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0년 현재 전 국민의 3분의 1 이상은 비만으로 고민하고 있다. 책이나 인터넷에는 비만 관련 정보가 넘쳐나고, 온 국민이 비만을 막기 위해 24시간 고군분투하는데도 말이다. 왜 우리는 비만에서 벗어나지 못할까. 그동안 비만에 대해 잘못 알고 있었던 것은 아닐까.
얼굴 못 생긴 건 봐줘도 뚱뚱한 건 못 참는다? 언제부터인가 사람들은 몸매를 자기 관리의 척도로 생각하기 시작했다. 뚱뚱한 사람은 자기 관리에 소홀한 게으른 사람 취급을 받는 세상에서 비만은 공공의 적이자 최대 관심사가 됐다.
비만에 대한 높은 관심을 입증하듯 책이나 TV, 인터넷에는 각종 다이어트 정보가 넘쳐 흐른다. 그중에는 이미 다이어트의 정석이 돼버린 것도 있고, 그럴듯한 과학적인 증거를 제시하고 있는 것도 있다. 하지만 그것들이 모두 옳은지는 한 번 따져볼 필요가 있다. 작년 12월 보건복지부 건강정책과에서 발행한 ‘비만 바로 알기’ 책에는 사회에 만연해 있는 잘못된 비만 상식 60가지가 소개됐다.
살 빼려면 저녁을 굶어라?
‘저녁 식사는 적게 먹거나 굶는다.’비만을 걱정해본 사람이라면 누구나 알고 있는 다이어트의 정석이다. 섭취한 탄수화물을 모두 소비하지 못하면 남은 탄수화물이 근육에 글리코겐 형태로 저장되면서 결국엔 지방으로 축적될 수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저녁 식사가 비만의 원인이고 저녁은 굶을수록 좋다는 말에는 오해의 소지가 많다.‘비만 바로 알기’를 공동 집필한 동국대 의대 가정의학과 오상우 교수는“저녁을 과하게 먹는 것이 비만에 영향을 줄 수 있지만, 저녁을 굶는 것도 과식을 유발해 체중 조절을 방해한다”고 설명한다.
그에 따르면 저녁 식사를 거르면 다음 식사까지 공복 시간이 길어져 인슐린이 감소하고 그렐린이 증가한다. 그렐린은 배고픔을 느끼게 하는 식욕 호르몬이다. 오 교수는 또 “하루를 기준으로 하면 저녁을 먹는 날보다 안 먹는 날이 칼로리 섭취가 적지만, 일주일 평균을 내보면 저녁을 먹은 주와 먹지 않은 주의 1일 칼로리 섭취량에 큰 차이가 없다”고 덧붙였다.
탄수화물과 지방 섭취를 제한하고 단백질 섭취를 늘리는 ‘황제 다이어트’도 비슷한 예다. 단백질은 칼로리가 낮고 포만감을 오랫동안 유지시킨다는 장점이 있다. 실제로 고단백질 저탄수화물 식사요법이 1년에 2.1kg의 체중을 감소시킨다는 연구결과도 있다. 하지만 전문가들은 황제 다이어트가 다른 식사요법에 비해 효과가 월등히 좋은 것은 아니라고 말한다. 오 교수는 “황제 다이어트로 체중이 감소하더라도 이는 단순히 섭취하는 전체 칼로리가 줄었거나, 근육에 있는 단백질을 변형시켜 몸에 필요한 탄수화물을 얻어냈기 때문”이라며 “장기적으로 봤을 때 단백질 위주의 식단은 근육 소실이나 신장 기능 저하, 골다공증 같은 부작용을 유발할 수 있다”고 설명했다.
반대로 많이 먹으면 다이어트가 된다고 알려진 음식도 있다. 대표적인 예가 고추의 매운 성분인 캡사이신이다. 사람들은 흔히 매운 음식을 먹으면 그 속에 들어 있는 캡사이신이 몸에 열을 내면서 체내 지방을 연소시킨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2009년 ‘미국영양학회지’에 실린 연구결과에 따르면 단 고추인 파프리카에서 추출한 캡시노이드 성분을 섭취한 사람의 체중 변화는, 위약을 섭취한 사람의 체중 변화와 별 차이가 없었다. 매운 음식을 먹으면 땀이 나지만 그것으로 지방이 감소되는 것은 아니라는 얘기다. 캡시노이드는 캡사이신과 화학적으로 유사한 화합물로 음식에서 매운맛을 낸다.
