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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이한 거인상과 암벽화

선사시대 인류가 남긴 수수께끼

유럽 아프리카 아메리카 오스트레일리아대륙의 곳곳에 새겨져 있는 거대한 인물상과 암벽화는 무엇을 뜻하는 것인가. 그림과 함께 여러가지 해석을 소개한다.

지구상 여러곳의 벌판과 바위산에는 거대하고 기이한 인물상과 동물모양이 많이 새겨져 있다.

유럽을 비롯하여 아프리카와 북미 남미 오스트레일리아대륙에 많은 이 거대한 그림은 선사시대의 고대인이 벌판의 지표면 아래 석회암층에 새겼거나 바위를 쪼아 새긴 것이다.

이런 그림은 그 규모가 너무 거대하다. 대체 누가 무엇때문에 만든 것일까?

그 인물상이 현대인이 상상하는 우주인과 비슷하다하여 지구를 방문한 우주인을 그린 것이라는 해석도 있고 고고학자를 비롯한 과학자들은 고대인들이 생존경쟁이 심한 상황에서 침입자를 막기위해 힘을 과시하는 상징으로 만든것이라고 해석하고 있다.

동물이나 사람들의 생활하는 모양을 그린 규모가 작은 것과 기호같은 것도 있다. 이것은 문자가 발달하지 않은 시대에 그 시대 사람들이 일상생활을 기록한 것으로 해석되고 있다.

선사시대에 지구를 방문한 우주인 그림?

암벽화의 기이한 인물상이 선사시대에 지구를 방문했던 우주인을 그린 것이라고 주장하는 사람들은 몇가지 근거를 대고 있다.

수학적 기초와 역학지식이 정확히 활용된 거대한 데이터뱅크인 이집트 ‘기자’(Giza)의 피라미드나 현대기술로도 건설할 수 없다는 표고 2천4백m나 되는 높은 곳에 건설된 남미 ‘매추피추’의 고대 건축기술. 누가 어떤 기술로 무엇때문에 만들었는지 수수께끼에 싸인 ‘이스터’섬의 ‘모아이’상. 우주인에게 보내는 메시지라고도 하고 우주선의 항공용표지 또는 비행장이라고도 하는 ‘나스카’의 거대한 지상의 그림 등등···.

이런것이 모두 지구밖의 지적동물(우주인)이 지구를 방문했던 증거라고 보는 사람들이 있는 것이다.

그와 마찬가지로 바위에 그린 기이한 모습의 인물상도 고대인이 우주인을 목격하고 기록한 것이라는 것이다.

그중 가장 유명한 암벽화가 아프리카주 알제리의‘탓시리’벽화다. 1956년 프랑스의 고고학자 ‘앙리 로트’가 사하라사막의 ‘탓시리 나제르’산속 4백개소에서 1만5천점이나 되는 암벽화를 발견했다.

탓시리 나제르산 부근은 현재 불모의 사막지대이나 이 수많은 암벽화에는 사하라가 사막화 되기전, 물이 풍부하고 동물도 많았던 기원전 6천년경부터 4천년전 까지의 먼 옛날의 생활상이 그려져 있다. 그 속에는 길이 7.5m나 되는 무소와 높이 5m나 되는 거대한 코끼리등 이미 멸절되어버린 동물들도 그려져 있었다.

이 암벽화 속에는 뿔이 있는 인물상과 안테나모양의 물건이 달린 헬멧 비슷한 것을 쓴 이상한 인물상, 공중을 떠돌고 있는 것처럼 보이는 인물상도 있다.

이런 특이한 인물상이 바로 지구를 방문한 우주인상이라는 견해에는 다음과 같은 몇가지를 근거로 하고 있다.

암벽에 그려진 인물상의 대부분은 인류의 상이지만 헬멧을 쓰고 우주복을 입고있는 색다른 인물상은 현대인이 상상하고 있는 우주인 바로 그것과 같다. 그런 그림을 그린 고대인들은 사냥꾼이나 동물들을 자세한 부분까지 관찰하여 그렸으며 상상으로 그린것이 아니다. 우주인 그림도 그들이 실제로 목격하고 뛰어난 관찰력과 표현력으로 본 그대로 그렸을 것이다. 그들은 하늘에서 내려온 우주인을 신이라고 믿고 암벽에 기록했을 것이다. 우주인은 고대인들 앞에 실제로 나타났음에 틀림없다. 지금 남아있는 우주인 그림이 바로 우주인이 지구를 방문한 증거인 것이다.
 

