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라이브러리









4. 익룡은 네 발로 걸었다

발자국으로 푸는 미스터리

한국은 공룡 발자국 화석의 세계적 산지다. 공룡 발자국을 통해 우리는 공룡의 걸음걸이나 뜀박질 속도, 무리 형태 등 공룡의 다양한 생활 모습을 알 수 있다.

먼저 중생대 하늘을 주름잡았던 공룡의 친구인 익룡은 땅 위에서 어떻게 걸었을까. 최초의 익룡 화석은 공룡화석이 발견되기 전인 1700년대 중반 독일 남부지역에서 발견됐다. 처음에는 이들을 펭귄같이 긴 지느러미를 가진 헤엄치는 동물로 생각했다. 그러나 프랑스 생물학자 큐비에가 이 화석을 긴 앞발가락이 날개를 받치는, 날 수 있는 파충류로 판명했다. 익룡(Pterosaurs)이란 말의 어원은 ‘날개를 가진 도마뱀’이라는 라틴어에서 유래됐다.

물갈퀴 달린 한국 익룡

익룡은 지구상에서 날 수 있는 최초의 척추동물이었다. 초기의 익룡은 크기가 작았고 훌륭한 비행동물도 아니었다. 그러나 1억5000만년동안 진화해 훌륭한 비행동물이 됐으며 어떤 부류는 역사상 가장 큰 비행동물이 됐다. 익룡 발자국 화석은 1860년 쥐라기 후기 지층에서 처음 보고됐다. 1950년 이후 서서히 익룡 발자국 연구가 시작돼 실질적인 연구는 1990년 이후부터 제법 활발해졌다. 그러나 아직까지도 익룡 발자국 연구는 초보 단계에 지나지 않는다.

익룡의 앞발이 땅에 찍힐 때는 아주 다양한 모양을 나타낸다. 일반적으로 초승달 모양에서 사람 귀고리 모양을 하고 있다. 발자국이 찍힐 때는 주로 3개의 발가락이 찍히지만 경우에 따라 4번째 발가락, 즉 날개가 이어지는 부분이 찍히기도 한다. 한국 해남에서 발견된 익룡의 앞발 형태 역시 다른 나라에서 발견된 앞발과 비슷하다. 뒷발자국 화석 모양은 사람의 발 모양과 비슷하며 발가락 흔적이 잘 나타난다. 해남에서 발견된 익룡의 뒷발자국은 다른 지역과 약간 다르다. 5번째의 짧은 발가락이 자세히 나타나지 않는 경우가 있고 나머지 4개의 발가락이 모인 형태로 나타난다. 이 때문에 해남 우항리 익룡의 뒷발은 물갈퀴를 가지고 있는 익룡으로 해석된다. 이 익룡은 신종으로 인정받아 ‘해남이크누스 우항리엔시스’로 불린다.

익룡이 걷는 방법은 익룡의 비행 방법과 함께 지금도 한창 논란중이다. 지금까지 익룡이 걷는 자세로는 기어가는 자세, 날개를 접고 뒷발만을 이용해 똑바로 걸어가는 자세, 몸을 약간 굽힌 자세로 네 발을 모두 사용한 자세, 완전히 선 자세에서 네 발 모두를 사용한 자세 등 여러 안이 나왔다. 익룡 발자국 화석이 적기 때문에 아직도 정확한 이론이 나오지 않고 있다.
 

한반도에 살았던 목긴공룡. 동작이 굼떠 가장 느리게 걷는 공룡으로 꼽힌다.


익룡의 걸음걸이

최근 해남 우항리 화석지를 발굴 연구한 결과 이곳에서 네 발(4족)과 두 발(2족) 보행열(발자국이 열 지어 나타난 형태) 모두를 포함하는 익룡의 보행열 화석이 아시아에서 처음으로 발견됐다. 그 중 7.3m의 익룡보행열은 세계에서 가장 긴 것으로 익룡이 걷는데 익숙한 동물임을 보여줬다. 또 익룡의 두 발 보행열은 그동안 풀리지 않던 익룡의 두 발 보행 문제에 대한 결정적인 자료를 제공했다.

