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양생물 센서스는 바다에 어떤 생물이 어디에 얼마나 서식하는지 총체적으로 파악하기 위해 조직된 국제프로그램이다. 이번 조사에는 세계 80여 개국 2700명의 과학자가 참여해 북극해부터 지중해, 아프리카, 남극해등 25개 바다를 탐사했다. 나라별로 배타적경제수역(EEZ) 중심의 근해를 조사한 자료를 모았다. 한국에서는 한국해양연구원의 이윤호 박사가 한국의 해양생물을 조사하고 목록을 만들어 해양생물 센서스에 제공했다.이번 조사에서는 수중 카메라와 로봇 잠수정을 동원해 깊이 1000m가 넘는 심해도 조사했다. 그 결과 23만여 종의 해양생물종 목록을 작성하고 5600여 종의 신종을 찾았다. 1200종은 명확하게 신종이라고 판명됐고나머지 4400여 종은 계속 검토 중이다.
호주·일본 생물종 최다, 한국은 면적당 최다
한국은 배타적경제수역 30만 6674km2에서 9900종이 발견돼 종수는 평균보다 낮았다. 하지만 단위면적(10km2)당 생물종은 32.3개로 조사 지역 중에서 가장 풍부했다. 이윤호 박사는 “한류와 난류가 모두 존재한다는 점, 암반, 모래, 갯벌, 습지, 다도해 등 다양한 서식지가 있다는 점, 조사를 활발하게 많이 진행한 점이 이유로 보인다”고 말했다. 보고서는 한국 외에도 중국과 남아프리카공화국의 연안, 그리고발틱해를 생물종이 풍부한 곳으로 꼽았다.
![아톨라 해파리는 빛이 들지 않는 심해에 살고 있지만 스스로 빛을 낸다. 포식자에게 잡히면 마치 경보를 울리듯 빛을 내 더 큰 포식자를 불러들이고 자신은 살아남기 위해서다. 아톨라 해파리가 사는 곳은 먹이가 매우 희박하기 때문에 에너지를 덜 쓰기 위해 매우 느리게 움직인다. 일 년에 단 두 번 먹이를 먹기도 한다.](https://images.dongascience.com/uploads/article/Contents/201708/S201009N010_0.jpg)
![새우의 먼 친척뻘 되는 단각류 종류인 앰피포드(ampipod)의 모습. 스크림 가면처럼 으스스한 얼굴이 인상적이다.](https://images.dongascience.com/uploads/old/Contents/201008/3.jpg)
![아귀목과의 심해 앵글러피쉬는 옆선에 구슬처럼 달린 감각기관으로 진동을 감지한다. 산호초 숲 2000m 아래서 발견했다.](https://images.dongascience.com/uploads/old/Contents/201008/4.jpg)
![4. 심해의 찬 수온과 높은 압력을 견디며 살아가는 동물 플랑크톤. 곤충의 눈과 매우 흡사한 눈이 있다. 5. 동물플랑크톤의 일종인 프로니마도 개똥벌레처럼 스스로 빛을 낸다. 이 동물은 물통처럼 생긴 바다생물의 몸속을 긁어낸 뒤 안에 알을 낳고 새끼가 자라서 헤엄쳐 나갈 때까지 유모차처럼 끌고 다닌다.](https://images.dongascience.com/uploads/old/Contents/201008/5.jpg)
해양생물 중에서 가장 많은 종은 갑각류였다. 바닷가재와 게 같은 갑각류는 전체의 19%로 문어, 오징어 등의 연체동물(17%), 어류(12%)보다 많았다. 아메바, 유글레나 같은 원생동물은 10%, 해면동물은 3%, 그리고 큰빗이끼벌레 같은 태형동물은 2%로 나왔다. 하지만 이 박사는 “이들 종류는 예상보다 낮게 측정된 것 같다”고 평가하며 “아마 이들의 크기가 너무 작거나 형태가 불분명해서 수치화하지 못했던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다국적’ 지중해와 유니크한 뉴질랜드해
이번 조사에서는 외래종도 함께 조사했다. 외래종은 다른 나라에서 들어온 생물종을 말한다.