미국 애리조나주의 나바호족 암벽화.기하학적 모양을 그린 것은 태양숭배를 나타낸 것.(위) 스페인인들이 북미대륙에 처음 상륙했을때의 광경을 그린 나바호족의 암벽화.스페인선교사일행의 행렬과 말의 모양이 나바호족에게 준 충격의 강도가 나타나 있다.(가운데) 스웨덴의 리츠레비 암벽화.북유럽의 전설의 영웅 튜르를 새긴 것이다.(아래)
 

오스트레일리아 사막의 우주인 그림

오스트레일리아의 황량한 북서부에는 현재 사람이 별로 살지 않는다. 이 반사막상태의 광대한 지역에 있는 ‘킴벌리’산맥에도 암벽화가 있다.

이곳 원주민들에게는 먼 옛날에 하늘에서 내려와 자신의 모습을 바위에 그려놓고 다시 하늘로 올라간 이상한 인간에 대한 전설이 있다. 원주민들은 그들의 조상이 처음 이곳에서 살기 시작했던 무렵에 그려졌다는 이 진기한 인물상을 지금도 신성시하고 있다.

그 인물상은 낙낙한 옷을 입고 있으며 입이 없고 머리에 천사의 후광같은 것이 있다. 원주민들은 이 인물상을 ‘완지나’라고 한다. 이 완지나도 우주인을 그린 것이라는 견해가 있다. 낙낙하게 보이는 옷은 우주복이며 입이 없는 것은 헬멧을 썼기 때문이고 후광처럼 그려진 것은 헬멧의 금속부분에 태양광선이 반사되었기 때문이거나 헬멧 자체가 그렇게 보였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선사시대에 하늘에서 내려와 킴벌리를 방문한 인물은 헬멧을 쓰고 강한 태양광선을 막기위한 고글같은 것을 쓰고 크고 낙낙한 우주복을 입고 원주민들 앞에 나타났을것이라고 생각하는 것이다.

이 완지나와 같은 그림이 오스트레일리아의 중앙부에 있는 거대한 바위산 ‘에어즈 로크’(둘레 9km 높이 3백60m. 세계최대의 한덩이의 바위) 부근에도 있다. 에어즈로크는 중앙부사막속 ‘우르르’국립공원의 광대한 대평원 한가운데 우뚝 서있어 별명을‘오스트레일리아의 배꼽’이라고 한다. 지구를 방문한 우주인들은 이것을 표지삼아 부근에 착륙하여 원주민에게 모습을 보였다는 것이다.

선사시대 사람들이 지구를 방문한 우주인을 암벽에 그린것이라는 기이한 인간상은 아프리카와 오스트레일리아 이외에 이탈리아 소련 남미 등지에서도 볼 수 있다. 그중에서 최근에 발견된 것이 북미대륙의 것이다.

아메리칸 인디언의 조상들은 2만8천년 전부터 1만2천년전 사이에 아시아 대륙에서 베링해협을 건너 아메리카 대륙으로 갔다고 알려져 있다. 그 아메리칸 인디언 중에는 자신들이 먼 옛날 다른 행성에서 지구에 온 외계인의 자손이라는 전설이 전해지고 있는 종족이 있다. 실제로 그들의 의식에 쓰이는 의상은 우주복과 비슷한 것이 많다.

북미대륙의 암벽화는 다른 지역의 암벽화와 조금 다른 점이 있다. 예를들면 그림속에 별이 그려져있고 그 방향도 표시되어 있다. 또 수천년전에 북미대륙 상공에 나타났던 혜성도 그려져 있어 천체에 대단히 관심이 많았음을 나타내고 있다.

이렇게 우주인이나 우주선을 그렸다는 암벽화는 지역에 따라 조금씩 다르다. 그러나 안테나가 달린 헬멧을 쓰고 있는것 등 기본적인 것은 크게 다르지 않다. 우주선 모선에서 지구에 내려오기 위한 소형착륙선이나 공중이동용 소형선으로 보이는 그림도 가끔 있다.

