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컴퓨터는 만능의 척척박사라는 찬사와 지독한 멍청이라는 경멸을 동시에 받을 수 있는 존재이다.

참으로 많은 사람들이 컴퓨터에 대해 얘기하며 그보다 더 많은 사람이 컴퓨터에 대해 호기심을 갖고 있고 그보다 훨씬 더 많은 사람들이 컴퓨터의 도움을 받으며 살아가고 있다. 그러면서도 막상 많은 사람들이 컴퓨터에 대해서 실제로 구입하고 동작시켜 보고 때로는 실망을, 때로는 커다란 놀라움과 감상에 젖어 컴퓨터 예찬론을 펴기도 한다. 컴퓨터를 직접 설계하고 새로운 고성능 컴퓨터를 연구하는 사람들 사이에도 컴퓨터의 아둔함과 고속 정밀성의 양극단에서 컴퓨터의 역할에 대해 회의와 희망들을 동시에 갖고 있다. 컴퓨터는 왜 아둔한가? 그것은 이 세상의 어느 컴퓨터도, 보통 사람이 어떤 주어진 문제를 해결하고자 할 때 가까운 친구나 선생님께 묻고 그 대답을 돌려받는 것과는 틀리게 그 사용 방법이 너무도 어렵기 때문이기도 하다. 예를 들어 보자. 국민 학교학생이 자신의 컴퓨터를 갖고 있다. 미국의 16대 대통령이 누구이더라? 하는 문제에 대해 답을 내는데 형에게 물어 보면 당장 링컨 대통령이라는 답을 얻을 수 있다. 곧 자신의 인지할 수 있는 언어를 통해 문제를 표현해 지식을 갖고 있는 형으로 부터 손쉽게 답을 구해 낼수 있다. 그러나 컴퓨터는 어떠한가? 비록 컴퓨터에 미국대통령의 완벽한 자료가 저장되어 있다. 하더라도 컴퓨터를 사용하는 방법을 모른다면 그것은 완전히 깜깜한 절벽, 그 대답을 끌어 내기까지 그 학생은 상당한 어려움을 겪는다. 그 문제의 답을 얻는것과는 무관한 갖가지 컴퓨터 소프트웨어, 하드웨어, 사용법 등을 익혀야 하는 어려움이 있다. 뿐만 아니라 이 컴퓨터와 저 컴퓨터의 사용법이 각각 다르며 저장된 자료의 종류가 컴퓨터간에 서로 다 틀리니… 컴퓨터는 그야말로 현대 문명을 도와 주기는 하되 철저하게 어려운 기계로 인식될 수도 있다. 그러나 상상해 보라. 그어린 아이가 자신이 어렸을 때 부터 터득한 언어를 이용해 컴퓨터에게 물어보고 컴퓨터는 친절히 어린 학생이 알아들을수 있는 말로 대답할 수 있다면, 얼마나 편리할 것인가. 컴퓨터를 끄고 켜는 것조차 신경쓸 필요없이 자그마한 계산기 크기로 어린아이와 대화하며 혹 외국인에게 아이가 물어 보고 싶은 것이 있을 때라도 아이는 우리말로 외국인은 외국어로 묻고 대답하더라도 아이에게는 아이만의 말로 외국인에게는 자기나라 말로 들리게 번역해주는 기계, 그뿐인가. 우주선을 설계하는데도, 설계에 필요한 모든 자료를 스스로 수집 분석해서, 디자이너는 대충의 비용 여행 계획들만 말해주면 자신이 알아서 가장 최적의 설계도 몇장을 그려주어 디자이너로 하여금 최종결정만을 내리도록 해 주는 기계. 즉 인간이 가장 손쉬운 방법으로 자신의 문제를 설명해줄 수 있고 인간이 가장 알아보기 쉬운 결과를 받아 볼수 있는 컴퓨터, 인공지능을 가진 기계의 존재는 왜 아직도 불가능한가? 이글에서는 인공지능을 가질수 있는 컴퓨터의 탄생에 무슨 문제가 있기에 컴퓨터를 이용하기가 그렇게도 힘들고 왜 아직까지도 '컴퓨터'하면 '만능의 척척박사'라는 찬사로부터 '지독한 멍청이'라는 경멸에 이르기까지 그토록 다양하게 인식되는지를 컴퓨터 디자이너의 입장에서 살표보고, 인류가 이 지구상에서 계속 생존하기 위한 생존도구, 보조지능으로서의 컴퓨터를 통해, 바벨탑 신드롬을 현대에 맞도록 조명해보고자 한다.


