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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요기사][현장취재] 고온 초전도체 비밀 풀릴까 미스터리 ‘암흑 전자’ 발견

▲GIB, 박주현
 

 

물리에서 ‘암흑’이란 존재하지만 보이지 않는 것이다. 빛이나 에너지를 방출하지 않아 관측이 불가한 상태다. 김근수 연세대 물리학과 교수가 이끈 국제 t공동연구팀은 그동안 존재하는 것이 불가능하다고 여겨졌던 고체 물질 속의 암흑 전자를 확인했다. 미스터리한 암흑 전자의 존재가 물리학에 어떤 파장을 일으킬지 연구자를 찾아가 자세히 들었다.  

 

강력한 중력으로 우주의 팽창 속도를 늦추지만, 눈에는 결코 보이지 않는 암흑물질은 물리에서 ‘암흑’이란 개념을 차용하는 가장 대표적인 예다. 전자도 암흑 상태가 있다. 암흑물질처럼 그 자리에 존재하지만, 빛과 상호작용하지 않아 눈에 보이지 않는 전자를 암흑 전자라 한다. 그동안 발견된 암흑 상태의 전자는 원자나 분자에 붙어 있는 형태로 존재했다. 하나의 원자에 존재하는 전자는 개수가 많지 않아 빛과 상호작용을 하지 않는 것을 찾기 쉬웠다.

 

그런데 고체 속의 전자는 암흑 상태로 존재하는 것이 불가능하다고 여겨졌다. 고체 상태는 원자가 매우 밀집돼 있어 전자가 너무 많기 때문이다. 고체 물질의 경우엔 1cm당 전자가 최소 1023개 있다. 그리고 고체 물질을 형성할 수 있는 원자는 적게는 한 개, 많게는 90개가 넘는 전자를 갖고 있다. 거기다 무수히 많은 전자는 상호작용을 하며 다양한 양자 상태로 존재한다. 즉 고체 상태에서는 많은 전자가 좁은 공간에 복잡한 상태로 존재해, 암흑 상태의 전자가 집단적으로 존재할 수는 없다고 여겨진 것이다.

 

그간의 판단을 뒤집는 연구 결과가 발표됐다. 7월 29일, 김근수 연세대 물리학과 교수가 이끈 국제 공동연구팀은 국제학술지 ‘네이처 피직스’에 고체 물질 속의 암흑 전자를 확인했다고 밝혔다. doi: 10.1038/s41567-024-02586-x 

 

▲김태희
김근수 연세대 물리학과 교수가 이끈 국제 공동연구팀은 고체에서 전자의 암흑 상태가 존재한다는 것을 세계 최초로 규명했다.

 

‘원래 그렇다’고 설명되던 전자 상태에 주목

 

잔잔한 물가에 여러 개의 돌을 던지면 각각의 돌이 동심원을 만들어낸다. 이 동심원들은 퍼져 나가며 다른 동심원과 상호작용을 한다. 양자역학에서는 전자가 이런 파동적 성질을 가지며 확률적으로 분포한다고 설명한다.

 

상호작용은 ‘간섭’이다. 원자 주변의 전자는 서로 간섭한다. 간섭은 두 종류로 나뉜다. 보강 간섭은 두 파동의 위상이 일치해 서로 겹치며 진폭이 증가하는 현상이다. 마루와 마루, 골과 골이 만났을 때 더 큰 폭의 마루와 골이 만들어진다. 상쇄 간섭은 두 파동의 위상이 반대일 때 만들어진다. 반대의 위상이 서로 겹치면 진폭이 감소하거나 상쇄돼 ‘0’이 되는데, 이에 따라 파동이 약해지거나 완전히 사라진다.

 

연구팀은 상쇄 간섭이 암흑 상태의 전자를 만들어 낸다고 생각했다. 특히 인(P) 원자로 만든 2차원 물질인 흑린을 연구하던 중 전자 사이의 간섭이 뚜렷하게 나타나는 것을 확인했다. “흑린은 탄소 동소체로 잘 알려진 그래핀과 매우 비슷한데, 두 물질은 두 개의 같은 원자, 즉 한 쌍의 원자가 단위 구조에 반복되는 특징이 있습니다.” 단위 구조란 결정이 만들어내는 반복적인 패턴을 정의하는 가장 작은 구조를 뜻한다. 

