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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인 행복 사이즈 실현하는 Size Korea

국산 좌변기가 일본제품보다 넓어야 하는 이유

2010년 10월. 과동이에게 한통의 비보가 날아들었다. 형이 오토바이를 타다가 교통사고가 났다는 소식이다. 신호가 바뀌어 정지선에 오토바이를 멈춘 형 뒤에 자동차가 와서 부딪혔던 것이다. 헬멧이 벗겨지는 바람에 머리를 다쳐 병원으로 실려오자마자 응급수술을 했다. 의사는 “생명에는 지장이 없지만 안정을 취하고 경과를 좀더 지켜봐야 한다”고 조언한다.

형이 퇴원한 후 헬멧을 새로 구입하러 가는 길에 과동이가 따라나선다. 사고 당시 쓰고 있던 헬멧이 어떤 제품인지를 들은 점원은 “10년도 더된 제품이다. 예전에는 서양인의 머리 모양에 대한 자료를 변형해 헬멧을 제작한 경우가 많았다. 서양인은 이마와 뒤통수가 볼록하나 한국인은 이에 비해 평평하다. 또 서양인은 정면 폭이 좁고 측면 폭이 넓은 반면 한국인은 반대다. 요즘 나오는 제품들은 한국인 고유의 머리 모양 치수를 반영해 정밀하게 만들기 때문에 더 안전하다”라며 신제품을 구입하기를 권한다. 몇년 전 한국인 표준인체치수 자료가 발표된 후 한국인의 두상에 더 알맞은 헬멧을 만드는데 많은 도움이 된다고 한다.

더 편하고 더 잘 맞는 제품

헬멧을 산 후 과동이는 형과 함께 의류매장에 들렀다. 날씨가 쌀쌀해져 긴팔 티셔츠가 필요했기 때문이다. 마음에 드는 디자인을 고른 과동이는 형과 체격이 비슷하기 때문에 점원에게 100 사이즈로 색깔이 다른 두벌을 달라고 한다. 그런데 점원은 “같은 100 사이즈에도 여러 종류가 있다. 체격이 같아 보여도 가슴둘레나 등 길이, 팔 길이와 같은 세부적인 치수는 다른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라고 설명한다. “팔은 과동이보다 내가 좀더 길고 어깨 너비는 과동이가 더 길다”는 형의 대답에 점원은 팔 길이가 다른 100-A-L과 100-A-M, 어깨 너비가 다른 100-S-L와 100-S-M 사이즈의 티셔츠를 꺼내온다.

티셔츠를 고르는 동안 점원은 “한국인 표준인체치수가 공개된 후에 나온 신제품들은 실제 한국인 체형에 맞게 디자인됐다. 뿐만 아니라 사이즈도 다양해져 고객이 좀더 잘 맞는 옷을 선택할 수 있다”고 알려준다. 덕분에 인터넷 쇼핑몰의 반송률도 눈에 띄게 줄었다고 한다.

집에 돌아온 과동이는 인터넷에서 한국인의 인체치수 관련 자료를 검색해본다. 지난 2003년 4월부터 2004년 11월까지 ‘사이즈 코리아’(Size Korea)라는 이름으로 제5차 한국인 인체치수조사 사업이 시행됐다. 만 0-90세의 한국인 남녀 1만9천여명을 대상으로 인체치수를 실제로 측정해 데이터베이스를 구축한 것이다. 한국인체치수정보센터에서 이 데이터베이스를 유지·관리하고 있다.

이때 거실의 전화벨이 울린다. 며칠 전 과동이네 집 화장실 리모델링을 담당했던 회사다. “직원이 실수로 좌변기를 잘못 설치했다”며 교체해준다고 한다. 다음날 화장실은 한창 공사중이다. 그런데 과동이는 원래 있던 좌변기와 교체할 좌변기가 그리 달라보이지 않는다. 직원은 “원래 설치됐던 제품은 일본인 체형에 대한 자료를 바탕으로 제작된 구모델”이라고 설명한다. 어머니는 “어쩐지 앉았을 때 불편했다”며 고마워한다. 한국인의 엉덩이 뼈 너비는 일본인에 비해 좀더 넓다. 실제로 지난 2003년에 한국인 치수에 맞게 제작된 비데가 처음 출시됐다.

한국인체치수정보센터 정문 앞. 과동이는 요 며칠 간 한국인 인체치수 자료가 활용되고 있는 범위가 정말 넓다는 것을 실감하고 궁금증이 생겨 이곳을 방문해보기로 마음먹었다. 본관 안으로 들어서자 좌우에 세계 각국에서 전개된 인체치수조사 사업 내용이 게시돼 있다.


사이즈 코리아라는 상징적인 이 름으로 제5차 한국인 표준인체치 수 조사 사업이 2003년 4월- 2004년 11월 시행된다. 이 결과 는 의류나 제화를 비롯한 여러 산 업 분야에서 한국인에게 더 적합 한 제품을 만드는데 일조할 예정 이다.


