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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후좌우 움직이는 발목을 보라

全기자의 로봇만들기

[1. 사람처럼 두발로 걷게하기]

제가 한국의 대표적인 로봇 휴보를 처음 만난 건 2004년 겨울입니다. 휴보가 막 태어나 관심을 한 몸에 받던 때였지요. 당시 사람처럼 두 발로 걷는 로봇은 일본의 ‘아시모’ 뿐이었습니다. 지금이야 두발로봇이 여럿 있지만 그때만 해도 기계가 두 발로 걷는다는 사실 하나로 정말 신기했습니다. ‘두발로봇이 국내에서, 그것도 세계에서 두번째로 개발됐다’는 소식에 로봇 휴보의 인기는 대단했습니다. 2005년 2월 KAIST에서 열렸던 휴보 공개시연회에 석한 한 아주머니는 “우리집 아이에게 휴보를 한 대 사주고 싶다. 돈은 얼마든 낼 테니 제작주문을 받아달라”며 를 쓰는 통에 개발자인 오준호 교수가 진땀을 뺀 경우도 있었으니까요.



사실 두발로봇을 만들려면 고도의 기술이 필요합니다. 1990년대 후반까지도 두발로봇은 ‘불가능’하다고 여겨졌습니다. 사실 지금도 로봇의 걸음걸이가 완벽하진 않습니다. 누구나 “이젠 걸을 수 있는 것 아니냐”라고 생각하지만 기계공학을 연구하는 과학자들은 아직도 ‘조금 더 안정적인 걸음걸이’를 만들기 위해 노력하고 있습니다. 앞으로 점점 더 발전할 인공지능 기술이, 이렇게 만든 로봇 속으로 스며들어오길 기대하면서요.






 


 
[오준호 교수팀은 로봇 휴보를 개발할 때까지 KHR-0, KHR-1, KHR-2 총 3대의 실험용 로봇을 만들었다. 이런 실험용 로봇들의 완성도 역시 상당히 높다. KHR-2는 휴보와 거의 동일한 성능을 갖고 있다. 사진은 KHR-1의 한 쪽 다리로, ‘달리는 로봇’ 휴보2를 만들 때도 실험용으로 사용됐다.]

 
 
 
[휴보의 걸음걸이 안정화를 연구하기 위한 실험용 장치다. ‘KHR-플레이너(planar)’라고 부른다. 플레이너는 평면, 2차원이라는 의미로, 좌우 흔들림 없이 다리의 운동패턴을 실험하는 데 쓴다. 그 다음 이 운동패턴을 발목안정화기술을 확보한 로봇에게 이식하면 두발로봇도 사람처럼 걷거나 달릴 수 있게 된다.]

 
 
 
[휴보2의 달리기 기능을 연구한 조백규 박사가 레이저로 다리의 정렬상태를 점검하고 있다. 로봇은 사람과 달라 부품이 조금만 비틀어져 있어도 올바르게 걷거나 달릴 수 없다.]
 


사람과 로봇의 차이
 

두발로봇 만드는 법을 알아보기 전에 먼저 한 가지 실험을 해 봅시다. 차렷 자세로 서 보세요. 그리고 한 발을 들고 남은 한 발로만 서 보십시오. 동상처럼 조금도 움직이지 않겠다고 굳게 다짐한 다음 고개를 아래로 떨궈 발과 다리를 내려다보십시오. 아마도 가만히 서 있을 수 없을 것입니다. 마음과 다르게 발과 다리는 계속해서 꿈틀꿈틀 움직입니다.



사람은 한발로 서 있을 때(정도 차이는 있지만 두발로도) 몸을 절대로 가만히 두지 못합니다. 이렇게 계속 움직이면서 중심을 잡는 게 정상입니다. ‘한 발로 서 있는’ 단순한 동작 하나를 위해 우리들은 자신도 모르게 굉장히 많은 노력을 합니다. 발바닥의 피부로 압력을 느끼고 눈과 귀, 귓속 세반고리관으로 주변 환경과 균형을 확인합니다. 하지만 로봇은 다릅니다. 계속 ‘움직이는 것’ 보다 ‘가만히 있는 것’이 정상입니다.



