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라이브러리









진화는 복권당첨과 같이 무수한 패배자 속에서 우연히 얻은 행운에 불과하다. 이런 사실은 유전자의 연구로 확인되고 있다.
 

무정형의 배아(胚芽)에서 어떻게 복잡한 생명체가 생겨날까? 자연은 세포의 성장을 어떻게 다스리는 것일까? 몸 속에서 심장과 간장, 뼈와 근육이 제 자리를 잡도록 자연은 어떻게 미리 배려를 하는 것일까? 최근에 생명과학자들은 이러한 수수께끼를 푸는 데 좀더 가까이 접근했다.

 

생명체의 신비를 결정하는것
 

별나게 생긴 실험용 동물인 변이종 과일파리는 일찌기 생물학도 시절 '발터 게링'의 호기심을 자극했다. 이 곤충은 보통 볼 수 있는 부드러운 촉수 대신에 머리에 두 개의 털이 난 긴 다리를 달고 있다.
 

게링은 이 꼬마괴물에게 나조베미아(그 유충이 발효하는 용액이나 나무 익은 과일 속에서 자라는 파리 Drosophilidae Nasobemia)라는 이름을 붙였는데, 이것은 말장난 잘 하기로 이름난 오스트리아의 시인 '크리스티안 모르겐슈테른' 의 시에 나오는 코로 걸어다니는 환상의 동물의 이름을 따른 것이다. 생물학도 '게링'은 그후 점점 더 여러가지 기형의 생물체를 발견했다. 예를 들어 눈이 달려 있을 자리에 날개가 돋아나 있는 파리라든가, 또는 다리 대신에 양분을 흡수하기 위한 관(管)이 몸통에서부터 툭 튀어나와 있는 파리 등.
 

그것은 20년도 더 지난 일이었다. 그러나 게링은 스위스 '바젤'에서 강의하는 동안에도 그 못생긴 과일파리를 한시도 잊지 못했다. 지금까지 학문생활을 통털어 그는 날개 달린 곤충에 몰두했다.
 

게링이 궁금해 한 것은, 그 숱한 서로 다른 세포들, 그러면서도 하나하나가 고도로 전문화된 세포들이 모여서 이루어지는 한 생명체의 성장에 대해 누가 키를 잡고 있는 것일까 하는 점이다. 누가 몸 속의 각 기관과 근육을, 또는 혈관을 미리 정해진 듯한 자리에 두도록 지시하는 것일까? 그리고 궁극적으로 한 유기체가 한 걸음 한 걸음 무척이나 지리하게 형성되어 나가는 과정을 제 때에 맞춰 진척되게 하는 것은 누구일까?

 

유사유전자가 전체를 지휘한다.
 

몇 년 전까지만 해도 진화과정은 일종의 자연의 기적으로 간주되었다. 학자들은 이에 대해 기껏해야 희미한 설명을 해줄 뿐이었다. 그러나 그 사이에 생화학이 발전됨으로써 과학자들은 마치 성실한 건축가처럼 유기적인 형성물-다시 말해, 생식이 일어나는 순간에 벌써 목적에 맞게 그 결과물을 숨겨 갖고 있는 소위 유사(類似)유전자들을 감독할 수 있게 되었다.
 

지금까지 생물학자들은 최소한 세 가지 서로 다른 범주의 통제 유전자(Kontroll-Gene)를 같은 것으로 생각했었다. 그 중 첫번째 것은 생성하고 있는 유기체를 일정한 수의 '부분'으로 나눈다. 이러한 뚜렷하게 서로 분리되는 형성 부분들은 이번에는 두 번째의 유사 유전자의 지휘 아래 있게 된다.
 

그 부분 유전자(Segment-Gene)는 그구역 내에서 처음에는 상당히 같은 모양의 세포들을 계속적으로 분화시킨다. 둘로 나누어져 끊임없이 증가하는 이전의 단위세포들에서부터 점차적으로 특별한 것들, 말하자면 신경세포라든가, 뼈세포, 표피세포 등으로 된다. 제3의 통제 유전자 소위 시간 유전자(Chrono-Gene)로 이루어져 있는데, 이것은 서로 다른 형성 부분들에 있어서의 발전속도를 맞추는 일을 한다. 이것은 생화학적으로 가장 세세한 것을 고려하는 일반적으로 중요한 일이다.
 

