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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art 1. 날개 접었다 폈다, 출퇴근용 변신 비행기

자동비행, 소음 감소가 최대 숙제


[국내 개발 중인 항공기 중에서 미래형 개인용 비행기에 가장 가까운 것은 한국항공우주연구원이 개발 중인 ‘스마트 무인기’다. 헬리콥터처럼 수직으로 이륙해 프로펠러의 방향을 바꾼 다음 일반 비행기처럼 날아가는 변신 비행기다. 복잡한 산악 지형을 카메라로 인식하고 스스로 항로를 찾아 날아가는 자율비행 기능도 갖게 될 예정이다.]



서기 2040년. 강원도 강릉에 살고 있는 대학생 이정미 씨는 친구들과 유럽여행을 떠나기로 했다. 아버지는 ‘공항까지 편하게 잘 가라’며 아끼던 자동차를 선뜻 내어 줬다. 친구들과 트렁크 가득 짐을 싣고 자동차 시동을 걸었다.



운전대를 잡고 10여 분 정도 달리자 ‘스카이하이웨이 인터체인지(IC)’라고 쓰인 도로표지판이 보인다. 밑에는 ‘일반 자동차 진입금지’라고 써 있다. 운전대를 돌려 IC방향으로 향하자 몇 분 뒤 안내 음성이 들려온다.

‘딩동~’, “스카이하이웨이 진입이 가능한 차량입니다. 관제국에 연결하겠습니다.”



이 차는 일반 도로에서는 승용차처럼 달리지만 필요할 때는 비행기로 변해 하늘로 날아간다. ‘개인용 비행기’라는 뜻에서 PAV(Personal Aero Vehicle)라고 불린다. 물론 아무 때나 하늘로 날아오를 수 있는 것은 아니다. 꼭 ‘스카이하이웨이 IC’를 거쳐 관제국의 허락을 얻어서 이륙해야 하고, 스카이하이웨이 TG(톨게이트)를 통해 착륙해야 한다. 속도는 최대 시속 300km. 속도는 지금의 고속철도와 비슷하지만 시간은 훨씬 절약된다. 굽이굽이 길을 돌아갈 필요가 없기 때문에 서울에서 부산까지 한 시간 반이면 도착할 수 있다.



IC 부근 풍경은 보통 고속도로와 크게 다르지 않다. 하지만 옛날처럼 도로를 차단기로 막아 두는 모습은 볼 수 없다. 주변 도로에 가로수처럼 서 있는 전파발신기(AP·액서스포인트)가 차량 고유의 전파신호를 인식해 자동으로 처리해 준다.



고개를 들어 주변을 둘러보자 고속도로 휴게소처럼 생긴, 넓은 주차장을 갖춘 건물이 눈에 들어온다. 비행을 시작하기 전 PAV를 정비하려는 사람들, 연료를 보급하는 사람들, 식사를 하고 싶은 사람들은 이곳에 들른다. 스카이하이웨이 이용객 숫자가 많아 이착륙 순서를 기다려야 하는 경우에도 일단 이곳에서 대기한다.



“귀하의 목적지는 ‘인·천·공·항’으로 확인되었습니다. 대기시간 없이 바로 이륙이 가능합니다. 지금 이륙하시겠습니까?”



정미 씨는 터치스크린에 표시된 ‘비행시작’ 버튼을 눌렀다. 다시 음성신호가 들려온다. “이륙을 준비합니다. 지금부터 관제국에서 차량을 제어하겠습니다.”



잠시 후 자동차는 ‘지이잉~’ 하는 소리를 내며 위에 접어둔 날개를 펴기 시작한다. 일단 이륙 준비에 들어가면 운전자는 PAV가 다시 지상에 내려설 때까지 아무것도 할 수 없다. 조용히 앉아서 기다리기만 하면 된다. 잠시 후, 날개를 다 편 자동차는 작은 개인용 비행기로 변신해 하늘로 날아올랐다.



인천 공항 톨게이트에 도착하는 데 걸린 시간은 40분 가량. 조용히 도로(활주로) 위로 내려서자 다시 차량에서 안내 음성이 들린다. “무사히 착륙했습니다. 이대로 지상 운전으로 전환하시겠습니까? 운전 기능을 선택하지 않으시면 일단 정지합니다.”



그대로 인천공항 여객기 탑승장까지 차를 몰고 갈 수도 있지만 정미 씨 일행은 차에서 내렸다. PAV를 돌려보내기 위해서다. 그는 친구들과 함께 가지고 온 짐부터 끌어 내렸다. 그리고 PAV에 붙은 컴퓨터를 조작해 목적지를 집에서 가장 가까운 원주 톨게이트로 설정했다. ‘무인비행’ 모드를 켠 뒤 아무도 없는 자동차 문을 닫았다. 이제 이 PAV는 관제국의 자동운전 서비스를 받아 원주까지 날아간 다음 자동으로 톨게이트 주차장에 들어가게 된다. PAV를 돌려보낸 정미 씨는 친구들과 농담을 주고받으며 인천공항까지 연결된 산책로를 따라 걷기 시작했다. 정미 씨의 아버지는 퇴근 뒤에 원주 톨게이트로 와 PAV를 가지고 집으로 갈 것이다.



