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솥 모양 해시계 앙부일구

전자시계보다 더 정확한 자연의 시계

앙부일구는 지나가는 사람들이 누구나 볼 수 있는 공중해시계였다.그러나 오늘날 앙부일구의 시간을 읽을 수 있는 사람은 많지 않다.가장한국적인 시계라는 이 해시계에 담긴 과학적 원리를 탐구해보자.


“아이고 출출한 걸. 어이, 뱃속에서 꼬르륵 소리가 나는 걸 보니 벌서 미시(오후 2시)가 지난 것 같네. 어디 요기나 좀 하세.”

“예끼 이 사람아, 오시(12시)가 겨우 지났을 법한데 미시라니.”

“아닐세, 분명히 미시가 지났을 것이네.”

“그럼 어디 내기 한번 하려는가. 미시 전이면 자네가 점심 사고, 미시가 지났으면 내가 사고.”

“내기는 좋지만, 나랏님이 종루에서 종을 쳐주지 않으면 정확한 시간을 어찌 안단 말인가?”

“이 사람 소식이 통 감감이군. 이미 나라에서 종묘 앞과 혜정교에 앙부일구라는 해시계를 설치했으니, 거기서 확인하면 당장 시간을 알 수 있네. 몇 시 몇 각인지는 물론이고 오늘의 절기까지도 알 수 있다네.”

“아니 그런 신기한 기구를 아무나 이용할 수 있다는 말인가?”

 

조선 세종 때 어느 봄날에 종로 근처에서 있었을 법한 대화다. 세종 16년(1634) 10월 2일 두대의 앙부일구(仰釜日晷)가 종묘 앞과 혜정교에 설치됐다. 앙부(仰釜)는 ‘입을 벌린 솥’을 뜻하고, 일구(日晷)는 ‘해 그림자’를 뜻하므로, 앙부일구는 요즘의 말로 ‘해 그림자로 시간을 보는 솥 모양 해시계’이다. 지나다니는 사람들이 앙부일구 안에 나타난 해그림자를 보고 시각을 알 수 있었으니 서울역 광장의 시계탑처럼 누구에게나 시간을 알려주는 공중시계였다.

 

조선시대의 것을 선물용으로 다시 제작한 휴대용 앙부일구.


시간을 읽지 못하는 현대인

 

세종 당시의 것은 아니지만 앙부일구는 전국 각지에 유물로 남아있고 많은 복사본들이 여기저기에 설치돼 있다. 세종 때에 다른 앙부일구들이 만들어졌는지, 그리고 그 이후에는 얼마나 제작됐는지 공식적인 기록은 없다. 그러나 숙종대 이후가 되면서 많은 앙부일구들이 만들어진 것을 기록으로 확인할 수 있다. 지금 덕수궁 궁중유물 전시관, 고려대 박물관, 성신여대 박물관, 기상청 등에 남아있는 앙부일구들은 대부분 17세기 후반부터 18세기에 걸쳐 만들어진 것들이다. 이처럼 조선시대에 광범위하게 만들어지고 쓰였던 앙부일구를 과학사학자 전상운 교수(성신여대 명예교수)는 가장 한국적인 과학유물 중의 하나라고 평가한다. 그래서 그런지 최근에는 덕수궁, 창덕궁을 비롯한 고궁과 세종대왕 기념관, 여주의 세종대왕릉, 전국의 과학관 등에서 복원한 앙부일구를 흔히 볼 수 있고, 심지어는 소품으로 제작돼 선물용으로도 팔리고 있다.

 

그러나 이렇게 흔한 앙부일구 옆을 지나면서 “이게 뭐예요?”하는 어린 호기심에 대한 답은 “응, 세종 때 만들어진 해시계라고 여기 써있네” 이상이 되지 못한다. 푯대에 써있는 유물 이름과 설명이 있어도 우리는 시계의 시간을 볼 줄 모르는 까막눈일 뿐이다. 옛 사람들은 허리춤에 해시계를 차고 다니면서 꺼내보고 시간을 읽었지만, 우리는 손목시계와 전자시계에 익숙해 있을 뿐 해시계의 시간을 읽지 못하는 것이다.

