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별 생각없이 간호학과를 택했지만 고달픈 병원실습을 통해 점차로 진짜 간호사가 되어가고…
 

연세대 간호학과 4학년 최인정


4학년이 된지도 벌써 여러 주일이 지나갔다. 요즘 학교 안에는 진달래가 한창이다. 두어주 후면 진달래도 완전히 져서 학교는 온통 파란색으로 바뀔 것이고, 지금은 학교 안을 바삐 돌아 다니는 1학년 신입생들의 참신한 분위기도 조금은 나른하게 변할 것이다.

3년전 이맘 때, 대학에 갓 입학해 수업시간에 늦을까봐 혼자서 여기저기 강의실을 찾아 뛰어다니던 일이 생각난다. 내 기억으로는 그때가 그렇게 멀게 느껴지지 않는다. 지금 생각하면 그 당시 내가 할 일의 대부분은 눈을 일단 크게 뜨고 대학에서 일어나는 일들을 하나하나 관찰하는 일이었다. 당장 내 눈앞에서 변화하는 많은 가치들 -그 동안 내가 절대 바뀌지 않을 거라고 믿었던 것이나, 전혀 다른 방향에서 비춰 볼 생각조차 못했던 사실들, 그리고 심지어는 어느 누구의 입을 통해서도 듣지 못했던 이야기들-을 어떻게 수용해야 할지 고민했다.

●- 정신병원 실습을 통해

대학이란 곳은 누구에게나 다양한 경험을 겪게 하는 것 같았다. 하지만 나의 대학생활은 중고등학생 시절과 견주어 볼 때 근본적으로 다른 점이 거의 없었다. 하지만, 새롭게 시작하는 대학 초년생에게 생소한 질문을 던져주고, 참신한 가치관을 제시해 주었다.

학년 초의 이러한 상황들은 내가 간호학과를 지원한 학생이라는 사실을 깊이 인식할 여유도 필요성도 느끼지 못하게 했다. 더군다나 졸업 후에 내가 어떻게 살 것인가, 그리고 그 살아가는 방법에 있어서 간호학이라는 나의 전공이 어떻게 연관될 것인가는 부분은 전혀 내 관심 밖이었다.

요즘 나에게 왜 그 힘든 간호학과를 택했느냐고 묻는 사람은 별로 없다. 사람들은 이제 예비 간호사인 내 앞길이 의료인의 길로 뚫려 있음을 당연하게 받아들이기 때문일까. 오히려 요즈음엔 친구들이 묻지 않아도 내가 먼저 간호학과를 선택한 동기를 들려주곤 한다.

고2 때의 어느 수업시간에 자신의 장래희망에 대해 말할 기회가 있었다. 한창 대학입시라는 현실에 기죽어 있으면서도 커서 어떻게 살겠노라는 뚜렷한 목표가 없었던 나에게, 그 기회는 한마디로 고역이었다. 어느덧 내가 발표할 차례가 오자, 나는 재빨리 이야기를 꾸며댈 수 밖에 없었다.

"저는 커서 훌륭한 간호사가 돼 의사가 없는 산간벽지에서 아픈 사람들을 도우며 살고 싶어요."

반아이들은 내 이야기를 듣고 막 웃었다. 내 이야기가 그렇게 우스웠을까. 아마도 덤벙대는 성격인 나에게 웬지 여성적인 느낌이 드는 간호사라는 직업이 어울리지 않아서 그랬을 것이다. 지금 생각하면 나도 웃음이 나온다. 물론 그때의 희망사항이 막상 입학원서를 쓸 때 커다란 동기로 작용했던 것은 아니다. 과연 어떠한 이유에서 그런 말이 내 머리 속에서 창조됐는지 정신분석학적인 입장에서 지금도 연구해 보고 싶다.

하지만 대학 4년의 생활중에서 4분의 3 이상을 보내고 난 지금, 처음의 동기야 어떠했건 간에, 점차 확실해진 것이 분명히 있다. 막연히 생각했던 5년전의 이야기가 지금은 엄청난 가능성과 현실성을 갖고 내게 아주 가까이 다가오고 있다는 사실이다. 이쯤 해서 문득 생각나는 옛 속담이 있다. '말이 씨가 된다'는 막연했던 과거의 꿈이 내가 일생동안 해야 할 일로 실감나게 다가온 것은 본격적으로 병동실습을 나갔던 3학년 이후부터였다. 아무래도 간호학의 이론과 지식들은 대상자(환자) 에게 직접 적용해보는 실습을 통해 풍부해진다. 또 실습은 질병을 중심으로 환자를 바라보게 하고, 눈앞에 보이는 치료나 단순한 증상의 완화가 간호의 최종목표가 아님을 깨닫게 한다.