20~30년 사이에 기술기반 완성될 것이 가상스토리는 20~30년 뒤를 상정한 것이다. 한국항공우주연구원이 발표한 개인용 비행기 기술은 2030년 경 완성될 것으로 예상되지만 실제로 인프라를 갖추고 상용화 단계를 거쳐 운영되려면 10년은 더 필요하기 때문이다.



PAV라는 말은 ‘개인용 비행기’라는 뜻이다. 엄밀하게 구분하면 세스나 같은 민간용 소형 비행기도 PAV의 범주에 들어간다. 하지만 항우연이 2010년 3월 발표한 ‘미래형 PAV’는 개념이 전혀 다르다. 영화 ‘제5원소’나 ‘마이너리티 리포트’ 등에 등장하는, 빌딩 사이를 오고가는 승용차 형태의 비행기들이다.


 
 
[영화 ‘제5원소’와 ‘마이너리티 리포트’에 등장하는 개인용 비행기. 날개나 특별한 추진장치 없이도 공중을 유유히 날아다닌다. 이런 비행기를 만들려면 중력을 없애는 ‘반중력 엔진’부터 개발해야 한다. 항공기 전문가들은 현재 과학기술로는 이런 엔진을 개발하는 것은 불가능하다고 설명한다. 아직 만유인력(중력)의 원인조차 규명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항우연은 앞으로 20년 이상 장기적으로 연구하면 관련 기술을 확보할 수 있을 거라고 판단하고 있다. ‘개인용 비행기 개발 선행연구’ 책임자인 이대성 항우연 본부장은 당시 “삶의 질을 높이고 새로운 사회간접자본을 마련하기 위해 연구를 시작했다”며 “20년간의 중장기 기술 로드맵을 만들어 장기 과제로 추진할 계획”이라고 말했다.



PAV가 상용화되면 생활이 크게 달라진다. 자동차를 이용하듯 비행기를 이용할 수 있어 언제든지 최단시간에 목적지까지 찾아갈 수 있다. 하늘길을 이용하니 교통체증도 없다. 전원주택에 살면서 30분 만에 도시로 출퇴근하는 이상적인 삶이 현실이 된다.

 
 








 
[PAV를 운영하려면 대규모 관제센터가 꼭 필요하다. 수천~수만 대의 항공기를 무선신호를 주고받으면서 자동으로 제어하려면 복잡하게 얽힌 무선통제 시스템과 대용량 슈퍼컴퓨터 이상의 성능을 가진 정보처리시스템을 이용해야 한다. 현재까지 개발된 관제 방식 중 가장 형태가 비슷한 것은 인공위성 조종이다. 완전 자동화된 프로그램을 이용해, 하루에도 몇 바퀴씩 지구를 돌고 있는 인공위성 3300여개를 일체의 사고 없이 운영하고 있다. 사진은 미국항공우주국(NASA)의 인공위성 관제실 모습.]

 
 
도시 연결하는 고속도로 개념

PAV 시스템은 크게 두 종류로 나뉜다. 실용화 가능성이 높은 것은 앞서 가상스토리로 소개한 ‘포인트 투 포인트(Point to Point) 방식이다. 우선 전국 곳곳에 개인용 비행기가 이착륙 할 수 있는 장소를 만들어 둔다. 조종사는 목적지에서 가장 가까운 장소(포인트)까지 일단 날아간 다음, 무사히 착륙해 날개를 접은 후, PAV를 현재의 자동차처럼 몰고 목적지까지 달려가면 된다. 이 방법을 이용하려면 먼저 고속도로 등에 인접한 이착륙 시설, 즉 ‘스카이하이웨이 인터체인지’를 설치해야 하고, 일반 승용차처럼 도로도 달리고 날개도 접고 펼 수 있는 ‘변신 비행기’를 개발해야 한다. 비행기 날개를 접었다 펴는 기술은 이미 항공모함의 함재기 등에서 실용화된 방식이다. 지금보다 날개를 훨씬 더 작게 접을 수 있어야 하고, 한 개의 엔진으로 공중비행과 지상주행을 한꺼번에 할 수 있는 기술도 개발해야 한다.



또 다른 방식은 ‘도어 투 도어(Door to Door)’ 형태다. 집 앞마당에서 이륙해 건물의 옥상 같은 착륙시설에 내려앉는 방식이다. 현실화 된다면 집 앞에서 바로 사무실까지 날아갈 수 있다. 이 경우에는 활주로 없이 좁은 장소에서 항공기가 뜨고 내려야 하므로 수직이착륙 기능이 필수다. 하지만 헬리콥터 형태는 곤란하다. 연료효율이 떨어지는데다 속도가 느리다.