 

정확한 북극을 가리키는 영침


오늘날 우리의 하루는 24시이지만, 옛 사람들은 자, 축, 인, 묘, 진, 사, 오, 미, 신, 유, 술, 해의 12시로 썼다. 그러나 태양이 하루 한바퀴를 도는 것이 예나 지금이나 변함 없듯이 하루의 길이는 똑 같다. 옛날의 한 시간은 오늘날의 2시간이다. 자시는 밤 12시, 축시는 새벽 2시이므로 2시간 간격이 된다. 사주를 볼 때 미시니 진시니 하는 것이 이러한 방식으로 시간을 나타낸 것이다.

 

옛날 사람들의 시간의 기준은 자연이었다. 태양이 머리 위 자오선에 왔다가 다음날 다시 이 자오선에 올 때까지가 하루다. 태양이 자오선의 좌측(동쪽)에 있으면 오전이고, 자오선의 우측(서쪽)에 있으면 오후다. 태양이 바로 시간을 알려주는 천체였던 것이다. 그러므로 태양의 위치를 보면 몇 시인지를 알 수 있었다. 하지만 오후 3시의 태양과 4시의 태양을 일반인들이 구별하기는 어렵다. 태양의 위치를 누구나 알 수 있도록 하고, 또한 정확하게 보여줄 수 있게 해주는 기구는 없을까?

 

 

그것이 바로 해시계다. 가장 초보적인 해시계는 그림자를 만드는 막대기를 지면에 꽂으면 된다. 우리나라에서 태양이 떠오를 때의 그림자는 서쪽으로 지고, 정오의 그림자는 정북쪽으로 지며, 오후의 그림자는 동쪽으로 진다. 이 그림자의 위치를 살피면 오후인지 오전인지, 혹은 오후 몇 시인지를 알 수 있는 것이다. 그림자가 정북방향에서 얼마나 멀어졌는가를 보면 해가 정오에서 얼마나 멀어졌는지를 알 수 있다. 이처럼 간단한 원리 때문에 해시계는 세계의 어느 문명권에서나 공통적으로 쓰였다.

 

그러나 우리의 해시계 앙부일구는 단순히 하루의 시간만을 알려주는데 그치지 않고 그 날의 절기까지 알 수 있게 해준다. 태양은 지축과 23.5도 기울어져 운행한다. 때문에 하지 때는 고도가 높지만 동지 때는 낮다. 막대를 세워서 일년 내내 관측해보면 그림자의 길이가 날마다 변한다는 것을 알 수 있다. 하지 때는 태양의 고도가 높아 그림자가 짧고 동지 때는 태양의 고도가 낮아 그림자가 길다. 그리고 하루 동안의 태양 그림자도 오전과 오후에는 길지만 정오에는 짧다. 평면에 막대를 고정시키고 하루 중 그림자의 끝이 지나는 점을 선으로 이을 수 있다. 이 그림자 선은 날마다 변하지만 1년 후의 오늘이 되면 해 그림자는 같은 길을 지난다. 때문에 일년 내내 관측을 해서 그림자 선을 그려두면 내년에는 이 그림자 선을 보고 절기를 읽고, 그림자의 각도를 보고 시간을 읽을 수 있다. 이것이 평면 해시계의 원리다.

 

시각선과 함께 절기에 따라 해그림자가 변하는 선을 그려 시각과 절기를 함께 알 수 있었던 사각형 평면 해시계.


오목한 솥에 담긴 태양의 운동

그러나 평면 해시계의 시각선은 그림자가 옆으로 누울 때(즉 아침과 오후)에는 길게 늘어져 왜곡이 심해진다. 마치 지구본을 평면 지도에 나타내면서 주변부가 왜곡되는 것과 마찬가지다. 매우 정확하게 측정하지 않으면 가장자리 부근에서는 그림자가 흐려져 오전 일찍과 오후 늦은 시간은 부정확해지는 것이다.

