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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ife & tech] 세척사과 정말 먹어도 되나

요즘 마트에 가보면 비닐봉투에 사과를 하나씩 포장해 파는 ‘세척사과’가 인기다. 대구경북능금농협은 ‘껍질째 먹는 안심사과’를 상품화했는데, 2009년 한 해 동안 23억 8000만 원 어치를 팔았다. 사과 665t에 달하는 양이다. 세척사과의 포장지에는 ‘깨끗이 씻었기 때문에 껍질째 먹을 수 있습니다’는 말이 적혀 있다. 그런데 세척사과를 정말 믿어도 되는 걸까. 별 다를 것 없는 사과를 단순한 상술로 비싸게 파는 것은 아닐까.

 

사과를 비롯해 ‘세척’이라는 단어가 붙어 있는 농산물은 대부분 오존수 세척 방식을 쓴다. 살균효과가 뛰어난 오존(O3 산소 원자 3개가 결합한 물질)이 섞여 있는 물로 사과를 씻어 낱개 포장한 것이 ‘세척사과’의 정체인 셈이다.

이제껏 대부분의 농장에서는 과일을 수확한 후에 주로 염소수로 세척했다. 살균효과가 있기 때문이다. 과일이나 채소가 부패할 확률이 줄어들고, 따라서 유통기한도 길어진다. 염소수는 물에 차아염소산나트륨(NaOCl)을 넣어 만든다. 염소수 세척은 산성도(pH) 4.5 부근에서 살균효과가 가장 좋기 때문에 세척 과정에서 구연산, 인산, 빙초산 등 산을 첨가해 산성도를 맞춰준다.

염소수 세척은 지금도 많이 쓰이고 있지만 단점도 있다. 세척 과정 중에 염소가 미생물, 흙, 유기물질 등과 결합해 염소부산물이 발생한다는 점이다. 이런 부산물이 사과 표면에 남아 있을 수 있다. 더 큰 문제는 염소부산물 중 일부가 발암물질이라는 것이다. 흙속에 들어 있는 휴믹산(humic acid)과 펄빅산(fulvic acid)은 염소와 결합해 클로로포름(CHCl3)을 만든다. 이런 염소부산물은 물에 잘 씻기지 않는다. 식품허용치 기준 이하지만 사람들은 껍질을 벗겨 먹는다.

오존수 세척은 이런 문제점을 해결했다. 염소수를 일체 쓰지 않고 오존수로만 세척을 하는데, 산도를 맞출 필요가 없어 편리하고 안전하다. 오존 역시 사람의 건강에 좋지 않은 물질이지만 산소로 분해되기 때문에 과일 표면에 유해한 잔류물을 남기지 않는다.
 

농약보다 세균이 위험하다

김대현 농촌진흥청 국립원예특작과학원 과수과 연구관은 “껍질 부분에는 식물이 외부의 공격으로부터 스스로를 보호하기 위해 만든 항산화 물질인 ‘파이토케미컬’이나 수용성 식이섬유인 ‘펙틴’ 등이 많다”며 “이런 영양소는 껍질 부분에 풍부하기 때문에 가능하면 과일을 깎지 않고 먹는 것이 좋다”고 말했다.

깨끗이 씻기만 하면 껍질째 먹는 과일이 훨씬 건강에 좋다는 뜻이다. 하지만 과일을 아무리 깨끗이 씻었다고 해도 염려가 남는다. 농약이 남아 있을지 모른다는 우려 때문이다. 그래서 많은 가정에서는 칼로 과일을 깎아 먹는다. 식품의약품안전청(식약청)이 2010년 3월 전국 17세 이상 1050명을 대상으로 조사한 결과 응답자의 87.6%가 농산물에 농약이 남아 있을까봐 걱정이라고 응답했다.

하지만 식약청은 농약 걱정을 할 필요가 없다고 주장한다. 2009년에 식약청이 10만 여 가지의 농산물에 농약이 얼마나 남아 있는지를 검사했는데, 99.1%이 농약잔류허용기준에 적합했다. 농약은 비바람이나 햇빛, 미생물, 공기 중 산소 등에 의해 자연적으로 분해되기 때문이다. 0.9%에 불과한, 농약이 남아 있는 농산물도 크게 염려할 필요는 없다. 수돗물에 담가두었다가 흐르는 물에 씻는 것만으로도 남은 농약을 깨끗이 제거할 수 있다.

오히려 농약보다 미생물이 문제다. 대부분의 식품은 조리하는 중에 열로 균을 죽일 수 있지만 채소와 과일은 열에 민감하기 때문에 열처리를 할 수 없다. 식중독에 대처하기가 어렵다는 이야기다. 이런 사례는 어렵지 않게 찾을 수 있다. 2008년 4월 미국에서 햄버거 안의 토마토가 식중독 균인 ‘살모넬라균’에 오염돼 17개 주에서 167명이 식중독에 걸렸다. 같은 해 9월에는 고추에서 살모넬라균이 발견돼 또 한 차례 홍역을 치렀다. 국내에서도 채소에 의한 식중독이 2006년에 3건, 2008년에 1건 있었다. 이런 식중독을 막는 현실적인 대안은 철저한 세척뿐이다.