간호의 대상자는 인간의 기본욕구들을 모두 갖고 있다. 육체적 정신적 사회적으로 자신의 욕구가 모두 채워지기를 바라는 것이다. 이 욕구충족의 관점에서 보면 간호사의 책무는 단순히 질병치료에서 그치지 않고 질병을 예방하고 치료 이후의 재활까지 이어진다. 이것이 바로 전인(全人)간호의 개념이다. 이러한 간호의 목표를 달성하려는 기본자세가 실습을 통해 얻어지는 것이다.

실습을 해 나가면서 겪었던 여러가지 경험중에서 기억속에 가장 깊이 남아 있는 것은 3학년 초에 있었던 서울시립정신병원 실습이었다. 정신질환자를 만난다는 사실, 정신과 병동은 철창과 자물쇠로 굳게 폐쇄돼 있다는 사실, 실습 학생들이 병동에 들어가면 그 문은 굳게 잠겨 버린다는 사실 등등. 조금은 무섭고 긴장된 상태로 환자를 만날 수 밖에 없었다. 그러나 실습을 마치고 돌아올 때의 느낌은 전혀 달랐다. 자신도 모르게 그곳 환자들에 대한 막연한 동정심으로 변해 있었던 것이다. 그리 좋지 않은 시설에서 면회오는 가족들도 없이 장기입원, 정신보다는 오히려 몸의 어딘가가 더 아파 보였던 사람들.

서울시가 운영하는 병원이어서인지 생활보호대상자들도 많았고 갱생원 출신의 환자들도 더러 있었다. 한 갱생원 출신의 환자에게 취미가 무엇인지를 물어보았을 때 들었던 '구보'라는 대답이 지금도 생생하다. 실습의 전과정을 통해서 그때처럼 극한 감정을 불러 일으켰던 적은 없었다.

그 경험은 나게게 분발을 촉구해 주었다. 그들에 대한 밑도 끝도 없는 동정심만이 내가 줄 수 있는 전부가 되어서는 안된다는 사실을 알게 된 것이다. 머리속으로는 이해가 가능했던 전인간호의 개념이 안타깝게도 입에서만 뱅뱅 돌 뿐이었다.

●- 활동영역이 매우 넓어

자기 삶의 방식을 고민하고 올바른 자신의 모습을 갖추어 가는 작업은 누구나 의당 해야할 일이다. 또 누구나 실행할 수 있는 일이기도 하다.
나는 살아가는 방법을 진지하게 고민하는 일은 큰 성취를 가져다 준다고 믿는다. 하지만 어떤 문제가 닥쳤을 때 혼자 모든 걸 해결하려고 끙끙거리지 않고 많은 사람들과의 공통된 노력 속에서 문제를 풀어갈 작정이다. 우리가 무언가를 하기 전에 골똘히 사고부터 한다면 그 생각 만큼이나 또는 그 이상으로 치열한 노력을 하게 되지 않을까.

고등학교 시절의 엉뚱했던 나의 꿈이 이제는 현실로 다가왔지만 아직 나는 졸업후 나아갈 길을 확실하게 정하지 못하고 있다. 부끄러운 얘기지만 능력을 펼칠 수 있는 영역이 매우 넓다는 사실을 안 것도 그리 오래되지 않았다. 내가 현재 고려하고 있는 진출희망 분야는 크게 봐서 셋이다. 농촌에 내려가 보건진료원 활동을 하는 보건소간호사, 산업현장에서 열심히 일하는 사람들의 건강을 지켜주는 산업장간호사, 병원에서 환자를 돌보는 임상간호사가 그것이다. 아직 1년이 더 남아 있으니 신중히 생각해서 최선의 결론을 내려야지, 하고 다짐해 본다.

최근에 내게 깊은 인상을 주었던 한마디를 소개한다. 지난 번 수련회에서 강연을 통해 들었던 어느 선생님의 말씀이다. "세계에 대한 고민을 자기 자신의 문제에서부터 시작하는, 인식의 변화가 있기를 바랍니다."

꿈도 많고 고민도 많은 학창시절을 보내고 있을 나의 어린 후배들에게 꼭 들려주고 싶은 조언이 있다. 어렵겠지만 가끔씩 머리를 딴데로 돌려 생각을 많이 해 보는 여유를 가졌으면 하는 바램이다. 청소년 간호학이론에서 말하듯이 현재를 살면서 미래를 준비하는 일은 청소년기에 반드시 성취해야 할 과업이기 때문이다.

4월에서 5월로 넘어가면서 봄이 더욱 짙어진다. 학교안 풍경들도 더욱 푸르러간다. 이렇게 시간이 흐를수록 점점 커 나가는 내 모습과 내 친구들의 모습을 기대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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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0년 05월 과학동아 정보

  • 최인정 4학년 학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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