가장 ‘다국적인’ 바다는 지중해와 대서양, 그리고 발틱해였다. 외래종의 비율은 지중해가 4%로 가장 높았다. 다음이 대서양(2%), 발틱해(2%) 순이었다. 가장 많이 유입되고 있는 생물종은 연체류(26.7%), 갑각류(22.0%), 어류(20.3%)였다. 외래종이 유입되는 가장 큰 원인은 선박의 이동이다. 선박은 운행 시 안전성을 높이고 화재 진압에 사용할 물을 갖춰놓기 위해 배 안에 항상 바닷물을 담아 놓거나 바닷물을 끌어올릴 펌프를 켜둔다. 이 때 바닷속에 있는 생물들이 물과 함께 선박 안으로 다량 들어간다. 크고 작은 생물종들이 선박을 따라 본의 아니게 ‘밀항’을 하게 되는 셈. 이를 뒷받침하듯 외래종이 가장 많은 지중해와 대서양, 발틱해는 모두 오래 전부터 선박의 이동이 잦았던 해역이다. 또 양식을 위해 인위적으로 새로운 종을 도입하는 경우도 외래종을 유입시키는 것으로 나타났다. 새로운 종이 유입될 때는 그 종과 공생관계에 있는 종들도 딸려 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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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내 외래종 조사는 1970년대 후반부터 본격적으로 시작됐다. 이 박사는 “현재까지 약 18종의 외래종이 들어온 것으로 파악했으며 점차 늘어나고 있는 추세”라고 말했다. 외래종 조사에 앞서 고유종은 생물종을 기록한 옛 문헌과 함께 집단 유전학을 이용해 과거 해양에 어떤 특정종이 얼마나 살았는지 추정해 결정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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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해역에서만 나타나는 고유종은 호주, 뉴질랜드, 남극해, 남아프리카공화국에 많았다. 기본적으로 바다는 해류가 끊임없이 움직이고 있어 완벽하게 고립된 지역이 나타날 수 없다. 하지만 뉴질랜드처럼 상대적으로 다른 나라와 분리된 해역에 있는 곳은 독특한 해양생물이 사는 것으로 나타났다. 뉴질랜드의 고유종 수는 약6600종으로 이는 이 해역에서 발견된 총 생물종의 51%에 해당했다. 남극해도 45%에 이르렀다.
한국은 일본, 중국과 근해가 가까이 붙어 있어 생물종이 겹치는 경우가 많기 때문에 확실히 우리의 고유종이라고 이름 붙이기는 어려웠다. 그래서 한국 해역이라고 하지 않고 ‘동해고유종’, ‘남해고유종’, ‘서해고유종’으로 나눠 분류했다. 비록 순위에는 못 들었어도 동해는 생물다양성이 고도로 높은 ‘핫 스폿’이 틀림없다고 이 박사는 말한다.
“동해는 성게나 전복류가 한 해역을 중심으로 많은 종류가 분포하고 있어요. 다른 해역에서는 발견되지 않는 종류죠. 우리나라는 동해를 중심으로 한 주변 해역에 고유종이 많을 것으로 판단됩니다.”
이 박사는 “빙하기와 간빙기가 반복하면서 동해가 태평양로부터 고립되고 연결되는 과정을 수없이 반복해 왔다”며 “고립되는 기간에 이들 종류가 많이 분화된 것 같다”고 설명했다.
‘네이처’ 7월 28일자 온라인 판에도 이를 뒷받침할만 한 결과가 나왔다. 캐나다 댈하우스대의 데렉 티텐서박사가 이끄는 연구팀이 생물종을 식물 플랑크톤부터 고래와 상어 등 13개 집단으로 나누고 출현빈도가 높을수록 붉게 표시한 결과, 동아시아에서 동남아를 거쳐 오세아니아로 이어지는 서부 태평양이 붉게 나타났다. 한국 해역은 어느 항목에서든 붉게 표시됐다. 그만큼 생물다양성이 높고 생산량도 많다는 뜻이다. 이 박사는 “특히 동해와 일본 해역 주변에 고래의 출현 빈도가 높은 것을 주목할 필요가 있다”며 “이는 고래의 먹이가 되는 동물플랑크톤이 이 지역에 많이 존재하고 있다는 사실을 입증하는 자료”라고 설명했다. 특히 오징어 같은 연체동물은 한국을 중심으로 한 중국과 일본 해역에서만 두드러지게 출현했다.
