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부터 2년 후인 1998년에는 현재의 주민등록증, 의료보험증, 운전면허증 등이 한데 묶인 전자주민증이 나온다. 전자주민증은 IC칩을 사용한 최첨단 정보 공유카드다. 법적 효력은 없었지만 시범적으로 지난 3월부터 6월까지 과천시 중앙동에 사는 1천명의 시민에게 전자주민증을 발급하기도 했다. 시범용 주민증은 여러 회사의 합작품이다. 디자인과 발급은 조폐공사, IC칩은 국내 반도체회사, 그리고 칩 안에 들어가는 소프트웨어는 데이콤에서 만들었다. 전자주민증은 어떻게 만들어져 있는지 알아보자.
7가지 카드를 하나로
전자주민증에는 주민등록증, 운전면허증, 의료보험증, 국민연금증서, 인감증명서, 주민등록등·초본, 그리고 지문까지 모두 7가지의 정보가 IC칩에 저장된다. 이 모든 정보는 ‘주민망’ 이라는 종합정보시스템에 기록된다. 카드의 재질은 플라스틱이고, 겉면에는 복제방지를 위해 홀로그램으로 ‘대한민국’이라는 글자를 새겨 특수처리를 했다.
주민증 앞면에는 사진, 이름, 주민등록번호, 주소, 발행날짜, 발행인을 새겼고, 뒷면에는 지문을 인쇄하기로 했다. 시범용 주민증 뒷면에 있는 의료보험증은 실제로 발급될 주민증에는 글로 새기지 않을 예정이다.
지금은 주민등록등·초본이나 인감증명서가 필요하면 동사무소나 사는 곳과는 틀린 본적지까지 가야 한다. 그러나 전자주민증은 판독기만 있으면 필요한 내용을 열람할 수 있기 때문에 주민증을 제시하기만 하면 된다. 더 이상 종이인쇄가 필요없는 것이다. 꼭 종이로 인쇄된 것이 필요할 경우는 곳곳에 설치될 무인등·초본열람기나 동사무소에서 인쇄하면 된다.
또 이사나 결혼같은 변경사항이 생기면, 가족 중 한사람의 주민증만 가지고 동사무소에 가서 신고를 한다. 그러면 다른 가족의 변경사항은 자동으로 변경되고 변경사항은 무인 등 초본열람기에서 확인할 수 있다. 현재 사용하고 있는 의료보험증의 내용뿐 아니라 개인의 혈액형이나 알르레기 유무 같은 긴급 의료사항도 간단하게 기록된다. 경찰의 일도 간단해진다. 일일이 전화로 신분확인을 하지 않고 휴대용 신분확인기와 면허확인기를 통해, 수배자, 수배차, 면허 확인이 가능하고, 그 자리에서 교통위반 범칙금 납부통지서를 출력할 수 있다.
전자주민증은 분실을 해도 타인이 사용하는 것을 방지할 수 있다. 개인마다 비밀번호가 있어 비밀번호를 모를 경우 열람이 불가능하도록 만들어져 있기 때문이다.
IC 카드가 태어난 이유
전철 티켓, 은행에서 만들어주는 통장, 신용카드, 현금카드 등은 자기띠(MS, magnetic stripe)를 정보저장 매체로 사용하는 자기카드다. 그런데 자기띠는 저장할 수 있는 정보량이 최대 2백26문자 밖에 되지 않는데다, 자석을 갖다대면 기록된 정보가 지워져 버린다. 또 온도나 습도에 약하고, 복제가 가능해 보안상의 문제가 생겼다.
이런 자기카드의 문제점을 해결하기 위해 다량의 정보를 저장할 수 있고 복제가 어려운, IC(integrated circuit, 집적회로)칩을 사용한 IC카드(일명 스마트카드)가 만들어졌다. 현재 우리나라에서 사용하고 있는 버스카드가 IC카드다. 버스카드는 수십만번 재충전이 가능하고, 판독기에 접촉하는 것만으로 판독이 가능하다.
물론 자기띠도 재충전이 가능하다. 그러나 자기띠를 사용하는 전철승차권은 재충전하는 것보다는 새로 만드는 것이 더 저렴하기 때문에 재충전기능을 부여하지 않았다. 그리고 판독할 때도 자기띠를 모두 훑어야 하기 때문에 사용하기 불편하다.
IC카드는 1974년 프랑스의 로랑 모레노가 최초로 발명했다. 그후 프랑스에서는 1984년 공중전화카드, 1988년에는 신용카드에 도입하면서 실용화됐다. 그러나 국민 전체의 신분을 증명해주는 전자주민증은 세계에서 처음이 될 것으로 예상된다.