신앙의 대상을 형상화한것이라는 해석도

고고학을 연구하는 학자들은 탓시리의 흰거인과 여러가지 우주인 비슷하게 그린 기이한 인물상이 수수께끼 같은 그림이기는 하지만 우주인을 그린것은 아니라고 보고있다.

그것이 태고에 지구를 방문했던 우주인을 그린것이라고 단정하기에는 과학적증거가 너무 빈약하다는 것이다.

그래서 좀더 과학적으로 살펴보며 여러가지를 고고학적으로 해석한 결과 당시 사람들의 상상으로 가장 무섭고 위대한 것을 형상화한 것인데 고대인의 묘사력이 유치하고 졸열했기 때문에 현대인이 상상하는 우주인(또는 외계인)처럼 그려진 것이라고 보고있다.

달리 말하면 사람들이 무서워하는 형상으로서 그 민족이 최대한 지혜를 짜낸결과 그런 모양이 되었다는 것이다.

현대인은 보이지 않는 것이나 마이크로적인 것에 감동하지만 고대인은 거대한 것이나 자신과는 전혀 다른 모양에 외경심을 품었으며 알수 없는 기이한 형상일수록 신비성이 생기게 된다는 원시신앙의 근원에 근거를 두고 있다.

그래서 이런 그림의 인물상은 주술사(呪術師)가 이용한 신적존재를 나타낸 것이라고 해석하고 있다.

우주물리학을 연구하는 학자들도 이와 거의 같은 견해다. 지리학의 여러가지 법칙으로 보아서나 우주공간 비행을 쉽게 할수 없다는 것을 생각하면 고대인이 남긴 이상한 인물상이 우주인을 그린 것이라는 것은 비약이 너무 심한 것이라고 지적한다. 그래서 그 그림은 고대인들이 자신의 모습을 상징적으로 그리거나 어떤 주술상의 목적으로 우상화한 것이라고 보고 있다.

고대인이 천문관측을 했다는 것과 우주인과 만났다는 것과는 차원이 다른 얘기다. 예를 들면 ‘스톤 헨지’에 살던 고대인들은 태양과 달의 운행을 관측했다는 흔적이 있고 계절의 변화와 1년의 추이도 측정했음을 알수 있다. 그것은 신석기시대인의 생존에 이런 관측이 중요했기 때문이라고 생각된다. 천문학이 문명의 기원과 함께 시작되었다는것은 고대인의 생활에 천문관측 지식이 필요했기 때문이다.

지구가 생성되고 인류의 지혜가 발달하여 오늘에 이르기까지 지구에 우주인이 온 일은 결코 없다고 보는것이 과학자들의 주장이다.

역사시대 이후 현재까지 수천년 동안 우주인이 지구에 왔다는 증거는 아무것도 없다. 그런데 역사시대 이전의 지구에는 우주인이 왔었다는 것은 오히려 이상한 일이기 때문이다.
 

란던 서쪽 애핑턴 근교의 백마상.이것도 지표의 풀과 흙을 긁어내고 석회암층에 새긴것.길이는 약1백10m
 

민족이동과 투쟁의 무대였던 유럽

유럽의 거대한 그림은 역사학적으로나 고고학적으로 설득력있게 해석되고 있다.

잉글랜드 남부의 ‘애핑턴’벌판에 새겨진 거대한 백마가 얼마나 오래된것인지, 누가 만든것인지는 아직 잘 모른다. 어떤 학자는 기원전 1천년 이전의 것이라고 주장했다. 또 어떤 선사시대연구자는 기원전 5백년~0년 기간의 것이라고 주장했다. 그 양식이 당시 유럽에 널리 퍼지고 있던 ‘켈트’문화의 후기 철기시대상과 많이 닮아 있음을 그 이유로 들고 있다.

고대 유럽은 다른 부족이나 부락을 습격했을때 사람의 목을 베는 의식을 행하여 공포의 대상이 되었던 켈트족등 여러민족의 투쟁과 이동의 무대였다. 이런 상황은 그뒤의 민족대이동이 끝날때까지 되풀이 되었다. 전투가 일상생활처럼 되어있던 시대에 공격을 받는쪽 사람들은 자신의 땅을 지키기 위해 여러가지 궁리를 짜내야만 했다. 무기와 전법이 한정되어있던 시대였으므로 원시신앙의 역할이 컸다. 그래서 근거지의 중심이나 경계에는 수호신의 상징을 뚜렷하게 새겼다. 백마나 그밖의 거대한 그림이 있는 부근에는 대개 당시의 성채로 보이는 흙이나 돌을 쌓아 올린 흔적이 있는 것은 근거지의 성채와 그 주변에 새겨진 거대한 그림의 의미가 어떤 것인지를 설명하여 준다.