이 외에도 티텐서 교수팀의 결과는 한 가지 중요한 결과를 알려준다. 연안에 주로 사는 생물종은 인도네시아를 중심으로 한 동남아시아와 한국, 일본 해역에서 많이 서식하는 반면 원양 생물은 중위도에서 다양하게 분포한다는 점이다. 육지에서는 열대우림이 ‘핫 스폿’이지만 해양에서는 열대바다보다 중위도 바다가 ‘핫 폿’인 셈이다. 이런 결과는 해양생물 다양성이 바다 표면 온도와 밀접한 관련을 맺는다는 점을 알려준다.
심해저 생물과 미생물 포함하면 수백만 종 훌쩍“과학자들이 200만 개의 생물종을 밝혀냈지만 이는 전체 생물 중 5분의 1일 뿐이다. 나머지 5분의 4는 바다 속에 살고 있다”
평소 생물종에 관심이 있던 사람이라면 이번 해양생물 센서스의 보고서를 보고 이상한 점을 발견했을 것이다. 지구에서 육지의 면적은 30%에 불과하지만 해양은 70%에 이른다. 그러나 발견된 해양생물종은 23만 종으로 육지에서 발견한 생물종 200만 종에 비해 턱없이 적다. 해양생물종은 육지생물종에 비해 다양성이 떨어지는 것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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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다는 고립지역이 없기 때문에 생물종이 다양하게 분화하는 환경이 되지 못한다고 주장하는 생물학자도 일부 있다. 하지만 대부분의 해양생물학자들은 이는 섣부른 판단이라는 입장이다. 이들은 깊이 1000m가 넘는 심해저나 심해열수부 같은 극한의 바다를 충분히 탐사하지 못했다는 사실을 그 이유로 든다. 이 박사는 “심해저는 햇빛이 미치지 않는데도 1차 생산자가 영양분을 생산하고 있고, 해양 지각판 틈 사이로 뜨거운 물이 나오는 심해열수부에는 특이한 환경 탓에 독자적인 생태계가 마련됐을 것으로 보인다”며 “이들 지역에 대한 탐사가 이뤄진다면 해양생물종은 훨씬 늘어날 것”이라고 말했다.
이번 조사 대상이 제한적이었다는 점도 해양생물종의 수를 낮춘 원인으로 지목된다. 캐나다 댈하우지대의 론 도르 교수는 “이번 조사에서는 세균 같은 미생물이 대상에서 빠졌다”며 “5600종의 신종이 추가됐지만 아직 발견되지 않은 생물종이 10만 종 이상 더 있을 것이며 미생물까지 합치면 그 수는 수백만으로 늘어날 것”이라고 말했다. 태평양처럼 큰 대양은 제외하고 연안이나 얕은 바다 위주로 조사가 이뤄진 점도 영향을 미쳤을 것으로 보인다.
해양생물 센서스의 10년 탐구는 막을 내리지만 곧 2단계로 이어진다. 해양생물종 조사는 수산자원을 지속가능하게 이용하기 위해서도 중요하지만 멸종 위기에 있는 생물종을 보호하기 위해 해양보호구역을 선정하는일에도 도움이 될 것이다.
일부 분류학자들 중에는 이번 해양생물 센서스의 자료 취합 방식과 생물종의 분류 기준이 명확하지 않다고 비난한다. 예를 들어 탐사 횟수가 많을 수록 생물종도 많아질 텐데, 이런 차이를 고려했냐는 식이다. 그러면서 잘못된 조사는 오히려 잘못된 정보를 생산할 수 있다고 지적한다. 하지만 해양학자들은 “정확한 분류는 시간이 아무리 흘러도 해결되지 않는다”며 현재 수준에서라도 자료를 구축하는 체계는 만들어가야 한다고 말한다.
이렇게 모은 자료는 해양생물지리정보시스템 OBIS에 수록된다. 현재까지 10만 4000종의 분포와 출현 정보가 수록돼 있다. OBIS 홈페이지(www.iobis.org)에서 지도 속 한 점을 클릭하면 그 해역에서 출현하는 생물종의 리스트와 그 생물종이 최근 언제 출현했는지 알 수 있다. 거꾸로 어떤 해양 생물이 어디에 살고 있는지도 알 수 있다. 과학자들에게 전 해양에 존재하는 생물종을 한 눈에 파악할 수 있는 강력한 도구가 탄생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