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극 얼음벌판에서 요란한 드릴 소리를 내며 구멍을 뚫는 학자들이 있다. 이들은 석유를 찾으려는 것도 아니고 금을 캐려는 것도 아니다. 2천4백파운드의 힘을 가진 드릴로 이미 1㎞ 이상 파 들어갔다.
남극대륙에는 세계 각국에서 모인 학자들이 물개에서 잡초, 돌멩이까지 귀중히 생각하며 여러가지 연구를 하고 있다. 그러나 남극대륙에서 인류의 생존에 보다 중요한 관련이 있는 것은 오존구멍의 확대와 빙대(氷帶·ice sheet)의 움직임이다.
남극의 빙대는 크게 동부빙대와 서부빙대로 나누어지는데 동부빙대는 땅과 붙어 있어 거의 부동이지만 서부빙대는 조금씩 움직이고 있는 것이다. 서부빙대의 넓이는 인도대륙 크기 정도이고 만약 이것이 붕괴되고 이동해서 완전히 녹아버린다면 지구의 해수면은 5m 이상 높아질 것으로 계산되고 있다.
물론 보다 북으로 이동해서 녹아버리는 데에 얼마나 오랜 세월이 걸릴 것인지는 분명치 않다. 그러나 결국 이런 사태가 오면 지구 육지의 상당부분이 바다밑에 가라앉게 되며 또 예측못한 생태계의 대변혁을 가져오게 될 것은 명백하다. 따라서 장래에 닥칠 재난을 어느 정도 예측해서 대비책을 세우지 않을 수 없는 것이다.
원인은 온실효과 때문
최근의 리모트센싱 결과(레이다나 지진계 사용)에 따르면 서부빙대는 굉장한 규모로 움직이고 있다. 따라서 직접 얼음에 구멍을 뚫어 얼음의 균열이 어느 정도 진행되고, 어느 정도의 속도로 움직이고 있는가를 살피지 않을 수 없다. 이 작업을 수행하고 있는 지구 물리학자들은 거의 미국인들로 미국립과학재단의 후원을 받고 있다.
남극의 빙산에 대한 관심은 지난 78년 해수면의 상승에 의한 피해를 다룬 '네이쳐'지의 기사 이후 높아지기 시작했다. 그러나 한동안 잠잠하다가 10년 뒤인 지난해 미국의 앨라스카대학, 캔사스대학, '칼텍', 미국지질학회 등이 합동으로 조사팀을 구성하고 조사계획을 '시플 코스트 프로젝트'(Siple Coast Project)라고 이름지은 뒤 본격적인 활동을 시작하게 되었다.
이들의 조사목표는 우선 기존의 리모트 센싱에 의한 결과를 바탕으로 보다 세밀한 측정을 해서 서부빙대의 지도를 작성하는 것이며 그 다음 빙대의 운동을 측정하고 최종적으로 이 빙대의 운명이 언제 어떻게 될 것인가를 밝혀내는 것이다.
남극의 빙산은 흔히 요지부동의 것으로 생각하는 경향이 있으나 얼음은 그것이 아무리 크더라도 불에 달군 쇠처럼 일정한 온도를 받으면 쉽사리 무너지게 된다.
드릴이 보내오는 정보
얼음밑을 파고드는 드릴은 여러가지 귀중한 정보를 보내온다. 드릴이 받는 압력의 차이, 반사되는 주파수 등은 모두 보이지 않는 얼음밑 세계를 볼 수 있게 해주는 재료가 되는 것이다.
조사팀의 한명인 지진학자 '찰스 벤틀리'는 "우리가 지금 하고 있는 일을 끝내고 지질도를 작성하는 데에만 몇년이 걸릴 것이다. 그러나 중요한 문제 즉 빙산 아래의 압력차이는 지질도작성 이전에도 측정될 수 있다. 만약 해마다 압력이 높아지고 있다면 이것은 거대한 빙산이 보다 빨리 움직이고 있다는 것을 뜻하는 것이며 압력의 차이를 비교함으로써 빙산의 운명도 어느 정도 정확히 예측할 수 있을 것이다"라고 말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