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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 유전자에 특허 매겨진다

부동산처럼 마음대로 매매 가능

어느날 자신의 유전자가 외국에서 특허를 받았다는 소식을 듣는다면 어떨까. 공상소설에서나 등장하는 얘기가 아니다. 현재 미국을 위시한 선진국들은 인간의 유전자와 세포에 대해 '소유권'을 먼저 얻으려는 노력이 한창이다. 상대방의 동의를 구하지 않은 채 무단으로 세포를 떼내 특허를 얻는 경우도 있다.


인간의 유전자


서기 2050년 한국의 암치료 전문 병원. 간암에 걸린 환자의 가족과 의사가 심각한 표정으로 대화를 나누고 있다.
“환자의 질환은 비교적 초기 단계이기 때문에 현대 의학으로 고칠 수 있습니다. 환자의 간에 정상 유전자를 집어넣으면 암세포가 정상세포로 바뀌게 되죠.”
“그럼 빨리 치료를 시작해주시죠.”
“문제는 비용입니다. 간 유전자를 사용하려면 별도의 비용을 지불해야 합니다. 기존의 전체 치료비에 맞먹는 값입니다.”
“아니 인간의 유전자를 사용하는데 무슨 돈이 든다는거죠? 간 유전자가 부족한가요? 필요하시다면 제 간에서 세포를 하나 떼내 그 속에 있는 유전자를 사용하시면 되지 않습니까?”
“문제가 그렇게 간단하지 않습니다. 간의 정상 유전자를 발견한 미국의 회사가 얼마 전 한국에서 특허를 받았습니다. 따라서 이제부터는 치료를 할 때 미국 회사에 유전자 사용료를 내야 합니다.”

유전자 사용료. 일반인에게 무척 낯선 말이다. 인간의 유전자를 그 누구의 소유물이라고 말할 수 없는 것이 통념이다. 그런데 인간의 유전자를 이용해 질병을 치료할 때 별도의 돈을 내야 하는 시대가 다가오고 있다. 특정 유전자를 발견하는데 쏟은 과학자들의 노력을 금전적으로 보상해줌으로써 후발 연구를 더욱 독려하기 위한 ‘특허‘ 제도가 만들어져 있기 때문이다. 현재 세계의 생명공학 기업들은 좀더 많은 인간의 유전자에 대해 특허를 얻으려고 신경을 곤두세우고 있다.

6천여개 유전자 특허 신청

지난 9월 28일 일본 통산성 산하기반기술연구촉진 센터와 민간기업 10개사가 공동으로 설립한 헬릭스 연구소는 인간의 유전자 6천여개를 확보하고 이에 대해 특허를 신청해 화제를 모았다. 인간의 난소와 태반, 뇌 등의 세포에서 다양한 단백질을 만들어 내는 유전자들이다. 여기서 '6천여개의 유전자'라는 말은 구체적으로 어떤 의미일까.

유전자의 주요 임무는 생물의 각종 생리 기능을 주도하는 단백질을 만들어내는 일이다. 단백질의 기본 단위는 아미노산이다. 인체의 경우 20종류의 아미노산이 독특한 배열과 구조를 갖춤으로써 수많은 종류의 단백질을 만들어낸다. 여기서 지칭하는 ‘유전자’는 바로 단백질 한가지를 만들어내는데 필요한 물질을 가리킨다. 즉 일반적으로 ‘6천여개의 유전자’란 ‘6천여개의 단백질’을 만들어낼 수 있는 물질이란 의미다. 현재까지 존재가 확인된 인체 유전자의 수는 대략 10만여개로 추산되고 있다.

그렇다면 유전자에 대해 특허를 얻었다는 말은 무슨 의미일까. 김재만 변리사(유미 특허법률사무소)는 “특허를 받았다는 개념을 마치 집과 같은 부동산을 소유하고 있는 것처럼 생각하면 간단하다”고 말한다. 어떤 과학자가 유방암을 일으키는 유전자를 발견하고 이에 대해 특허를 받았다고 가정하자. 병원에서 유방암 진단용으로 환자에게 돈을 받고 이 유전자를 사용할 때 병원측은 과학자에게 비용을 제공해야 한다. 이때 과학자는 부동산처럼 유전자 소유권을 병원측에 팔 수도 빌려줄 수도 있다.

특허권이 소멸하는 시기는 허가가 난 때부터 20년 후다. 일단 개발에 성공하면 20년 동안 ‘앉아서’ 막대한 이득을 얻을 수 있는 길이 열리는 셈이다. 세계의 유수한 생명공학 기업들이 특허를 얻기 위해 인간 유전자에 달려드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하지만 일반인으로서는 고개를 갸웃거려지는게 사실이다. 특허는 기존에 존재하지 않던 새로운 물질이나 기술을 ‘발명’하는 행위에 대해 주어진다. 그런데 인간의 유전자는 발명이 아니라 ‘발견’의 대상이다. 이미 존재하고 있는 유전자의 구조와 기능을 밝히는 일이 과연 특허의 보호를 받을 자격이 있을까.

