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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허를 갖는 자가 시장을 지배 한다



아이폰이 등장한 이후 세계 휴대전화 시장에는 스마트폰 열풍이 불었다. 기존 강자였던 노키아와 삼성 등은 순식간에 위치에 처했다. 애플은 곧이어 아이패드를 발표하며 타블렛PC 시장까지 장악하기 시작했다. 그나마 발 빠르게 대응한 기업이 삼성이었다. 스마트폰인 갤럭시S
와 갤럭시탭 시리즈를 발표하며 애플의 독주에 제동을 걸었다.

하지만 갤럭시 시리즈는 처음부터 아이폰을 닮았다는 비난에 시달렸다. 관련 기사의 댓글이나 인터넷 커뮤니티 게시판에서도 ‘조금만 떨어뜨려 놓고 보면 구분 안 된다’는 의견과 ‘풀터치 스마트폰 디자인은 거기서 거기일 수밖에 없다’는 의견이 팽팽하게 대립했다. 애플의 CEO였던 스티브 잡스가 공개적으로 삼성을 비난하기도 했다. 삼성은 ‘카피캣(copycat)’이라는 치욕스러운 별명을 얻었다.



마침내 애플이 칼을 꺼내 들었다. 올해 4월 애플은 삼성의 갤럭시S와 갤럭시탭 등이 아이폰과 아이패드의 특허를 침해했다고 미국 캘리포니아 법원에 소송을 걸었다. 애플의 iOS와 함께 스마트폰 운영체제 시장을 양분하고 있는 구글의 안드로이드 진영에서 갤럭시 시리즈가 선두 주자로 부각되자 본격적으로 견제하고 나선 것이다.

삼성도 가만히 앉아 있지 않았다. 삼성도 애플이 자사의 특허를 침해했다며 맞소송을 냈다. 현재 두 기업의 특허 소송은 한국, 미국, 호주, 독일, 네덜란드 등 여러 나라에서 동시다발적으로 벌어지고 있다. 10월 18일 현재 애플은 독일, 호주, 네덜란드에서 갤럭시탭 10.1을 비롯한 일부 제품의 판매금지 가처분 소송에서 이겼다. 반면 삼성은 아직 아이폰과 아이패드를 판매금지시키는 데 성공하지 못했다.

이런 상황을 놓고 보면 애플이 이기고 있는 듯하지만, 아직은 단언할 수 없다. 현재 판결이 난 소송은 판매금지 가처분 사건이다. 판매금지 가처분은 특허를 보유한 기업이 당장 피해를 받고 있을 때 이를 구제하기 위해 임시로 적용하는 조치다.

실제로 특허를 침해했는지, 손해액이 얼마인지를 판단하기 위한 본안소송에는 시간이 많이 걸리기 때문이다. 가처분 신청도 특허 침해 여부를 심사하지만 나중에 본안소송에서 뒤집어질 수 있다는 뜻이다.

두 기업의 싸움에는 소비자의 반응도 뜨겁다. 전자기기 관련 커뮤니티에서는 상대방 기업을 옹호하는 사람들을 ‘앱등이’나 ‘알바’라고 부르며 비난하고 싸우는 일도 흔하다. 이같은 싸움에는 기업이나 기업가에 대한 소위 ‘팬심’, 제품에 대한 개인적인 호오, 애국심 등 여러 가지 요소가 얽혀 있다. 하지만 특허 싸움을 제대로 관전하려면 냉정하게 ‘싸움의 규칙’을 파악해야 한다. 2010년 기준으로 매출이 각각 70조 원(애플), 150조 원(삼성전자) 정도인 두 거대 기업의 분쟁은 특허 제도를 이해하는 데 아주 좋은 사례다. 뿐만 아니라 우리는 역사상 가장 큰 특허 전쟁을 목격하게 될지도 모른다.




애플의 선공과 삼성의 역습

애플이 삼성이 침해했다고 주장한 특허는 기술 분야에만 한정돼 있지 않다. 국내에서 애플이 삼성에 제기한 소송은 인터페이스 관련 특허 4건과 디자인 특허 7건에 대한 것이다. 인터페이스 특허는 ‘밀어서 잠금 해제’, ‘바운스백(화면을 넘기다 가장자리를 넘었을 경우 반대로 튕기는 기능)’, ‘아이콘을 오래 터치하면 이동과 삭제 모드로 바뀌는 기능’, ‘터치 휴리스틱스(화면을 스크롤할 때 손가락이 움직이는 각도가 기울어져도 수평 또는 수직으로 동작하게 하는 기능)’이다. 디자인 특허는 아이콘의 배열이나 모양 등을 포함하고 있다.

이런 주장에 대해서는 어떻게 방어해야 할까. 애플이 삼성을 공격하는 소송에서 삼성 측 대리인을 맡고 있는 특허법인 리앤목의 임병렬 변리사는 “특허를 침해했다는 공격에 대해 방어하려면 특허를 침해하지 않았음을 보이거나 상대방의 특허를 무효화해야 한다”고 설명했다. 특허 무효화는 상대방이 보유하고 있는 기술이나 디자인이 특허를 내기 전부터 이미 누군가가 쓰고 있었다는 사실을 보이는 방법이다. 갤럭시S가 아이폰의 외관을 베꼈다는 주장을 반박하기 위해 아이폰과 비슷하면서 그보다 더 먼저 나온 제품을 증거로 제출하는 식이다. 기술 특허도 마찬가지다. 애플이 권리를 침해당했다고 주장하는 기술이 전부터 널리 쓰이던 기술이었음을 증명하면 애플의 특허를 무효화할 수 있다.