인공지능은 바벨탑인가


우선 컴퓨터 애기를 시작하기 전에 에너지에 대한 얘기를 먼저할까 한다. 그것은 이세상의 모든 현상이 곧 에너지의 흐름이기 때문이다. 에너지에는 형이상학적인 에너지와 형이하학적인 에너지의 두가지가 있다. 곧 우리 인간이 오감을 이용하여 느낄 수 있고 볼 수 있고 만질수 있는 형태를 갖춘 형이하학적 에너지와, 우리의 또 다른 감각기관 곧 정신을 통해서만 어렴풋이 그 존재를 느낄수 있는 형이상학적 에너지의 두가지 흐름이 그것이다. 에너지의 흐름은 전 우주의 생성과 소멸, 변환으로부터 아주 작은 원자핵 내부의 소립자에 이르기까지, 먼 고대의 시간으로부터 먼 훗날의 미래에 이르기까지, 전 인류의 희망 절망 기쁨 증오 더 나아가서 인간 이외의 동물적 존재에서 인간 이상의 신적 존재에 이르는 우리의 온갖 주변세계를 지배하고 있다. 인간은 언제부터인가 에너지의 흐름을 자연에만 맡기지 않고 인위적으로 적절히 조정하는 방법을 터득하여 왔다. 아무것도 모르는 맨주먹의 시대에 그들은 돌이 갖고 있는 보다 단단한 힘을 이용하여 자신이 갖고 있는 근육의 운동에너지를 좀더 효율적으로 이용하는 방법을 생각해 냈고 이와 함께 자연계의 물질에 불을 붙여서 보다 이용하기 쉬운 에너지를 도구로 삼기 시작한 것이다. 바벨탑은 이런 원시적인 인간들의 에너지가 하나의 목표를 위해 하나로 뭉쳐질때 얼마나 큰 힘을 발휘할수 있는가 하는 것을 보여주는 하나의 이정표적인 상징이었다. 즉 개별적으로 분산된 인간의 불연속적인 개인에너지를 어떤 중심점을 찾아내어 스스로 뭉쳐서 사회적에너지로 변환하고자 하는 에너지의 결집현상이다. 분산된 작은 에너지들의 집합들이 한데 뭉치어 점점 더 큰 집합적 에너지로 변환되어가는 에너지의 집중현상이다. 어떤 특정 에너지를 한 곳에 집중하면 보통이 아닌 특별한 일들을 일으킬 수 있다. 이 사회를 이루는 각 개인을 살펴보아도 사람이 어느 하나의 일에 자신의 에너지를 집중할 경우 그는 그 분야에서 어느 인간 수준을 넘어설 수도 있는 것이다. 원시 사회의 육체적 에너지는 참으로 미약했다. 피라미드에 사용된 돌 하나를 운반하는데도 노예 수백명이 동원되어 밀며 당기며 참으로 힘겨운 작업을 하였다. 그러한 육체 노동력은 실제인간 생활의 질을 조금도 개선시키지 못하며 근근히 먹을 식량을 얻는데도 힘에 겨웠다. 그러나 그 오랜 시간의 불편함을 거쳐 지난 19세기말엽부터 사람들은 가끔 물을 끓을 때 수중기가 그 무거운 놋쇠 솥뚜껑까지 들어 올리는 현상에 주목하기 시작했고 결국 그들은 증기기관을 개발해내 또다른 문명의 서막을 열었다. 이러한 단순한 기계적 엔진을 개발해 내기까지 인간은 실로 수천년이라는 시간의 시행착오를 되풀이해 왔다. 만약 이들의 언어가 갈라지지 않고 하나로 묶이어 온 인류의 지혜를 손쉽게 하나로 결집시킬 수 있었다면 허송하지 않아도 좋았을 그 수천년의 문명암흑시대. 이후 갖가지 화학 에너지- 석탄 석유 우라늄 등의 적절한 변환을 통해 사람들은 보다 편리하며 강력한 기계 에너지를 사용할수 있게 되었으며 대량생산의 덕으로 인구의 급격한 증가에도 불구하고 보다 많은 사람이 보다 편리하게 살아가게 되었다. 