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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벽에 매달려 꿀을 따다

꿀벌과 함께 사는 사람들


절벽에 매달려 꿀을 따다

짚으로 엮은 사다리 줄에 한 발을 디딘 노인이 벼랑 끝에 매달린 채 벌집을 응시하고 있다. 집어삼킬 듯 소용돌이치는 수백만 마리의 벌떼와 깎아지른 절벽이 노인의 목숨을 노리고 있지만, 먹이를 노리는 날카로운 사냥꾼의 눈빛은 일말의 공포도 없이 매섭게 벌집에 꽂혀있다.

프랑스 사진작가 에릭 투르네레는 2004년부터 전 세계 20여 개국을 돌아다니며 꿀벌에 삶을 의지하고 있는 인간의 역사를 기록하고 있다.

투르네레는 2007년 ‘꿀벌의 사람들(the people of bees)’이라는 사진집을 통해 유럽에서 가장 유명한 꿀벌 작가로 스타덤에 올랐다. 수천 년 전 방식 그대로 꿀을 수확하는 인도의 원시부족부터 파리 오페라하우스 옥상에서 꿀벌을 키우는 도시양봉가들까지 전 세계 꿀벌 사냥꾼들을 그를 통해 만날 수 있다.


전 세계적으로 원인을 모른 채 꿀벌이 사라져가고 있는 상황에서 꿀벌이 꽃가루를 옮겨 농업생산량의 71%가량을 수정시킨다는 수치는 공허하다. 차라리 절벽에 아슬아슬하게 매달려 꿀을 따고 있는 노인의 모습에서 꿀벌과 인간의 절박한 공생을 읽을 수 있지 않을까. 투르네레가 오지에 있는 꿀벌을 찾아 나선 이유다.

연기 속에 숨은 고독한 사냥꾼 - ❶ 삶의 터전을 품은 신성한 절벽
사냥꾼이 벌집을 수확하러 가는 길이다. 그의 아버지와 할아버지, 거슬러 올라가 할아버지의 할아버지의 할아버지대부터 목숨을 걸고 이 절벽을 오르내렸을 것이다. 혼자인 듯하지만 절벽 위에서 단단히 줄을 잡고 버티고 있는 동료를 비롯해 10명이 한 팀이다. 절벽 아래에선 나뭇가지를 태워 자욱하게 연기를 만들어주는 동료들이 있다. 뿌연 연기는 잔뜩 독이 오른 벌떼로부터 그를 지켜주는 또 하나의 생명줄이다.

❷ 막대 끝에 걸린 달콤함 ❸ 꿀은 손맛이지!

❶ 삶의 터전을 품은 신성한 절벽
자욱한 연기를 피해 도망간 꿀벌들이 절벽 너머 파란 하늘을 점점이 채우고 있다. 인도와 네팔의 산악지역에는 이렇게 원시방법 그대로 절벽에서 꿀을 수확하는 부족들이 살고 있다.

❷ 막대 끝에 걸린 달콤함
올해로 62살인 꿀벌 사냥꾼 마리는 40년째 이 일을 하고 있다. 능숙하고 재빠른 손놀림으로 대나무 막대를 움직여 벌집에서 꿀을 꺼내 양철통에 담는다. 주민들이 성스럽게 여기는 이곳 ‘데바 베리아’ 절벽에는 65개의 자이언트 꿀벌집이 있지만, 오늘은 세 개만 딸 계획이다.

❸ 꿀은 손맛이지!
손으로 직접 벌집을 짜면 꿀과 밀랍이 섞이기 때문에 도시에서는 선호하지 않는 방식이다. 벌집을 통에 넣고 빙글빙글 돌리면 원심력으로 꿀만 빼낼 수 있다. 하지만 사냥꾼은 그런 고품질의 꿀을 얻을 필요가 없었던 걸까. 원시 방법 그대로 손으로 힘껏 꿀을 쥐어짜고 있다. 애써 모은 꿀을 빼앗기지 않으려는 자이언트 꿀벌의 마지막 사투가 힘겹다.

나무 위의 '꿀벌 농사꾼' - ❶ 풍년일까 흉년일까

에티오피아 남부 깊숙한 곳의 사우스 오모 밸리에는 나무 위에 꿀벌통을 놓고 키우는 바나족이 있다. 바나족에게 꿀은 삶을 지탱하게 해주는 중요한 생계수단이다. 한 해 ‘꿀농사’를 어떻게 지었느냐에 따라 삶의 질이 달라진다.

