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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ews & Issue]1986년 대전, 그때 그 사람들


30년 전인 1986년 1월 과학동아가 처음 세상에 나왔다. 같은 해, 과학자로 첫 발걸음을 뗀 이들도 있었다. 카이스트의 전신인 한국과학기술대(KIT)는 1986년 첫 번째 학부생을 모집했다. 과학동아와 같이 태어난 이 쌍둥이 과학자들은 카이스트로 돌아와 벌써 중견 학자가 됐다. 30년 전의 앨범에서 찾은 그들을 찾아가 그때 그 시절의 이야기를 들었다. 그리고 그때의 사진을 오늘의 카메라와 글로 재현했다.


“산업디자인으로 전공을 바꾸려고 했을 때 아마 저기쯤에서 고민을 했던 것 같습니다(커피숍 창밖으로 손을 가리킨다). 지금은 연구동이 있는 자린데, 그때는 논두렁 사이로 졸졸 물이 흘렀습니다. 그렇게 고민한 끝에 산업디자인으로 전공을 바꿨는데, 친구들이 ‘여학생을 만나려고 디자인으로 전공을 바꿨다’고 놀리더라고요.”


그때 그 기사

현재 카이스트 정문에 우뚝 선 KI빌딩 주변은 1986년도에는 모두 논이고, 밭이었다. 도랑에 물이 지나도, 수백수천 번은 지나갔을 자리다. 덕분에 카이스트에서 대중교통을 이용하기는 무척 어려웠다. 1986년 2월호에 실린 ‘대덕연구단지 첨단 과학기술의 메카’도 연구시설은 잘 돼 있지만 교통과 여가 생활이 문제라고 지적한다. 지금은 산업디자인이 경쟁력 있는 학문이지만, 당시에는 ‘공대에 디자인과가 왜 있느냐’는 이야기가 심심치 않게 나왔던 때다. 디자인이 경쟁력이라는 생각을 미처 하지 못했던 시기였다. 과학동아에 산업디자인 기사가 처음 실린 것도 1991년이었다. 대신에 여학우를 보려고 과를 바꿨다는 이야기가 농담으로 나올 정도로 여학생은 많은 과였다고 한다. 무려 50%에 가까운 비율을 자랑했다고. :)




“(화학에서 중요한 연구 분야가 어떻게 바뀌었느냐는 질문에) 중요함이 바뀐 건 없습니다. 그때도 지금도, 중요하지 않은 화학 연구는 없어요. 학생들이 선호하는 것이 바뀌었을 뿐입니다. 예를 들어 저는 새로운 물질을 합성하는 전합성(total synthesis)이라는 것을 연구했는데, 당시에는 화학의 꽃이라고 불렸습니다. 그런데 이게 냄새도 고약하고 시간이 많이 드는 소위 3D연구거든요. 때문에 요즘은 영 인기가 시원치 않지요. 3D연구를 마다하지 않는 실험실 학생들이 고마울 따름입니다.”






그때 그 기사

중화학공업이 산업을 지탱하던 당시 분위기상, 과학동아에서는 화학의 산업적인 측면을 주목했다. 1986년 3월호에 실린 ‘풍요를 만들어 내는 황금열쇠 정밀화학’이란 기사에서는 정밀화학이 2000년대 화학산업의 주류를 이룰 것이라고 예측했다.



“가만, 기억을 더듬어보자(그는 찬찬히 손가락을 하나씩 꼽았다). 정확히 1983년 입니다. 과학고를 합격하고 집으로 돌아가는 버스 안에서 삼성전자가 우리나라 최초로 8비트 컴퓨터를 만들었다는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과학고에 합격해 연합고사를 볼 필요가 없었기 때문에 그때부터 매일 시내에 있는 삼성전자 컴퓨터 전시장에 출근도장을 찍었죠. 삼성과의 인연은 대학에서 다시 이어지는데, 과학기술대가 생긴다니까 삼성에서 컴퓨터 수십 대를 기증한 거예요. 아직도 모델명이 생생히 기억납니다. SSM16!”


그때 그 기사
 
컴퓨터는 당시 모든 학생들의
로망이었다. 특히 남학생들
사이에서 전산과는 인기학과였다.
전산학과 선배들은 후배가 들어오면
손바닥 아래를 펼쳐서 굳은살이
있는지 확인해 프로그래밍 실력을
가늠했단다.

이도헌 교수에 따르면 전산학과
학생들 사이에서 단연 인기는
인공지능이었다. 과학동아도
창간호(1986년 1월호)에서 ‘생각하는
컴퓨터, 가능한가?’라는 기사로
인공지능의 가능성을 짚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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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년 01월 과학동아 정보

  • 송준섭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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