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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정안전부에 따르면 지난 2월 15일까지 구제역으로 소와 돼지 330만 마리, 닭과 오리가 540만 마리가 살처분됐다. 이들 대부분은 경기, 강원, 충북 2926곳 등 전국 4200여 곳의 매몰지에 묻혔다. 올해 1월 24일 개정된 ‘가축전염병예방법’ 제22조는 가축전염병에 걸린 사체를 방역관이 “지체 없이 해당 사체를 소각하거나 매몰해야 한다”고정하고 있다. 높은 온도에서 태우면(소각) 사체의 양도 줄일 수 있고 병원균도 죽일 수 있지만 높은 비용 때문에 우리나라에서는 땅에 묻는 방식(매몰)을 택했다.
기존 침출수 대책, 왜 비과학적인가
전례 없는 규모와 속도의 살처분이 필요한 과정에서 매몰 작업을 선택한 것은 무리수였다는 지적이 높다. 특히 매몰에는 반드시 2차 오염물인 침출수나 가스가 발생하는데도 이에 대한 과학적 고려가 충분하지 않았다. 침출수는 유기체로 된 폐기물이 분해될 때 나오는 액체 성분의 물질을 일컫는 말이다. 음식물 쓰레기는 물론, 종이 등 물기가 없어 보이는 생활 쓰레기도 땅 속에서 분해될 때 침출수가 발생한다.
폐기물 매립을 목적으로 설계된 폐기물 매립장은 땅을 파고 물기가 통과하지 않도록 가는 흙을 수십cm 다져 넣은 뒤 부직포를 깔고 그 위에 플라스틱(고밀도 폴리에틸렌)으로 된 차단층을 수mm 두께로 덮는다. 그런 뒤에야 폐기물과 슬러지(하수나 액체성분의 폐기물을 미생물로 처리한 뒤에 남는 고체 폐기물)를 한 데 섞어 묻는다. 발생하는 침출수를 모으기 위해 2° 정도 바닥에 경사를 주고 파이프를 꼽아 침출수와 가스를 뽑아낸다.
가축의 사체 역시 유기물이다. 따라서 많은 양의 수분이 침출수로 빠져나올 수밖에 없다. 2001년 구제역으로 약 1000만 마리의 가축을 매몰했던 영국은 매몰이 끝난 뒤 두달이 지나면 소 한 마리에서 170L의 침출수가 나온다고 발표한 바 있다. 500mL짜리 휴대용 생수병 340개 분량이다. 미국 농무부 동식물검역청도 소는 160L, 돼지는 12L의 침출수가 나온다고 밝혔다. 국내에서 처음 구제역이 발생한 것은 작년 11월 28일.
이틀 뒤인 30일 바로 돼지 1만 5000마리를 살처분했으므로 가장 일찍 묻은 가축은 묻은 지 두 달이 훌쩍 지났고, 이미 침출수가 대량으로 발생했으리라 추정할 수 있다. 실제로 매몰 초기 단계인 12월부터 전국 각지의 매몰지에서 나온 것으로 보이는 침출수가 관찰됐다.
하지만 매몰지에서는 가축전염병이 의심되는 사체를 일반폐기물보다 훨씬 간단한 방법으로 묻고 있다. 방역 당국이 정한 절차는 구덩이를 4~5m 파고 이중으로 비닐을 덮은 뒤 파이프를 설치하고 톱밥을 깐 뒤 사체를 묻는 식이다. 이렇게 묻은 뒤에는 3년간 안정화 기간을 거친다. 일종의 ‘약식 폐기물 처리장’인 셈이다. 박창근 관동대 토27목공학과 교수는 “고밀도 폴리에틸렌이 아닌 일반 비닐을 쓴 경우도 있다”며 “이런 경우 작은 돌조각에도 비닐이 쉽게 찢어져 침출수가 새어나올 수 있다”고 말했다.