바젤 대학의 과일파리 전문가 '게링' 같은 과학자들은, 매우 작은 실험용 동물들, 공충들에 있어서 유사 유전자들이 어떻게 생물학적인 질서를 매기는 힘을 행사하는 지에 대해 연구했다. 그리하여 세포의 핵심 부분에 축적되어 있는 다른 유전인자들의 전(全) 군대를 그 유사 유전인자가 지휘한다는 사실이 분명히 밝혀졌다.
 

각 몸세포의 핵심부분에 전체 유기체의 형성에 유용한 유전정보가 들어있다는 사실을 생물학자들은 오래 전부터 알고 있다. 그러나 개개의 세포 유형에서 항상 유전학적인 프로그램 가운데 작은 부분만이 활동한다는 사실은 요즘에 와서 비로소 분명해졌다. 그리고 나머지 부분은 유기체가 형성되는 동안 통제 유전자에 의해 차단된다는 것도 밝혀졌다.
 

그것은 유전자를 통제하는 통제 유전자가 자가생산되는 단백질재(材)를 가지고 있어서 이것이 마치 안전 플러그 처럼 세포의 유전물질 속으로 딱 맞아 들어감으로써 이루어진다. 이처럼 기막힌 방식으로 세포의 발전이 목표대로 조절되어 형태를 갖추게 된다. 이렇게 키를 잡고 있는 유전자의 감독이 없다면, 모든 배아(胚芽)는 무정형의 세포덩어리로 아무렇게나 자랄 것이다.

 

유전자를 통해 진화를 연구하는 게링


사람과 파리의 유전자구조 10%만 달라
 

유사 유전자를 화학적으로 분석한 결과 과학자들은 몇 가지 깜짝놀랄 만한 것들을 발견했다. 모든 유기체에서 유전자를 이루고 있는 줄사다리 모양으로 된 DNA분자의 옆으로 가로지르는 단계들에서 읽어낼 수 있는 유전정보의 양(量)은, 아주 작은 생명체 속에서 키를 잡고 있는 유전인자라 해도, 그것이 무지막지하게 많다는 것이다. 예를 들어 파리의 두 개의 촉수를 제대로 만들어내기 위해 신경 써야 하는 과일파리의 통제 유전자는 대략 10만 단계의 길이의 달한다. 매우 작은 곤충의 성장을 통제하는데만 해도 그런 막대한 유전자가 10여개 쯤은 있어야 한다.
 

그러나 과학자들을 더욱 놀라게 한 것은, 작은 생명체의 유사 유전자가 -그 길이에 있어서나 그 구조에 있어서-단지 사소한 점에서만 더 커다란 유기체의 통제 유전자와 구별될 뿐이라는 사실이다. 비교해 본 결과 과일파리와 개구리의 유사 유전자는 거의 서로 분간 못할 정도로 비슷했다. 그것은 줄사다리 모양의 DNA에서 단 하나의 단계만이 다를 뿐이었다.

또한 지금까지 따로 떼어 생각했던 인간의 통제 유전자도 기어다니는 벌레나 파리 또는 쥐의 유사 유전자와 상당히 비슷하다. 그 유기체가 대략 10조(兆)의 세포로 이루어지는 호모 사피엔스의 키를 잡고 있는 유전인자 가운데 단지 DNA단계의 대략 10%만이 다른 것들과 다르게 배열되어 있다. 이러한 작은 차이는 진화과학자들에게 많은 것을 생각하게 한다. 곤충과 포유류 사이에 지금까지 생각했던 것보다 훨씬 더 가까운 친척관계가 있다는 사실을 이제 진화과학자들은 분명히 인식해야 할 것이다.
 