현재의 추세를 살펴보면 대답은 분명히 ‘있다’이다. 유전자의 실체를 밝히는 일은 엄청난 비용과 노력이 따르기 때문에 그 ‘노고’를 인정하자는게 현재 미국, 일본, 그리고 유럽연합 특허청의 기본 입장이다. 더욱이 기능이 완전히 밝혀지지 않은 유전자에 대해서도 특허가 주어지고 있는게 현실이다.


현재 세계에서는 인간의 유전자에 대한 특허 경쟁이 치열하게 전개되고 있다. 사진은 남성의 성염색체인 X(위)와 Y(아래).


미국 특허청이 던진 충격

1998년 10월 미국 특허청은 생명공학 벤처기업인 인사이트사가 신청한 인간 유전자 특허에 대해 세계 최초로 허가 방침을 내렸다. 그런데 인사이트사가 제출한 유전자의 수는 1백20여만개였다. 인체의 유전자는 10여만개다. 그렇다면 1백20만이라는 숫자는 어떻게 나온 것일까.

인사이트사는 유전자 ‘조각’을 특허 신청 대상으로 포함시켰다. 아미노산 10개가 사슬 형태로 이뤄진 단백질이 있다고 하자. 유전자 한개는 아미노산 10개를 모두 포함한 단백질을 만들어낸다. 그런데 인사이트사는 아미노산 각각을 만들어내는 유전자 조각들에 대해서도 특허를 신청한 것이다.

이 유전자 조각은 단백질의 일부를 만들어낸다는 점 외에는 별다른 특징이 없다. 각 조각이 모여 어떤 단백질을 만들어내는지도 불확실하다. 그런데 이 불완전한 ‘유전자’에 대해서 미국 특허청이 허가를 내린 것이다(1백20여만개 가운데 일부에 대해서만 특허가 허가됐다).

생명공학 업계가 발칵 뒤집혔다. 가장 큰 반발은 미국 특허청의 판단이 생명공학의 연구를 막을 위험이 크다는 점에 맞춰졌다. 예를 들어 인체의 단백질 하나가 10개의 아미노산으로 구성됐다는 점이 밝혀지고, 이를 만드는 유전자 한개가 발견되는 경우를 가정해보자. 만일 10개 아미노산 가운데 한개의 아미노산을 만드는 유전자 조각이 이미 특허를 받았다면 문제가 발생한다. 10개 아미노산 전체의 구조를 밝힌 과학자는 자신의 소유권을 불과 한개 아미노산에 대해 특허를 받은 과학자와 나눠가져야 한다. 심지어 소유권 전체가 한개 아미노산에 대해 특허를 받은 과학자에게 넘어갈 수도 있다. 특허를 신청할 때 ‘이 유전자 조각이 포함된 모든 유전자에 대해 소유권한을 달라’는 내용을 특허청에 요구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누가 이런 손해의 가능성을 무릅쓰고 인체 유전자의 구조와 기능을 밝히려고 나서겠는가. 유전자를 이용해 치료를 시도하고 있는 의약계 역시 유전자 조각에 일일이 사용료를 지불해야 한다는 점에서 거센 반대 의사를 표시했다.

최근 미국과 일본, 그리고 유럽연합은 이 불합리한 점을 개선하기 위해 몇가지 타협안을 이끌어냈다. 핵심적인 사안은 ‘특정 질병의 진단에 도움이 되는 경우’ 유전자 조각에 대한 특허를 인정하자는 내용이다. 예를 들어 유방암을 일으키는 유전자의 경우 일부의 조각은 특허 대상이다. 여성이 유방암에 걸렸는지 진단할 때 이 유전자 조각이 있는지 여부를 알면 진단이 가능하다. 이에 비해 사람의 정상적인 생리 기능을 만들어내는 유전자 조각은 특허 대상이 안된다. 예를 들어 간이나 위의 기능을 정상적으로 조절하는 ‘평범한’ 유전자 조각은 특허 제도의 보호를 받지 못한다는 의미다.

지난달 말 일본에서 특허가 신청된 유전자 6천여개의 경우 어떤 유전자 조각이 포함돼 있는지 현재로서는 알 수 없다. 특허를 신청한지 1년 6개월 동안 그 내용은 일반인에게 공개되지 않기 때문이다. 세계 생명공학 업계는 일본 정부가 6천여개 가운데 과연 어떤 대상에게 특허를 부여할지 유심히 지켜보고 있다. 어쩌면 미국 특허청이 일개 유전자 조각에 특허를 부여한 것처럼 충격적인 결과가 나올지도 모를 일이다.


미국과 유럽의 경우 갓 태어난 아기의 탯줄 혈액을 의료용으로 사용할 때 바이오사이트사에게 돈을 지불해야 한다.


