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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art 1. 한의학은 과학이다

작용 메커니즘 모른다고 비과학 매도 안 돼


“한의학은 증상만 치료하는 서양 의학과 달리 병의 근본 원인을 찾아내 치료한다.

개인의 체질에 따른 처방과 신체의 조화를 중시하는 자연과학적 방법이다.”



“한의학은 자신들이 주장하는 치료 효과를 과학적으로 검증하라는 요구 자체가 서양 의학적 사고라며 검증을 회피한다.



이는 윤리적·사회적으로 무책임한 행위다.”


어느 쪽이 진실일까. 한의학을 둘러싼 논쟁은 과학은 물론 역사와 문화 분야까지 끌어들이며 오래 전부터 계속돼 왔다.

최근에는 한의학의 원리를 과학적으로 입증하려는 시도도 늘어나고 있다. 그러나 현대 의학은 한의학을 과학적으로 검증하면 효과가 없을 뿐만 아니라 국민건강도 해친다고 주장한다. 한의학은 조상의 지혜가 담긴 유용한 의술일까, 아니면 과학적이지 못한 구시대의 유물일 뿐일까.

 

 



“흥미로운 결과네요. 하지만 이것만으로는 침술의 효과를 다 설명할 순 없지요.”

한국한의학연구원 침구경락연구센터 최선미 박사(한의사)는 침의 진통 메커니즘을 밝힌 최근 연구 결과에 그다지 놀라지 않는 눈치였다. 신경과학분야의 최고 저널인 ‘네이처 뉴로사이언스’ 7월호에 침술에 관한 논문이 실린 걸 보고 깜짝 놀란 기자로서는 다소 김이 샜다.

침의 효과를 ‘위약효과(placebo effect)’, 즉 환자가 효과가 있다고 착각하는 현상으로 보는 시각이 주류인 서구에서 이런 권위 있는 저널이 침의 메커니즘을 다룬 논문을 싣는 건 흔치 않은 일이다. 하지만 오랫동안 다양한 질환을 치료하는데 침을 이용해온 최 박사에게 이번 결과는 우리가 아직 모르고 있는 메커니즘의 하나가 밝혀진 것 일 뿐이다.



침은 위약효과일 뿐?


 

“침의 진통 작용 메커니즘만 하더라도 이미 두 가지 경로가 밝혀져 있습니다. 그 가운데 하나는 2008년 저희가 발표했고요.”

첫 번째는 침의 자극이 인체가 만드는 마약성 펩티드, 즉 엔도르핀류의 분비를 촉진해 진통효과를 낸다는 메커니즘으로 1976년 캐나다의 연구진이 밝혀냈다. 한의학연구원에서 발견한 메커니즘은 침이 노르아드레날린성 뉴런을 자극해 노르에피네프린이라는 신경전달물질을 방출하게 한다는 것. 노르에피네프린은 통증 정보를 억제한다.

이번 ‘네이처 뉴로사이언스’에 발표된 새로운 메커니즘은 아데노신이라는 신호분자가 관여한다. 즉 침의 자극을 받은 세포의 표면에서 아데노신이 만들어지면 A1R이라는 수용체가 이를 감지해 진통효과를 인다는 것. 흥미롭게도 A1R은 카페인에도 반응한다. 따라서 A1R이 이미 카페인과 합돼 있다면 아데노신이 만들어져도 붙을 자리가 없기 때문에 진통신호를 전달하지 못할 것이다.

예상대로 카페인을 투여한 동물에 침을 을 경우 진통효과가 나오지 않았다. 이를 사람에 적용하면 침을 맞을 때는 커피를 피해야 한다는 말이다. 최 박사는 “한의학에서는 대체로 치료 중에는 술이나 커피 같은 극성 있는 음식은 피하라고 한다”며 “카페인 관련 결과는 이런 식이지도와도 맥이 통하는 내용”이라고 말했다.

 


[침의 진통 메커니즘]

 

침은 다양한 경로를 통해 작용하는 것으로 보인다. ‘네이처 뉴로사이언스’ 7월호에는 침의 진통효과를 설명하는 새로운 메커니즘이 실렸다.

➊ 침의 자극을 받은 조직의 세포는 ATP를 세포 밖으로 내보낸다.

➋ ATP는 PAP를 비롯한 여러 효소의 작용으로 아데노신으로 바뀐다.

➌ 아데노신은 통각수용뉴런의 수용체(A1R)에 달라붙어 만성통증을 억제하는 신호를 보낸다. 아데노신은 세포막 통로단백질을 통해 세포 안으로 재흡수된다.

