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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10월 11일부터 16일까지 대전 컨벤션센터에서는 핵융합 기술의 최신 연구 성과를 점검해 볼 수 있는 제23회 국제원자력기구(IAEA) 핵융합에너지 컨퍼런스가 열렸다. 핵융합에너지 컨퍼런스는 핵융합 연구자와 국제기구 담당자가 2년마다 모여 연구 성과를 공유하는 행사로 핵융합 올림픽으로 불린다. 국내 개최는 처음이다. 올해는 39개 나라에서 온 전문가 1500명이 참석해 핵융합 기술의 한계와 가능성에 대해 열띤 논의를 벌였다.



11일 오전 9시, 한적한 갑천변에 있는 대전컨벤션센터가 분주해졌다. 핵융합 컨퍼런스 개막식에 참석하기위해 김황식 국무총리와 이주호 교육과학기술부 장관, 염홍철 대전시장, 정근모 전 과학기술처 장관이 속속 도착했기 때문이다. 컨벤션센터 2층에는 보안 검색대까지 설치됐고, 근접촬영 비표를 발급받지 못한 기자들은 취재도 제한됐다.



아무리 국제적인 행사라지만, 학술대회 성격이 강한 회의에 한 나라의 국무총리와 전, 현직 장관이 참석하는 일은 드물다. 하지만 그 궁금증은 금세 풀렸다. 핵융합 연구는 워낙 막대한 돈이 들기 때문에 정부의 전폭인 지지 없이는 성과를 내기 힘들다. 따라서 핵융합 연구를 강도 높게 추진하고자 하는 나라는 핵융합 컨퍼런스를 개최하면서 정부의 ‘의지’를 보여 주기 위해 노력한다. 개막식에 그 나라의 최고위급 인사가 참석하는 것도 그런 노력의 하나다.



개막식이 끝나자 곧바로 본행사가 이어졌다. ‘핵융합 올림픽’이라는 별칭에서 알 수 있듯이, 본행사에서는 핵융합과 관련된 모든 기술 분야의 연구 성과와 최신 동향이 두루 소개됐다. 6일 동안 모두 596편의 논문이 발표됐다. 내용에 따라 세계 각국의 실험용 핵융합시설의 운영 성과를 공개하는 오버뷰(개요) 섹션과 세부적인 기술에 대해 발표하는 기술 섹션으로 나뉘어졌다.



이 중 오버뷰 섹션에서는 한국 국가핵융합연구소의 차세대 초전도 핵융합 연구장치 ‘KSTAR’와 중국의‘EAST’, 일본의 ‘JT-60U’ 등 각국이 자랑하는 대규모 실험로의 최신 연구 결과가 소개됐다. 또 2007년 프랑스 카다라쉬에서 착공한 국제핵융합실험로(ITER)의 건설 현황도 소개됐다. 기술 섹션에서는 현재 실용화 가능성이 가장 높은 핵융합 방식인 ‘토카막’ 핵융합 기술과 초전도 자석 운용 기술, 플랜트 설계 기술, 그리고 최신 핵융합 이론에 대한 논문이 발표됐다.











KSTAR, 핵융합의 새로운 희망을 보다



가장 큰 화제를 불러일으킨 것은 단연 한국의 KSTAR였다. 초전도 자석을 이용한 핵융합로에서는 처음으로 중성자를 검출하는 데에 성공했기 때문이다. 이 연구 내용은 개막일인 11일 오전, 이번 컨퍼런스에서 공개되는 596편의 논문 가운데 첫 번째로 발표됐다.



핵융합 연구에서 중성자 검출은 중요한 전기로 평가된다. 핵융합 반응이 일어났다는 가장 확실한 ‘물증’이기 때문이다. 그 동안 KSTAR에서 이루어진 실험은 가속된 중수소가 플라스마 상태로 변하는지를 확인하는 데 초점이 맞춰져 있었다. 플라스마는 원자의 핵과 전자가 서로 분리된 상태로, 중수소는 플라스마 상태가 돼야만 핵과 핵이 충돌해 핵융합을 할 수 있다. 이 때 플라스마의 온도를 높이면 핵 사이의 반발력이 줄어들면서핵융합이 일어날 확률이 더 높아진다. 그래서 KSTAR 내부에 높은 온도의 플라스마가 발생했다면 그 안에서순간적이나마 핵융합이 일어났을 가능성이 있다고 추정할 수 있다. 하지만 고온의 플라스마는 어디까지나 핵융합의 필요조건일 뿐, 확실한 증거는 아니었다.