녹차도 마찬가지다. 녹차에 들어 있는 카테킨과 카페인 성분은 몸에서 열을 생산하고 지방 산화를 촉진시킨다고 알려져 있다. 실제로 2009년 ‘국제비만학회지’ 9월호에 실린 연구결과를 보면 카테킨을 섭취한 사람은 위약을 섭취한 사람보다 1.31kg 정도 체중이 감소했다는 사실을 알 수 있다. 하지만 이는 많이 먹어도 녹차를 마시면 살이 찌지 않는다는 의미가 아니다. 전문가들은 이런 연구들 대부분이 저칼로리 식사를 하면서 녹차를 추가로 복용한 경우이고 또 효과를 보려면 카페인을 하루 300mg 이상씩 섭취해야 하기 때문에 위장장애가 발생할 위험도 있다고 경고했다.
내장지방이 피하지방보다 더 잘 빠져
식사요법과 반드시 병행해야 한다는 운동요법에도 그동안 우리가 잘못 알고 있던 부분이 많다. 특히 사람들이 가장 많이 오해하는 부분이 특정 부위를 운동하면 그 부위의 지방이 연소된다는 생각이다. 현재까지 연구된 바에 따르면 특정 부위의 지방만 연소시키는 운동은 없다. 오 교수는 “어떤 유산소 운동이든 운동할 때 필요한 에너지는 신체 각 부위에 있는 지방을 골고루 연소시켜 얻는다”며 “윗몸 일으키기를 하면 배에 있는 지방뿐만 아니라 허벅지에 있는 지방도 감소한다”고 설명했다.
다만 부위에 따라 체지방이 연소되는 속도의 차이는 있다. 지방세포는 교감신경이 흥분해서 아드레날린 계통의 물질을 분비하면, 그 신호를 받아 분해된다. 이때 신호를 받아들이는 정도를 지방세포의 활성도라고 하는데, 지방세포는 부위마다 이런 활성도가 다르다. 오 박사는 “일반적으로 내장지방이 피하지방보다 활성도가 높다”며 “내장지방이 더 빨리 분해된다”고 밝혔다. 그는 “피하지방 중에서는 하체에 쌓인 피하지방이 분해되는 속도가 가장 느리다”고 덧붙였다.
한편 뱃살을 줄이는 방법으로 복식호흡을 꼽는 사람도 있다. 지방을 분해하기 위해서는 산소가 반드시 필요한데, 숨을 깊게 쉬면 혈액 속에 산소의 양이 많아져 내장지방이 더 빨리 줄어들 것이라는 생각에서다. 하지만 운동을 하지 않고 단순히 산소를 공급해서 내장지방을 줄일 수는 없다. 남은 산소는 혈류를 따라 돌다가 폐에서 다시 배출된다. 복식호흡은 걷기나 달리기 같은 다른 유산소 운동에 비해 열량 소비가 훨씬 적기 때문에 체중 감량의 효과를 얻기 어렵다.
그러면 운동은 어떻게 해야 효과적일까. 많은 사람들은 과격한 운동의 경우 체내의 당을 에너지원으로 쓰기 때문에 체지방은 잘 분해되지 않는다고 생각한다. 살을 빼려면 빨리 달리는 것보다 천천히 걷는 게 좋다는 말도 여기서 비롯됐다. 오 교수는 “격한 운동을 할 때 당을 먼저 쓰는 것은 사실이지만, 30분 이상 유산소 운동을 지속하면 지방도 소비된다”고 말했다. 운동을 할 때 어떤 에너지원을 쓰는가는 운동 강도보다는 운동 시간과 더 밀접한 관련이 있는 셈이다.
몇몇 사람들은 과격한 운동이 체내에 독성산소를 발생시킨다고 주장하기도 한다. 그런데 여기에도 의학적인 근거는 없다. 독성산소의 개념이 명확하지 않을 뿐만 아니라 이것을 체내에서 산화 스트레스를 일으키는 활성산소라고 가정하더라도 적당한 운동이 건강에 주는 이득을 고려한다면 인체에 해롭다고만 볼 수는 없기 때문이다.
지방분해주사, 효과 미지수
‘적게 먹고 많이 운동하기’라는 만고불변의 다이어트 공식에도 불구하고 전 국민의 3분의 1 이상은 아직도 비만과 전쟁 중이다. 이들에게 눈과 귀가 솔깃한 방법이 바로 식욕억제제나 지방분해주사 같은 약물 요법이다. 최근엔 경락 마사지, 지방을 진동시켜 뺀다는 초음파 패치, 국소부위만 마취해서 진행하는 미니 지방흡입수술까지 종류도 다양해졌다.