화석의 발견으로 알려져 있는 바, 대략 60억년 전부터 벌써 곤충류가 생명의 계통수에서 독자적인 가지로서 발전된다. 그보다 훨씬 이전에 살아 있었을 공룡의 조상에서 부터 곤충류와 포유류는 갈라져 나왔다고 한다. 말하자면 손자 대(代)에는 전혀 비슷한 것이 없지만 훨씬 이전으로 올라가면 원래는 친척사이였다는 것이다.

 

생명의 역사에서 통제유전자는 거의 변하지 않았다
 

모든 동물 종류에서 놀라도록 비슷한 구조를 보여주는 그 통제 유전자가 발견됨으로써 얼마전까지도 통했던 생각이 무너져 내렸다. 그러나 쥐와 인간, 개구리와 파리가 어떻게 공통의 유사 유전자를 갖게 되었느냐 하는 문제는 당분간 수수께끼로 남아 있다. 반면 분명한 것은 생명의 발전의 역사가 진행되는 동안 통제 유전자는 거의 변화되지 않았다는 것이다. 수 백만 년 동안 그 구조는 기껏해야 세부적인 부분만이 조금 변화되었다. 그러나 진화의 결과는 물론 언제나 광범위한 것이었다.
 

유전되는 것 가운데서의 돌연변이, 즉 비약과도 같은 변화가 늘 다시금 새로운 생명형식을 낳게 한다고 과학자들이 주장한 것은 벌써 백년도 더 전의 일이다. 그러나 과학자들은 지금까지는 개개의 세포 속에서의 비약에 의해 진화가 추진된다고 생각했었다. 이런 생각은 거의 불가능하지만 있을 수도 있는 세포의 돌연변이를 전제로 하는 약간은 그럴 듯한 것이었다.
 

자주 있는 것은 아니지만 그 효력이 두루두루 미치는 수단으로써 진화적인 발전을 진행시키고 그 키를 잡고 있는 것이 통제유전자라는 가설은 훨씬 더 그럴 듯해 보인다. 단 하나의 유사 유전자의 DNA프로그램에서 생각할 수 있는 가장 미미한 변화가 일어난다 해도 벌써 하나의 유기체는 단번에 근본적으로 그 형태가 변할 수 있다. '게링'은 그동안 자연의 힘이 통제 유전자와 더불어 어떻게 나타나는가에 대해 자세히 연구해 왔다. 그에 의하면 예를 들어 유사 유전자 하나가 돌연변이를 일으키면, 통제 유전자의 하위 유전인자가 자기에게 지정된 활동구역에서 나와 이웃해 있는 몸의 부분으로 이동하고-여기에 그 유전자는 거기에 원래부터 정해져 있는 파리의 다리 대신에 양분을 흡수하는 관(管)이라든가 촉수 또는 파리의 날개 같은 것을 만들게 하는 것이다.
 

어떤 배아에서 발전 부분의 수가 보통 때보다 적어져 거의 치명적인 변형을 불러 일으키거나 또는 어떤 형성작업이 잘못하여 두번 일어났을 때도, 그 밖에 다른 비정상적인 것들이 생길 수 있다. 이렇게 어떤 부분이 두 개 생기는 방식으로 해서, 정상적인 등부분이 없이 몸체가 이중으로 되어 있는 과일파리가 생길 수 있다.
 

돌연변이가 일어날 때 대부분의 경우, 생물학적으로 가치가 없는 모델, 즉 얼마간 살지 못하고 이내 죽어버리는 생명을 유지하지 못하는 괴물이 생긴다고 과학자들은 생각하고 있다. 미국 학자들이 생각하는 것처럼 진화는 마치 복권당첨과 같이, 수많은 것들이 속절없이 사그라진 후에 단지 드물게 일어나는 뜻밖의 하나의 행운에 불과하다.

1986년 09월 과학동아 정보

  • 슈피겔지

🎓️ 진로 추천

  • 생명과학·생명공학
  • 화학·화학공학
  • 물리학
이 기사를 읽은 분이 본
다른 인기기사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