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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로피드백

브레인 & 머신 ➎ 내맘대로 뇌를 조절한다!



“지금 화면에 마릴린 먼로와 조쉬 브롤린의 사진이 겹쳐 있죠? ‘지금부터 조쉬 브롤린을 보고 싶어’ 하면 사진이 조쉬 브롤린으로 변할 것이고, ‘마릴린 먼로를 보고 싶어’ 하면 마릴린 먼로가 나타날 거예요. 그럼 사진을 마릴린 먼로로 바꿔 보세요.”

MRI(자기공명영상장치) 안에는 뇌전증(간질) 수술을 받기 전의 환자가 누워서 작은 화면을 응시하고 있다. 잠시 후, 겹쳐진 사진이 점점 마릴린 먼로로 변한다.


위 상황은 2010년 미국 캘리포니아공대 커프 박사팀이 ‘네이처’에 발표한 실험 장면을 묘사한 것이다. 뇌전증 환자들은 수술을 하기 전에 보통 두개골을 절개하고 뇌에 전극을 넣어 신경신호를 측정한다. 연구팀은 신경신호를 측정 중인 환자들에게 유명 헐리우드 배우들의 사진을 보여주고 흥미로운 결과를 얻었다. 조쉬 브롤린 사진을 보고 있을 때는 뇌의 오른쪽 해마 부위가 반응했지만, 마릴린 먼로 사진을 봤을 때는 왼쪽 해마 옆이랑 부위가 반응한 것. 어느 쪽 해마에서 신호가 나오는가를 알면 어떤 사진을 보고 싶어 하는지 알 수 있다는 것이다.
이번 연구의 더 큰 의미는 환자가 뇌의 특정한 부위를 스스로 조절할 수 있는 가능성을 열었다는 데 있다. 앞으로는 뇌질환 치료를 위해 뇌의 특정 부위를 활성화시켜야 할 경우, 전류를 직접 흘려보내는 대신 특정 인물(이 환자의 경우 조쉬 브롤린)을 상상하는 것만으로 같은 효과를 볼 수 있을지 모른다.





자기 스스로 뇌를 조절하는 기술은 뇌파 분야에서 시작됐다. 뇌파는 신호에 포함된 주파수 대역에 따라 델타, 세타, 알파, 베타, 감마 등으로 분류할 수 있는데 뇌질환이나 감정 상태에 따라 주파수 성분이 변한다. 이 때 측정한 뇌파 상태에 따라 적절한 피드백(그림이나 소리, 동영상 등)을 주면 원하는 뇌파가 스스로 약해지거나 세지도록 조절하는 법을 배울 수 있다. 이것이 바로 ‘뉴로피드백’이라고 알려진 자가뇌조절 기술의 원리다. 1971년 뉴로피드백의 선구자인 미국 UCLA 스터먼 박사는 “뇌의 운동영역에서 발생하는 뇌파인 ‘SMR파’를 뇌전증 환자들이 스스로 조절하도록 해 발작을 조절하는 데 성공했다”고 발표했다.

캐나다 ‘신경치료 및 바이오피드백 클리닉’의 폴 스윈글 박사는 2008년 자신의 저서에 뉴로피드백을 이용해서 ADHD 환자들을 치료한 경험을 기록했다. 스윈글 박사는 ADHD가 있는 아이들의 뇌파는 정상 뇌파보다 특정한 주파수 비중이 높다는 사실을 발견했다. 이 아이들에게 영화 ‘토이 스토리’를 보여주다가 뇌파에서 특정한 주파수가 커지면 영화를 중단하는 단순한 피드백을 주었다. 그러자 놀랍게도 계속 영화를 보고 싶어 하는 아이들이 자기 스스로 뇌파를 조절해서 영화가 끊어지지 않고 보는 방법을 터득했을 뿐만 아니라 일상생활에 돌아가서도 치료를 받기 전에 비해 주의력이 높아지는 효과를 보였다.






많은 연구들에도 불구하고, 뇌파를 이용한 뉴로피드백은 주류 뇌과학 분야에서 아직 정식으로 인정받지 못하고 있다. 가장 근본적인 이유는 아직 사람들이 어떤 원리로 자기 뇌파를 조절할 수 있는지에 대한 과학적인 해답을 내놓지 못하고 있기 때문이다. 대부분의 주류 학자들은 뉴로피드백의 효과 자체는 어느 정도 인정하면서도 그 효과의 많은 부분이 플라시보 효과(위약효과)라는 의심을 거두지 못하고 있다.

최근에 뇌 활동을 영상으로 보여줄 수 있는 기능적 자기공명영상(fMRI) 기술이 발전하면서 자가뇌조절 또는 자기치유 기술의 가능성을 뒷받침하는 연구 결과들이 계속 발표되고 있는 것은 매우 긍정적이다. 2010년 독일 튀빙겐대의 안드레아 카리아 박사는 실시간 fMRI를 이용해서 실험 대상자가 뇌의 오른쪽 섬엽의 활동을 스스로 조절하게 하는 실험을 했다. 뇌의 섬엽은 화난 얼굴이나 역겨운 대상과 같이 부정적인 감정 자극에 대해 민감하게 반응하는 뇌 부위로 알려져 있다. 실험 대상에게 섬엽의 활동 정도를 막대그래프로 보여주면서 스스로 섬엽의 활동을 높이는 훈련을 계속했더니 놀랍게도 똑같은 자극에 대해서 더 부정적인 감정을 갖게 됐다. 이 기술을 이용하면 자신의 감정을 잘 조절하지 못하는 사람들이 스스로 감정을 조절하는 법을 익힐 수 있다.




[미국 PLX 디바이스사의 X-Wave . 때와 장소에 관계없이 뉴로피드백 훈련을 할 수 있다.]



 
미국 ‘PLX 디바이스’라는 회사에서 판매하는 ‘X-Wave’라는 장치는 착용이 간편한 휴대용 뇌파측정 헤드셋을 스마트폰에 무선으로 연결해 때와 장소에 관계없이 뉴로피드백 훈련을 가능하게 한다. 시험공부를 하기 전에 집중력을 높이고 싶거나 흥분된 마음을 가라앉히고 싶을 때는 이 헤드셋을 머리에 쓰고 스마트폰의 화면을 바라보면서 스스로 집중력이 높아지거나 마음이 편안해지는 뇌 상태로 조절만 하면 된다.

앞으로 이런 종류의 휴대용 뉴로피드백 장치가 더 대중화된다면, 신경학습이나 뇌학습이라고 불리는 새로운 학습 방법이 나타날 가능성도 있다. 교실에 앉아 있는 학생들은 무선 뇌파 헤드셋을 착용하고 있고, 선생님은 교탁에 있는 컴퓨터로 학생들의 주의 집중도와 이해도를 실시간으로 관찰하며, 필요에 따라서는 그때그때 뉴로피드백을 이용해서 집중도를 향상시키는 장면이 10년 뒤, 미래 교실의 모습이 될 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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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년 5월 과학동아 정보

  • 에디터 이우상 | 글 임창환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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