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라이브러리









PART Ⅱ 세균(박테리아) 병주고 약주는 작은 거인

병원체로서 인간과 기나긴 투쟁의 역사를 갖는 세균은 산업적으로 유용하게 쓰이기도 한다.

전염병이 인류의 주된 공포의 대상에서 벗어난 것은 불과 얼마전의 일이다. 인간과 전염병의 오랜 투쟁의 역사에서 인간이 우위에 서게 된 계기는 약1세기 전 전염병의 정체가 세균임이 밝혀지고부터였다. 그 이전엔 인간과 전염병의 끝없는 싸움은 언제나 전염병의 일방적 승리로 끝났다. 대표적인 예가 페스트.

「페스트, 빨리 멀리 달아나라」

이미 기원후 54년부터 창궐하기 시작했던 페스트는 1350년경 아시아에서 시작, 지중해를 거쳐 유렵과 러시아를 공포의 도가니속으로 몰아넣었다. 전유럽 인구의 4분의 1에 상당하는 2천5백만명의 사망자를 낸 페스트는 3세기가 지난 17세기에 다시 유럽에 죽음의 그림자를 드리웠다.

원래 '사람의 병'이 아닌 '쥐의 병'이 었던 페스트는 쥐벼룩에 의해 전염되는 치명적인 병으로, 감염된 사람은 온몸에 콩알만한 검은색 발진이 생기고 하루를 못넘기고 사망한다. 폐페스트의 사망률은 99%, 선페스트의 경우는 70~80%이다. 이처럼 1mm의 1천분의 1남짓한 작은 세균이 막대한 인명을 앗아간 이유는 그 병을 페스트균이 일으킨다는 사실이 알려지지 않았기 때문이다. 사람들의 대응은 당시의 속담처럼 "페스트가 발생하면 빨리, 멀리 달아나라. 그리고 천천히 돌아오라"는 정도에 불과했다.

세균이 병을 일으킨다는 과학적 근거는 19세기에 들어와 비로소 마련됐다. 프랑스의 '파스퇴르'는 생물의 자연발생설을 부정하고 살균법 및 무균배양법을 개발해 현대세균학에 새로운 이정표를 세웠다. 이어 독일의 '코흐'는 1876년 탄저균이 소의 탄저병을 일으킨다는 사실을 실험적으로 입증했고, 제자들과 함께 결핵균과 콜레라균을 각각 1882년과 83년에 발견했다. 페스트균이 발견된 것은 1984년, 영국의 '에르상'에 의해서였다.

구균, 간균, 나선균

세균은 박테리아라고도 하며, 맨눈으로 볼 수 없는 아주 작은 단세포 생물이다. 크기는 작은 것이 0.2μ나(1μ는 1천분의 1mm),큰 것은 80μ에 이르는데 보통 0.5~2μ의 것이 많다. 세균을 현미경으로 들여다 보면 고등동물의 세포와는 다른 모습들을 발견할 수 있다.

우선 세균은 핵을 싸는 핵막이 없다. 따라서 고동생물을 진핵생물(眞核生物)이라 부르는데 반해 세균은 원핵생물(原核生物)이라 한다. 핵속에는 단백질을 합성하는 리보솜과 DNA가 들어있으나, 고등생물에서 볼 수 있는 미토콘드리아 소포체 골기체는 발견할 수 없다. 어떤 종류의 세균은 핵바깥에 플라즈마라는 고리모양의 DNA를 갖고 있어 유전공학에 유용하게 쓰이기도 한다.

세균세포의 고유한 형태는 세포벽에 의해 결정되며 크게 공모양의 구균, 막대처럼 생긴 간균 그리고 나선계단 모양으로 꼬인 나선균으로 나뉜다. 구균에는 폐렴균처럼 균체 두개가 붙은 쌍구균이나 여러개가 연결되어 있는 연쇄구균 그리고 구균이 포도송이처럼 뭉쳐있는 포도상구균 등이 있다. 간균에는 디프테리아균 결핵균 파상풍균 등이 속한다. 나선균에는 매독균 비블리오균 등이 대표적이다. 한편 어떤 세균들은 운동기구를 지니는데, 콜레라균 등은 길다란 편모를 이용해 활발히 운동하며, 대장균은 수백개의 섬모를 움직여 숙주세포에 들어붙는다.

병을 일으키는 세균(병원세균)은 다른 동물을 통하거나 직접 인체에 침입하게 된다. 표면의 점액으로 인체의 숙주 세포에 자리를 잡고 나서 빠른 속도로 번식해 염증을 일으키면 인체는 병에 걸리게 되는 것이다. 이때 병원균이 내는 독소가 발병의 주원인이다.

파상풍균 디프테리아균 등은 단백질성의 균체외(菌體外) 독소를 분비한다. 파상풍균은 병원세균 중에서도 가장 강력한 독소를 만들어내는데 이 균을 1주일간 배양한 여과액 1㎖에는 10~20만 마리의 쥐를 죽일 수 있는 독소가 있다고 한다. 콜레라균 적리(赤痢)균 녹농균 등은 다당체(多糖體)를 주체로 한 균체내 독소를 생산한다. 이 독소는 균체가 죽으면 외부로 누출돼 독성을 일으킨다.