 



침구경락연구센터에서는 최근 안구건조증이나 안면홍조처럼 마땅한 치료법이 없는 증상에 침술을 적용하는 연구를 진행하고 있다. 최 박사는 “현재 안구건조증은 안약(인공 눈물)을 넣어 증상을 완화하는 게 고작인데 침을 쓰면 건조증 자체가 많이 복된다”고 말했다. 폐경기 여성들의 고민거리인 안면홍조 역시 침을 4주 정도 맞으면 뚜렷이 개선된다고. 최 박사는 “전국의 한의원에서 시행되는 침술을 조사해보니 다양한 분야에서 효과를 보고 있었다”며 앞으로도 침술의 활용 범위를 계속 넓혀나갈것”이라고 덧붙였다.

한편 침을 놓는 자리, 즉 경혈은 과연 실체가 있는 것일까. 한의학 이론에 따르면 우리 몸 전체에는 기(氣)와 혈(血)이 흐르는 통로인 경락(經絡)이 퍼져 있고 그 가운데 기와 혈이 고여 있는 자리를 경혈(經穴)이라고 부른다. 아직 경락이나 경혈의 실체가 밝혀지지는 않았지만 이런 자리를 옛날 한의사들이 제멋대로 만든 건 아님을 시사하는 연구 결과가 많이 나와 있다. 즉 거의 모든 경혈자리는 감각 신경뉴런이 풍부하게 분포돼 있고 동물에서도 사람의 경혈 자리에 해당하는 부분에 침을 놓아야 효과가 더 높다.

침구경락연구센터 류연희 박사는 “보통 경혈자리는 전기전도도가 낮은 것 같은 물리적 특성이 있지만 문제는 361곳 경혈이 다 그렇지 않다는 것”이라며 “현재 경혈의 실체를 규명할 수 있는 새로운 방법을 설계하고 있다”고 말했다.

 

 
한편 봉독, 즉 벌침의 독을 이용한 치료도 활발하다. 봉독을 이용한 치료는 동아시아뿐 아니라 이집트 등 여러 지역에서 수천년 전부터 행해져왔다. 배현수 경희대 한의대 교수는 “관절염을 앓던 사람이 벌에 쏘인 뒤 통증이 사라졌다는 식의 일화가 알려지면서 봉독요법이 시작됐을 것”이라며 “최근에는 알레르기 질환이나 류마티스관절염, 다발성경화증 같은 자가면역질환에도 효과가 있어 치료에 이용한다”고 말했다. 요즘 봉독요법은 벌을 잡아다 피부에 쏘게 하는 옛날 방식이 아니라 벌침에서 모은 봉독을 주사제로 만들어 사용한다. 배 교수팀은 자생한방병원과 공동으로 봉독의 작용 메커니즘을 연구하고 있는데 최근에는 DNA칩을 이용해 봉독이 염증유발에 관여하는 여러 유전자의 발현을 억제한다는 사실을 밝혀내기도 했다.

배 교수는 “봉독의 경우 자체가 항염증 작용을 하는 게 아니라 인체의 면역세포의 활동을 조절해 작용하는 것으로 보인다”며 “위장 장애나 간 손상 같은 부작용이 있는 기존 소염진통제와는 달리 별다른 부작용 이 없는 것도 큰 장점”이라고 덧붙였다.
 



한약은 독이다?

 



[지난해 한의학연구원은 자주 복용하는 25가지 한약처방에 대한 중금속, 농약 검사를 실시해 안전하다는 결과를 발표했다. 최근에는 동물독성실험도 시작해 1차로 두 처방(오적산, 육미지황탕)이 안전하다는 결과를 얻었다.]


“약이 효과를 보려면 달이는 정성이 중요한게야….”

요즘은 한약이 ‘완제품 형태로’ 파우치에 담겨 나오지만 20~30년 전만 해도 집집마다 주전자처럼 생긴 시커먼 약탕기가 있었다. 어머니들은 한의원에서 받아온, 흰 종이에 싸인 약재를 약탕기에 넣고 깨끗한 물을 부어 얕은 불로 밤잠을 설쳐가며 약을 달이곤 했다.

