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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타민에 대한 의학계의 인식이 최근 크게 변하고 있다. 101년 전 처음 발견돼 최고의 영양소로 추앙받았던 비타민의 주가가 한없이 추락하고 있는 것이다. 과연 비타민의 흥망성쇠에는 어떤 이야기가 숨어 있을까. 흥미진진한 비타민의 역사를 통해 건강기능식품의 내일을 전망해보자.
 


새로운 영양소의 등장

3대 영양소인 탄수화물, 단백질, 그리고 지방 이외에 건강에 필수적인 다른 영양소가 존재할 것이라는 과학적 의심은 고대 이집트 때부터 시작됐다. 이집트인들이 남긴 문서를 보면 야맹증 환자를 치료하기 위해 동물의 간을 먹어야 한다는 기록이 남아 있다. 비타민 결핍으로 인한 질병을 비타민 보충으로 치료한 인류 역사상 첫 번째 사례라 할 수 있다.

1749년, 스코틀랜드의 외과의사 제임스 린드는 비타민에 한 발짝 더 다가섰다. 그는 레몬이나 라임 같은 감귤류의 과일이 괴혈병을 치료한다는 사실을 발견했다. 괴혈병은 인체의 결합조직을 구성하는 콜라겐이 완전히 형성되지 않아 생기는 질병이다. 잇몸 출혈과 장 출혈이 발생하고, 온몸이 아프고, 상처가 늦게 낫는다. 하지만 린드는 치료법만 찾아냈지 비타민의 정확한 존재를 잘 알지 못했다.

일본에서도 비슷한 발견이 이어졌다. 1884년 일본의 의사 타카키 가네히로는 도정한 백미만을 주식으로 먹는 계층에서 각기병이 자주 발병한다는 사실을 발견했다. 그는 이를 증명하기 위해 일본 해군을 대상으로 임상연구를 해 백미와 각기병 사이의 연관성을 밝혔다. 세계 곳곳에서 비슷한 발견이 이어졌지만 비타민과 관련됐다는 점을 알기까지는 시간이 더 필요했다.

1910년 드디어 일본의 과학자 우메타로 스즈키가 비타민의 존재를 세상에 알렸다. 그는 쌀겨에서 비타민 B1을 분리하는 데 성공했다. 그 뒤 1940년까지 12종의 비타민이 더 알려지면서, 인류 의학사에서 큰 획을 그은 비타민이 윤곽을 드러냈다. 비타민의 르네상스가 시작된 것이다.
 


[제임스 린드(왼쪽)와 타카키 가네히로.]


비타민의 승승장구

비타민은 인류 건강에 곧바로 도움을 줬다. 그동안 원인을 몰라 치료할 수 없었던 비타민 결핍에 의한 여러 질병이 단숨에 해결됐다. 기적 같은 일이었고, 비타민을 발견한 학자들은 노벨상을 수상했다. 모두 3개의 노벨상이 비타민C, K, A를 발견하고 효능을 밝힌 사람에게 수여됐다. 당시 수없이 많은 학자가 또 다른 비타민의 존재를 찾기 위해 밤을 지새웠고, 일부에서는 비타민의 효능을 밝히기 위해 연구에 매진했다. 그 결과 비타민 관련 논문이 세상에 쏟아졌다.

정부의 지원도 자연스럽게 이어졌다. 질병 예방을 위한 비타민 복용이 권고되고, 제약회사는 정제하거나 합성해 만든 알약 형태의 비타민제를 생산했다. 치료를 위한 약 복용에서 질병 예방을 위한 약 복용으로 인식이 바뀌기 시작한 때도 이쯤이다. 가정의 식탁 모서리에 드디어 알약 형태의 비타민제가 얼굴을 내민 것이다.

개별 비타민이 먹기 편한 형태로 생산되자, 비타민 각각의 효능에 대한 연구가 더욱 활기를 띠기 시작했다. 당시는 임상 연구에 대한 규정이 지금처럼 엄격하지도 않았고, 비타민은 워낙 안전하고 건강에 필수적이라는 생각이 보편화 돼 있어 연구는 순풍을 탄 배처럼 진행됐다.

가장 많은 관심을 끌었던 것은 비타민을 많이 먹었을 때 효과가 더 있냐는 점이었다. 부족하면 건강에 문제가 생기는 중요한 영양소라면 넉넉히 복용하는 게 건강에 더 좋을 것이라는 생각이었다. 이런 생각을 바탕으로 비타민의 과량 복용에 따른 여러 효능이 소개됐다. 비타민 A, C, E의 암 예방 효과와 비타민 B의 기력 증진, 비타민 C의 감기 예방 효과, 비타민 D의 심장병 예방, 비타민 E의 노화 예방 및 면역력 증대 효과들이 그때 쏟아져 나온 비타민 예찬론들이다. 비타민이 역사상 최고의 전성기를 구가하던 시절이다.

