있다. 아주 작은 크기로 축소한 공장 같은 형태가 될지도 모른다. 자기 복제 기계는 스스로 증식하는 일 외에 원자를 조립하는 역할도 맡는다. 설계도만 있다면 어떤 새로운 기계도 직접 만들 수 있다. 마치 모래를 쌓아 고층건물을 짓는 것처럼 허황돼 보이지만, 스스로 복제가 가능해 그 수를 기하급수적으로 늘릴 수있기에 문제 없다는 것이 저자의 생각이다.

두 책의 내용에는 접점이 있다. ‘창조의 엔진’에서 드렉슬러는 “기계가 생각이라고 표현돼야 마땅할 무언가, 그러면서도 사람이 하는 것
과는 매우 다른 무언가를 하지 못하란 법이 있는가”라고 물은 앨런 튜링의 말을 소개하고 있다. 인공지능의 전제조건이라고 할 수 있는 ‘생
각’의 출현을 암시하는 대목이다. ‘마음의 아이들’에는 동물의 망막을 최고의 신경망 컴퓨터 모델로 보는 대목이 나온다. 일종의 세포 분자컴퓨터인 셈이다. 비슷한 구절이 ‘창조의 엔진’에도 나온다. “다빈치가 당시 이미 하늘을 날고 있던 기계(새)를 들먹일 수 있었던 것처럼 우리는 세포 안에 이미 존재하는 나노 기계를 들먹일 수 있다.”

물론 두 책 모두 비판할 대목은 있다. 당장 이 책을 교본 삼아 의식을 백업하거나 유전자처럼 복제하는 단백질 기계를 만들 수는 없다. 방법을 제시하는 책이 아니기 때문이다. 예측할 수 없는 부작용은 더 근본적인 문제다. 드렉슬러조차 “나노 기술과 인공지능은 파괴적인 최악의 도구를 출현시킬 수도 있다”고 말하고 있다. “이것들이 원래 파괴적인 속성을 지니지는 않는다. 우리가 신중하다면 궁극적인 평화의 도구를 만드는 데 이용할 수 있다”고 서둘러 변호하고 있지만, 기술이 통제를 잃었을 경우를 슬며시 비껴간 느낌이 있다. 인류에게 긍정적인 미래가 될지 부정적인 미래가 될지는 지금의 과학자와 독자들 손에 달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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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년 11월 과학동아 정보

  • 윤신영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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