그들은 더 이상 들판에 나가 자신들이 먹을 고기를 직접 사냥하지 않아도 되었으며 옷도 직접 지어 입지 않아도 되었다. 그러나 인간들의 이러한 형이하학적인 기계 문명의 발달에 힘 입은 사회의 전반적인 생활향상과 의술의 발달로 인간의 수는 20세기에 들어 가히 폭발적이라 할 수있는 역사 새대 이래 최대규모의 인구를 갖게 되었다. 인구의 급격한 증가는 인류사회 자체의 존폐를 위협할 정도로 심각하며 많은 걱정거리를 안겨 주었다. 그 옛날 넓디 넓은 중국대륙의 광활한 땅위에 고작 수백만의 인간이 살면서도 전쟁 흉년 홍수 등의 인적 자연적 피해로 일반대중은 근근히 먹고 살기에도 바빴던 때에 비해 지금은 우리나라같이 작으마한 땅덩어리에 수천만명의 인구가 그런대로 먹고사는 걱정을 크게 줄일 수 있었던 것은 전적으로 과학기술 문명이 인류에게 보답해준 생존의 길임에 틀림없다. 먹고 사는 문제뿐이 아닌, 일상 생활의 편리성은 더 말할 나위 없다. 이 모든 가능성은 1,2차 세계 대전 전까지만 해도 별로 가능성이 희박했다. 인간들은 계속 한정된 물질 자원에 의해 끝없는 전쟁을 되풀이 해야 할 것 같았고, 계속 불어만 가는 인류의 커다란 몸집을 이끌어 나갈 정신적 에너지는 세계 어디에서도 기대하기 힘들어 보였던 것이 사실이었다. 그러나 아이러니컬하게도 양대 세계대전은 인류에게 커다란 희생을 가져다 주었으면서도 그와함께 획기적인 군사 과학기술의 발전도 함께 가져왔으며 이러한 혼란속에서 가장 필요로 하였던 기계엔진의 자동화와 각종 정보처리분야의 자동차 요구는 결국 컴퓨터의 탄생을 가져오게 되었다.

그렇다면 컴퓨터는 과연 무엇인가? 익히 알고 있듯, compute 계산하다 라는 영어 단어에 사람 혹은 도구를 가리키는 er을 붙여 만든 합성어이다. 곧 자동차의 엔진들이 화학적 에너지를 입력하여 기계적인 에너지로 바꾸어 주는 형이학적인 에너지 흐름 변환 장치라면, 컴퓨터는 인간의 머리에서 진행되는 정신적인 에너지의 흐름을 전기적 에너지 형태로 바꾸어 보다 효율적인 인간의 정신적 에너지를 만들어내 주는 형이상학적 에너지 흐름 변환장치이다. 여기서 과학 기술인들이 하나 짚고 넘어가야할 것이 있다. 모든 사람들이 원자 폭탄을 발명해냈던 과학자 그룹의 비인도성을 공격한다. 그러면서도 컴퓨터 기술의 잠재적인 위험성에 대해서는 크게 인식하지 못하고 있는 것 같다. 컴퓨터의 발명은 인간에게 아무런 직접적인 피해를 주지 않는다. 아니 어쩌면 인간에게 이보다 더 큰 도움을 주는 기계는 없다. 그러나 이기계가 정밀한 무기의 머리 부분에 장치되고 대규모 살상 무기의 설계와 제작에 끼치는 영향력을 살펴 본다면 이 기계야말로 모든 대륙간탄도탄과 공격용 무기들의 핵심이며, 이런 컴퓨터만 없다면 인류는 멸종의 위기로 부터 벗어날 수도 있다는 것을 알아야 한다. 즉 어떤 종류의 유용한 기계적 발명도 인류의 안전과 번영의 역사적 인식의 고려되지 못할 경우 인류는 인류 스스로에게 칼을 들이대는 우를 범하게되며 과학 기술인들은 그들의 업적 중심적인연구 자세에서부터 벗어나 역사와 동족 인류에 어떠한 영향을 줄것인지가 먼저 심각하게 고려해야 한다.

