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멸종위기종 산양의 복원 현장 설악산에 가다


“네 마리는 저쪽 능선에 있는 것 같고, 한 마리는 잘 안 잡히네.”

국립공원관리공단 멸종위기종복원센터 북부팀의 조재운 연구원이 산양의 위치를 추적하기 위해 위성위치확인시스템(GPS) 수신기를 높이 쳐들며 말했다. 조 연구관이 추적하고 있는 산양들은 복원센터 뒤뜰에 있는 계류장에서 한동안 지내다가 지난 주 5월 3일에 방사된 녀석들이다.

녀석들은 지난 2~3월에 눈 쌓인 설악산 능선 자락에서 탈진한 상태로 발견됐는데, 오랫동안 먹이를 먹지 못한 데다 눈이 많이 쌓여 사람이 다가가는데도 도망가지 못했다고 한다. 늦은 봄까지 전국적으로 20여 마리의 산양이 아사한 상태로 발견됐다더니 멸종위기종들에게 이번 겨울과 봄이 얼마나 끔찍한 재앙이었을지 짐작할 수 있다.

“너무 멀리 떨어진 곳에 있네…. 지금 올라가기는 늦었고, 산양이 사는 곳이나 한번 둘러보실래요?”

팀을 이끌고 있는 이배근 박사가 제안했다. 설악산까지 와서 산양의 터럭 하나도 보지 못한 채 돌아가는 건 아닌지 불안해하던 기자는 선뜻 따라가겠다고 나섰다. 다만 이 박사가 그 다음에 한 말을 조금 일찍 들었더라면 좀 더 생각해봤을 테지만.

“근데 그거 아시죠? 산양이 바위타기 명수라는 거. 분리된 두 개의 발가락으로 거의 수직의 바위도 움켜쥐어요. 신발은…, 그래도 등산화를 신으셨네. 가시죠.”



GPS 추적해 산양의 활동범위 새롭게 밝혀

2009년 11월 25일에 개소한 멸종위기종복원센터 북부사업소는 강원도 설악산 야영장에 자리 잡고 있다. 이곳에서는 사향노루, 수달 등 멸종위기종으로 분류된 모든 포유류의 서식지를 관찰하고 대상 종을 연구하고 있다. 현재는 산양 복원 사업에 집중하고 있다. 3년 안에 설악산에 서식하고 있는 산양 개체수를 파악하는 것이 최우선 목표이다. 이 박사는 “산양의 개체수와 서식밀도를 파악해야 구체적인 복원 방법도 결정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산양이 다니는 길목 곳곳에는 열이 감지되는 물체의 움직임을 찍는 무인 센서 카메라가 설치돼 있다.

산양의 생태를 조사하는 연구도 북부팀의 임무 중 하나다. 북부팀은 세계 최초로 산양 목에 GPS추적기를 달아 연구하고 있다. GPS를 가동한 지 일주일밖에 안 됐지만 벌써부터 눈에 띄는 결과들이 나오고 있다. 이제껏 산양은 활동 범위가 좁은 편이라 능선 하나 정도를 맴돌 것이라고 생각돼 왔다. 하지만 GPS로 추적한 결과 산양은 여러 개의 능선을 넘어다닐 뿐 아니라 군(郡) 경계도 옮겨 다니는 것으로 나타났다. 이 박사는 “자료가 어느 정도 쌓이면 그동안 어림잡아 파악해온 산양의 생태를 객관적으로 파악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산양의 흔적을 찾으러 가는 길은 특별하다. 산양을 비롯한 야생동물들이 평소 다니는 그 길이다. 곳곳에 노루의 배설물과 멧돼지가 땅을 판 흔적들이 보였다. 설악산처럼 등산객이 많이 찾는 산도 등산로를 약간 벗어나면 동물원에서나 봄 직한 동물들이 뛰어다니는 길이 있다.사실 국내 산양에 대해서는 알려진 바가 거의 없다. 산양이라고 하면 뿔이 도너츠처럼 휘어진 외국 산양이나 우유 짜는 산양을 떠올리는 사람이 많다. 하지만 국내에 사는 산양은 소과 산양속 동물이고 우유 짜는 산양은 소과 염소속의 한 종류라 속이 다르다.


국내에 서식하고 있는 1종의 산양은 러시아와 북한에 살고 있는 산양과 같은 종류이다. 산양은 이 박사가 바위타기 명수라고 소개했지만 항상 바위에 매달려 살지는 않고 대부분의 시간은 일정한 곳에서 꼼짝 않고 풀을 뜯거나 되새김질하며 보낸다. 크기는 염소와 비슷하고 염소처럼 뿔도 났지만 눈이 좀 더 정면에 위치해 있다. 날카로운 원통형의 뿔은 암수 똑같이 머리 위에 두 개씩 나 있다. 산양은 1900년까지만 해도 전국적으로 1만여 마리가 고르게 분포할 정도로 풍부한 개체수를 자랑했다. 하지만 밀렵과 서식지 파괴로 인해 급격히 수가 줄어 현재는 700~800마리 정도만 강원도 지역을 기점으로 몰려 있을 것으로 추정되고 있다.