백마 외에 또 하나 유명한 것이 거인상이다. 그중에서도 유명한 것이 영국해협에 가까운 ‘샌아바스’근교의 ‘자이언트 힐’들판에 새겨진 거인상이다. 오른손에 몽둥이를 들고 있는 이 거인상은 고대 잉글랜드인이 침략자를 위협하려고 새긴 상징이라고 해석 되고 있다.

이 거인상은 다른 의미로도 해석되고 있다. 선사시대 연구학자는 그것이 풍작을 기원하는 상징이며 거대한 남근의 자손의 번영을 기원하는 표현이라는 것이다.

그러나 거인의 위쪽 언덕에 백마가 있는곳과 마찬가지로 흙이나 돌로 쌓은 성채 흔적이 있고 이 두가지는 연관시켜 생각하는것이 자연스럽다고 볼때 역시 이것은 부족 수호신의 상징으로 해석하는 것이 타당하다는 것이다.

북부유럽민족의 뿌리를 말해주는 암벽화

스칸디나비아의 암벽화에 공통적으로 나타나 있는 것이 튜르신과 배(舟)다. 튜르신은 도끼와 창을 가지고 있고 몸통은 달구지 바퀴(또는 태양)을 나타내는 원으로 그려지고 머리는 숫양일 때도 있다.

힘이 센 튜르신이 스칸디나비아의 여러 곳에서 발견되고 있는 것은 역시 전투가 일상 생활이 되어있던 당시의 상황을 짐작케한다.

원래 북부유럽민족은 그 뿌리를 하나로 보고 있다. 켈트나 앵글로색슨이나 게르만인은 모두 그들의 이지역 원주민을 더듬어 올라가보면 분명치 않은 점이 약간 있긴 하지만 ‘인도─게르만어족’에 이르게 된다는 것이 통설이다. 그들은 카스피해 북부연안지역에 최초의 근거지를 두고 있었던 민족이라는 것도 언어학적으로 유력한 설이다.

난폭할때의 말씨로 보아서는 ‘유럽인은 모두 러시아인’이라는 견해도 있다. 그들이 말을 길들여 싸움과 동화를 되풀이하면서 북으로 이동하여 갔다고 하면 그 자취에 공통의 상징이 남는다는 것은 당연할 것이다.

인류의 역사속에 말이 등장한 것은 획기적 사건이었다. 그 힘과 속도가 거리를 좁히고 세계관까지 바꾸어 놓았다. 이쯤되면 말이 수호신의 상징이 됨직도 하다.

배도 마찬가지다. 부족을 지켜주는 수호신을 태우고 간다는 신앙의식과 감정외에 해상의 말로 생각했던 것 같다.

들판에 새긴 거대한 말이나 사람, 암벽화의 영웅이나 배는 승리와 평화를 기원하는 북부유럽인들의 상징이었던 것이다.

다른 부족의 땅을 탈취한 켈트족이나 게르만족이 때로는 그 힘을 과시하기 위해 새겨놓은 것일런지도 모른다. 만약 그렇다면 어쩐지 현대의 핵무기와 공통된 것 같은 느낌이 든다. ‘적’이나 ‘무기’의 개념은 인류발생때까지 거슬러 올라가는 것인지도 모른다.
 

인디언들의 일상생활을 다채롭게 나타낸 유타주 캐년랜즈의 암벽화.이곳이 인디언들이 모여 회의를 하거나 즐기며 놀던 장소였음을 나타내고 있다.
 