그런데 어떤 사람들은 지금 한가하게 추억에 잠길 때가 아니라고 말한다. 간에 엄청난 부담을 주는 한약을 한두 번도 아니고 보름, 한 달씩 매일 먹는 건 치료가 아니라 ‘자해행위’라는 것. 과연 그럴까. 얼핏 생각해보면 일리가 있다. 진화의 관점에서 쓴맛은 독이 들어 있다는 경고의 표시이기 때문이다. 그런데 이런 일반론을 한약에 적용할 수 있을까. 그런 식이면 현대인들은 매일 서너 잔의 독배를 마시고 있다. 많은 사람들이 쓰디쓴 커피(설탕을 듬뿍 넣어 쓴맛을 가리기도 하지만)를 무척이나 좋아하기 때문이다. 그런데 커피를 먹고 간에 탈이 났다는 얘기는 들어보지 못했다 (카페인 자극으로 위가 나빠졌다는 사람은 있다).

“많은 한약재는 수천 년 동안 사용됐고 이 과정에서 임상적 증명이 된 셈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어마어마한 양을 먹는다면 모를까 통상적인 한약 복용량으로는 별 문제가 없다고 봅니다.”

천연물에서 약효물질을 찾는 연구를 하는 서울대 약대 이상국 교수의 말이다. 물론 한약재 가운데는 부자나 파두 같이 독성이 강한 것이 있지만 이 역시 오랜 세월에 걸쳐 대부분 밝혀졌기 때문에 한의사들이 주의해서 쓰고 있다는 것. 사실 약물의 부작용은 동서양 의학의 구분이 없다. 이 교수는 “원론적으로 모든 약이 독이 될 수 있다”며 “최근 비만치료제의 경우처럼 대규모 임상을 마치고 시장에 나온 신약이 수년뒤 예상치 못한 부작용으로 철수하는 사례가 드물지 않다”고 덧붙였다.

수년 전부터 한의학연구원에서는 각종 한약 처방의 안전성을 동물실험을 통해 입증하는 연구를 진행하고 있다. 먼저 우리나라 사람들이 가장 많이 복용하는 처방인 오적산(五積散), 육미지황탕(六味地黃湯)에 대해 안전성평가연구소에 평가를 의뢰했는데 모두 안전하다는 결과를 얻었다.

한의학연구원 하혜경 박사는 “쥐를 대상으로 정상 복용량의 10배를 매일 13주 동안 복용시킨 결과”라며 “약재에 포함된 중금속이나 농약 성분도 기준 미달이지만 그나마 대부분 약을 짜고 남은 찌꺼기에 들어있기 때문에 실제 한약에서는 검출되지 않는 경우도 있다”고 말했다.

이처럼 의약품의 유효성과 안전성을 현대과학의 방법론에 따라 밝히는 작업을 ‘근거중심의학(Evidence-Based Medicine,EBM)’이라고 부른다. 대한한의사협회 송호철 홍보이사(자생한방병원 수원분원 원장)는 “한의학에 쓰이는 표준 치료법과 처방에 대한 EBM 연구 결과가 내년쯤 책으로 나올 예정”이라며 “학계와 병원을 중심으로 한의학을 과학적으로 입증하려는 노력이 꾸준히 진행되고 있다”고 말했다.

한편 한약은 약재가 대여섯 가지에서 심지어는 10여 가지나 들어가기도 한다. 예를 들어 몸이 습기에 손상돼 냉할 때(위경련,신경통 등 다양한 증상으로 나타난다) 쓰는 처방인 오적산의 경우 주(主)약재인 창출 외에도 마황, 진피, 후박, 길경 등 10가지가 넘는 약재가 들어간다. 서양의학 관점에서 보면 주먹구구식으로 보일 만도 하다.


 

한의학 이론은 이에 대해 “한약의 작용은 그 속에 들어 있는 어느 한 성분에 의해서가 아니라 여러 가지 일반 성분과 특수 성분들의 종합적인 작용에 의해서 나타난다”고 설명한다. 한의학연구원 한의융합연구본부 김진숙 박사팀이 연구하고 있는 당뇨성 안과질환 치료제를 보자. 김 박사는 “당뇨병이 만연하면서 많은 사람들이 앓게 되는 망막증이나 백내장은 실명에 이를 수 있지만 마땅한 치료법이 없는게 현실”이라며 “문헌조사와 탐방을 통해 안과 질환에 쓰인 약재를 찾아 스크린한 결과 이런 병의 진전을 상당히 억제할 수 있는 처방을 찾았다”고 말했다. 김 박사팀이 찾은 약재는 초갈근(볶은 칡뿌리), 강후박, 감초, 그리고 독성이 있는 한 약재다(혹시라도 독자가 쓸 수 있다며 이름은 알려주지 않음).