정보와 보안의 총아, IC칩
플로피디스크에 정보를 저장하려면 포맷(format)을 사용해 플로피디스크를 트랙으로 나누는 것처럼 자기띠도 트랙으로 나눠 정보를 저장한다. 그러나 플로피디스크에 정보를 저장하는 방식과는 다르기 때문에 용량을 표시할 때 바이트(byte) 대신 ‘문자’ 라는 용어를 사용한다.
자기띠는 트랙(track)1, 2 ,3으로 구분되는데 트랙1은 79문자, 트랙2는 40문자, 트랙3은 1백7문자를 저장할 수 있다. 하지만 자기카드를 모든 나라에서 같이 사용하기 위해 트랙1은 항공사, 트랙2는 신용카드, 트랙3은 금융기관으로 각각 나눠 사용하고 있다. 그래서 최대 저장가능한 2백26문자 모두를 사용할 수 없다. 트랙 3은 트랙 1, 2와는 달리 정보에 대해 읽기/쓰기가 가능하다.
반면 IC칩은 2-8k바이트나 되는 대용량의 정보를 기록할 수 있기 때문에 다기능, 다목적으로 사용가능하다. IC카드의 가장 큰 장점은 막강한 보안성에 있다. IC칩에는 저장된 정보에 비허가자의 접근을 막는 암호알고리즘과, 키(key, 비밀번호)라는 보안장치가 들어있다. 암호알고리즘은 IC칩에 저장되는 자료를 암호화한다.
그래서 저장된 자료를 타인이 읽게 돼도 본래의 내용을 알 수 없다. 또 IC칩 내부의 자료에는 키값이 부여돼 있어 이 키값을 모르면 칩 내부자료의 접근이 차단되도록 설계된다.
IC칩은 왜 노란색일까
IC칩이 노란색으로 반짝거리는 이유는 바로 금도금이 돼있기 때문이다. 왜 금을 썼을까? IC카드는 판독기가 있어야 IC칩 내부에 정보를 기록/저장할 수 있다. IC카드가 판독기와 연결될 때 전도성이 좋게 하기 위해 금도금을 한다. 전도성이 좋은 물질은 금 이외에도 많이 있지만, 가공성이나 색깔이 좋아 금을 사용하게 됐다. 금으로 도금된 부분은 COB(chip on board)라고 한다. COB 는 IC칩과 판독기를 연결해 주는 역할을 하는 8개의 접점이 있는데 제각기 고유의 역할이 있다. 이 접점들은 국제표준화기구인 ISO의 규격에 따라 만들어진다.
전자주민증에 사용하는 IC칩에는 자체연산기능이 가능한 중앙처리장치(CPU)와 기억장치인 메모리 영역, 그리고 통신기능을 하는 입출력장치(I/O, input/output)로 구성된다.
만약 주민등록등본을 열람하고 싶다고 하자. 주민증을 판독기에 넣으면, COB를 통해 주민증에 있는 IC칩에 전원이 연결되면서 CPU가 칩을 작동시킬 준비를 한다. 이때 판독기와 연결된 단말기에서 주민등록등본을 읽고 싶다고 명령하면, 이 명령은 버스(bus)라는 통로를 통해 메모리 영역으로 전달된다. 메모리 영역에 저장돼 있던 정보는 명령에 따라 입출력장치를 통해 단말기에 전달된다. 그러면 주민등록등본의 내용을 단말기 화면에서 열람을 할 수도 있고, 종이에 출력할 수도 있다.
좀 더 자세히
IC칩의 기억장치는 롬(ROM), 램(RAM)과 EEPROM으로 구성된다. ROM은 기본적인 운영을 관장하는 것으로 읽기만 가능한 기억영역이고, 전원이 없어도 저장된 정보가 지워지지 않는다.
RAM은 연산에 필요한 정보를 잠시 저장해 사용하는데, 전원이 없으면 사용중인 정보가 지워진다. EEPROM은 읽기/쓰기가 가능하면서 전원이 없어도 정보가 지워지지 않는다. 이런 메모리를 비활성메모리라고 하는데, 개인정보나 공중전화 요금 등을 저장하는데 사용한다. 한 예로 전자계산기의 종류에 따라 어떤 것은 사용하다 전원을 껐다 다시 켜면 계산하던 내용이 완전히 사라지는 것도, 사라지지 않는 것도 있다. 사라지는 경우는 RAM을 사용한 전자계산기고, 계속 저장돼 있는 계산기는 EEPROM을 사용한 것이다.
전자주민증에 EEPROM을 사용한 이유는 판독기에 연결되지 않을 때 주민증에는 전원이 공급되지 않기 때문에 전원이 공급되지 않은 상태에서도 저장된 정보가 사라지지 않게 하기 위해서이다.
ROM : read only memory
RAM : random access memory
EEPROM : electronic eraserable programmable R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