그중에서도 경락 마사지는 일상생활에서 쉽게 접할 수 있고, 특정 부위의 지방을 부작용 없이 감소시키는 것으로 많이 알려져 있다. 하지만 2008년 해외 유명 저널인 ‘비만학’에 실린 연구결과에 따르면 경락 마사지는 지방을 일시적으로 부드럽게 만들 뿐 체지방을 없애는 효능은 없다. 경락 마사지가 의학적으로 효능이 입증된 경우는 근골격계질환의 경우 근육의 긴장을 풀고 혈액 순환에 도움을 주는 정도다. 또 초음파를 방출해 지방 분해를 돕는다는 저주파 패치를 붙여도 지방의 양이 바뀌지는 않는다.
그렇다면 지방흡입수술이나 지방분해주사는 어떨까. 지방흡입수술은 마사지나 초음파와 달리 체내에 축적된 지방을 직접 빼내므로 지방을 제거하는 효과가 확실하다. 하지만 영화에서처럼 한 번에 수십kg씩 몸무게가 감소하지는 않는다. 과도하게 지방을 제거할 경우 정맥 혈전증이나 폐부종, 괴사성 근막염 등의 부작용을 일으킬 수도 있기 때문이다. 따라서 일반적인 지방흡입수술은 지방을 1000ml 정도(4~6kg)만 빼낸다.
지방분해주사는 지방흡입수술에 거부감을 갖는 사람들을 위해 개발됐다. 얕은 피부층에 조금씩 여러 번에 걸쳐 약물을 주입해 피하지방을 녹인다고 하는데, 메조테라피나 PPC 주사가 대표적인 예다. 팔이나 다리 같은 특정 부위의 지방을 제거할 수 있다고 알려져 있지만 약물이 지방을 감소시키는 과학적인 작용 원리는 아직 밝혀지지 않았다. 이뿐만 아니라 주사가 지방 제거에 실제로 효과를 보이는지도 연구에 따라 결과가 엇갈리고 있는 상황이다. 안전성에 대한 문제도 아직 검증된 바 없다.
한편 간단히 복용할 수 있는 약물도 있다. 1997년 미국식품의약국(FDA)의 승인을 받은 식욕억제제인 리덕틸과 1999년 FDA의 승인을 받은 경구용 지방흡수억제제인 제니칼 등이다. 사람들이 가진 잘못된 비만 상식 중 하나가 이런 약물에는 내성이 있어서 초기에만 체중이 감소한다는 것인데, 현재 사용되고 있는 모든 비만 치료 약물이 초기에 체중을 감량하고 이후에는 체중이 유지되도록 설계된 것을 감안하면 내성을 나타낸다고는 볼 수 없다. 또한 리덕틸과 제니칼 모두 장기간 복용하더라도 금단현상을 유발하지 않는다는 사실이 이미 밝혀져 있다.
건강 해치는 민간 다이어트 요법
이 밖에도 ‘겨울이 되면 살이 찐다’, ‘랩을 감고 운동하면 살이 더 잘 빠진다’, ‘35세가 넘으면 운동만으로는 살을 뺄 수 없다’ 같이 우리 주변에는 과학적인 근거는 없지만 귀에 익숙한 다이어트 상식들이 많다. 식이 요법, 운동 요법, 약물 요법 그 어디에도 속하지 않는 이런 ‘민간 요법’ 중에는 오히려 건강을 해치는 것들도 있다.
장 청소를 하거나 식이섬유를 섭취해서 변비를 제거하면 복부 비만이 해결될 것이라는 생각도 그중 하나다. 사실 장 청소나 변비는 지방 용해와는 전혀 관련이 없다. 오 교수는 “장 세척을 하면 장 속에 정상적으로 있어야 하는 세균까지 사라져 세균 간의 균형이 깨지면서 병원성 세균이 증식할 위험이 있다”며 “체중이 감소하는 이유는 탈수 현상 때문”이라고 말했다.
흡연이 체중을 감소시킨다는 생각도 마찬가지다. 흡연자의 평균 체중이 비흡연자에 비해 낮은 것은 사실이지만 흡연이 비만도를 낮추는지에 대해서는 아직 밝혀진 바가 없다. ‘비만 바로 알기’에 따르면 흡연은 오히려 지방을 복부에 축적시켜 복부 비만의 위험을 증가시킨다. 또 금연을 하면 식욕이 증가하고 기초대사량이 떨어져 체중이 증가할 수는 있지만 운동 요법이나 약물 요법을 병행하면 금연을 하면서도 체중 증가를 막을 수 있다고 책은 밝히고 있다.
이쯤 되면 모두 눈치 챘겠지만 앞서 나온 비만 상식 셀프 테스트의 정답은 모두 X, 즉 ‘꼭 그런 것만은 아니다’이다. 때론 당연하게, 때론 막연하게 믿고 있던 잘못된 상식, 이번 기회에 좀 더 확실하게 바로잡고 싶다면 보건복지부 홈페이지(www.mw.go.kr)를 참고하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