고체는 단위 구조가 3차원 공간에서 반복돼 형성된다. 그래핀은 두 개의 탄소 원자로 단위 구조가 구성되고, 흑린은 네 개의 인 원자로 구성되나 대칭 구조를 이루고 있어 2쌍을 1쌍처럼 취급할 수 있다. 한 쌍의 원자는 서로 대칭 관계라, 원자 주변의 전자가 만들어내는 간섭 현상을 예측하고 관측하기 쉬웠다. 연구팀은 자연스럽게 단위 구조의 구성 원자가 한 쌍이 아닌 두 쌍이 존재하는 경우의 전자 상태와 간섭에 주목했다. 

 

간섭에 따른 광명암흑 상태
▲Nature Physics
 
고체의 단위 구조에 같은 종류의 원자 4개(2쌍)가 규칙적으로 배열된 경우, 만들어지는 전자 파동의 모양을 유형별로 나타냈다. 파동의 위상이 모두 같은 경우 보강 간섭이 일어나 빛으로 관측할 수 있는 광명 상태가 된다. 반면 서로 다른 모양의 전자 파동이 상쇄 간섭을 일으키는 경우 ‘암흑 상태’가 된다.

 

미끌림 거울 대칭성을 띠는 두 쌍의 원자가 핵심

 

연구팀이 주목한 것은 단위 구조에 4개 원자가 2쌍씩 짝을 지어 특정한 대칭성을 이루는 물질이었다. 김 교수는 “미끌림 거울 대칭성이 핵심”이라고 강조했다. 미끌림 거울 대칭성은 ‘미끌림 변환’과 ‘거울 대칭성’이 결합된 것이다. ‘ABABAB’와 ‘BABABA’가 거울을 마주 보고 이어져 있는 모습을 상상해 보자. 여기서 고체의 단위 구조를 이루는 것은 ‘AB’와 ‘BA’다. 쌍을 이루는 원자가 2개씩 존재하는 형태다. 나머지는 단위 구조가 만들어내는 반복적인 패턴이다. 이중 ‘AB’ 배열을 격자 상수(단위 구조의 크기를 나타내는 길이, 여기서는 2)의 절반만큼 밀어 보면 이렇게 된다. ‘BA’. 이제 거울을 마주 보는 배열이 ‘BA’, ‘BA’로 대칭을 이룬다. 이것이 미끌림 거울 대칭성이다.

 

3개의 차원인 가로, 세로, 높이 축 중에 최소 2개에서 미끌림 거울 대칭성으로 고체 단위 구조가 존재하면 전자의 위상 관계가 단 4개로 재편되는 것이 연구 결과 드러났다. 김 교수는 “전자 파동과 전자 파동의 위상 관계도 원자가 이루는 대칭성을 따라가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각각의 원자에서 전자 파동의 모양을 그려낸 4개의 위상 관계는 간단했다. 첫 번째는 4개의 원자가 모두 위로 솟은 골의 형태를 하고 있다. 두 번째는 마주 보고 있는 2개의 원자가 골과 골, 마루와 마루로 마주 보고 있다. 세 번째는 두 쌍의 원자가 각각 골과 마루를 만들어 서로 마주 보고 있는 형태였다. 마지막은 두 쌍의 원자가 골과 마루, 마루와 골의 모양을 하고 있었다.

 

“이렇게 되면 모두가 같은 모양으로 만들어지는 첫 번째 위상 관계에서는 보강간섭이 일어나 빛으로 관측할 수 있지만, 나머지 위상 관계에서는 서로 다른 모양의 전자 파동이 포개져 사라지는 상쇄간섭이 일어납니다.” 총 3개의 위상 상태에서 전자는 암흑 상태가 되는 것이다. “4개의 위상 관계 외에 다른 위상 상태는 나타날 수 없는 거냐”는 기자의 질문에 김 교수는 “모든 경우의 수를 따져봤다”고 대답했다. 위상의 재편은 그동안 고체 물질에서 무한한 확률로만 전자를 이해하고 규칙성을 찾고자 하지 않았던 상황에서 큰 발견이었다.

 

고체 내 암흑광명 상태의 배열
▲Nature Physics, 박주현
 
고체의 단위 구조에 같은 종류의 원자 4개(2쌍)가 규칙적으로 배열된 경우, 만들어지는 전자 파동의 모양을 유형별로 나타냈다. 파동의 위상이 모두 같은 경우 보강 간섭이 일어나 빛으로 관측할 수 있는 광명 상태가 된다. 반면 서로 다른 모양의 전자 파동이 상쇄 간섭을 일으키는 경우 ‘암흑 상태’가 된다.