 

 

조선시대 우리 과학자들이 고심한 문제, 그리고 우리 식의 해시계가 슬기로운 것이 이 점이다. 거의 원에 가까운 태양의 운동을 왜곡 없이 읽어낼 수 있는 방법을 만든 것이다. 세종대의 학자들은 평면을 파서 오목한 구형으로 만들고 그림자를 만드는 막대의 축을 북극에 일치시키는 방식의 해시계를 만들었다. 이렇게 되면 지구 주위를 도는 태양의 위치를 거의 완전하게 재현할 수 있다. 앙부일구의 내부에 설치된 영침(影針, 그림자를 만드는 침)의 방향을 지축과 평행한 정북극 방향을 맞춘다. 영침의 끝은 구의 중심이 된다. 그리고 앙부일구의 평면은 그 지점의 수평면이 된다. 여기에서 해시계의 정확도를 높이는데 필수적인 것은 정북극의 방향을 정하는 것이다. 세종 당시의 유수한 천문학자들이 서울을 기준으로 하는 정북극의 위치를 정확히 알아냈고 이를 기준으로 앙부일구 내부의 눈금선이 정확히 매겨질 수 있었다.

 

눈금을 한글로 복원한 해시계.그림자가 떨어지는 지점에서 시각선과 절기(날짜)선을 동시에 본다.그림자의 길이가 다른 것은 절기(날짜)가 다른 것을 의미한다.


결국 앙부일구 내부에서는 영침의 그림자 길이가 하루종일 달라지지 않고 해당 절기(즉 태양고도에 해당하는)의 눈금선을 따라간다. 시각은 그림자가 떨어진 지점의 시각선을 읽으면 된다. 시각선은 절기선과 교차하고 있으므로 그림자가 떨어진 지점에서 절기선과 눈금선을 동시에 읽으면 그날의 절기와 당시의 시각을 정확히 읽을 수 있다. 이것은 그림자를 읽는 것이지만 실제로는 천구상에서 태양의 연주운동의 위치와 일주운동의 위치를 동시에 읽는 것과 동일하다. 서두에 나온 조선시대 사람들의 대화가 가능한 것은 바로 이 때문이다.

 

앙부일구는 기구 자체의 구조는 단순하지만, 계절에 따른 태양의 고도변화와 하루 중의 고도변화를 정확히 반영하는 정밀시계이다. 때문에 경제적으로 여유가 있고 첨단 정보에 발빠른 사람들은 앙부일구를 휴대용으로 만들어 몸에 지니고 다녔다. 마치 오늘날 정밀한 스위스제 손목시계를 지니고 다니면서 자랑하는 것처럼, 당시 사람들에게 휴대용 앙부일구는 귀중품이었을 것이다.

 

그런데 고정식 해시계는 설치된 장소의 위도와 수평면을 정확히 맞추어 설치된 것이므로 매우 정확할 수 있다. 반면 휴대용 해시계에서는 관측지점이 이동하므로 먼저 영침의 방향을 북극에 맞추어야 한다. 때문에 이 시계에는 나침반이 함께 달려있다. 나침반으로 북극의 방향을 정하고 이를 향해 시계를 두면 된다. 그러나 서울에서 제작된 휴대용 시계를 전라도의 해안지방에서 사용한다면 시간은 정확할 수 있지만, 위도에서 차이가 나 절기선이 2-3도 정도 부정확해질 것이다. 휴대용 앙부일구는 아마 서울에서 주로 사용했을 것이다.

 

해시계의 시간은 부정확하다?

 

해시계 내부의 영침과 방사상으로 퍼진 24개의 시각선.


현재 설치된 앙부일구를 찾아 시각을 읽어보면 손목시계의 시간과 상당히 차이가 나는 것을 발견할 수 있다. 많게는 40-50분 정도 차이가 난다. 어떤 사람들은 이것을 보고 “원리는 알겠는데, 그리 정확하지는 않네”라고 말한다. 그러나 이것은 커다란 오해다. 앞서 말했듯이 설치된 시계의 수평을 정확히 맞추고 위도를 정확히 측정해서 영침을 정북극에 맞추었다면 앙부일구처럼 정확한 시계가 더 이상 있을 수 없다. 시간이 틀린 원인은 오늘날의 시간이 표준시를 쓰기 때문이지 해시계가 부정확해서가 아니다.