오존수 세척은 야채나 과일을 씻는 효과적인 방법이다. 오존수는 오존가스를 물에 녹여 만든다. 오존 자체가 화학적으로 매우 불안정해 쉽게 산소(O2)와 다른 물질과 격렬하게 반응하는 산소 라디칼(O)로 분리되는데, 이 산소 라디칼은 여러 가지 방법으로 미생물을 죽인다. 산소 라디칼은 미생물의 세포벽이나 세포막을 망가뜨리거나 구멍을 내 터뜨린다. 또 미생물 효소의 기능을 없애고, DNA를 자를 수도 있다.

오존수 세척으로 죽일 수 있는 미생물은 다양하다. 세균을 비롯해 곰팡이와 바이러스까지도 없앨 수 있다. 겨울철 식중독의 원인인 노로 바이러스도 죽일 수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대부분의 세균은 0.01ppm의 저농도 오존수에서 1분간 세척하면 대부분 사멸한다. 바이러스도 1ppm의 오존수에서 1분간 세척하면 99%가 죽는다. 염소 소독보다 7배나 강한 살균효과다.

이렇게 씻은 사과는 유통 과정 중에 다시 미생물이 묻지 않도록 개별 포장해야 한다. 먼저 사과 표면에 묻은 물을 송풍기 바람으로 말린다. 수분이 있으면 미생물이 쉽게 번식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리고 외부 공기와 차단된 컨베이어를 통해 사과를 포장 기계로 옮긴 후, 수분을 유지할 수 있는 폴리프로필렌 필름을 이용해 포장한다.

 

오존은 세 사람(산소 세개)이 양손을 잡고 원을 형성해 빠르게 빙글빙글 돌고 있는 상황에 비유할 수 있다. 여기서 한 명이 떨어지면 두 사람은 서로 손을 잡고 계속 돌 수 있지만, 떨어져 나간 사람은 무엇인가를 잡아야 한다. 오존에서 떨어져나간 산소라디칼도 마찬가지다. 양손을 둘 데가 없어 주변 물질에 달라붙는 것이다. 산소 라디칼은 미생물의 세포벽, 효소, DNA에 붙어 구조를 망가뜨려 기능을 없앤다.
 오존수로 세척하기 전과 세척한 후 사과 표면을 광학현미경으로 200배 확대해 본 모습. 사과 표면에 붙어 있던 이물질이 세척 후 없어진 것을 확인할 수 있다.



오존수 다음은 마이크로 버블 세척

하지만 오존수 세척도 단점은 있다. 오존수는 표면이 울퉁불퉁한 과일을 깨끗이 씻지 못한다. 또 살균효과는 좋지만 미생물뿐 아니라 사과 표면의 모든 유기물질을 산화시킬 염려가 있다. 오존수의 농도가 너무 높으면 사과 표면까지 탈색시킨다는 뜻이다. 따라서 농촌진흥청은 사과 표면에서 미생물만 없앨 수 있는 오존 농도를 1ppm으로 정해 놓았다. 세균만 제거할 목적이라면 오존 가스가 더 편리하지만 오존 농도를 정확히 맞추기 위해서 오존수를 만드는 것이다.

이런 문제로 과학자들은 새로운 식품세척 방식을 추가로 연구하고 있다. 가장 강력한 후보는 ‘마이크로 버블 세척’이다. 지름이 1~수십 마이크로미터(1μm=100만분의 1m)의 미세한 기포로 식품을 세척하는 방식이다. 먼저 물과 공기를 혼합한 다음 펌프로 높은 압력을 줘 물속에 미세하게 녹은 기포를 만든다. 수도관안에 공기가 들어가면 갑자기 수돗물 수압이 세지며 뿌옇게 나오는 경우가 있는데, 이와 비슷한 원리다.

마이크로 버블은 거품의 크기가 작아 표면적이 넓다. 또 음전하를 강하게 띠기 때문에 세균이나 바이러스 등을 끌어당기는 힘이 세다. 때문에 사과뿐 아니라 매실처럼 표면이 매끄럽지 않은 과일이나 채소도 깨끗이 씻을 수 있다. 오존수로 매실을 세척하면 표면에 난 잔털 사이의 미생물을 10% 정도만 씻을 수 있지만 마이크로 버블은 98%의 세균을 죽일 수 있다.
 

 
대구경북능금농협의 세척사과 브랜드 ‘껍질째 먹는 안심사과’. 오존수로 세척한 후 개별포장해 판매한다.


마이크로 버블이 세균을 죽이는 방법은 또 있다. 공기방울이 터질 때 순간적으로 6000℃의 고열이 발생하는데, 이 열로도 세균과 바이러스를 죽일 수 있다. 이 때 발생하는 40kHz(킬로헤르츠, 1kHz=1000Hz)의 초음파도 효과적이다. 마이크로 버블을 포화시킨 물로 사과를 3분간 세척하면 효모와 곰팡이 균을 95% 없앨 수 있다. 세균 역시 95% 제거됐다.

조미애 농촌진흥청 국립원예특작과학원 과수과 연구사는 “마이크로 버블 발생기는 기존 세척 라인에 맞춰 개발돼 있다”며 “이 기계를 붙이기만 하면 간단히 세척력을 강화할 수 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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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년 02월 과학동아 정보

  • 신선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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