 

‘빛 공장’ 방사광 가속기에서 확인한 암흑

 

“암흑 전자의 존재, 즉 보이지 않는 것은 어떻게 확인한 건가요?” 기자의 질문에 김 교수가 웃으면서 대답했다. “전자가 보여야 할 때 보이는 것을 확인했고, 보이지 않아야 할 때 보이지 않는 것을 확인했습니다.”

 

이를 위해 방사광 가속기를 동원했다. 방사광 가속기는 고에너지 전자를 빛의 속도만큼 빠르게 가속시켜 강력한 빛(방사광)을 생성하는 장치다. 방사광이란 입자가 가속되거나 휘어질 때 발생하는 전자기파다. 방사광 가속기는 이런 방사광을 발생시키기 위해 거대한 원형의 가속기에서 전자를 빠른 속도로 가속한 뒤, 자석을 사용해 궤도를 휘게 만든다.

 

연구팀은 미국의 첨단방사광가속기(ALS)와 영국의 다이아몬드방사광가속기(DLS)에서 고체 속 전자의 에너지와 운동량을 측정하는 각분해광전자분광 실험을 진행했다. 실험 결과 전자가 관측 가능 상태(광명 상태)와 암흑 상태를 만들어내는 영역이 뚜렷이 구분됐다.

 

연구는 고체 물질에서의 암흑 상태를 확인했을 뿐만 아니라 고체의 운동량 단위 구조 안에서 파동이 단일화된다는 사실도 밝혀냈다. “가로 세로 각각 3개로 총 9개의 네모난 영역을 최소 단위로 하는 파동의 패턴을 확인할 수 있었습니다.” 김 교수는 설명과 함께 그림 하나를 보여줬다. 그림 정 가운데에는 파란색, 대각선으로는 빨간색이, 그리고 가로와 세로에는 노란색과 초록색이 대칭돼 칠해져 있었다. 

 

각각의 색은 고체 내에서의 파동 패턴을 나타낸다. “하나의 영역에 하나의 색깔로 칠해진 것도 보통의 고체 물질에서는 나타나지 않는 특징입니다.” 김 교수는 일반적으로는 하나의 영역에 여러 개의 색깔이 연속적으로 변화하는 형태로 칠해져 있어야 한다고 설명했다. 고체에는 원자가 밀집돼 있어 무수히 많은 전자가 각양각색의 상태로 존재하기 때문이다. 그는 “이런 단일화된 파동 역시, 단위 구조 내에 두 쌍의 원자가 미끌림 거울 대칭성으로 존재하기 때문에 만들어지는 것”이라고 덧붙였다.

 

▲Diamond Light Source
광속에 가깝게 가속한 전자나 양전자에서 방사광을 방출시키는 방사광 가속기는 ‘빛 공장’이라 불린다. 연구팀은 영국 옥스퍼드셔에 위치한 다이아몬드 방사광 가속기(사진) 등에서 암흑 전자의 존재를 확인했다.

 

암흑 전자, 고온 초전도체 비밀 풀 열쇠 될까

 

연구팀은 팔라듐 다이셀레나이드를 시작으로 구리 산화물, 페로브스카이트에서 전자의 암흑 상태를 확인했다. 팔라듐 다이셀레나이드는 x, y, z 세 방향 모두가 미끌림 거울 대칭성을 갖고 있는 물질이었다. 아이디어를 검증하기에 적합했다. 김 교수는 “팔라듐 다이셀레나이드로 암흑 전자의 존재를 파악한 뒤, 암흑 전자가 보다 중요한 물질에도 존재할 수 있겠다고 생각했다”고 말했다. 

 

연구팀은 곧바로 고온 초전도체의 재료인 구리 산화물에 주목했다. “구리 산화물에 초점을 맞춘 이유가 있습니다. 지금도 풀리지 않은 고온 초전도체의 비밀이 암흑 전자와 연결돼 있을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거든요.” 김 교수가 말했다. 그가 ‘비밀’이라고 말한 것은 바로 초전도 현상이 나타나기 시작하는 임계온도(TC)의 원리다.

