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몸서리치도록 후덥지근한 요즘, 시원한 아이스크림과 밀크셰이크가 입맛을 당긴다. 그렇다고 맘껏 먹고 마실 수는 없다. 노출의 계절인 만큼 몸매에 신경을 써야 하기 때문이다. 맘껏 먹어도 살찔 걱정 없는 아이스크림이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그렇지만 칼로리를 줄이느라 맛이 밋밋한 저지방 아이스크림 같아서는 안 된다. 달콤한 맛은 보장하되 살은 찌지 않게 하는 아이스크림을 과연 맛볼 수 있을까.


실제 살 찔 염려가 없음은 물론 오히려 맛이 더 좋은 아이스크림을 현실에서 볼 날이 머지않은 것 같다. 바로 나노기술을 통해 가능해졌다. 나노기술은 사람의 맨눈에는 보이지 않는 작은 원자나 분자 수준에서 물질을 합성하고 조립하며 제어하는 기술인데 그동안 전자, 통신, 재료, 국방, 항공우주, 생명공학 분야에 주로 응용돼 왔다.최근 나노기술은 식품으로 자신의 영역을 넓히고 있다.
‘나노푸드(nanofood)’라는 신조어도 생겨났다. 나노푸드란 나노기술을 이용해 재배, 생산, 또는 포장을 한 식품을 말한다. 나노푸드는 상상에서나 가능한 식품을 실현하고 있다. 과식할 걱정 없이 오랫동안 포만감을 주면서도 살은 안 찌는, 그러면서도 맛은 더 풍부해진 아이스크림이 좋은 예다. 하지만 나노푸드가 꿈꾸는 세상은 여기에 그치지 않는다.

소금의 양은 확 줄였는데도 짠맛 나는 감자칩, 전혀 밋밋하지 않은 저지방 마요네즈, 훨씬 달콤하면서도 칼로리가 확 줄어든 초콜릿, 더 반질반질해 먹음직스러운 빵이 머지않아 등장할 전망이다. 흡수가 잘 안되거나 맛이 없은 약물과 영양분을 맛깔스럽게 바꿔주기도 한다.

과식 않고 포만감 주는 막(膜) 기술

영국 식품연구소(IFR) 이머징 파트의 책임자인 빅터 모리스 박사는 최근 5년간 나노기술의 눈과 손이 되는 원자현미경(AFM)을 이용해 식품을 연구하고 있다. 원자현미경으로 식품을 이루는 분자의 구조를 파악해 음식물의 맛과 질을 향상시키고자 하는 연구다. 모리스 박사의 연구 주제에는 부드러우면서 포만감을 느끼게 해주는 아이스크림을 개발하는 것이 포함돼 있다.

아이스크림을 비롯해서 마가린과 쇼트닝, 샐러드 드레싱과 같은 고지방 식품에는 물과 지방이 잘 섞이게 하는 유화제가 들어 있다. 유화제를 넣은 식품은 걸쭉해지고 부드러워져 목으로 잘 넘길 수 있다. 물과 기름이 분리되는 현상을 지연시켜 유통기한도 늘어난다.

고지방 식품에 첨가한 유화제는 식품에 들어 있는 작은 덩어리 상태의 지방 성분을 막(膜)으로 둘러싼다. 이 막은 서로 섞이지 않는 물과 지방을 오랫동안 혼합된 상태로 유지하는 역할을 한다.

모리스 박사는 유화제의 나노구조를 바꿔 체내에서 지방의 흡수를 차단하는 방법을 찾고 있다. 유화제는 대부분 위에서 분해된다. 지방을 둘러싸고 있던 유화제 막이 위에서 거의 파괴되기 때문이다. 하지만 일부는 소장으로 내려갈 때까지 분해되지 않는다. 모리스 박사는 이 점에 착안해 유화제 코팅막이 소장의 끝부분인 회장에 이르기 전에는 절대 분해되지 않도록 하는 방법을 찾고 있다. 유화제를 이루는 물질을 번갈아 결합하면 코팅막이 단단해져 회장에 도착하기 전까지 분해되지 않을 수 있기 때문이다.

연구진은 이번 연구가 성공하면 적게 먹어도 충분히 포만감을 느끼게 만드는 식품을 개발할 수 있을 것으로 보고 있다. 코팅막 속에 있던 지방이 회장에서 한꺼번에 노출돼면 우리 몸이 충분히 배가 불렀다고 착각을 하기 때문이다. 이런 상황을 ‘회장 브레이크(ileal brake)’라고 한다. 우리 몸이 고지방 식품을 섭취했다고 오인하고 ‘더는 과식하면 안 돼’라며 브레이크를 거는 현상이다.

소금량 90% 줄여도 맛은 그대로


나노기술을 활용해 지방 섭취를 줄이는 방법은 더 있다. 바로 ‘나노캡슐화’가 또 다른 사례다. 마요네즈 같이 유화제가 들어가는 고지방 식품의 경우 칼로리를 줄인 저지방용이 있다. 지방을 절반으로 줄인 대신 물로 대체한 식품이다. 문제는 지방을 줄인 탓에 부드러움이 덜해지면서 맛이 확 떨어진다는 점이다.