환경과 건강에 미치는 영향은
가장 많이 우려하는 것은 병원균 검출 여부다. 우선 아직까지 침출수에서 구제역 바이러스는 검출되지 않았다. 현재 유일하게 침출수를 검사한 곳은 경기도다. 김태한 팔달수질개선본부장은 “묻은 지 1개월~ 1개월 반 된 침출수를 국립수의과학원에 의뢰해 검사한 결과, 모두 음성으로 나왔다”고 밝혔다.하지만 다른 박테리아(세균)는 검사하지 않았고, 전례에 비춰 볼 때 얼마든지 검출될 가능성이 있다.
환경부에서 2009년 AI 매몰지의 세균 오염 상태를 조사한 결과 대장균과 클로스트리디움 균, 바실러스 균이 관찰됐다. 환경부는 이들이 토양에도 일부 존재하는 세균들이며 식중독을 일으키는 살모넬라 균이나 캄필로박터 균은 발견되지 않았다고 밝혔다. 하지만 대장균이나 바실러스 균 역시 많으면 식중독을 일으킬 가능성이 크다. 가축이 부패하는 과정에서 가스가 발생해 폭발이 일어나는 경우가 있기 때문에 매몰 작업을 할 때는 가축의 배를 가르는데 이 과정에서 가축의 몸에 있던 대장균이 침출수에 섞여 나올 수 있다. 또 살모넬라 균은 육류에서 자주 발견되는 세균이기 때문에 주의가 필요하다.
세균뿐 아니라 질소성분도 문제다. 몸을 구성하던 대부분의 단백질은 죽은 뒤 미생물에 의해 분해되면서 다량의 질산성 질소 물질과 암모니아성 질소 물질을 만든다. 침출수도 마찬가지다. 문제는 이들이 보통 미생물로는 잘 분해되지 않는다는 사실이다. 미생물은 탄소와 질소 원자를 약 5 : 1 정도의 비율로 먹고 자란다. 탄소가 부족하면 질소도 분해할 수가 없다. 더구나 질소는 악취를 만드는 주역이다. 김윤근 경기 파주시 농업기술센터 지도사는 “환경 오염을 막고 악취를 제거하려면 가축 사체를 최대한 빨리 분해시켜야 한다”며 “이를 해결하기 위해 바실러스 균을 이용해 따로 단백질 성분을 분해하는 방법을 개발하고 있다”고 밝혔다.
대책은 없나
우선 침출수 자체를 제거하는 방법이 있다. 지난 2월 17일부터 경기도가 실시하고 있는 침출수 수집, 소독 처리가 대표적인 예다. 매몰지에 고인 침출수를 뽑아내 생석회를 넣어 pH를 10 이상으로 높인다. 구제역 바이러스가 pH 5 이하의 강산성, pH 10 이상의 강염기성에서 죽는다는 점에 착안한 결과다. 소독이 끝나면 가축분뇨수송차량에 실어서 각지의 가축공공처리장에 나른 뒤 물로 희석해 폐수처리한다. 가축공공처리장은 가축 분뇨 등 일반 하수처리장에 비해 질소, 인 함량이 높고 COD(화학적 산소요구량)가 큰 폐기물을 처리하기 때문에 무리가 없다.
서울대 농생명대 이군택 교수는 “매몰 작업이 진행된 시점을 생각해 볼 때 지금이 침출수를 뽑아낼 적절한 시점”이라고 밝혔다. 물론 문제도 있다. 박 교수는 “현장에서는 제대로 관리가 안 돼 기껏 모은 침출수를 외부 흙구덩이에 모으기도 하고 다른 지역에 운반해서 소독하기도 한다”며 ”오히려 바이러스가 확산될 우려가 있다”고 말했다.
만약 침출수가 지하수까지 오염시켰을 경우를 대비해 차단막을 설치하는 안도 있지만 근본적인 대책은 아니라는 비판이 많다. 일단 지하수에 섞여 들면 지하수를 마시는 400만 명 이상의 시민들의 안전이 위험해진다. 현재로서는 침출수가 새어나오지 않도록 하고, 이미 생긴 침출수는 빨리 제거하는 것이 최선의 대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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