비타민의 쇠퇴

하지만 비타민의 현주소는 그리 밝지만은 않다. 빛나던 비타민의 위상이 뒤집히는 모습이 조금은 혼란스럽고 당황스러울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과학은 깊이 들어갈수록 ‘1+1=2’처럼 딱 떨어지지 않는 상황이 자주 발생한다. 빛이 파동이며 입자이듯 말이다. 특히 의학은 인체 안에서 벌어지는 현상을 연구하기 때문에 결과가 자주 바뀐다. 우리가 흔히 경험하는 물리 공간(in vitro)이 아닌 체내 환경(in vivo)에서 이루어진다는 특수성 때문이다. 효능이 입증되면서 각광받던 몇몇 약이 오랜 시간 투약하면 부작용이 발견돼 제약 시장에서 퇴출되는 경우도 마찬가지다. 비타민은 퇴출 위기까지 몰린 것은 아니지만, 최근 연구 결과에 의하면 한없이 곤두박질치고 있다.



VITAMIN A
야맹증, 못 먹을 때 얘기

[비타민 A는 우유, 장어, 간, 계란, 시금치, 당근, 브로콜리, 호박, 대구, 갈치 등 많은 음식에 들어 있다.]

 

베타카로틴이라는 이름으로도 널리 알려진 비타민 A는 초기 연구에서 각종 암의 위험을 낮춘다고 알려지면서 인기몰이를 했다. 암 예방에 대한 소식은 언제나 세간의 관심을 끌어 모으니 말이다. 하지만 최근 발표된 장기간 임상 실험 결과에 따르면 비타민 A는 어떤 암에 대한 예방 효과도 없다고 결론이 났다. 더욱이 비타민 A의 과다 복용은 흡연자에게는 폐암의 위험을 높이고, 임신부에게는 기형아 출산의 위험을 높이며, 일부에서는 뼈에 해로울 수도 있다는 지적까지 뒤따른다. 비타민 A는 우유나 달걀에 풍부하게 들어 있어서 현대인들에게 더는 결핍되어 야맹증을 일으키기도 쉽지 않은 영양소다. 당연히 학계에서는 비타민 A의 복용을 권장하지 않는다.

VITAMIN B 그룹
임산부와 노인에게만 효과 있다
 


[비타민 B그룹은 돼지고기, 우유, 생굴, 쌀겨, 효모, 땅콩과 대부분의 채소에 풍부하다.]
 
‘피로회복제는 약국에 있다’라고 광고하는 비타민드링크제의 근거가 되는 영양소가 바로 비타민 B1이다. 비타민 B1의 영양소가 결핍되면, 사람은 무력감과 만성 피로, 권태 등의 증상을 경험한다. 따라서 비타민 결핍으로 인한 피로감이라면 비타민 B만 복용하면 극적으로 증상이 개선된다. 더군다나 비타민 B는 물에 녹아 과다 복용해도 소변으로 쉽게 배출돼 안전하다는 인식이 강하다. 어찌 제약회사가 탐내지 않을 수 있을까. 그러나 비타민이 결핍되지 않은 상태에서는 비타민 B를 더 먹어도 기력이 나아지는 효과가 없다고 판명 났다. 또, 2010년 10월 발표된, 3만 7000명을 대상으로 했던 임상 연구에서는 비타민 B의 추가 복용이 심혈관 질환을 예방하거나, 심근경색, 암, 영유아 사망 등의 위험을 낮추지도 못한다고 결론 내렸다.

그나마 다행스러운 부분이 남아 있기는 하다. 임신부에게 비타민 B9(엽산)의 복용은 여전히 기형아 출산의 위험을 낮춘다고 알려져 있어 복용을 권장한다. 또, 50세 이상 노령 인구의 30%에서는 비타민 B12의 위내 흡수율이 떨어져 빈혈을 일으킬 수 있다. 갱년기 이후의 비타민 B12 복용 또한 권장하는 추세다.

VITAMIN C
어떤 질병 예방에도 효과 없어

[비타민 C는 거의 모든 음식물에 들어있을 정도로 가장 쉽게 접할 수 있는 비타민이다.]