가족마다 꿀벌통을 소유하고 있는데, 적게는 10여 개, 많게는 60~80개씩 가지고 있다.

❷ 201호 꿀벌집을 수확할 시간 ❸ 입맛이 없을 땐 벌꿀주 한잔 ❹ 아이언맨 슈트 부럽지 않은 나무 갑옷

❶ 풍년일까 흉년일까
벌에 쏘이지 않으려고 온 몸에 하얗게 진흙을 바른 바나족 형제가 꿀벌통을 살피고 있다. 농사가 생각만큼 잘 안 됐는지 벌집 조각을 손에 든 동생의 얼굴에 구름이 껴있다. 혹시 형 몰래 달콤한 꿀을 한 입 먹고 싶은 간절한 마음을 들키지 않으려는 표정일까.

❷ 201호 꿀벌집을 수확할 시간
나뭇가지를 따라 아파트처럼 층층이 쌓여있는 꿀벌집이 흥미롭다. 한 손에 횃불을 들고, 다른 한 손에 바구니를 걸친 사내가 한밤중에 연락도 없이 꿀벌집을 몰래 방문할 기색이다. 바나족이 키우는 아프리카벌은 공격성이 강하기로 유명해서 한낮에 일벌들이 집을 떠났을 때나, 한밤중에 잠잠해졌을 때 달빛에 의지해 꿀을 채취해야 한다.

❸ 입맛이 없을 땐 벌꿀주 한잔
벌꿀로 술을 담그면 어떤 맛일까. 바나족의 전통주인 테즈(tej)는 이 지역의 특산물이다. 동그랗게 열린 뚜껑 사이로 고소하고 알싸한 벌꿀주 냄새가 코를 자극할 것 같다.

❹ 아이언맨 슈트 부럽지 않은 나무 갑옷
카메론 아다마와 고원에 사는 원주민도 바나족처럼 나무 위에서 꿀벌 농사를 짓는다. 꿀을 수확할 때는 나무섬유로 세심하게 온 몸을 칭칭 감싼다. 무겁긴 하지만 벌침을 막아주는 튼튼한 보호막이다.

여기 꿀벌이 있다 - ❶ 양봉 임무교대

 된장독, 고추장독처럼 생긴 토기에서 작은 벌들이 파르르 날개짓을 하며 힘차게 날아오른다. 꽃을 든 할머니는 수만 마리의 벌이 집 안을 바삐 날아다니는 모습을 강아지 바라보듯 무심히 지켜본다.

멕시코 시에라 마드레 산맥 기슭에 있는 작은 마을에서는 여성들이 집 안에서 가축을 키우듯 평화롭게 벌을 키운다. 허리가 굽은 할머니도 집 안에서 벌을 키울 수 있다. 이곳 벌은 사람을 위협하는 침이 없기 때문이다.

❷ 누가 들어올새라 ❸ 마지막 모습이 될지도

❶ 양봉 임무교대
집 한쪽 켠 선반에 벌집 수십 개가 가지런히 놓여있다. 두 할머니가 임무교대를 하듯 손을 맞부딪치고 있다.

❷ 누가 들어올새라
벌집 입구를 경계벌들이 철통 같이 지키고 있다. ‘스캅토 트리고나’라는 이름을 가진 이 벌은 커피나무에서 꿀과 꽃가루를 부지런히 가져와 모은다. 사람을 크게 신경쓰지 않고 한 집에서 평화롭게 공존하며 살고 있다.

❸ 마지막 모습이 될지도
크런치킹 아이스크림에서 껍질을 벗긴 것 같다. 토기 뚜껑을 열면 알알이 초코볼이 박힌 것처럼 먹음직스런 모양의 벌집이 질서정연하게 자리 잡고 있다. 그런데 벌침이 없어서 키우기 좋은 것도 옛날이야기. 수입산 아프리카벌에 밀려, 살충제에 밀려 이곳 꿀벌은 점점 사라지고 있다. 투르네레는 “화학비료와 살충제, 제초제, 유전자조작식물이 꿀벌 군집을 파괴해 전 세계적으로 꿀벌이 점점 사라지고 있다”면서 “세계 곳곳에 곤충 없는 녹색사막이 늘어나는 모습이 참 안타깝다”고 말한다.
 
에릭 투르네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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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년 05월 과학동아 정보

  • 변지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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