먼저 헬리콥터처럼 하늘로 뜬 다음, 프로펠러를 기울여 보통 비행기처럼 수평으로 날아가는 ‘틸트로터’ 기능이 대안이다. 실제로 이런 비행기는 이미 개발돼 있다. 미국 해병대에서 사용하는 ‘V-22’가 그것이다. 이 밖에 미국과 이탈리아가 공동으로 개발한 ‘BA-609’가 조만간 민간용 항공기로 실용화될 예정이다. 6~9명 정도가 탑승하는 비교적 큰 비행기지만 실용화된다면 미래용 PAV의 시조격이 될 것이다. 국내에서도 항우연이 틸트로터 형태의 무인정찰기인 ‘스마트무인기’를 개발 중이다. 구삼옥 항우연 무인체계팀장은 “틸트로터 형태는 개인용 비행기로서는 가장 가능성이 높은 방식”이라며 “다만 엔진에서 발생하는 소음이나 수직이착륙 때 불어나오는 강한 바람 등은 걸림돌이 될 수 있으므로 대비책이 필요하다”고 설명했다.

 
 
 


최대 숙제는 자동항법장치

PAV가 현실화되려면 가장 먼저 해결할 문제가 있다. 안전한 관제시스템을 만드는 일이다. 공항 관제탑에서 항공기의 이착륙 순서를 지정해 주는 데 그치는 현재의 관제방식으로는 모든 PAV를 안전하게 통제하기 어렵다. 항공기는 자동차와 달리 일단 사고가 나면 주변에 있는 인가나 건물에 큰 피해를 준다.



비행기는 자동차에 비해 조종을 배우기 까다로운 것도 걸림돌이다. 시내 한 복판을 항공기가 날아다닌다면 테러에 악용될 확률도 높다.



이런 문제를 일거에 해결하는 방법은 없을까. 있다. 조종사(운전사)는 이륙 직전에 목적지만 입력하고, 다른 일은 모두 컴퓨터에게 맡기면 된다. 필요할 때 자동조종을 해 주는 기초적인 기능을 말하는 것이 아니다.



아예 사람이 조종할 수 없도록 만들어야 한다. 조종미숙이나 실수, 졸음운행 등으로 인한 사고도 없으며, 테러에 악용될 염려도 없다. PAV 선행연구에 참여한 염찬홍 항우연 항행제어실장은 “특별한 자격증을 가진 사람을 제외하면 모든 PAV는 컴퓨터 네트워크를 통해 자동제어하는 방법이 가장 유력하다”고 내다봤다.



그렇다면 PAV는 미래에 어떻게 목적지까지 날아가게 될까. 관제국은 이륙을 요청한 PAV와 무선신호를 주고받으며 일단 제어권을 얻어온다. 그리고 사고 위험이 가장 적은 항로와 속도를 결정해 PAV를 사람 대신 조종한다. 날씨나 다른 항공기의 접근여부 등을 수시로 판단해 위급상황에도 대비해 준다.



결국 하늘을 나는 동안 PAV는 안전한 무인 비행기와 똑같아지는 셈이다. 이런 항공 인프라를 만들기 위해선 여러 대의 인공위성을 동원해 모든 PAV의 비행상태를 파악해야 하고, 또 별도로 설치한 전파발신기 등을 이용해 비행기의 경로, 고장 여부 등을 꼼꼼하게 파악해야 한다.



결국 모든 PAV는 전파로 통제할 수 있는 가상의 길, 즉 ‘스카이 하이웨이’ 위를 날아다닐 수밖에 없다. 모든 PAV는 이 경로 안에서만 비행하고, 돌발 상황을 피하기 위해 항로를 벗어나면 자동으로 전파신호를 찾아 이전의 경로로 돌아오도록 만드는 것이다.



이런 시스템이라면 자동차 운전면허증만으로도 누구나 PAV를 몰 수 있다. 한반도 상공 전체를 PAV 관제 전파로 뒤덮을 수도 있을 것이다. 이 때가 되면 사무실 빌딩의 옥상 위, 친구의 집 앞 정원까지 목적지를 지정할 수 있게 된다. ‘도어 투 도어’ 방식의 진정한 개인용 항공기 문화가 정착되는 것은 그 이후가 될 것이다.



물론 PAV가 현실화되려면 이 밖에도 해결할 문제가 많다. 소음, 안전성 확보도 반드시 고려해야 한다. 염 실장은 “PAV의 성공여부에 대해 우려의 목소리도 많이 있다”며 “하지만 미래의 교통수단이 항공기 위주로 발전할 것이라는 사실은 누구나 동의할 것”이라고 했다. 지금은 어느 집에나 한 대씩은 있는 자동차도 처음에는 위험하고 불안한 기계였다. 문제는 부족한 기술력을 높이기 위해 얼마나 더 많은 노력을 기울이느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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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년 03월 과학동아 정보

  • 전승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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