소비자 만족도가 최우선


영국, 일본, 미국, 대만 등 세계 여러나라에서도 자국 국민의 인체치수를 측정하는 사업이 활발이 진행되고 있다.


이웃 일본 HQL연구소에서도 일본인 체형에 알맞은 제품을 디자인하는데 사용할 수 있도록 일본인의 표준인체치수 자료를 데이터베이스로 구축했다. 이는 1992년부터 1994년까지 7-90세 일본인 남녀 3만4천여명을 대상으로 측정한 자료다. 영국에서는 지난 2001년부터 2년 간 16세 이상 성인남녀 1만1천명의 인체치수를 측정했다. 이 결과 구성된 데이터베이스가 의류제품의 전자상거래와 생산 시스템의 솔루션 개발을 위한 기초 자료로 활용되고 있다.

마침 연구실 안에는 사이즈 코리아 사업 진행을 총괄한 한양대 정보경영공학과 김정룡 교수와 3차원측정을 담당한 대진대 산업시스템공학과 최재호 교수가 있었다. 사이즈 코리아 사업은 산업자원부 기술표준원이 주관하고 대한인간공학회, 한국의류학회, 한국표준과학연구원이 실행했다. 한국인이 사용하는 의류, 가구, 자동차와 같은 산업제품을 설계할 때 필요한 인체치수 자료를 확보하고자 함이 목적이었다.

관련 분야의 전문가들로 구성된 사업단은 지난 2001년부터 2년 간 프로토콜 제작에 들어갔다. 자문위원을 제외한 참여 교수만도 26명이었다. 산업체에서 제품을 제작할 때 필요한 인체치수가 어떤 것들인지를 조사한 다음 측정할 항목을 결정했다. 70-90년대에 네차례 국민표준체위조사라는 이름으로 시행됐던 때보다 많은 전문가와 측정 항목을 확보했다. 사이즈 코리아가 지난 사업과 차별화될 수 있는 이유다. 사업단은 프로토콜대로 한국인 인체치수와 형상을 실제로 측정했다. 2004년 말 측정을 마친 후 자료를 연령별, 성별, 지역별, 사회계층별로 구분했다.

김 교수는 “인체치수 데이터베이스를 활용하는 것은 인간공학이 실제 산업에 적용된 좋은 사례”라며 자부심을 표현한다. 결국 인간이 사용하기에 좀더 적합한 제품을 만들기 위한 토대를 마련하는 것이 바로 인간공학의 몫이기 때문이다. 또한 최 교수는 “과거에는 제품을 디자인할 때 불편함이나 위험을 줄이는 측면에 초점을 맞췄다. 그러나 이제는 제품을 사용하는 소비자의 만족도를 높이는 방향으로 설계하는 추세다”라고 강조한다.

가구를 만들 때도 인체치수 자료는 필수다. 특히 교실 책걸상의 경우 청소년들의 체형이 계속 변하고 있기 때문에 이를 반영해 제작해야 한다. 예를 들어 의자에 앉았을 때 허벅지 아래쪽의 닿는 면적이 좁을수록 좋다. 이 면적이 넓으면 허벅지 아래 정맥이 눌려 오래 앉아 있을 경우 다리에 불편을 느낄 수 있기 때문이다. 따라서 정확한 허벅지 길이, 엉덩이 너비, 무릎 높이와 같은 치수를 알고 의자를 제작하는 것이 좋다. 또한 의자의 곡선 모양 역시 중요하다. 단순한 길이나 높이 이외에도 의자의 굴곡을 설계할 때는 그 부분에 닿는 인체 부위의 3차원 형상 자료를 참조할 필요가 있다.

운전석의 안락도는 안전과 직결

그날 저녁 가족이 모인 자리에서 아버지는 형에게 부딪힌 자동차의 운전자를 만나봤다고 말한다. 운전석에 오래 앉아있었기 때문에 허리와 다리가 아파 고쳐 앉으려다가 오토바이를 미처 보지 못한 것이다.

자동차 회사에서 오래 근무한 아버지는 “운전석의 안락도는 안전과 직접 연결되기 때문에 결코 간과할 수 없다”고 설명한다. 운전석을 디자인할 때는 목이나 등 뒤 굴곡과 같은 인체 후면의 치수 자료가 필요하다. 또 핸들이나 페달을 계속 조절해야 하므로 앉은 자세에서 팔을 앞으로 뻗었을 때 손끝까지의 길이, 발 전체의 길이나 너비와 같은 치수도 중요하다. 과거에는 수출용 자동차의 경우 해외의 인체치수 자료를 활용했고, 내수용 자동차는 각 업체에서 자체적으로 자료를 수집해 설계했다고 한다. 사이즈 코리아 사업이 완료된 후 자동차 업계에서도 역시 적극적으로 활용하는 추세다.

텔레비전에서 뉴스 앵커가 “최근 국내 한 제화업체가 수출에 급성장세를 보여 업계의 이목이 모아지고 있다”는 소식을 전한다. 자사에서 제작한 신발을 여러 나라에 수출하기 위해 세계인들의 다양한 발 모양에 대한 자료를 수집했다고 한다. 이를 바탕으로 각 국민들의 발에 잘 맞는 신발을 제작할 수 있었다는 것이다.