 

고온 초전도체는 비교적 높은 온도에서 전기 저항이 사라지는 초전도 현상이 나타나는 물질이다. 저온 초전도체는 절대온도 30K(약 영하 243캜) 이하에서 초전도성이 나타나는 반면, 고온 초전도체는 절대온도 77K(약 영하 196캜) 이상에서 초전도성이 나타난다. 1986년 고온 초전도체를 발견한 스위스의 물리학자 카를 뮐러와 요하네스 베드노르츠는 이듬해인 1987년 노벨 물리학상을 받았지만, 발견 후 40여 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고온 초전도 현상에서 TC가 어떻게 결정되는지가 명확한 물리학의 언어로 설명되지 않고 있다. TC 메커니즘을 정확히 설명할 수 있게 된다면, 이후 물질을 디자인해 초전도 현상이 나타나는 임계온도를 상승시킬 수 있다. 김 교수는 “고온 초전도체의 원리를 정확히 설명한다면 노벨 물리학상이 예약돼 있다”고 설명했다.

 

연구팀은 고온 초전도체에서 나타나는 ‘페르미 아크’와 ‘슈도갭’ 현상이 암흑 전자와 깊은 관계가 있을 것으로 보고 있다. 페르미 아크는 TC보다 높은 온도에서 페르미 면이 일부분만 나타나는 현상이다. 페르미 면은 금속 물질에서 전도에 참여하는 전자의 운동량 분포를 나타내는데 일반적인 금속에서는 페르미 면이 완전한 폐곡선(닫힌 곡선) 형태로 그려진다. 그런데 고온 초전도체에서는 페르미 면이 곡선의 일부인 ‘아크’ 형태로 그어진다. 

 

페르미 아크는 고온 초전도체의 전자 구조에서 나타나는 독특한 현상이다. 페르미 아크는 슈도갭이 형성되는 온도 범위에서 나타나는 것이 일반적이다. 슈도갭은 초전도 상태로의 전이가 일어나기 직전의 상태다. 이때 초전도체의 전자 밀도가 부분에 따라 감소하고 전자들이 상호작용을 하는 방식이 변한다. 이로 인해서 전도 대역에서 부분적인 에너지 격차가 생긴다. 

 

“물리학자들은 페르미 아크와 슈도갭을 이해하면 고온 초전도체의 원리를 완벽히 정립할 수 있을 것으로 기대합니다.” 그리고 김 교수는 “암흑 전자가 그 열쇠가 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단일화된 파동이 만들어낸 광명 상태와 암흑 상태 패턴을 아크 형태로 그린다면, 페르미 아크가 만들어내는 영역화를 이해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동안은 고체에도 암흑 전자가 있을 것이라고 생각하지 못했기에, 그 누구도 하지 못한 생각이었다.

 

▲이한철, Midjourney
2023년 7월, 상온 상압 초전도체로 제시된 LK-99는 전 세계 물리학계를 뜨겁게 달궜지만 결국 부도체로 드러났다. 김 교수는 “고체의 암흑 전자가 고온 초전도체의 원리를 규명하는 열쇠가 될 수 있다”고 말했다. 고온 초전도체의 원리가 규명되면 초전도 현상의 임계온도를 끌어올리는 것을 기대할 수 있다.

 

물리학에 새로운 화두를 던지다

 

 

마지막으로 연구팀은 응용성을 염두에 두고 페로브스카이트까지 실험했다. 페로브스카이트는 태양전지 소재로 꼽힌다. 페로브스카이트는 빛을 에너지로 전환하는 효율성이 좋다고 잘 알려졌지만, 어떤 이유로 효율이 좋은지에 대해서는 아직 밝혀지지 않았다. 김 교수는 “암흑 전자를 확인한 이번 연구가, 물질의 효율성을 설명하는 데에도 도움이 될 것”이라고 기대했다. 

 

“물리 연구는 복잡한 자연에서 일반화할 수 있는 핵심을 찾는 일입니다. 그러다 보면 핵심을 위해 무시하거나 제대로 짚지 않고 넘어가는 현상이 있기 마련이죠. 그것이 정말 무시해도 되는지 아닌지는 모르면서 말이에요.”

 

패턴화된 암흑 전자와, 일반 전자가 페르미 아크를 만들어낸 것임이 밝혀진다고 하더라도 곧바로 초전도체의 TC를 상온까지 끌어올릴 수 있는 것은 아니다. 태양전지의 변환 효율 등이 혁신적으로 늘어나는 것도 아니다. 김 교수는 “이번 연구는 화두를 던지는 성격을 갖고 있다”고 강조했다. ‘여기, 고체 물질에 암흑 전자가 있다’고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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