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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에만 가만히 앉아 있었는데도 여행을 마치고 나면 피곤해지는 이유가 뭘까. 버스에서는 왜 유독 멀미가 심하게 날까. 이 모든 비밀에 진동이 있다. 핸드폰, 안마기를 비롯해 자동차, 공구를 사용할 때 느껴지는 각종 진동은 우리 몸에 크고 작은 영향을 끼친다. 우리를 기분 좋게도, 나쁘게도 만드는 오묘한 인체 진동의 세계로 들어가 보자.

서울에 사는 나어질 씨는 이번 여름휴가 때 멀미로 큰 곤욕을 치렀다. 서울에서 설악산까지 승용차로 달리는 대여섯 시간 동안, 구토감 때문에 가다 서기를 반복한 것이다. 그는 어지러움을 지우려고 일부러 잠도 청해보고, 창문을 열어 환기도 시켜봤다. 하지만 울렁거림이 그치질 않아 잠을 이룰 수가 없었다. 평소 멀미가 심하지 않은 나어질 씨는 아무래도 교통체증 때문에 스트레스로 멀미가 생긴 것 같다고 생각한다.


눈과 몸 따로 느끼면 뱃속이 ‘울렁울렁’

여름이 되면 멀미 때문에 멀리 휴가를 가지 못하는 사람들이 의외로 많다. 멀미는 구토, 졸림, 불규칙한 호흡, 땀 흘림, 두통, 어지러움, 입 마름 같은 증상이 나타난다. 일단 증상이 나타나면 물리적, 심리적으로 작업수행능력이 급격히 떨어지고 회복하는 데도 꽤 오래 걸린다. 멀미는 사람에게 많은 스트레스를 주는 질병이다.

멀미는 왜 일어날까. 우리 몸은 체성감각계, 시각계, 전정계라는 세 감각계를 통해 감각 정보를 받는다. 이 정보들이 서로 다르거나 과거 경험과 맞지 않으면 멀미 증상이 나타난다. 예를 들어 달리는 차안에서 책을 읽으면 멀미를 느낀다. 몸은 이동하고 있다고 느끼지만 시선은 정지된 물체에 고정돼 있어 이들 정보가 상충되기 때문이다. 반대로 눈은 움직이는 신체를 느끼는데, 전정계는 신체가 고정돼 있다고 느끼는 경우도 멀미가 일어난다. 컴퓨터나 영상 매체를 통해 가상현실을 경험할 때가 그렇다. 1999년 영국 노팅엄대 연구진이 실험한 결과에 따르면 가상현실에 노출된 사람의 80%가 10분 안에 멀미 증상을 호소했다. 이처럼 각 감각계가 느낀 정보의 차이로 발생하는 멀미의 기전을 ‘감각충돌설(sensory conflict theory)’이라고 한다. 감각충돌설은 현재까지 멀미의 기전을 설명하는 가장 타당성 있는 이론이다.



멀미의 범인은 저주파수 진동

하지만 차에서 책을 읽지 않아도 멀미는 발생한다. 나어질 씨처럼 평소에 멀미를 느끼지 않는 사람도 그날의 컨디션과 차 안의 습도, 온도, 주행 조건에 따라 멀미가 일어날 수 있다. 멀미하면 뭐니뭐니해도 뱃멀미다. 배에서는 책은커녕 가만히 앉아 있기만 해도 멀미를 느낀다는 사람이 많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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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체는 0.63Hz 이하의 저주파수 진동에 일정 시간 노출되면 멀미를 느낀다. 파도 위에서 출렁이는 배의 움직임은 대표적인 저주파수 진동이다.]





비밀은 진동에 있다. 파도 위에서 출렁거리는 배를 보자. 2~3초마다 한 번씩 위아래로 출렁거린다. 주파수는 1초 동안 진동하는 횟수를 말하므로 수직으로 진동하는 배의 주파수는 1/2~1/3Hz이다. 국제표준화기구(ISO)에 따르면 인체에 영향을 미치는 진동은 0.63Hz 이하의 저주파수 진동과 1~80Hz의 진동으로 나뉘다. 이 중 멀미는 저주파수 진동에서 나타난다. 귀에 있는 전정기관이 1Hz 미만의 저주파수 진동을 감지하고 이를 신경계로 보내기 때문이다. 두 귀에 있는 전정신경을 잘라낸 동물이나 완전한 양측성 전정신경병증을 앓는 환자에게서는 멀미가 발견되지 않는다.