우리는 해남 우항리에서 발견된 익룡보행열을 기초로 해남이크누스의 축소 골격을 만들고 보행렬 위에 익룡 모델을 세워 실험한 결과 새로운 사실이 나타났다. 익룡의 골격 구조와 발자국 화석의 배열 특징을 고려하면 익룡이 걷는 모습은 악어가 기어가는 자세와 비슷하다. 날개에 달린 앞발과 작은 뒷발 등 네 발을 이용해 기어가는 자세로 걷는다. 앞발과 뒷발에 모두 힘을 실어 걸으면 네 발 보행, 뒷발에 힘이 많이 실리지 않아 뒷발자국 화석이 남지 않으면 두 발 보행 화석으로 남는다. 즉 두 발 보행 화석은 두 발로만 걸었다는 것이 아니라 앞발 위주로 걸어 뒷발자국 화석이 남지 않은 것이다(66쪽 그림 참조).

익룡은 걷기 위해 대부분의 체중을 앞발에 실을 수 밖에 없다. 먼저 날개를 접어 위로 세운다. 날개 중간에 달린 앞발은 땅을 짚는다. 앞으로 가려면 날개를 펴서 망토를 휘두르듯이 앞으로 휙 돌리며 앞발을 뻗는다. 뒷발도 보조를 맞추듯 앞으로 따라온다. 익룡은 이런 동작을 계속 반복해 앞으로 가게 된다. 익룡은 이런 걸음걸이를 이용해 공룡처럼 거의 직선으로 걷는다.

익룡이 날개를 위로 치켜세운 보행 자세는 비행을 하기 위해 이륙할 때 뒷발로 몸을 지탱하는 동안 날개를 상하로 퍼덕일 수 있어 이륙 동작으로 전환하기가 쉽다. 착륙할 때에도 그대로 상하 운동하던 날개를 접어 지면에 내려 올 수 있어 보행과 비행자세를 쉽게 바꿀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

우리는 실험결과를 토대로 기존 모델을 수정한 익룡의 4족 보행자세와 앞발에 더욱 힘을 줘 이동하는 새로운 형태의 2족 보행모델을 제시했다. 이 연구결과는 2002년 영국 지질학지에 실렸다. 오래 전 익룡의 걷는 모델을 제시했던 세계적인 익룡학자 데이비드 언윈도 우리 논문에서 해남 우항리의 익룡 발자국 화석을 바탕으로 자신의 모델을 일부 수정했다. 더 정확한 자료는 컴퓨터 시뮬레이션이 끝나면 나올 것이다.


전남 여수 시도에서 발견된 커다란 육식공룡의 발자국 화석.


한반도 공룡의 느림보 경주

티라노사우루스는 얼마나 잘 달렸을까. 몸길이 12m, 몸무게 6t이나 되는 거대한 몸집에 1m가 넘는 두개골을 가지고 영화 ‘쥬라기 공원’에서 본 것처럼 시속 70km 로 내 달리는 모습이 과연 중생대 공룡시대에도 그랬을까.

최근 연구 결과는 세계 최고의 ‘폭군룡’ 티라노사우루스의 모습을 바꾸고 있다. 미국 캘리포니아대 존 허치슨과 마리아노 가르시아 박사는 2002년 ‘네이처’에 “티라노사우루스의 몸은 빠른 속도를 내는데 필요한 충분한 근육이 들어 갈 만한 공간이 없었다”고 발표하며 빠른 속도로 뛸 수 없는 공룡이었다고 못박았다.

이에 대해 “티라노사우루스는 달리기 속도가 중요한 것이 아니라 먹이감보다 얼마나 빨리 뛸 수 있었느냐는 점”이라며 폭군 티라노사우루스에 힘을 주는 이들도 있다. 2.5m에 달하는 긴 다리를 가진 티라노사우루스는 힘차게 걷기만 해도 시속 20km의 속력이 나기 때문에 충분히 다른 공룡을 잡아 먹을 수 있었다는 주장이다. 그렇다면 한반도에 살았던 공룡들은 얼마나 빨리 달렸을까. 이를 해석하기 위해 여러 학자들이 한반도에서 발견된 공룡 발자국 화석들을 대상으로 발자국의 크기와 보행렬 등을 연구하고 있다.

특히 전남 화순에서 모두 58개의 공룡 보행열이 발견됐는데 이 중 최대 60m가 넘는 세계적 규모의 보행렬은 공룡의 달리기와 걷기 속도 계산에 중요한 자료가 되고 있다. 여러 방법으로 계산한 육식공룡의 걸음걸이 속도는 소형 육식공룡이 시속 5.5~29.9km로 폭 넓게 나타난다. 공룡이 걷는 모습에서 총총거린 모습, 달리는 모습까지 모두 나타난 것이다. 발자국의 크기를 비교해 볼 때 코엘로사우루스 정도로 생각되는 이 육식공룡은 최고 속도가 약 시속 30km정도다.

