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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가 - 김탁환

‘여인의 초상’으로 과학 팩션의 진수를 보여주는

서울 상암동 디지털 미디어 시티. 미끈하게 올라간 푸른색 건물 3층에 자리잡은 디지털 스토리텔링 연구실의 문을 두드렸다. 나무로 만든 고풍스런 전통 양식의 문을 열자 원목으로 짜여진 병풍모양의 가림막이 먼저 눈에 들어왔다. 한켠에 쌓인 수백장의 기와 뒤에서 KAIST 문화기술대학원의 김탁환 교수가 모습을 드러냈다.

“요즘 한옥을 주제로 한 작품을 구상하고 있어서 연구실을 예스럽게 꾸며봤어요.”
김 교수의 첫마디였다.

김 교수는 드라마 ‘불멸의 이순신’ ‘황진이’의 원작을 쓴 작가로 팩션(faction)의 달인이다. 팩션은 팩트(fact)와 픽션(fiction)의 합성어로 실존 인물이나 역사적 사실에 상상력을 덧붙여 만든 이야기다.

팩션을 쓰기 위해서는 치밀한 사전조사가 필요하다. 김 작가는 ‘파리의 조선 궁녀 리심’이라는 한 편의 소설을 쓰기 위해 일본과 파리, 모로코에서 두달 동안 리심의 여정을 따라다녔다.

그가 이번에 과학소설(SF)에 도전장을 내밀었다. 뇌과학을 소재로 한 ‘여인의 초상’이라는 작품을 쓴 것이다. 그는 “세상을 이해하는 데는 인문학적 방식과 과학적 방식이 있다”며 말을 꺼냈다. “이제껏 인문학적 방식으로 세상을 이해했다면 앞으로는 과학적 방식으로 세상을 이해하려고 한다”며 “궁극적인 목표는 두 방식의 융합”이라고 덧붙였다.

김 작가가 ‘여인의 초상’을 구상한 때는 2년 전이었다. 그는 “치매에 걸려 삶의 모든 것을 잃어가는 주인공이 미술치료사의 도움을 받아 죽음을 예술로 꽃피우는 ‘절망, 그러나 아름다운 퇴장’에 대해 얘기하고 싶었다”고 말했다.


소설가 김탁환


‘여인의 초상’에도 치밀한 과학적 고증이 녹아있다. 그는 뇌과학을 전공한 과학자와 의사, 미술치료사를 만나고 관련 서적도 수 없이 읽었다. 그렇게 모은 정보를 정리한 자료가 A4용지로 100장. 그는 “등장인물의 행동을 과학적으로 설명할 수 있어야 한다”며 팩션의 과학적 논리를 강조했다.

김 작가가 조사한 과학적 사실은 소설 곳곳에 녹아있다. 치매에 걸린 주인공이 보여주는 이상한 행동 하나하나는 모두 치매의 하나인 ‘픽병’(Pick's disease)의 증세다. 김 작가는 픽병의 진행 단계에 따라 나타나는 증상을 세세하게 적은 표를 보여줬다. 소설에 나오는 삽화도 실제 픽병 환자들이 그린 그림을 바탕으로 그렸다.

“아날로그 시대의 소설이 글로만 이뤄졌다면 디지털 시대의 소설은 그림과 글이 혼재하면서 각각 의미를 지녀야 합니다.”
김 작가의 말처럼 ‘여인의 초상’에서 그림은 중요한 의미가 있다. 그는 “소설의 그림 속에 하나의 이야기를 숨겨놓았다”며 “독자들이 그림이 전하는 이야기를 추리해봤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김 작가는 과학 팩션을 쓰며 미래를 준비하고 있다. 그는 5년 안에 문화의 양상이 역사 교양의 시대에서 과학 교양의 시대로 바뀌게 될 것이라 믿는다. ‘주몽’ ‘연개소문’ 같은 사극이 넘치면서도 ‘하얀거탑’ ‘과학수사대 C. S. I’ 같은 의·과학전문 드라마가 인기를 끄는 것도 한 예다.

KAIST에서 과학자들과 과학을 소재로 담소를 나누는 시간을 즐긴다는 그는 “과학 팩션을 쓰는 작가에게 KAIST는 정보의 보물창고”라고 자랑한다.
역사적 사실을 바탕으로 팩션을 쓰던 달인이 과학에 빠졌다. 그가 추구하는 과학 팩션이 과학동아 독자에게 신선한 충격을 주길 기대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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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7년 04월 과학동아 정보

  • 전동혁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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