그러나 두 제품의 디자인이 비슷한지 아닌지를 판단하기는 쉽지 않다. 디자인은 객관적인 요소보다 보는 사람의 느낌이 중요하기 때문이다. 모양이 얼마나 비슷한지, 색깔이 얼마나 비슷한지를 판단해야 하지만, 각 부분별로는 다르다고 해도 전체적인 모습을 봤을 때 얼마나 비슷하게 느껴지느냐가 중요한 근거가 된다. 특허를 출원할 때도 기존의 제품과 다른 독창적인 면이 있어야 한다. 임 변리사는 “디자인 특허의 침해 여부를 판단할 때 판사의 주관성이 전혀 들어가지 않기는 어렵다”고 말했다.

애플이 내세운 특허를 보면 ‘이런 것도 특허가 되나?’ 싶은 게 많다. 예를 들어 ‘밀어서 잠금해제’는 특별히 어려운 기술이 필요할 것 같지 않다. 두 사람 사이에서 오간 문자 메시지를 양 옆에 말풍선 형식으로 표시해 주는 기능도 애플이 보유한 특허다. 특허는 어렵고 복잡한 기술이어야만 받을 수 있다는 선입관을 깨 주는 사례다. 또한 독창적인 디자인도 특허의 대상이 될 수 있다는 사실은 삼성-애플 소송이 주는 교훈이다.

삼성도 애플의 소송을 방어하는 동시에 공세에 나섰다. 애플의 아이폰과 아이패드가 삼성이 갖고 있는 무선통신 기술에 관한 표준특허를 침해했다는 것이다. 표준특허는 국제표준기술을 이용하기 위해서는 절대로 벗어날 수 없다. 표준특허를 보유하면 특허 분쟁에서 유리해질 뿐만 아니라 막대한 사용료를 받을 수 있다. 글로벌 기업 사이의 특허 분쟁이 치열해지면서 중요성이 점점 커지고 있다.

그러나 지난 10월 14일 삼성이 네덜란드 법원에 제기한 아이폰과 아이패드 판매금지 신청은 기각됐다. 애플이 삼성의 표준특허를 침해했다는 사실을 법원이 인정하지 않아서가 아니다. 삼성의 발목을 잡은 것은 프란드(FRAND)라는 조약이다. 프란드는 ‘Fair, Reasonable, And Non-Discriminatory terms’의 약자로 누구나 공정하게 표준특허를 이용할 권리를 말한다. 표준특허를 가진 기업이 경쟁기업에게 특허 사용을 허락하지 않는 식으로 악용하는 일을 막기 위해 생겼다. 표준특허가 없는 기업은 먼저 제품을 만들어 판매하고 나중에 사용료를 지불할 수 있다.

애플은 프란드 조약을 주장해 삼성의 강력한 무기 하나를 무력화했다. 삼성으로서는 전략을 바꿔야 할 필요가 생긴 것이다. 네덜란드 법원은 두 기업에게 성실하게 사용료 협상에 임하라고 권고했다. 합의를 이루지 못할 경우에는 사용료를 받아내기 위해 삼성이 애플에게 소송을 제기할 수 있다.





최고의 무기는 창의적인 특허

삼성과 애플의 특허 전쟁이 어떻게 끝날지는 알 수 없다. 서로 끝장을 보겠다는 마음가짐으로 싸울 수도 있고, 어느 정도 선에서 적절히 협상할 수도 있다. 사용료를 내는 대신 서로 특허를 교환하는 ‘크로스 라이선싱’도 특허 분쟁에서 자주 이용하는 방법이다. 애플이 특허 분쟁을 벌인 기업이 삼성만도 아니다. 핀란드의 휴대전화 기업 노키아는 아이폰이 자사의 특허를 침해했다며 애플에게 소송을 제기한 바 있다. 애플은 삼성에게 소송을 건 지 두 달 만인 지난 6월 노키아에 사용료를 지불하기로 합의했다. 모토로라와 HTC도 애플과 특허 분쟁을 벌이고 있는 기업이다.

현재 모바일 업계만 보더라도 관련 기업들이 벌이는 특허 소송은 거미줄처럼 얽혀 있다. 삼성과 애플, LG, RIM, HTC, 모토로라처럼 모바일 기기를 만드는 기업은 물론 코닥 같이 카메라 기술 특허를 갖고 있는 기업도 끼어 있다. 특허가 중요해지면서 특허를 가진 기업끼리 동맹을
맺거나 특허를 노리고 기업을 인수하는 경우도 많다. 지난 8월 구글은 모토로라를 인수하며 모토로라가 가진 1만7000여 개의 특허와 함께 휴대전화를 직접 제조할 수 있는 능력을 갖췄다. 삼성은 인텔과 손을 잡고 새로운 모바일OS인 ‘티즌(Tizen)’을 개발하기로 했다. 안드로이드에만 목을 매지 않겠다는 뜻이다.

치열한 특허 전쟁이 어떻게 끝날지는 알 수 없다. 그러나 특허 몇 개가 수십 조 원 규모의 사업을 좌지우지할 수 있다는 사실은 시사하는 바가 많다. 특허는 단순히 많다고 좋지도 않으며, 꼭 복잡하고 어려운 특허가 좋은 것도 아니다. 때로는 단순하고 창의적인 특허 하나가 특허 전쟁에서 승패를 결정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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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년 11월 과학동아 정보

  • 고호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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