저주파수 진동은 배를 비롯해 비행기, 승용차, 버스에서도 경험할 수 있다. 차량에서는 급발진이나 급제동, 코너링 같이 수평방향으로 급변속하는 주행에서 자주 나타난다. 실제로 커브를 돌 때는 속도를 줄이고 천천히 방향을 틀어 이동한다. 보통 커브 하나를 도는 데 1초 이상이 걸리므로 주파수가 1Hz를 넘지 않는다. 나어질 씨가 고속도로를 타지 않고 국도를 탔다면 수십 개의 꼬불꼬불한 대관령고개가 나 어질 씨 멀미의 범인일 가능성이 높다. 또 같은 커브를 돌아도 승용차보다 버스가 질량이 크기 때문에 커브를 도는 데 시간이 더 오래 걸려 멀미가 더 잘 일어난다.

버스에서 더 잘 멀미가 일어나는 이유는 또 있다. 고속버스나 시외버스는 승차감을 높이기 위해 시트에 에어스프링을 장착하는 경우가 많다. 스프링의 강성을 낮춰 바닥으로부터 오는 충격을 잘 흡수하기 위해서다. 하지만 에어스프링은 차량이 빠르게 주행할 때만 효과가 있다. 과속방지턱을 넘기 위해 속도를 낮추면 요철 위에서 오히려 차 전체가 ‘꿀렁’거리는 느낌을 더 받는다. 요철로부터 받는 힘이 같을 때 강성이 작으면 차가 움직이는 진폭은 더 커지기 때문이다(F=kx, k는 스프링 강성, x는 진폭, F는 요철로부터 받는 힘). 따라서 서스펜션이나 에어스프링, 쿠션 같은 충격 완화 장치가 잘 돼 있는 차는 비포장도로나 커브가 많은 도로에서 오히려 흔들림을 더 많이 느낄 수 있다.



핸들 옆에서 에어컨 바람은 NO

한편 1~80Hz 부근의 진동은 신체 전체 또는 일부에 즉각적이고 직접적인 불편함을 유발한다. 고속도로 요금소에 진입하기 전에 감속구간을 지날 때 차체가 ‘다다다다’하고 떨렸던 기억을 떠올려보자. 이때의 진동은 수 헤르츠를 넘는다. 이 진동은 운전자의 주의를 환기시키는 데 효과적이다. 하지만 손과 몸 전체에 떨림을 일으켜 불편함을 느끼게 한다. 더욱이 진동은 신체 전체 또는 일부와 공진을 일으켜 더 크게 증폭될 수 있다. 이경종 아주대의대 산업의학과 교수는 “우리 몸은 부분마다 밀도가 다르고 뼈는 관절로 연결돼 있어 진동하는 정도가 각각 다르다”고 설명했다.

일반적으로 1Hz 이하에서는 차멀미를 느낀다. 4~12Hz가 되면 압박감과 통증을 받고 심하면 공포심, 오한을 느낀다. 또한 신체는 진동을 받으면 고관절, 어깨관절 및 복부장기가 공진을 일으킨다. 진동에 대한 반응도 증가한다. 20~30Hz에서는 두개골이 공진하기 시작해 시력, 청력 장애를 일으키고 60~90Hz에서는 안구가 공진한다. 요즘 차량들은 각종 완충장치로 엔진과 배기구에서 발생하는 진동을 제어하고 있어 수십Hz에 이르는 진동은 거의 발생하지 않는다. 단 노면 상태와 주행 조건에 따라 10Hz 이하의 주파수에서 공진은 나타날 수 있다. 장한기 두산인프라코어 상무는 “인체가 느끼는 진동의 주파수 특성은 수직방향의 경우 4~15Hz 영역에서 가장 민감도가 크기 때문에 자동차 제작사들은 이 영역의 진동을 줄이는 데 주안점을 두고 제작한다”고 말했다.