전망 좋은 명당, 산양 화장실에 앉다

계곡을 따라 한참을 걷다가 본격적으로 능선을 타기 시작했다. 산양의 서식지가 있는 능선은 경사가 매우 급해 산양처럼 네 발(?)로 디디며 올라갈 수밖에 없었다. 목적지는 거대한 바위가 병풍처럼 둘러쳐 있는 능선 꼭대기였다. “여기에, 이쪽 방향으로 와서 앉아 보세요.” 무언가 있을까 싶어 이 박사가 시키는 대로 가서 앉았다. “거기가 ‘산양 똥자리’예요.” “네? 뭐라고요?” 과연 염소 똥처럼 생긴 동글동글한 산양 배설물이 바닥에 한가득 있었다. 냄새가 난다거나 질퍽거린다는 느낌은 없었지만 그래도 산양의 화장실에 앉아 있다고 생각하니 기분이 묘했다.

“산양은 이렇게 뒤는 막혀 있고 앞은 뻥 뚫려 있는 장소에서 일을 봐요. 행여 뒤에서 적이 오면 바위에 몸을 숨기기 좋고 밑에서 누가 올라오는지 잘 살필 수 있기 때문이죠. 한번 여기 서서 내려다보세요. 계곡이 한눈에 펼쳐지는 게 경치가 끝내주죠. 세상에 이만한 화장실이 또 있을까요.”

산양은 일정한 장소에서만 배설을 하는 특징이 있다. 이 ‘명당 화장실’도 산양들이 오랫동안 사용했는지 색이 회색에 가깝게 변한 배설물이 남아 있었다. 조 연구원은 “산양의 배설물은 색이 윤기를 띠는 검은색이면 약 일주일 이내, 회녹색이면 약 4개월 이상 전에 배출된 것으로 분류한다”고 설명했다. 그는 또 “무엇을 먹느냐에 따라서도 배설물의 색깔이 달라 풀을 많이 섭취하는 여름에는 색이 검고 윤기를 띠지만 먹이가 없는 겨울에는 나무껍질까지 갉아 먹은 탓에 회녹색을 띤다”고 덧붙였다.

사실 보잘것없어 보이는 산양의 배설물에는 놀라운 능력이 숨어 있다. 산양은 독초를 빼고 거의 모든 식물을 먹는다. 물론 식물의 씨앗도 포함된다. 원래 헛개나무의 씨앗은
종피(씨껍질)가 너무 두껍고 단단해 그냥 심으면 거의 발아하지 못한다. 하지만 산양이 먹고 배설물과 함께 배출한 씨앗은 발아가 잘된다. 산양이 씹고 소화를 시키는 과정에서 종피의 두께가 얇아지기 때문이다. 이 박사는 “산양의 배설물에서 나온 씨앗의 발아율은 일반 씨앗보다 3~4배 정도 높다”고 말했다. 산양이 숲의 농부 역할을 하는 셈이다.

산양은 풀을 뜯어 먹고 살지만 풀을 건강하게도 만든다. 몸집이 큰 초식동물은 그만큼 풀도 많이 뜯어 먹는다. 산양도 ‘대식가’ 중의 하나이다. 하지만 이들이 먹은 풀을 살
펴보면 뿌리째 뽑힌 것은 하나도 없다. 단지 풀 끝자락을 톡톡 끊어 먹을 뿐이다. 그런데 신기하게도 이런 풀들이 나중에 보면 더 빨리 싹이 자라고 단단해진다. 풀들이 위험한 환경이라고 판단할수록 더 건강한 잎사귀를 생산해내기 때문이다. 왜 야생동물이 숲에 존재해야 하는지 알 수 있는 대목이다.



원종 남아 있는 지금, 복원 노력 기울여야

산에서 내려오는 길에 야영장 한쪽에 마련된 계류장을 들렀다. 넓이 400m2에 높이 3m의 망으로 둘러싸인 이곳은 지난 2~3월에 구조된 산양처럼 숲에서 다치거나 고립된 개체들을 데려다가 치료하고 보호할 목적으로 지었다. 올해 안으로 크기를 더 넓혀서 산양뿐 아니라 다른 멸종위기동물들도 함께 치료하고 보호하며 연구에 활용할 계획이다. 이 박사는 “제한적으로 일반인들에게 공개할 계획도 있다”고 말했다.