로봇을 사람과 비슷하게 만들고 또 움직이는 것은 쉽습니다. 팔과 다리를 만들어 주고 모터, 또는 유압식 액추에이터 같은 구동장치를 써서 움직이면 됩니다. 하지만 자기 혼자 힘으로 균형을 유지하며 걷게 만드는 것은 이야기가 다릅니다. 걸음을 걸어 보려고 한 발을 공중으로 들어올리는, 첫 걸음걸이를 내딛는 상황 자체가 로봇에게는 허용되지 않습니다. 그대로 중심을 잃고 인형처럼 넘어가기 십상이죠. 이 문제를 해결하는 것이 두발로봇을 만드는 가장 큰 숙제입니다.



발목 속에 숨은 안정화의 비밀



이런 근본적인 문제를 어떻게 해결할 수 있을까요. 과학자들은 로봇의 발목에 주목했습니다. 로봇이 어딘가 움직여 중심을 잡아볼 여지가 있는 곳이 발목이니까요. 사람은 발바닥 전체를 자연스럽게 움직이며 중심을 잡지만 대부분의 인간형 로봇의 발은 납작한 금속판으로 돼 있습니다.



즉 넓적한 판 위에 로봇을 올려 두는 셈입니다. 과학자들은 특별한 관절과 센서, 모터를 이용해 로봇이 발목으로 중심을 잡도록 하는 데 성공했습니다. 이런 기능을 ‘안정화’라고 부르는데, 로봇 휴보도 이런 기능을 갖추고 있습니다. 휴보는 안정화 기능을 켜 둔 상태에서 한 발, 또는 두 발로 가만히 서 있을 수 있습니다. 이때 누군가 옆에 와서 밀어도 그 힘을 감지해서 멈칫 한 다음 다시 중심을 잡고 제자리로 돌아옵니다. 마치 오뚝이 같습니다. 저도 휴보가 태어난 KAIST 휴머노이드로봇 연구센터를 방문해 몇 번 밀어 보았는데요, 덩치 큰 친구의 어깨를 손으로 밀면 그 친구가 힘을 줘서 버티는 것과 비슷한 느낌을 받습니다.



걷는 것은 어떨까요. 안정화 기술을 완성했다면 그 다음부터는 비교적 쉽습니다. 양 발을 교대로 안정화시키면서 다리를 옮겨 나가면 됩니다. ‘왼발안정화 - 오른발내딛기 - 두발안정화 - 오른발안정화 - 왼발내딛기 - 두발안정화 - (다시)왼발안정화’ 순으로 발을 내딛는 겁니다. 그리고 안정화 과정을 거치는 동작을 계속 거듭하면 넘어지지 않고 앞으로 걸어 나갈 수 있습니다.


 
2000년 일본 혼다자동차가 최초의 두발로봇 ‘아시모’를 발표한 이후 로봇 휴보, 일본산업기술연구소(AIST)의 ‘HRP 시리즈’, 도요타 자동차의 ‘파트너’ 등 수많은 두발로봇이 등장했습니다. 조금씩 차이는 있지만 어느 곳이나 예외 없이 휴보와 비슷한 안정화 기술을 사용하고 있습니다.

 
 
 
서로 정보를 나누어 가졌을 리는 없습니다. 그런데도 이렇게 비슷한 이유는, 아마 발목 관절을 이용한 안정화기술이 가장 좋은 해결책이었기 때문일 겁니다. 안정화 기술을 만드는 법을 잠깐 살펴볼까요. 먼저 평평한 로봇의 발 모양을 만들고, 그 위에 앞뒤, 좌우 두 방향으로 움직일 수 있는 관절을 설치합니다. 카메라 삼각대에

붙는 ‘팬·틸트 헤드’와 비슷해서 어떤 방향으로든 움직일수 있습니다. 그 위는 로봇의 다리와 연결되겠지요. 그 다음 각종 센서를 설치합니다. 휴보의 경우 무게중심을 잡기 위해 발에는 ‘힘’을 느끼는 센서가, 아랫배에는 관성과 가속도 등을 측정할 수 있는 센서가 붙어 있습니다. 이런 센서에서 받은 신호대로 모터를 정밀하게 제어해 로봇의 발목을 움직여 주는 겁니다. 이런 자세 안정화 기능을 ‘포스처스테빌리제이션(PS)’이라고 부릅니다.