컴퓨터는 어떻게 복잡한 문제들을 해결해 줄 수 있는가? 문제는 단순하다. 전기에 대한 일반 상식은 누구나 다 갖고 있을것이다. 밤에 외출했다 돌아와 방안의 형광등 스위치를 켠다. 방안은 환해진다. 스위치를 끈다. 방안은 어두워 진다. 컴퓨터의 단순성은 여기에 있다. 스위치를 켜면 전기가 흐른다. 스위치를 끄면 전기의 흐름이 끊어진다. 명과 암, 선과 악, 태고적부터 모든 에너지의 흐름을 지배해온 2원대립론이 컴퓨터의 기본 이론이다. 이것을 통해 기계와 인간의 대화가 시작된다. 예를 들어 보자. 이웃한 두집의 전등불을 통해 어떤 정보를 전달한다고 가정해 보자. 멀리서 두 집 사람들과 얘기하는 방법은 여러가지가 있을 수 있겠으나 전등 불을 끄고 켜는 것으로 연락하기로 한다. 즉 미리 정하길 두 집의 불이 모두 꺼져있으면 멀리 도망가라, 오른쪽 집은 켜지고 왼쪽 집은 꺼져 있으면 오전에 집에 돌아와라, 반대로 오른쪽이 꺼지고 왼쪽이 켜져 있으면 오후에 돌아 와라, 두집 다 켜져 있으면 지금 당장 들어와라는 식이라면 우리는 여기서 두 집의 불을 이용하여 네가지 서로 다른 정보를 만들어낼 수 있음을 알 수 있다. 이것이 세 집의 전등을 이용하면 여덟가지, 네집이면 열 여섯가지식으로 2의 지수승만큼씩 늘어 나간다. 결국 32집의 정보를 적절히 조절하면 무려 4기가(4×${10}^{9}$, 40억)개의 서로 다른 정보를 만들어낼 수 있다. 즉 기계는 인간으로 이와같이 서로 다른 구별할 수 있는 정보의 집합을 숫자의 행렬로 받아들여 각 숫자간의 사칙연산, 비교 등을 통하여 디자이너가 미리 정의해 놓은 계산 방법의 길을 따라 숫자 형태로 일초 동안에 수억회 이상의 일을 처리해낸다. 처리된 숫자는 다시 사람이 알아볼 수 있는 문자나 도형으로 바뀌어 텔리비전과 같은 터미널 혹은 인쇄매체에 의해 출력된다. 이 모든 일이 가능한 것은 바로 반도체의 역할에 기인한다. 이 세상에 지천으로 널려 있는 모래의 주성분 규소(실리콘)가 바로 반도체를 제작하는 기본재료이다. 구리선 은 등과 같이 전기를 잘 흐르게 해주는 물체들이 바로 도체이며 고무 플래스틱 등과 같이 전기의 흐름으 어렵게해 주는 물체들이 바로 부도체이다. 앞에 예를 든 집의 형광등 스윗치의 경우, 도체인 금속 전기 접점과 접점 사이의 연결을 공기로 가로 막었다가 스윗치를 올려 접점들을 연결시켜 주는 동작이 바로 컴퓨터의 기본 이론이다. 즉 반도체란 어떤 전기적 상황 상황에서는 전혀 전기를 흘리지 못하게 하며 또 다른 전기적 조건에서는 전깃줄 만큼이나 전기를 잘 흐르게 해준다. 옛날에는 얇은 금속 조각 사이에 진공을 만들고 새로운 금속 전극을 삽입하여 삽입된 금속 조각에 걸리는 전압에 따라 전기의 흐름을 조절하던 전공관을 사용하였으나, 반도체의 발견은 돌의 일종인 게르마늄이나 실리콘을 이용하여 트랜지스터(TRANSferableresISTOR, 전송이 가능한 전기적 저항장치)를 만들게 되어 그 크기와 신뢰도에서 엄청난 효과를 가져왔다. 실제로 1940년대 컴퓨터가 커다란 건물안에서 1만 4천개 정도의 진공관을 사용하여 엄청난 전기를 소모해가면서도 하루에도 몇개씩의 진공관이 고장나 하나의 일 처리도 제대로 못하던것에 비해 오늘날의 컴퓨터는 새끼 손톱만한 돌 조각 위에 수십만개의 진공관에 해당되는 트랜지스터를 올려 놓고 그 당시 컴퓨터 속도의 1천배 이상, 기능의 1천배 이상으로, 모두 1백만배 정도로 성능이 향상되었으면서도 가격은 1백만분의 1로, 즉 그당시 사용되던 진공관 한개의 1백분의 1가격으로 얻을 수 있을 정도에 이르렀다. 아마도 인류문명 역사상 30여년이라는 짧은 시간속에 전체 성능이 1테라(${10}^{12}$)배 만큼 증가한 도구는 없었을 것이다.