쥐를 대상으로 실험해 보면 약재를 따로 썼을 때보다 4가지를 적절한 조합으로 썼을 때 약효가 가장 탁월했다. 김 박사는 “서양 의학은 약효가 있는 특정 성분을 추출해 약물로 쓰는 걸 선호하지만 꼭 그럴 필요는 없다”며 “국내 한 제약회사는 애엽(쑥) 추출물을‘천연물 신약’(위염치료제)으로 만들어 1000억 원 대의 연매출을 올리고 있다”고 덧붙였다. 기본적으로 의약품의 기준은 약효와 부작용에 있는 것이지 단일 성분을 썼건 식물(들)을 통째로 썼건 우열을 논할 수는 없는 게 아닐까.

 

 


 

 

사상의학은 한국판 맞춤의학



 

2000년 인간게놈초안이 공개된 이후 염기 서열분석방법이 눈부시게 발전하면서 개인 게놈시대의 막이 오르고 있다. 이미 수천 명의 게놈이 분석됐고 머지않아 사람들은 자신의 게놈정보를 갖고 개인별 맞춤치료를 하는 시대가 오리라는 장밋빛 전망도 있다. “사실 한의학은 오래전부터 맞춤치료를 해왔습니다. 체질별로 처방을 달리했으니까요. 그 가운데서도 사상의학이 가장 두드러집니다.” 

한의학연구원 체질의학연구본부 김종열 박사(한의사)는 사상의학에 따른 분류법을 체계화하는 작업을 수년째 진행하고 있다.

사상의학에서는 체형이나 행동, 성격에 따라 사람을 네 부류, 즉 태음인, 소양인, 소음인, 태양인으로 나눠 체질에 맞는 치료를 행한다. 그 결과 일반적인 처방보다 훨씬 효과가 좋은 경우가 많지만 때로는 체질을 잘못판단해 오히려 부작용이 나타나기도 한다.

김 박사는 “현재 얼굴 형태와 음성, 체형 등 신체특성과 설문을 통해 체질을 판별할 수 있는 소프트웨어를 거의 완성했다”며 “내년 1월에 베타버전이 나오면 한의사들에게 공개할 것”이라고 말했다. 이 방법으로 체질을 맞출 확률은 80% 정도다. 그렇다면 SNP 패턴이 사상의학의 분류와 일치하는 유전자, 즉 ‘사상의학 유전자’는 없을까.

“체질은 주로 태아가 발달할 때 형성되므로 이때 활성화되는 유전자를 탐색하고 있습니다. 그 결과 혹스(hox) 유전자 가운데 2개의 SNP 패턴이 체질과 관련이 있다는 단서를 찾았습니다.”

혹스 유전자는 동물의 몸통과 사지의 발달에 관여하는 유전자다. 체질의학연구본부에서는 이 밖에도 맥을 측정하는 맥진기, 혀의 상태를 측정하는 설진기 등 한방진단기기를 개발하고 있다. 김 박사는 “물론 한의학계 일부에서는 이런 식의 변화를 달갑지 않게 본다”며 “그렇지만 이제 한의학도 객관적인 데이터로 나타낼 수 있는 진단 시스템을 갖추는 쪽으로 가야한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최근 현대(서양)의학 쪽에서도 한의학의 체질론에 관심을 보이고 있다. 차의과학대는 사상의학을 음양에 따라 좀 더 세분화한 팔상체질론을 바탕으로 맞춤의학의 가능성을 탐색하고 있다. 차의과학대 암연구소 김성진 소장은 “자신의 ‘네이처(본성)’를 이해해야 몸에 맞는 음식이나 약물을 취해 건강해질 수 있다”며 “한의학의 체질과 현대과학의 개인게놈은 서로 만날 것으로 본다”고 말했다.

미국 국립보건원(NIH)에서 20여 년간 근무한 경험이 있는 김 소장은 “미국이나 유럽은 각국의 전통의학이 효과가 있다고 판단하면 적극 도입하고 있다”며 “우리나라는 집단이기주의로 밥그릇싸움을 하느라 이런 시너지 효과를 못 내는 것 같아 안타깝다”고 덧붙였다. 한의학과 현대의학이 대립각만 세운다면 체질이라는 기발한 ‘아이디어’만 외국에 내주는 꼴이 될 거라는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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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년 12월 과학동아 정보

  • 강석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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