 

잘 알다시피 세계는 그리니치 천문대를 지나는 자오선을 본초자오선으로 하는 세계 표준시를 쓰고 있다. 경도 15도에 한시간 간격으로 세계 각국이 자신의 경도에 해당하는 표준시를 쓴다. 그런데 우리나라는 동경 135도선에 표준시를 맞추므로 서울 지역을 지나는 동경 127도선 보다 약 30분 정도 빠른 시간을 쓰게 된다. 그래서 우리나라에서 12시 정각의 태양은 자오선에 아직 다다르지 않는다. 앙부일구에서 읽은 시간이 2시 10분이었다면 우리의 손목시계는 2시 40분-2시 50분을 가리키고 있는 한가지 이유가 이 때문이다.

 

해시계의 시간이 부정확하다고 느끼게 만드는 또 하나의 원인은 우리의 시간이 진태양시가 아닌 평균태양시를 쓰기 때문이다. 태양의 궤도는 적도에 대해 23.5도 기울어 있다. 또한 태양은 타원궤도를 부등속 운행한다(실은 지구가 타원궤도를 운행하는 것이지만 겉보기 운동은 태양이 운행하는 것으로 보인다).

 

태양의 고도가 변하는 것과 타원운동에 따른 부등속 운동으로 실제 하루의 길이는 정확히 24시간이 아니다. 1월1일은 하루가 24시간 29초이고, 10월 1일은 23시간 59분 41초이다. 이런 차이를 없애기 위해 현대에는 ‘태양이 적도 위를 등속 원운동하고 있다’는 가정 하에 모든 하루가 정확히 24시간인 평균태양시를 쓴다. 반면 해시계는 하늘에서의 태양 운행을 그대로 보여주고 있으므로 정확한 진태양시를 나타낸다. 날짜에 따라 진태양시와 평균태양시가 많게는 16분이상 차이가 난다. 결국 우리나라 표준시를 동경 135도를 기준으로 한 것과 진태양시와 평균태양시의 차이가 결합돼 앙부일구의 그림자가 보여주는 시간과 손목시계의 시간이 차이가 나는 것이다.

 

자연의 시간과 인위적 시간


오늘날 사람이 많이 다니는 광장의 시계탑에서 쉽게 시간을 볼 수 있다. 백화점이나 대형 건물에도 시계가 설치돼 있다. 하지만 우리가 보는 시간은 ‘지금을 오후 1시라고 정하자’는 약속일 뿐이다. 태양은 하늘에서 돌아가고 있지만 우리는 더 이상 태양을 보고 시간을 읽지 않는다. 하늘의 태양은 자오선에 오지 않았는데 지금을 ‘정오라고 정하자’는 규칙을 따라 정오로 부르고 있을 뿐이다. 그러므로 우리의 시간은 자연의 시간이 아니다.

 

하지만 우리 조상들은 우주가 걸어가는 시간의 길을 따랐다. 태양을 통해 자연이 보여주는 시간을 앙부일구를 통해 가장 정확히 읽어낼 줄 알았던 것이다. 흔히 현대 과학은 자연의 비밀을 드러내왔다고 이야기된다. 그러나 시간에 있어서 우리는 오히려 자연의 비밀을 잊어버리고 살아간다. 태양이라는 가장 밝은 존재를 통해 보여주는 시간을 현대인은 읽지 못한 채 살아가고 있는 것이다. 지금 우리나라 곳곳에 남아있는 앙부일구는 우리가 잃어버렸으면서도 깨닫지 못하는 시간을 가리키고 있다. 앙부일구의 그림자에서 자연의 시간을 읽을 줄 아는 사람, 그는 지금 우주를 읽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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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0년 01월 과학동아 정보

  • 사진

    박해윤 기자
  • 전용훈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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