반면 중성자는 핵융합의 결과 발생하는 생산물이다. 핵융합이 일어났다는 직접적인 증거인 셈이다. 물론 핵융합로에서 핵융합 외의 원인으로 중성자가 발생할 가능성도 있다. 하지만 핵융합을 통해 만들어진 중성자에는 고유한 특성이 있어 핵융합의 결과물인지 쉽게 구분할 수 있다. 바로 발생하는 에너지의 크기다.



현재 KSTAR를 비롯해 세계 각국의 연구로에서 진행하고 있는 핵융합 실험은 모두 중수소를 이용하고 있다. 중수소 두 개가 핵융합 반응을 일으키면 2.45MeV(메가 전자볼트. 10만 개의 전자가 1볼트의 전위를 거슬러 올라갈 때 드는 에너지의 단위)의 에너지를 갖는 중수소를 발생시킨다. 따라서 중성자의 에너지 크기가2.45MeV라는 사실을 측정할 수만 있다면 핵융합이 일어났다는 직접적인 증거로 인정받을 수 있다.



국가핵융합연구소 연구진은 지난 7월부터 실시된 3차 실험에서 바로 이런 중성자의 존재를 확인하고, 그 에너지 크기가 정확히 2.45MeV라는 사실을 확인했다. 즉, KSTAR의 플라스마 안에서 중수소 사이의 핵융합 상이 일어나고 있다는 사실을 증명한 것이다. 특히 이 실험 결과는 초전도 자석을 이용한 토카막 핵융합로에는 최초로 얻어 낸 결과라는 점에서 의의가 크다. 그 동안 상전도 자석을 이용한 다른 연구에서 핵융합이 성공한 적은 있었지만, 초전도 자석을 이용한 실험에서는 성공한 적이 없었다. KSTA보다 2년 먼저 플라스마 검출에 성공했던 중국의 실험용 핵융합로 EAST도 아직 중성자를 확인하는 단계로까지는 나아가지 못했다. 초전도 자석을 쓴 토카막 핵융합로는 한국과 EU, 미국, 일본 등 7개 핵융합 선진국들이 공동으로 개발하고 있는 국제핵융합실험로에 채택된 방식이기 때문에 국제 사회의 관심이 대단히 높다.



하지만 이번 실험 결과를 두고 국가핵융합연구소는 담담해 하는 눈치다. 이번 컨퍼런스에서 3차 실험 결과를 발표한 권면 국가핵융합연구소 선임단장은 “이미 상전도 자석을 이용한 융합로에서 여러 번 확인된 사실을 초전도 자석을 통해서도 구현했을 뿐, 큰 의미는 두지 않는다”며 “그보다는 KSTAR를 안정적으로 운영하기 위해 필요한 연구 단계를 차근차근 성공적으로 달성해 가고 있다는 데에 주목해 달라”고 강조했다.











실제로 3차 실험에서는 중성자를 검출하고 에너지를 측정하는 연구 외에, 플라스마의 전류를 높이고 지속시간을 길게 유지하는 연구 등 다른 중요한 성과가 많았다. 특히 플라스마의 전류는 핵융합의 필수 조건인 초고온 상태를 얻기 위해 중요하다. 전류가 높아지면 플라스마의 에너지 역시 높아지고, 에너지가 높아지면 온도가 상승하기 때문이다.



핵융합에 필요한 최소한의 온도는 1억℃다. 올해 KSTAR는 500kA의 플라스마 전류를 발생시켜 토카막 안의 온도를 5000만℃(전자온도 기준)까지 높이는 데 성공했다. 작년 2차 실험에서는 300kA의 전류를 발생시킨 데에 비하면 큰 진전이다. 플라스마가 사라지지 않고 남아 있는 시간도 작년의 3.6초에서 올해 약 6초로 두 배 가까이 늘었다. 국가핵융합연구소 이경수 소장은 “내년에는 내부 온도를 1억℃까지 높이는 것이 목표”라고 말했다.



