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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들이 닮은 이유

얼굴 비슷해도 유전자는 천지 차이

요즘 KBS의 심야 오락프로그램 ‘상상플러스’에서 ‘스타의 닮은 꼴 사진을 찾아라’라는 코너가 인기다. 시청자들이 연예인과 닮은 사진을 인터넷에 올리면 이 중 가장 닮은 사진을 투표로 결정한다.

최근에는 신정환 닮은 꼴 찾기가 프로그램의 재미를 더한다. ‘신정환씨, 알고 보니 여자?’ ‘충격! 신정환씨 몸짱이네~!’ 등 남녀노소를 불문하고 유독 신정환을 닮은 사진이 댓글(리플)에 많은 것. 얼마 전에는 팔짱을 낀 채 검정색 가죽점퍼를 입고 지하철 좌석에 앉아 있는 여자가 신정환의 닮은 꼴로 3연속 우승을 차지해 화제가 되기도 했다.
무엇이 이들을 닮아 보이게 하는 것일까?

뺨과 이마의 요철도 한 몫

한서대 얼굴연구소 조용진 교수는 “눈, 코, 입, 귀 등 얼굴을 이루는 기관이 유사하면 닮았다고 느낄 수 있다”고 말했다. 연예인 중 대표적인 경우가 개그맨 리마리오와 탤런트 이세창이다. 한때 이세창은 리마리오와 함께 개그프로에 출연해 ‘오~ 베이비~’를 연발하며 리마리오와 쌍둥이 같은 모습으로 웃음을 선사했다.

조 교수는 “뒤로 빗어 넘긴 헤어스타일이나 위로 살짝 올라간 눈썹과 눈, 뾰족한 코, 웃는 입 모양, 수염이 비슷해 닮아 보인다”며 “여기에 행동과 말투를 흉내내다보니 닮은 느낌이 배가 되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닮은 꼴을 좌우하는 가장 중요한 요소는 바로 눈이다. 대개 닮았다, 이쁘다 등 얼굴에 대한 느낌을 판단할 때 눈을 보는 경우가 많다. 연세대 심리학과 박수진 박사는 “코보다 눈이 영향을 많이 준다”며 “코는 움직이지 않고 고정돼 있는 반면 눈은 끊임없이 변하면서 얼굴 표정에 영향을 주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그렇다고 ‘조용한’ 기관들이 중요하지 않다는 뜻은 아니다. 조 교수는 “이마와 뺨도 상당한 영향을 미친다”고 지적했다. 조 교수는 “사람들이 인식하지 못하는 요소 중 하나가 얼굴의 요철”이라고 말했다.

실제로 그는 실험을 통해서 이런 사실을 확인했다. 주위에서 닮았다는 얘기를 자주 듣는 부부 몇 쌍을 골라 이들의 얼굴 사진을 찍은 뒤 설문을 통해 어떤 부부가 더 닮았는지 조사했다. 그리고 등고선 촬영술로 얼굴의 높낮이를 3차원 곡면으로 찍어 그 순위와 비교했다.

실험 결과 닮은 순위가 높은 부부일수록 얼굴의 등고선 형태가 더 유사했다. 조 교수는 “얼굴의 세부 기관이 별로 닮지 않았는데도 높은 순위를 차지한 부부는 등고선이 아주 닮았다”고 말했다. 명나라 제 11대 황제 가정제(嘉靖帝)의 초상화가 개그맨 겸 MC인 강호동의 얼굴과 흡사한 것도 마찬가지 이유다. 조 교수는 “눈이나 얼굴형이 닮기도 했지만 이 경우에는 무엇보다도 뺨이 볼록한 것이 닮아 보이는 가장 큰 이유”라고 설명했다.

붕어빵? 유전적으로는 ‘뻥’

지난해부터 닮은 꼴 찾기는 ‘후손 논쟁’과 ‘환생 의혹’도 낳았다. 지금 활동하는 연예인과 역사 속 옛 인물이 닮은 사례가 계속해서 발견되고 있기 때문이다.
후손 논쟁의 시초는 그룹 신화의 멤버인 에릭과 조선시대 민영익. 민영익은 조선 말 명성황후의 친정 조카로 최연소 이조참의를 지낸 인물이다. 지난 11월 둘의 사진이 한 카페 게시판에 ‘조선시대의 에릭’이라는 제목으로 소개되면서 누리꾼(네티즌) 사이에서 ‘에릭이 혹시 명성황후의 후손이 아니냐’는 궁금증이 일었다.