이 업체의 사장은 “한국인 발등 높이는 서양인과 비슷하다. 그러나 발이 작으므로 서양 신발 길이에 비해 발등이 높아진다. 따라서 서양인 평균 치수에 맞춘 신발을 오래 신으면 통증을 느끼거나 심한 경우 발가락이 변형될 수 있다. 따라서 좀더 편안한 신발을 만들기 위해 한국인 발의 세부적인 형태에 대한 좀더 많은 치수와 입체 형상 자료가 필요했다. 내수용 신발 제작에는 한국인체치수정보센터의 자료를 활용했다”며 성공 요인을 밝힌다.

인간공학적 제품 설계 위한 밑거름

인체치수 데이터베이스는 제화, 전기전자, 가구, 자동차 등 산업 전반에 걸쳐 활용되고 있다. 과동이는 그 중 가장 많이 활용되는 분야가 의류산업일 것이라는 생각이 든다. 사이즈 코리아 사업이 진행될 당시 의류업계의 반응에 대해 궁금해진 과동이는 인터넷을 검색해본다.

실제로 지난 4차 조사까지의 자료 활용도에서 의류산업이 약 95%를 차지했다. 과거에는 상세한 인체치수 자료가 필요할 때 업체별로 직접 수집해 옷을 디자인했다고 한다. 한국인의 인체치수 데이터베이스가 구축된다면 의류업체는 좀더 신뢰성 있는 자료를 바탕으로 옷을 제작할 수 있게 될 것이라고 전망했다.

남성복 전문업체 본컴퍼니의 채주영 기획실장은 “연령대별로 체형이 많이 다르다. 따라서 연령대를 세부적으로 분류해 축적한 자료일수록 옷을 만들 때 많은 도움이 된다”고 말했다. 그러나 채 실장은 의류업계 전체의 치수가 통일될 가능성에 대해서는 의문을 제기했다. “같은 치수라도 제품마다 사이즈에 조금씩 차이가 있는 이유는 각 브랜드에서 내세우는 의상 컨셉에 따라 사이즈를 조절하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한국인이 사용하는 모든 제품에 한국인 고유의 인체치수를 반영하려는 사이즈 코리아 사업은 인간공학적 제품 설계를 위한 밑거름이 되리라고 예상했다. 그러나 측정이 진행될 당시만 해도 이 성과를 어떻게 보급하고 활용할지에 대한 구체적인 방법과 절차가 아직 사업단의 중요한 과제로 남아있었다. 2003년 진행중인 사이즈 코리아 사업 성과가 실용화되면 2010년 한국인 행복 지수가 좀더 증가하지 않을까.

레이저로 3차원 인체 형상 얻는다
 

(그림) 표준인체지수 측정 기준점


한국인 표준인체치수 측정에는 누구나 자발적으로 참여할 수 있다. 사업단 홈페이지(www.sizekorea.or.kr)를 통해 신청하고 측정시간을 예약해 지역별 인체측정센터를 방문하면 된다. 직접측정은 3백42개 전국 시·군·구에서 이뤄지고 있다. 3차원측정은 스캐너의 수가 한정돼 있기 때문에 서울과 수도권·대전·대구·광주·부산에서만 현재 측정이 가능하다. 또한 인체 각 부위별 움직이는 범위를 조사하는 동적측정은 장비 제작이 완료될 올해 말부터 시작될 예정이다.

접수대에서 간단한 인적사항을 적고 사업단이 특수 제작한 측정복을 착용한다. 측정요원이 신체의 기준점 부위에 스티커를 붙인 후 신체 여러 부분의 길이를 직접 재고 기록한다. 다음 3차원 스캐너에 올라선다. 4개의 스캔헤드가 인체와 접촉하지 않고 수직 레일을 따라 일정한 속도로 내려오면서 전신 형상을 스캔한다. 스캔헤드마다 내부에는 광원과 디텍터가 있다. 각 광원에서 1등급 레이저가 나와 인체에 투사된다. 이는 디지털카메라의 초점을 맞추는데 사용되는 레이저와 동급이므로 인체에 안전하다. 디텍터는 레이저가 얻은 영상을 감지해 인체의 3차원 형상과 색깔 정보를 얻는다. 발과 머리의 3차원 형상을 스캔하고 설문지를 작성하면 모든 절차가 완료된다.

인체치수조사 사업에서는 이번에 처음 3차원 스캐너가 도입됐다. 짧은 시간에 인체치수 자료를 얻어 오랜 기간 보존할 수 있으며, 필요할 때마다 다시 사용할 수 있다는 장점이 있다. 3차원 스캔 자료로부터 인체 각 부위에 대한 치수뿐만 아니라 전체적인 실루엣이나 특정 부위의 3차원 형상도 얻을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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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3년 10월 과학동아 정보

  • 임소형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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