차량에서는 국부 진동도 발생한다. 차량 탑승자에게 전달되는 국부진동으로는 핸들을 통해 전달되는 수완계 진동과, 발로 전달되는 진동과 같이 직접적인 접촉에 의한 것이 있다. 진동에 의한 불쾌감을 줄이기 위해서는 당연히 접촉 부위의 진동량을 줄이면 된다. 그러나 장 상무는 “진동 피크의 주파수가 이동하면 인체에 대한 영향 또한 달라지기 때문에 진동을 낮추고자 할 때는 인체가 가장 민감한 진동의 방향과 주파수 대역을 고려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말했다.

수완계 진동을 평가하는 데 또 하나의 중요한 요소는 바로 손의 온도다. 진동이 손에 주는 불편함은 신경조직에 대한 간섭, 근육에 대한 영향, 혈액순환 장애 등으로 나눌 수 있다. 온도가 떨어진 경우 혈액순환이 급격히 저하돼 손 저림 현상이 쉽게 나타난다. 특히 진동하는 물체를 잡고 있을 때 접촉부 또는 손 주위의 온도가 낮아지면 진동을 더 불편하게 느낄 수 있다. 따라서 운전대를 잡고 있는 손 위치 바로 앞에 에어컨 송풍구를 배치하는 것은 바람직하지 못하다고 할 수 있다. 손발의 혈액순환이 원활치 않은 노인들의 경우 특히 유의할 필요가 있다. 신체 부위 중에서 진동에 대한 민감도가 가장 낮은 부분은 발이다. 착석한 상태에서 전신진동과 비교해볼 때 1/4 정도의 민감도를 나타낸다.


[1Hz 이상의 진동은 우리 몸에 즉각적인 불편함을 가져온다. 온도가 낮을수록 불편함을 더 크게 느끼므로 에어컨 송풍구를 자동차 핸들 옆에 두는 것은 좋지 않다.]



진동 평가 개인마다 천차만별

그렇다면 진동은 인간에게 불쾌감만 줄까. 주위를 둘러보면 진동을 활용하는 사례는 상당히 많다. 핸드폰의 진동이 대표적이며 커피숍
에서 사용하는 진동기, 안마기, 진동 운동기구 등 형태와 목적도 다양하다. 특히 전신진동운동은 골다공증 환자들이 골밀도를 높이는 데 도움이 된다. 임용택 고려대 교수는 2005년 ‘코칭능력개발지’에서 “전신진동운동의 효과는 웨이트트레이닝이나 달리기와 같은 전통적인 형태의 운동에 비해 결코 뒤떨어지지 않는다. 연구결과 전신진동운동은 근육기능과 골밀도를 향상시키고 산소섭취량과 혈류량을 증가시키며 체지방율 감소 등 인체 거의 모든 기관에 골고루 영향을 미친다”고 말했다. 우리나라에 전신진동운동 장비가 소개된 것은 2002년 월드컵 축구대표팀 감독이었던 거스 히딩크가 파워프로그램의 일환으로 도입한 것이 최초라 할 수 있다. 요즘은 피트니스센터 외에도 비만클리닉이나 통증클리닉을 중심으로 사용되고 있다.

진동에 대한 인간의 영향은 심리적인 것과 생리적인 것으로 구분한다. 심리적인 영향으로는 주의력이 산만해진다든가 짜증이 나는 주관적인 형태로 나타난다. 그 정도 또한 개인에 따라 다르며 진동에 대해 개인이 갖는 감정이나 분위기 등에 좌우된다. 진동원에 대해 반감을 가지고 있다면 진동을 느끼기 시작하는 시점이 곧 불쾌감을 느끼기 시작하는 시점이다.

양형식 전남대 자원공학과 교수팀은 1997년 ‘터널과 지하공간’ 저널에서 진동에 대한 인간의 반응 특징을 다음과 같이 요약했다.

➊ 진동은 인간이 위험을 알리는 신호로 해석하는 본능적인 감각 대상이다. 특히 사전에 경고가 없으면서 발생원을 파악하기 어려운 진동에 대해 매우 불쾌하게 감지한다.

➋ 진동이 소음과 같은 다른 방해요소와 함께 발생할 때는 불편감이 더 크게 부각된다. 또 학습에 따른 영향이 있어서 밝혀지지 않은 발생원에 대한 불안이 크다. 또 원하지 않는 진동이 반복되면 불편이 커진다.

➌ 반대로 진동원이 불가피하거나 이익을 주는 수단이면 인내 수준이 높아진다.