이렇게 진보된 기술을 이용하면서도 컴퓨터는 왜 아둔한가? 우리 인류는 컴퓨터를 단순히 보조 지능기구로만 사용하여 일상적인 삶에 보다 효과적인 에너지를 얻는데 그치고 말것인가? 우선 컴퓨터가 돌대가리인 것에 대해 얘기해 보자. 우리가 평상시에 얘기하는 목소리들, 눈으로 보는 세상은 모든것이 애널로그로 구성된다. 즉 전기적인 연결과 끊음뿐이 아닌 전기 신호의 크기, 진동수가 시시각각으로 모두 틀리게 마련이다. 이것이 해석되어지고 기계가 이해하려면 모든 디지틀 즉 전기의 연결 혹은 끊음 상태로의 변환이 필요하며 거꾸로 기계가 주어진 일을 모두 마치고 그 결과를 인간에게 돌려줄 때도 소리 혹은 화상으로 보여 주려면 애널로그로의 재변환이 필요하게 된다. 이렇게 해서는 단위 시간에 주어지는 엄청난 정보를 해석하는데만도 컴퓨터의 머리는 깨어질 정도로 바삐 움직여야 하며 그 정보를 주인이 원하는 결과의 모습으로 바꾸어 다시 알려 주는데는 또 다른 시간이 필요하게 된다. 비단 속도 뿐만이 아니다. 세계에서 가장 빠른 슈퍼컴퓨터를 사용해 원주율을 계산하는 예를 알아보자. 최근의 일본 어느 슈퍼 컴퓨터가 원주율 파이(π )를 소숫점 억자리 단위까지 수시간에 걸쳐 계산해냈다고 한다. 수년전 몇일이 걸려 수백만 단위까지 계산하던 것에 비해 놀랄만큼 빠른컴퓨터이다. 그러나 그 컴퓨터가 이글의 맨처음에 예시한 국민학교 학생의 물음에 대하여 어떤 반응을 보일 수 있을까? 그 컴퓨터에 미리 그 아이의 말을 받아들여 물음을 스스로 이해하고 답을 구해내어 대답하도록 하는 정교한 소프트웨어와- 사람이 사용하는 언어와 급접한 문어체 약속을 사용하여 문제를 풀어나가는 순서를 설명하고 해결되는 길을 닦아 놓은 도구-, 하드웨어- 소프트웨어로 닦아 놓은 길을 따라 순서적으로 직접 동작하여 문제를 해결해주는 기계 장치- 가 내장되어 있어야 함은 물론이고 이 도구들이 어떠한 독자적 판단 능력에 의하여 자료를 선택하고 제공해줄 수 있어야 한다. 이를테면 복잡한 고속 터미널에서 주변에 들리는 많은 소음중에서도 정확하게 자기 주인의 목소리와 그 외의 목소리를 분간하여 자기 주인의 지시에 따른다든가, 기타 주인에게 닥칠지도 모르는 위급한 상황을 주변 상황에 대비해 늘 모니터를 하다가 주인에게 알려주거나 적절한 조치를 취하며, 어떤 모르는 데이타가 들어오더라도 그 자료를 갖고 있는 데이타 뱅크를 스스로 검색하여 가까운 전화선이나 통신선을 통하여 뱅크와 연결, 주인이 스스로 포기하기 이전엔 끝까지 서비스를 한다든가 등등.스스로 판단하고 스스로 필요한 행동을 취하여 최선의 결과를 내주는 기계의 제작. 그렇다면 지금까지 컴퓨터 과학자들과 반도체 공학자들이 익히 떠들어 온 소위 첨단과학기술중의 첨단과학기술은 이러한 기계의 제작에 대한 요구를 잘 알면서도 현재 나와있는 시스팀들은 왜 아직도 그리 아둔한가? 실제로 이런 문제에 대해 언급하는 학자들은 지금보자 몇 만, 몇 십만배 더 빠른 컴퓨터가 등장해야 한다고 얘기하는데 그런 컴퓨터가 있다면 정말 이상적인 인공지능이 이루어질까? 이 문제에 대한 해답은 분명히 부정적이다. 인간이 갖고 있는 완벽한 인간이라는 생체 지능 시스팀은 너무도 완벽하고 정교해 사실상 현 세대, 곧 형이하학의 극치만을 달리는 현대 과학 기술로는 그 모방에 분명한 한계를 나타내고 있다. 어떤 컴퓨터를 설계하더라도 아인시타인의 빛과 질량에 관한 저 유명한 식, E=mc²의 한계를 넘을 수 없다. 이 식은 바로 형이하학의 한계식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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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8년 07월 과학동아 정보

  • 박성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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