하지만 나노입자를 활용하면 이 문제를 풀 수 있다. 수nm(나노미터, 1nm=10-9 m) 크기의 지방 캡슐 안에 물을 감추면 된다. 칼로리는 반으로 줄여도 캡슐을 구성하는 지방 때문에 맛과 씹는 질감은 일반마요네즈와 전혀 다르지 않다.

최근 나노캡슐화는 식품업계에서 큰 반향을 얻고 있다. 식품산업에 새로운 미래를 가져다줄 수 있다는 기대감 때문이다. 저지방 마요네즈에서 보듯이 나노캡슐화는 사람들에게 원하는 맛을 선사하면서도 칼로리 섭취를 줄여준다. 반대로 맛이 없는 영양성분들을 나노캡슐에 넣으면 영양가가 높으면서 맛이 떨어지지 않는 식품을 만들 수 있다.

심혈관에 좋다고 해서 요즘 인기가 높은 ‘오메가3’과 같은 ‘어유(魚油)’ 제품은 느끼한 맛 때문에 먹는 데 불편하다. 그런 어유를 나노캡슐 안에 넣으면 다양한 식품에 활용할 수 있다. 예를 들어 어유를 뿌린 빵이 등장할 수 있다. 나노캡슐 덕분에 어유뿐 아니라 비타민, 미네랄 같은 성분들 역시 입맛을 속이는 게 가능하다.

한편에선 나노입자를 이용해 칼로리를 낮추는 방법이 연구되고 있다. 미국 텍사스 주에 위치한 소규모 식품업체인 RBC 라이프 사이언시스는 ‘슬림 셰이크(Slim Shake)’라는 다이어트용 코코넛 분말을인터넷에서 팔고 있다. 이 제품이 인기를 끄는 이유는 다이어트용이지만 맛이 전혀 떨어지지 않기 때문이다.

맛의 비결은 4∼6nm의 이산화규소인 실리카 나노입자에 숨어 있다. 실리카는 지구상에서 흔히 발견되는 암석의 구성 성분이다. 수μm(마이크로미터, 1μm=10-6 m) 크기의 실리카는 수십 년간 껌 같은 제품을 하얗게 만드는 백색제로 쓰여 왔다. 이런 실리카를 수nm 크기의 입자로 만들어 여기에 초콜릿이나 코코아 성분을 코팅한다. 이렇게 만든 것이 ‘슬림 셰이크’다. 회사 측은 슬림 셰이크가 평범한 초콜릿이나 코코아 제품보다 칼로리는 적고 맛이 더 좋다고 설명한다.

그 비결은 표면적을 증가시킨 데 있다. 입자 크기가 작을수록 단위부피당 표면적은 오히려 넓어지기 때문이다. 결국 혀에 닿는 입자의 전체 면적은 늘어나 초콜릿의 단맛을 더 잘 느낄 수 있다.

소금의 양은 줄이면서도 짠맛은 그대로 유지하는 감자칩도 같은 원리를 이용한다. 보통 수mm 크기인 소금 결정을 수nm 크기로 작게 만들면 적은 양으로도 오히려 짠맛을 높이는 게 가능하다.
2008년 영국의 이스트미드랜드 나노기술연구소의 발표에 따르면 나노소금을 이용하면 감자칩에 사용되는 소금을 90% 줄이고도 맛을 그대로 낼 수 있다.

나노식품 100가지 이상 유통 중


소비자들에게 나노푸드는 아직은 생소한 개념이다. 대부분 소비자들은 식탁에 올라온 나노푸드가 거의 없거나 극소수일 것으로 생각할 것이다. 그러나 잘 알려지지 않아서 그렇지 꽤 많은 제품들이 이미 시장에 나와 있다.

2008년 3월 세계적인 환경단체인 ‘지구의 벗’은 ‘실험실 밖으로 나와 우리의 접시 위로: 식품과 농업에서의 나노기술’이라는 보고서를 발표했다. 이 보고서에 따르면 나노입자가 들어간 식품이나 식품 관련 제품은 이미 100가지 이상이 시장에서 유통되고 있다.

물론 이 수치는 이 단체가 직접 확인한 결과는 아니다. 식품 회사들이 자체적으로 보고한 자료와 미국 워싱턴 DC에 자리한 ‘우드로 윌슨 국제학술센터’가 진행한 조사를 바탕으로 했다. 이 때문에 실제 시장에는 발표된 수치보다 훨씬 많은 나노푸드가 등장했을 것으로 추정되고 있다. 우리도 모르는 사이에 나노푸드가 식품점을 잠식해 들어가고 있는 셈이다.