우리나라에서 가장 인기가 높은 비타민이 바로 비타민 C가 아닐까. 이 비타민 또한, 비타민 B 그룹과 함께 수용성 비타민이다. 이 때문에 고용량 비타민 C 용법이 일찌감치 소개돼 전 세계를 강타했다. 국내에서도 모 의과대학 교수가 한때 매스컴에서 ‘메가도즈(Mega dose) 비타민C 용법’이라는 이름으로 소개하면서 전국의 약국과 가정을 1000mg짜리 고용량 비타민 C 제품으로 도배한 적이 있다. 물론, 최근에도 포털 검색창에 관련 단어를 검색해보면, 체험수기와 기적 같은 효능에 대한 글들이 다수 검색된다. 그만큼 비타민 C는 암뿐만 아니라 여러 질병의 예방 효과에 대한 기대가 컸던 영양소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최근 연구 동향을 살펴보면 어떤 질병에 대한 예방 효과도 통계적으로는 의미가 없다는 쪽으로 결론 나고 있다. 한때 감기 예방을 위해 병원에서 의사가 비타민 복용을 권장하던 시절도 있었지만, 이제는 기껏해야 흡연자와 노인에게 감기 증상을 조금 더 개선해주는 효과 정도만 인정하는 분위기다. 무조건 안전하다고만 알려졌지만 비타민 C는 철분 흡수를 돕기 때문에 혈색소증이 있는 환자에게는 오히려 병을 악화시킬 수 있다는 점도 함께 기억해야 한다.

 

VITAMIN D
햇빛 못 받는 사람만 필요

[비타민 D는 햇빛만 쬐면 충분한 양이 저절로 생긴다.]
 
결핍되면 구루병과 골연화증의 원인이 되는 비타민 D는 다른 비타민과는 조금 차이가 있다. 다른 비타민들이 체내에서 전혀 합성되지 않아 무조건 외부 섭취로 충당해야 하는 것에 비해 비타민 D는 햇볕만 있으면 체내(피부)에서 합성이 되는 유일한 비타민이다. 그래서 햇볕을 받지 못하는 특수한 상황에서 생활하는 사람이 아니라면, 굳이 따로 복용할 필요가 없다. 그러나 최근 한 대규모 역학 조사에서 비타민 D를 평소 많이 섭취하는 사람들이 암과 심장병의 유병률이 낮더라는 관찰 결과가 보고되면서 새로운 관심을 끌고 있기는 하다.
 
VITAMIN E
가장 볼품없는 영양소
 

[비타민 E는 식물성 기름. 밀이나 쌀의 씨눈, 우유, 채소에 있다.]
 
비타민 E는 항산화 효과로 가장 유명한 비타민이다. 토코페롤이라는 이름으로도 유명하다. 종합비타민제를 광고하면서 면역력 증진을 이야기하는 근거가 되는 영양소다. 한때는 심장병과 암 예방에도 효과가 있다고 알려지면서 큰 인기를 누렸다. 하지만 최근 가장 볼품없는 영양소가 아닐까. 대규모 임상 실험을 한 결과, 앞서 이야기한 어떤 효과도 의미 없다는 결론이 났다. 더욱이 2005년의 한 연구에서는 비타민 E의 과다복용이 울혈성심부전증을 유발한다는 보고도 뒤따랐다. 또한 물에 녹지 않는 지용성 비타민인 쉽게 배설되지 못하고 체내에 축적되는 경우도 있어 더 이상 복용을 권장하지 않는다.

비타민의 여전한 인기, 그리고 뒤에 숨은 진실

[건강기능식품 제조회사의 간접적인 검열은 대중에게 건강기능식품에 대한 잘못된 정보를 전달하기도 한다.]

비타민의 최신 연구를 접한 기분이 어떤지 모르겠다. 의료나 의약 관련업계에 종사하는 분이 아니라면 누구나 조금은 놀랐을 것이다. 최근의 학계 동향은 비타민의 효용성이 지나치게 과대 포장돼 왔다는 점을 지적하고 있지만, 여전히 우리 주위에서는 비타민의 인기가 수그러들 기미조차 보이지 않고 있다. 이런 배경에는 자본주의에서 이루어지는 새로운 ‘ 검열’이 한몫 한다.

연구실에서 생산된 연구 결과가 대중에게 전달되기 위해서는 유통 경로와 자본이 필요하다. 이때 제약회사에 의해 간접적인 검열이 이루어진다. 그들은 비타민의 효능에 대해 긍정적인 결과가 나온 철 지난 연구 논문을 지속적으로 대중에게 홍보한다. 이에 반해 비타민의 효능을 부정적으로 다룬 최근 연구 결과들은 정부에서 운영하는 몇몇 홈페이지나 영향력이 적은 소비자단체를 통해서만 겨우 홍보가 이뤄진다. 정보의 전달 과정에서 이미 어긋나버린 형평성은 대중에게 그릇된 인식을 심어주고 대중 안에서 그 정보들이 또다시 재생산되며 과대평가 되는 악순환이 이루지는 것이다.

이는 비단 비타민에만 국한된 문제가 아니라, 여러 건강기능식품에서도 동일하게 벌어지고 있다. 최근 셀레늄이나 글루코사민도 효능이 없다는 연구 결과가 나오지만 여전히 팔리고 있다. ‘과학적으로 입증’됐다는 광고를 한 번 더 깊이 생각하고 바라보는 혜안을 가져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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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년 08월 과학동아 정보

  • 김종엽 과장 이비인후과 전문의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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