탤런트 소지섭 역시 퇴계 이황의 후손이 아니냐는 장난 섞인 의심을 받았다. 한 누리꾼이 1000원권 지폐에 있는 이황의 초상화에서 눈과 코 부분을 오려 소지섭의 얼굴에 붙인 사진을 인터넷 유머 사이트에 올린 것이 계기가 됐다. 특별한 그래픽처리를 하지 않았는데도 두 사진은 마치 한 사람의 얼굴을 보는 듯해 누리꾼들로부터 ‘진짜 소지섭인 줄 알았다’며 뜨거운 호응을 얻었다.

조 교수는 두 경우 모두 닮은 요인으로 눈을 꼽았다. 에릭과 민영익의 경우에는 눈과 눈 사이가 넓다는 점이 비슷하다. 소지섭과 이황은 눈동자에서부터 눈꼬리까지 거리가 길다는 점이 닮았다.
 

눈은 닮은 꼴을 결정하는 중요한 부위다. 소지섭의 얼굴에 퇴계 이황의 눈과 코를 붙였지만 여전히 소지섭 같다.


그렇다면 생물학적으로 닮은 사람이 존재할 확률은 얼마나 될까? 현생인류가 20만년 전에 출현했다면 그 긴 세월동안 나와 닮은 사람이 한 명 쯤은 존재할 수 있지 않을까?

충북대 고고미술사학과 박선주 교수는 “유전자가 비슷한 사람이 나타날 확률은 거의 없다”고 잘라 말했다. 부모로부터 물려받는 유전자는 그 조합이 셀 수 없을 만큼 많다. 그런데 우리는 아직 어떤 유전자가 어떤 모습을 만드는데 관여하는지조차 모른다.

박 교수는 “사람을 가장 많이 닮았다고 하는 침팬지는 인간의 유전자와 1.6%밖에 차이나지 않지만 겉모습이 얼마나 다른가”라고 반문하며 “자기 몸에서도 왼손과 오른손이 같아 보이지만 손가락 길이가 서로 다를 수 있다”고 덧붙였다.

외관상 닮아 보이지만 생물학적 의미로는 엄밀히 말해 닮지 않았다는 것. 100% 유전자가 동일한 일란성 쌍둥이도 눈 색깔이 같을 확률은 99.5%다. 그래도 부모와 자식은 대개 붕어빵이라고 하지 않는가. 하지만 이 역시 착시효과일 뿐이라는 주장이 있다. 이탈리아 파도바대 심리학과 파올라 브레산 교수는 부모와 자식이 닮았다고 생각하는 것은 실제로 닮은 것이 아니라 부모와 자식간이니 만큼 유전적으로 강한 연관이 있을 것이라는 판단에서 나온 것이라는 연구 결과를 ‘심리과학’(Psychological Science) 2002년 3월호에 발표했다.

두 얼굴이 닮게 보이는데 가장 결정적인 영향을 미치는 것은 두 사람의 실제 유전관계와 상관없이 보는 사람이 부모와 자식간이라고 믿느냐 아니냐에 좌우된다는 것이다.
 

닮은 꼴의 절대강자 일란성 쌍둥이. 겉모습 뿐 아니라 유전자도 100% 똑같다.


유형화시키면 정보처리 쉬워

닮은 꼴에 관심을 갖는 이유는 뭘까? 박수진 박사는 “모든 사람은 얼굴 전문가”라고 말한다. 사람마다 편차는 존재하지만 뇌에는 얼굴 정보를 처리하는 영역이 있어 자신도 의식하지 못하는 사이에 상대방의 얼굴에 대해 이런저런 판단을 내린다는 것. 측두엽이 이를 관장하며 상대방의 얼굴 생김새와 표정을 분류한다.