요즘 식품 관련 학회에 가면 나노푸드가 화두임을 어렵지 않게 알 수 있다. 2007년 스위스에 본부를 둔 과학 기술 관련 비즈니스 컨설턴트 회사인 ‘헬무트 카이저 컨설턴시’는 ‘나노푸드 2040’이라는 제목의 보고서를 발표했다. 이에 따르면 앞으로 20년간 나노기술이 식품의 생산과 소비에 막대한 변화를 가져올 것이다. 조만간 우리 식탁에는 나노푸드가 점점 더 많이 올라올 전망이다.

미래에는 나노푸드가 우리 식탁에서 상당한 비중을 차지할 것으로 예상된다. 그러나 소비자들은 좀처럼 몸으로 실감하기는 어려울 듯하다. 왜 나노푸드는 이처럼 조용히 우리 식탁 위에 오르려는 것일까. 식품업계에서 나노기술을 활용했다고 적극적으로 알리기를 꺼려하기 때문이다. 식품업계는 나노푸드가 과거 유전자조작(GM) 식품 같은 취급을 받을까 봐 두려워하고 있다. 아직까지 적극적으로 나노푸드를 내세우지 못하는 이유다.

특히 소비자가 알기 어려운 것은 식품의 나노포장 분야다. 지구의 지구의 벗의 보고서에 따르면 400~500개의 나노포장 제품이 이미 시장에서 유통되고 있다. 사과가 썩는 것을 막는 왁스 코팅도 그중 하나다. 이는 사과를 덮는 포장용지의 막 두께를 5nm 정도로 얇게 만드는 기술이다. 전문가들은 10년 안에 나노기술을 이용한 식품포장이 전체 포장에서 25%를 차지할 정도로 비중이 커질 것이라는 전망을 내놓고 있다.

소비자가 판단할 정보, 절대 부족

문제는 대부분의 소비자가 이런 상황을 모르고 있다는 점이다. 게다가 안전성도 정확히 확인되지 않고 있다. 예를 들어 포장에 쓰인 나노물질이 식품에 침투해 들어간다면 어떻게 될까. 이미 상당수 소비자들이 이런 식품을 먹고 있을지도 모른다.

게다가 식품산업은 경쟁이 워낙 치열해 이윤을 많이 남기지 못한다. 식품업계가 막대한비용이 들어가는 안전성 평가를 완벽히 할지는 미지수다. 소비자들이 나노푸드에 대한 안정성 평가도 제대로 이뤄지지 않은 채 출시된 제품을 먹는 ‘실험동물’로 전락할 가능성도 그만큼 높다.

전문가들은 나노푸드에 대한 우려의 목소리를 내고 있다. 나노물질은 워낙 작아서 다른물질과 잘 반응한다. 게다가 체내의 세포막을 뚫고 들어갈 수 있다. 혈관 속으로 침투한나노물질은 우리 몸 어디든 갈 수 있다. 이런 경우 우리 몸은 어떤 반응을 하게 될까. 아직은 누구도 확실한 답을 주지 못하고 있다.

이 문제는 실리카 같은 꺼림칙한 나노입자에만 국한되지 않는다. 우리 몸에 좋다는 비타민이나 미네랄 같은 영양성분도 나노입자가 되면 문제를 일으킬 수 있다. 이들 나노성분이 혈관으로 갑작스럽게 들어갈 경우 약물 과다 복용을 일으킬 가능성이 높아진다.

현재 한국을 비롯해 나노기술 선진국인 미국도 이에 대한 구체적인 규정이나 제한을 마련하고 있지 않다. 정확한 데이터가 없으니 문제가 없다는 식이다. 이런 반응에 대해 환경단체들은 식품회사가 스스로 안전성을 조사할 것을 요구하고 나섰다. 소비자가 알아보기 쉽도록 나노푸드에 라벨을 달도록 조치를 취해야 한다고 강력히 주장하고 있다. 최소한
소비자에게 스스로 선택할 권리를 줘야 한다는 입장이다.

최근 ‘블리스트리’라는 건강과 웰빙 관련 사이트에서 설문조사를 실시했다. 포만감을느끼게 해주면서 다이어트에 도움이 되는 나노푸드가 등장한다면 제품을 구매할 의사가 있느냐는 질문이다. 대답은 사먹어 보겠다는 쪽이 많았다. 안전성보다 다이어트에 효과가 있다는 게 구매 욕구를 이끈 셈이다. 설문에 응한 소비자 가운데 절반은 “사먹겠다”고 답했다. 또 25%는 “위험을 알아본 다음에 구매를 결정하겠다”고 밝혔으며, 나머지 25%는 “전혀 구매할 생각이 없다”고 답했다.

나노기술은 분명 두 얼굴을 갖고 있다. 나노푸드는 인류의 상상을 실현시켜줄 수 있다.하지만 우리는 그 뒷모습을 제대로 알지 못한다. 나노푸드에 대한 우리의 경각심이 필요한 때다.

2010년 07월 과학동아 정보

  • 박미용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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