몸속 세균의 잠재적 위협
 

디프테리아균, 포도상구균, 콜레라균, 장염비블리오균


한편 우리몸에는 침입해온 세균을 막아내는 방어기구가 마련돼 있다. 1차적인 방벽 역할을 하는 게 피부이다. 어른이라면 총면적이 1.6㎡에 달하며 약산성으로 미생물을 침입을 막는다. 피부에서 나오는 땀도 산성을 띠어 살균작용을 하며 눈물과 침도 비슷한 기능을 갖고 있다. 호흡기로 침입한 세균은 기도의 점막에 있는 섬모세포에 의해 걸러져 밖으로 배출된다.

일단 인체에 침입하는데 성공한 세균을 기다리는 것은 세포차원의 면역기구. 면역에 관계하는 주요한 세포로는 백혈구 임파구 그리고 대식(大食)세포가 있다. 백혈구는 잘 알려진대로 세균을 잡아먹는다. 염증이 났을 때 생기는 고름은 바로 이 백혈구와 세균이 싸운 잔해이다. 임파구는 침입해온 세균을 항원으로 인식하고 그에 대한 항체를 형성해 세균을 파괴해 버린다. 우리몸 어느 조직에나 분포하고 있는 큰 아메바모양의 대식세포는 세균은 물론 체내의 늙은 세포를 포식, 소화한다.

이처럼 면역기구와 방비기구가 갖춰져 있음에도 불구하고 병에 걸리는 이유는 무얼까? 그것은 우리몸의 저항력이 떨어져 세포에 대한 방위기구가 제역할을 못하거나, 항균제나 스테로이드제를 투여했을 때 그 약이 듣지 않는 다른 세균과 곰팡이가 이상증식하기 때문이다. 최근에는 나중 유형의 감염증이 많아져 주목을 끌고 있다.

우리몸속에는 많은 세균이 살고있다. 이들은 보통 해를 미치지 않고 오히려 외부의 세균침입을 막는 등 유리한 작용을 한다. 대장균이 큰창자에서는 셀룰로스를 분해하는 등 유익한 역할을 하는 것은 이러한 공생관계의 대표적 예다.

몸속에 항상 존재하는 세균을 부위별로 알아보면 (표1)과 같다.
 

(표 1) 우리몸에 상존하는 세균


몸속에 상존하는 세균은 몸의 저항력이 떨어지거나 조건이 변할 때 무서운 병원균으로 돌변한다. 예컨대 외음부를 산성으로 유지해 세균의 침입을 막아주던 유산간균의 수가 출산 직후 줄어들면 마이코플라즈마라는 세균이 감염돼 산욕열을 일으킨다. 또 에이즈 등에 걸려 면역기능이 상실되면 독성이 낮은 세균들도 맹렬한 감염을 일으키기 때문에 무균실에 갇혀 있어야 한다.

세균은 원시적인 생물이지만 1천7백종 이상의 다양한 종이 있고 특수한 환경에도 놀라운 적응력을 보는다. 보통 동식물에 기생하는 세균은 30~40℃의 온도에서 잘 자라지만 극지방이나 1백℃ 가까운 온도에서도 번창하는 세균이 허다하다. 해저화산 근처에 서식하는 어떤 세균은 1백10℃에서도 자라는데 80℃로 온도가 내려가면 겨울잠을 잔다.

그밖에도 가혹한 조건에서도 태평하게 살아가는 세균들이 많다. 산성 온천에서 발견된 어떤 미생물은 pH1의 강산성 상태에서 살 수 있다는 사실이 밝혀졌다. 이는 원시지구에 내렸던 황산비속에서도 미생물이 서식했을 지 모른다는 시사를 해준다. 이처럼 극한조건에서 생활하는 세균들은 최근 활발히 연구되고 있는 '바이오리액터'에 활용될 가능성을 갖고 있다.

세균은 병원체로서 인류를 오랫동안 괴롭혀 왔지만 동시에 발효, 항생물질 생산, 그리고 최근의 유전공학에 매우 귀중한 역할을 수행하고 있기도 하다. 이때 세균의 가장 훌륭한 특성은 빨리 번식한다는 점. 대부분의 세균은 세포가 2등분하는 간단한 횡분열로 증식한다. 대장균의 경우 불과 20분만에 한 세대가 끝나는데, 조건이 맞으면 하나의 대장균 세포가 하룻밤새 20조개로 불어날 수 있다. 이런 특성 때문에 세균은 생물공학 발전에 커다란 기여를 하고 있다.
 

암세포에「죽음의 키스」를 하는 임파구^가운데 작은 구가 임파구.암세포는 돌기를 내 싸우지만 임파구는 암세포의 세포막을 붕괴시켜 죽인다.
 

이 기사의 내용이 궁금하신가요?

기사 전문을 보시려면500(500원)이 필요합니다.

1987년 09월 과학동아 정보

  • 조홍섭 기자

🎓️ 진로 추천

  • 생명과학·생명공학
  • 의학
  • 화학·화학공학
이 기사를 읽은 분이 본
다른 인기기사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