행여 사람들의 접근에 야생동물들이 스트레스를 받진 않을까 이 박사에게 물었다. 이 박사는 “그런 부분이 전혀 없지는 않다”며 일부 인정했다. 하지만 그는 “현재 산양 복원 사업의 가장 큰 목표는 개체수를 늘리는 일이므로 계류장은 가능한 한 산양이 숲에서 죽는 사고를 막고 보호한 산양이 다시 자연으로 돌아가 살아갈 수 있게 최소한의 도움을 주는 방향으로 활용할 예정”이라고 설명했다.

또 그는 “한시적으로 야생동물을 복원하려는 잘못된 노력과 야생동물에 대한 그릇된 인식을 먼저 개선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겨울에 산양이 굶어 죽는 일은 흔한 일입니다. 어느 동물이나 먹을 것이 없는 겨울에는 많이 죽어요. 다만 올해 그 수가 많았을 뿐이죠. 그렇다고 산에 먹을 것을 놓아 주는 게 도움이 될까요? 산양이 어느 길목에 다니는지, 몇 개체가 남아 있는지조차 파악이 안 된 상황에서 말입니다. 오히려 제때 먹지 못하면 상한 음식을 먹고 해를 입을 수도 있습니다. 자연은 위기에 더 강해집니다. 산양도 올해 새끼를 더 많이 낳아 스스로 개체수를 복원하려는 노력을 할 거예요. 우리는 그들이 잘 성장할 수 있게 지켜보는 선에서 도와줄 뿐이죠.”

계류장에서 보호하던 개체는 설악산으로 그대로 방사할 수도 있지만 유전적 교류를할 기회를 주기 위해 다른 지역으로 방사할 수도 있다. 근친 교배로 인해 약한 유전자가 대물림되는 것을 막기 위해서다.

이 박사는 “멸종위기종을 복원시키는 방법에는 여러 가지가 있겠지만, 가장 좋은 방법은 현재 있는 원종을 잘 보호하고 증식시키는 방법”이라고 말했다. 대륙사슴이나 여우, 늑대 같은 동물은 이미 우리나라에서 멸종됐다고 보기 때문에 이들을 복원하려면 다른 나라에서 데려와야 한다. 하지만 다른 곳에서도 멸종됐거나 우리나라에 있던 종이 유일한 종이었다면 복원은 불가능하다. 산양은 그나마 우리 곁에 원종이 남아 있으니 희망이 있다. “지속적으로 개체수를 확인하며 관심을 갖고 생태를 연구해 산양에게 잘 자랄 수 있는 환경을 제공한다면 조만간 산양은 멸종위기종의 꼬리표를 뗄 수 있을 것”이라며 이 박사는 마지막으로 희망적인 메시지를 전했다.
 
근친교배와 유전자 이동, DNA 마커로 찾는다

산양이 남긴 배설물, 털, 혈액, 근육으로 종을 확인하고 암수를 구분하는 DNA 검사는 비교적 간단하다. 하지만 산양 A와 산양 B를 구분하거나 산양 A와 산양 B가 가족관계인지를 찾는 검사에는 특별한 표식자가 필요하다. 지문처럼 개체마다 다른 모양을 갖는 특별한 DNA 말이다. 유전학에서는 이런 표식자를 마커(maker)라고 부른다. 서울대 수의대 이항 교수는 2005년에 세계 최초로 산양의 마커 DNA 15개를 찾는 데 성공했다. 그리고 2008년에 8개를 더해 총 23개를 찾았다. 이 마커들은 2~4개의 짧은 염기쌍이 수만 번 이상 반복된 구조를 갖고 있어 증폭이 잘되고 변화가 빨라 개체마다 뚜렷한 차이를 보이는 것으로 나타났다.

이 교수팀은 우리나라 산양뿐 아니라 일본, 중국, 유럽의 산양과 염소에도 이 마커들을 적용해봤다. 그 결과 11개 마커가 잘 들어맞는 것으로 확인됐다. 또 이 실험을 통해 우리나라 산양은 일본 산양과 속이 다르다는 결과도 얻어냈다. 이 교수는 “개체 검사는 어느 지역에 산양이 몇 마리가 살고 있는지를 파악하는 데 효과적인 도구이고 집단 간 DNA 분석이 가능하기 때문에 근친교배 정도를 알 수 있다”고 설명했다. 현재 연구팀은 대구지방환경청의 도움을 받아 경북 울진에 살고 있는 산양의 시료를 주기적으로 얻고 있다. 산양이 지나가면 털을 채집할 수 있도록, 울타리를 쳐서 그 안에 산양이 좋아하는 미네랄 덩어리를 매달아 둬 자연스럽게 산양이 접근할 수 있는 시설을 만들었다. 이 교수는 “시료를 얻는 지역을 전국으로 확대하면 국내 산양의 유전자 지도를 만들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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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년 06월 과학동아 정보

  • ·사진 설악산=김윤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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