매머드 사냥꾼의 암벽화

아메리카 대륙에서 발견된 암벽화는 초기 아메리칸 인디언들의 생활을 기록한 것이 많다. 1927년 뉴멕시코주의 ‘폴섬’에서 약1만년전의 인류가 사용하던 돌로 만든 창끝이 거대한 들소뿔과 함께 발견되었다. 그로부터 5년뒤에는 ‘크로스비’에서 약 1만1천년 전의 창끝이 발견되었다. 그 창으로 매머드를 사냥했다는것도 고증으로 밝혀졌다. 그뒤 계속하여 북미대륙의 각지에서 구석기시대의 유물이 발견되었다. 캐나다의 ‘올드크로우’에서는 2만7천년전의 골기도 발견되었다.

동시베리아에서 토나카이(순록)를 잡아 생활하다가 알래스카로 건너가 차츰 남하했던 그들의 생활은 이런 유물과 여러곳에서 발견된 암벽화로 짐작할 수가 있다.

암벽화는 새를 비롯한 여러가지 동물과 그 것을 사냥하는 사람들의 모습을 그린것이 많다. 그중에는 인디언들이 속하는 크랑(氏族)의 상징도 있다. 베어크랑 이글크랑과 같은 것이다. 크랑이나 트라이브(部族)에 의해 여러가지 습관과 의식이 규정된 것을 나타낸 그림도 있고 현재로서는 추측할수 없는 이상한 종교적인 그림이나 마크도 많이 그려져 있다. 말을 탄 광경이 그려져 있는 그림은 새로운 것이라는 증거다. 홍적세의 북미에는 말이 있었기 때문에 인디언들은 이를 사냥했으나 사육한 흔적은 없다. 이 말은 7천~8천년전 무렵에 멸절하여 버렸다. 승마용의 말을 그들이 알게된 것은 스페인 사람들이 들어온 16세기 이후의 일이다. 그들은 백인과의 불행한 투쟁속에서 이것을 손에 넣었다. 넓은 이 대륙에서 말은 이동할 때 대단히 큰 힘을 발휘한다. 그래서 당시 백인군대에서 말을 뺏거나 훔쳐온 사람은 인디언중에서 영웅시되었다고 한다. 78페이지의 스페인선교사일행의 그림에는 그래서인지 그런 시대의 인디언들의 고뇌가 담겨져 있는 것 같이 느껴진다.

수렵과 동물만이 인디언들의 생활의 중심 이었던 것은 아니다. 예를들면 서부의 해안지대나 삼림지대에 거점을 둔 부족들은 상당히 일찍부터 음식물중의 상당 부분을 도토리류에 의존하였다. 그들은 그때문에 거의 정착생활에 가까운 채취생활을 하며 살았다. 그러다가 농경생활이 시작되고 수확물을 담을 광주리와 항아리를 만드는 기술도 발달시켰다.

아메리카에서 새로 만들어낸 작물에는 토마토나 호박 두류등 그뒤의 세계에 큰 공헌을 한것이 많다. 그중에서도 옥수수는 중요하다. 멕시코나 남미에서는 그 덕택으로 5천년전에 이미 상당한 인구의 식량을 지탱할수 있었다. 이 옥수수를 크랑의 심벌로 삼은 그룹도 있으며 바위그림에 이것을 그린것을 앞으로 연구하여가면 그 전파과정이 밝혀질지도 모른다.
 

부족의 이동을 나타낸 암벽화.화살표는 동쪽으로 이동했음을 나타내고 있다.(뉴멕시코).
 

여러가지 상징이나 기호 중에는 인디언 그룹의 이동이나 확산방향을 암시하고 있는 것도 많다. 예를 들면 80페이지 위의 그림이 그것이다. 오른쪽 선의 화살표시는 동쪽 방향을 나타내고 있는 것이라 한다. 그 옆의 인물은 칠면조 같은 새를 쫓고 있다. 이 그림의 연대는 5천~8천년전 쯤이라 한다. 그렇다면 이 땅에서 들소나 마스토돈이 멸절한 뒤쯤에 해당된다. 그들은 새나 다른 사냥감을 찾아 동쪽으로 이동했다는 의미인것 같다. 왼쪽의 또 한사람의 인물은 1천년전쯤에 새로 그린 것으로 보인다. 같은 크랑의 인디언이 동쪽에서 되돌아왔다는 뜻인것 같다.

이렇게 아메리카대륙의 암벽화는 그 시대 사람들의 일상생활과 풍습을 알수 있는 기록적인것이 많다.

1989년 08월 과학동아 정보

  • 이희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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