특히 이 사람이 저 사람과 닮았다고 판단을 내리는 것은 일면 뇌가 자기 편하자고 하는 것으로 해석할 수 있다. 박 박사는 “서로 닮았다고 인식하는 것은 바꿔 말하면 비슷한 유형별로 분류하는 행위”라며 “사람의 얼굴을 유형에 따라 나누면 뇌에서 정보처리가 쉽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연예인의 닮은 꼴 찾기 열풍은 대상이 연예인이기 때문에 관심을 더 끄는 것일 뿐 상대방이 누구든 우리는 무의식중에 상대방을 유형별로 묶어 닮았다, 닮지 않았다 판단할 수 있도록 준비돼 있는 셈이다. 실제로 뇌는 얼굴 뿐 아니라 말투, 행동까지도 유형별로 묶는다. 고정관념이나 편견이 생기는 것도 이런 이유다.

실제로 뇌가 얼굴을 인식하는 과정은 좀 더 복잡하다. 지난해 말 영국 런던대 피아 로트시타인 박사팀은 마거릿 대처 전 영국 총리와 미국 배우 메릴린 먼로를 합성한 사진을 보여주면서 기능성 자기공명영상(fMRI)으로 뇌를 찍어 이 과정을 밝혀냈다.

얼굴을 보는 순간 제일 먼저 시각정보를 처리하는 뇌 뒤쪽 영역이 활발히 활동한다. 이 때 주름살 같은 부분적인 물리적 특징이 포착된다. 이어서 귀 바로 뒤쪽의 오른쪽방추이랑(RGF)에서 얼굴을 전체적으로 평가한 뒤 저장돼 있는 자료와 비교한다. 이 과정에서 아는 얼굴인지, 처음 보는 얼굴인지, 닮았는지 파악한다. 마지막으로 뇌 전방이 활성화되면서 이름, 직업 등의 신상정보를 얼굴과 연결시킨다.

뇌의 이런 과정은 얼굴인식기술에도 응용된다. 현재 얼굴인식에 사용되는 방법은 크게 두 가지. 눈 사이의 거리, 눈썹 사이의 거리, 입 크기, 눈과 코가 이루는 각도 등 얼굴의 세부 특징 간의 관계로 인식할 수 있다. 또 대표 얼굴을 여러 개 만들어 놓고 이와 관련도가 얼마나 되는지 구해 얼굴 전체 이미지를 인식하는 방법이 있다. 연세대 전기전자공학부 이상윤 교수는 “두 가지 방법을 함께 사용할 경우 서로 보완되는 면이 있어 인식능력이 좋아진다”고 말했다.

생체인식기술 중 정확도가 가장 높은 것은 홍채다. 홍채인식은 거의 99% 정확하다. 지문인식은 95%가량 된다. 이에 비해 얼굴인식은 90% 정도다. 예를 들어 일란성 쌍둥이도 홍채와 지문은 서로 다르기 때문에 인식이 쉽지만 얼굴인식으로는 구별하기 어렵다. 이 교수는 “열적외선 센서를 함께 사용하면 구분하기가 더 쉽다”고 밝혔다.
 

최근에는 뇌가 얼굴을 인식하는 과정을 응용한 얼굴인식기술도 활발히 개발 중이다. 한 기업이 무역박람회 부스에서 얼굴인식기술을 홍보 중이다.


유유상종 이유있다

외모만 보면 유유상종(類類相從)은 매우 과학적인 사자성어다. 자신과 닮은 이성에게 더 매력을 느끼고, 자신과 닮은 사람을 더 신뢰하며, 주인은 자신과 닮은 애완동물을 선택한다는 연구결과가 있다.

초상화와 초상화를 그린 화가의 얼굴이 닮은 경우도 많다. 1518년 뒤러가 그린 막시밀리안 1세의 초상화는 1498년 그가 그린 자화상과 흡사하다. 아라곤의 공작부인 이사벨라의 초상화인 모나리자는 레오나르도 자신의 얼굴을 닮아 보인다. 지금 일고 있는 닮은 꼴 열풍이 나도 혹시 유명한 연예인을 닮지는 않았을까 하는 공주병, 왕자병의 다른 ‘얼굴’은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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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5년 08월 과학동아 정보

  • 이현경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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