이렇게 적어 놓고 보니 간단해 보입니다만, 로봇이 걸음걸이를 한 발 옮길 때마다 자세를 잡고, 정밀하게 중심을 맞추도록 모터와 감속기(자동차의 변속기와 비슷합니다)를 제어하는 일은 정말로 쉽지 않습니다.
 

 
 


 
[휴보2의 발. 전형적인 ‘발바닥형’ 로봇의 형태다. 무게중심을 잡기 위해 설치한 ‘힘 센서’가 보인다.]

 
 
 
[‘한국과학기술연구원(KIST)’의 유범재 박사팀도 두발로봇 ‘마루’ 시리즈를 개발하고 있다. 휴보가 기본적인 운동능력 향상을 주로 연구하는 반면 유 박사팀은 다양한 소프트웨어를 적용해 로봇의 활용성을 높이는 데 주력하고 있다. 원격제어기능, 댄스기능, 주방보조 기능 등을 선보여 화제가 되고 있다.]

 
 
 
[휴보센터 김민수 박사가 진보된 휴보2의 걸음걸이를 선보이고 있다. 휴보2는 ‘달리는 로봇’으로 알려져 있지만 걸음걸이 역시 크게 향상됐다. 발목안정화 기능이 월등히 좋아졌기 때문에 걷고 있는 도중 발밑에 금속판을 끼워 넣어도 넘어지지 않는다. 울퉁불퉁한 지면도 아무 문제 없이 걸을 수 있다는 뜻이다.]

 

발바닥형? 발끝형?



이런 안정화 방식에 의존하지 않고 두 발로 걷는 로봇을 만드는 방법도 있을까요. 물론 있습니다. 하지만 훨씬 까다롭고 어렵습니다. 사람을 그대로 흉내 내는 것입니다.



아시모나 휴보처럼 안정화를 중시해 만든 로봇을 연구자들은 ‘발바닥 형’이라고 부릅니다. 전기모터 제어 기술이 뛰어난 일본과 한국에서 주로 이 방법으로 로봇을 만듭니다.



하지만 미국에선 전혀 다른 방법을 씁니다. 미국은 지금까지 두발로봇 개발에 그리 적극적이지 않았습니다. 하지만 2009년 군사용 로봇 제조기업인 보스턴다이내믹스가 마침내 인간형 로봇 ‘펫맨’을 개발 중이라고 발표했습니다. 이 로봇은 걸어가는 로봇을 옆에서 밀면 반대방향으로 발을 짚어 균형을 잡고 다시 제자리로 돌아옵니다. 사람처럼 충격을 받으면 적극적으로 다리를 움직여서 중심을 잡는 겁니다. 발걸음도 사람과 비슷합니다. 발꿈치부터 땅에 디딘 뒤 발끝을 내딛고 지면을 밀면서 앞으로 걷습니다. 당연히 걷는 속도도 훨씬 빠릅니다. 시속 5.5km 정도로 휴보가 달릴 때보다 빠릅니다. 이런 형태의 두발로봇을 ‘발끝형’이라고 부릅니다. 이 로봇은 전기모터 대신 기름의 압력을 이용해 관절을 움직이는 ‘유압식액추에이터’를 써서 움직입니다. 힘이 세고 동작전환도 빠르지요. 하지만 유압을 공급하는 커다란 장치를 매고 다녀야 하는 것이 문제입니다.



어떤 방식이 더 나은지는 아직 알 수 없습니다. 아시모는 발바닥형 로봇이지만 자유자재로 방향을 바꾸며 달릴수 있을 만큼 뛰어납니다. 하지만 펫맨이 보여준 자연스러운 걸음걸이는 분명히 욕심나는 방법입니다. 앞으로 10년, 20년이 더 지나면 얼마나 더 뛰어난 로봇이 나올지 궁금해집니다. 발바닥형과 발끝형의 장점만 하나로 합친 로봇이 나오지는 않을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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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년 01월 과학동아 정보

  • 전승민 기자│감수 오준호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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