양 교수팀은 인체 허용진동수준을 어느 선에 두어야 불평이 없게 되는가를 정하기는 매우 어렵다고 결론 내리고 있다. 낮은 수준에서도 몇 퍼센트의 사람은 불평하게 돼 있다는 것이다.

한편 생리적인 영향은 심리적인 영향과는 별개로 생리적 현상, 혈액순환, 호흡, 신진대사 같은 객관적인 현상으로 나타난다. 따라서 어느 정도 개인차는 있어도 심리적 영향처럼 극단적인 차이는 없다. 일반적으로 알려진 점은 불편감은 진동의 크기에 비례한다는 것이다. 또 불편은 진동의 주파수와도 관련이 높다. 주파수가 높아지면 여러 신체부위가 공진하는 경향이 있어 각 신체 부위가 이를 감소시키려고 하기 때문에 불편감이 증가한다. 또 진동 노출 기간이 길어지면 불편감이 증가하고 한 방향보다 무작위에서 발생하는 다방향 진동이 더 불편하다고 알려져 있다. 불편과 관련된 다른 요인으로는 자세, 나이, 성별 등이 있다.

[강한 진동에 오랫동안 노출되면 진동 후유증이 나타난다. 대표적인 증상으로는 손 끝이 하얗게 되는 흰색 손가락 증상(white finger)이다.]



근로자의 손이 하얗게 되는 이유

가장 문제가 되는 진동은 작업장에서 동력공구를 사용할 때 몸에 전해지는 충격이다. 작업장이 기계화, 자동화됨에 따라 기계적 진동이 작업자의 건강에 악영향을 주는 사례가 종종 있다. 진동을 일으키는 공구는 착암기, 끌, 그라인더, 마감기, 전기톱, 해머 등이며 주로 중공업, 조선소, 자동차 등 제조업과 광산, 임업, 건설업, 정비공장에서 많이 쓰인다. 헬리콥터나 비행기 조종사들도 진동이 심한 환경에 자주 노출된다.
이들에게서 가장 많이 나타나는 질병은 레이노 현상(Raynaud’s phenomenon)이다. 진동에 의해 손가락에 있는 말초혈관 운동이 저하돼 혈액순환에 장애가 생기는 병이다. 주요 증상은 손가락이 창백해지고 통증을 느끼며, 추위에 노출되면 더욱 악화돼 검은색 손가락(dead finger) 또는 흰색 손가락 증상(white finger)이라고 부른다. 또한 신체에 국소적으로 심한 진동을 받으면 손목관절, 팔꿈치관절, 어깨, 다리 등에 차가워짐, 굳어짐, 무력감, 감각 저하, 떨림, 운동 제한 등의 증상이 나타난다. 전신증상으로는 두통, 위장장해, 불면, 현기증, 혈관장애 등이 나타난다.

이런 문제점을 예방하기 위해 선진국에서는 다각적인 노력을 해 왔다. ISO는 1974년 전신진동 노출의 평가지침(ISO 2631)을 정해 2010년까지 지속적으로 개정해오고 있으며, 수전달 진동의 평가지침(ISO5349)을 1986년에 제정하고 2001년에 개정한 바 있다.

우리나라는 작업장의 다른 위험요인에 비해 진동이 많은 관심을 받아온 편은 아니다. 홍익대 정보 컴퓨터공학부 박희석 교수는 “진동노출의 결과로 너무나 다양한 형태의 비정형적인 병이 발생할 수 있고, 진동과 결과적인 질병 사이에 인과관계를 짓기에는 너무 많은 변수가 서로 복합적으로 포함돼 있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이경종 교수는 “근래에는 작업환경이 좋아지고 근로 시간도 적절히 조절하는 추세라 화이트 핑거 같은 극심한 장애는 거의 나타나지 않지만 과거에 비해 동력공구를 다루는 곳이 많고 헬리콥터나 지게차처럼 수 시간씩 진동에 노출되는 환경이 늘어났기 때문에 인체진동에 대한 관심과 주의가 더욱 필요하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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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NTRO. 나 떨고 있니? 진동과 공진의 힘
PART 1. 공진은 무서워?
PART 2. 진동은 피곤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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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년 09월 과학동아 정보

  • 고호관 기자, 김윤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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