또 새로운 중성입자빔가열장치를 자체 제작해 거둔 성공이라는 점도 특이하다. 중성입자빔가열장치는 기체 상태의 중수소를 빠르게 가속해 토카막 안에 투입하기 위한 장치다. 이번 3차 실험을 위해 1년이라는 짧은 시간 동안 개발했다. 권 박사는 “중국의 EAST도 2013년에야 개발할 수 있을 것”이라고 설명했다.



ITER 참가국으로서 높아진 위상



이번 컨퍼런스에서는 국제핵융합실험로 프로젝트 사무국과 국제원자력기구가 한국에 비상한 관심을 갖고 있다는 사실이 확연하게 드러났다. 모토지마 오사무 ITER 사무총장은 컨퍼런스가 개막하기도 전인 10일터 대회 막판까지 식전행사, 개막식, 컨퍼런스 발표, 기자회견, 국가핵융합연구소 특강에 빠짐없이 참석했다. 그는 한국의 전문가와 기자들을 만난 자리에서 ITER 사업을 진행하는 데 한국의 역할이 크다고 역설했다. 특히 “ITER 기구 내 전체 직원의 7%인 26명이 한국인”이라며 한국이 개발비와 장치, 기술을 협조하는 것만 아니라, 기구 내의 의사 결정에도 활발히 참여하고 있다는 사실을 강조했다. 1988년부터 본격 궤도에 오른 ITER 사업에 한국은 2006년부터 참여하고 있으며, 전체 건설비의 9.09%에 해당하는 품목 10개를 제작하고 있다.







베르너 부카트 IAEA 사무차장 역시 한국이 핵융합 분야에서 큰 역할을 하고 있다고 평가했다. 그는 “한국은ITER 참여국 중 가장 작은 나라지만, 가장 약한 참여국이 아니다”며 “과학중심국가인 한국은 핵융합 기술 발전에 특히 유리하며, 이미 세계 핵융합 연구에서 큰 역할을 하고 있다”고 평가했다.



TER와 IAEA와 같은 국제기구에서 이렇게 한국의 역할을 강조하는 데에는 두 가지 이유가 있다. 먼저 한국의 핵융합실험로 KSTAR의 기술이 ITER에 적용된 기술과 같기 때문이다. 초전도 자석을 이용한 대형 토카막 핵융합실험로 가운데 현재 운영에 성공한 것은 한국의 KSTAR와 중국의 EAST뿐이다. 그 중 초전도 재료로ITER와 똑같은 니오븀주석합금(Nb3Sn)을 이용한 것은 KSTAR뿐이다. 따라서 KSTAR가 이룩한 운영 성과는 ITER의 성공에 대단히 중요하다.



두 번째 이유는 막대한 재원과 긴 시간이 필요한 핵융합에너지 연구만의 특성이다. ITER의 전체 건설 비용을 계산하면 10조 원이 훌쩍 넘어간다. 한 국가가 모두 내기엔 지나치게 부담이 크다. 더구나 에너지 개발은 시간이 오래 걸린다. 여러 나라가 비용과 정책을 공유해야 오랜 시간을 안정적으로 연구할 수 있다. 이런 점에서 ITER 사무국으로서는 핵융합 연구에 정부가 깊이 개입하고 있는 한국을 환영할 수밖에 없다. ITER를 건설할 때 한국이 설계, 제작하기로 한 9.09%의 부품은 금액으로 환산하면 약 1조 1000억 원에 달해 우리나라의 목소리도 앞으로 더욱 커질 것이다. 모토지마 사무총장은 “실험로인 ITER조차 2019년에야 건설이 완료돼 첫 플라스마 실험을 할 수 있다”며 “에너지 문제는 100년을 내다보는 장기적인 전략을 세워야 한다”고 강조했다.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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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년 11월 과학동아 정보

  • 윤신영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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