다른 나라에서 측정된 공룡 중 가장 빠르다는 일명 타조공룡인 갈리미무스가 시속 42~56km(일부 학자는 시속 80~110km 주장)인 점에 비하면 느리다. 또 영화처럼 2~3m 크기의 육식공룡이 빠른 속도를 자랑할 것이라는 우리의 생각을 바꾼다. 캥거루처럼 성큼성큼 걷는 모습(총총걸음)의 발견은 한반도에서는 처음이다. 성큼성큼 걷다가 달리는 모습으로 변하는 ‘가속도 이론’이 증명되면 한반도에 세계인들의 이목이 집중될 것이다.
 

전남대 한국공룡연구센터 정진우 연구원이 목긴공룡 발자국 화석 앞에 앉아 있다.


굼벵이 초식공룡

티라노사우루스와 같은 대형 육식공룡의 속도는 한반도에서 시속 3.2~8km로 측정됐다. 이는 걷는 걸음걸이에 해당된다. 미국에서 측정된 티라노사우루스의 걷는 속도(시속 6.22~7.54km)와 비슷하다. 아쉽게도 현재까지 티라노사우루스가 뛰는 속도를 측정할 보행렬이 발견되지 않았다. 최근 영국에서 대형 육식공룡이 걸을 때는 지그재그로, 뛸 때는 직선에 가깝게 이동한다는 점이 논의되고 있다. 앞으로 우리나라에서 대형 육식 공룡의 최고 속도를 내 놓을 자료가 발견되리라 기대한다.

두 발 혹은 네 발로 걸었던 조각류 초식공룡 보행열은 우리나라 거의 모든 화석지에 나타난다. 속도는 시속 1~7km며 모두 걷는 걸음걸이다. 가장 발자국 화석이 많은 고성 지역에서 소형 조각류의 속도는 시속 2.7~3.9km(발자국 크기 20~24cm)이고, 대형 조각류는 시속 1~6km(발자국 크기 25~51cm)로 매우 천천히 걸어다녔다. 해남에서는 초식공룡이 시속 2.9~7km, 여수에서는 시속 1.85~4.67km로 측정됐다.

이러한 걷는 속도는 트리케라톱스(시속 3.36~3.71km), 이구아노돈(시속 4.61~5.27km), 오리주둥이 공룡 종류인 에드몬토사우루스(시속 5.52~6.53km)가 걷는 속도와 잘 맞는다.

거대하고 목이 긴 초식공룡인 용각류는 마산 호계리와 창녕지역에서 측정됐다. 이들의 속도는 시속 0.6~6.8km로 큰 덩치에 비해 매우 느린 속도로 이동했다. 70t 몸무게의 브라키오사우루스가 걷는 속도는 시속 3.67~5.24km이고, 10t 정도의 디플로도쿠스가 시속 4.5km에 해당된다. 이는 사람의 걸음걸이 속도(시속 5~6km)와 비슷하다. 치타(시속 110km), 타조(시속 80km)에 비하면 굼벵이 수준이다.

한반도에는 무수한 공룡발자국과 매우 긴 보행렬이 있다. 이들을 종합해 공룡의 속도나 걸음걸이를 연구하고 이들을 시뮬레이션해 세계에 새로운 자료를 내놓아야 할 것이다.



▼관련기사를 계속 보시려면?

한반도를 두근거리게 할 코리아노사우루스
1. 꿈틀거리며 잠깨는 공룡화석
2. 그 많던 공룡을 누가 다 죽였을까
3. 날아라 고구려 공룡
4. 익룡은 네 발로 걸었다
5. 중생대 한반도는 동식물의 낙원

이 기사의 내용이 궁금하신가요?

기사 전문을 보시려면500(500원)이 필요합니다.

2005년 07월 과학동아 정보

  • 곽세건 연구원
  • 김보성 연구원
  • 박준 연구원
  • 황구근 연구원

🎓️ 진로 추천

  • 지구과학
  • 생명과학·생명공학
  • 역사·고고학
이 기사를 읽은 분이 본
다른 인기기사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