탯줄 소유권 논쟁

인간과 관련된 특허의 대상은 유전자 수준을 넘어 세포에까지 확산되고 있다. 1993년 미국 국립보건원은 인간의 세포와 관련된 다소 생소한 특허를 신청했다. 특허의 대상은 바이러스다. 파나마의 구아이미족 인디언 출신인 26세 여성의 세포에서 추출한 독특한 종류다. 어떤 이유 때문인지 모르지만 이 바이러스는 인체에서 항체가 잘 생산되도록 만드는 능력을 지녔다. 면역력을 강화시키는 천연의 약제가 발견된 셈이다. 국립보건원은 이 바이러스를 에이즈와 백혈병 연구에 이용할 수 있을 것이라 생각했다.

문제는 국립보건원이 이 바이러스에 대한 소유권을 얻기 위해 특허를 신청했다는 사실이다. 파나마 구아이미족 의회의 의원들은 즉각 미국에 대해 공개적으로 항의했다. 부족의 ‘유전자 프라이버시’를 무참히 짓밟았을 뿐 아니라 이를 이용해 세계 시장에서 이익을 취하려 한 행위를 도저히 용서할 수 없었다. 거센 저항에 부딪힌 국립보건원은 특허 신청을 철회해야 했다.

그러나 몇달 후 미국 정부는 솔로몬군도와 파푸아뉴기니 출신 시민에게 얻어낸 비슷한 능력을 가진 바이러스에 대해 미국과 유럽에 특허를 신청했다. 1995년 3월 미국 특허청은 파푸아뉴기니 사람으로부터 추출된 바이러스에 대해 특허를 승인했다. 그러자 남태평양 군도 연방은 자신들의 주권이 미치는 공간을 ‘특허로부터 자유로운 지역’으로 선포하고 미국에 대해 강력하게 항의했고, 1996년 미국 정부는 특허권을 포기했다.

하지만 많은 논란에도 불구하고 인체의 세포와 관련된 특허는 이미 존재하고 있고 앞으로 계속 늘어날 전망이다. 1980년대 중반 미국 캘리포니아주에 거주하던 기업인 존 무어는 자기도 모르는 사이 신체의 일부가 특허를 받았다는 사실을 알고 경악했다. 그는 한때 희귀한 암에 걸렸다는 진단을 받고 캘리포니아대학 병원에서 치료를 받은 적이 있었다. 당시 그를 치료하던 의사는 무어의 비장(脾臟)에서 흥미로운 사실을 발견했다. 백혈구 생성을 촉진하는 단백질이 그곳에서 만들어지고 있는 것이다.

의사는 산도스라는 제약회사와 함께 이 비장 세포를 대량으로 배양하는 기술을 개발하고는 1984년 이 ‘발명’에 대해 특허를 얻었다. 30억달러 이상의 돈을 벌 수 있는 기술이었다. 물론 무어에게는 이 사실을 알리지 않았다.

뒤늦게 상황을 파악한 무어는 소송을 제기하고 나섰지만, 1990년 캘리포니아주 대법원은 무어가 자신의 신체 조직에 대한 소유권이 ‘없다’고 판결을 내렸다. 대신 발명가가 무어에게 자신의 조직을 상업화시킬 가능성을 알리지 않았으므로 어느 정도 금전적으로 배상하라고 요구했을 뿐이다. 대법원은 희귀 세포를 ‘배양하는 기술’이 독창적이라면 그것이 누구의 세포인지는 상관 없이 특허를 받을만하다고 인정해준 셈이다.

특허를 받는 신체 부분은 질병에 걸린 부위에 한정되지 않는다. 지난 93년 미국 바이오사이트사는 갓 태어난 아기의 탯줄에서 나오는 모든 혈액 세포에 대한 소유권을 미국 특허청으로부터 얻어냈다(96년에는 유럽 11개국에서 특허를 획득했다). 탯줄 혈액에는 백혈구나 적혈구로 분화되기 이전 단계인 조혈모세포가 듬뿍 함유돼 있어 백혈병을 비롯한 각종 질병 치료에 이용될 전망이 높다. 그렇다면 앞으로 치료 목적으로 탯줄 혈액을 사용할 경우 누구의 것이든 상관 없이 바이오사이트사에게 돈을 지불해야 한다. 어떤 이유 때문에 이 회사에게 막대한 권한이 주어진 것일까.

생명 소유 어디까지 갈 것인가

바이오사이트사는 단지 혈액을 급속하게 냉동시킬 수 있는 기술을 개발했을 뿐이다. 그런데 특허를 신청할 때 다른 사람이 함부로 탯줄 혈액을 사용하지 못하게 제지할 권리까지 요구했으며, 특허청이 이를 받아들인 것이다. 일개 회사가 수많은 태아의 탯줄 혈액에 대한 소유권을 가지는 것이 과연 납득할만한 상황인가. 미국과 영국, 프랑스에서는 최근까지 재심사를 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지만 어떤 결과가 나올지는 알 수 없다.

인간의 유전자 조각과 세포에 대해 특허를 부여하는 일은 더이상 남의 일이 아니다. 만일 미국의 벤처기업이 한국에서 이들에 대한 특허를 신청한다면 이를 거부할 아무런 방법이 없다. 한국 역시 선진국과 비슷한 내용을 담은 생명 특허 제도가 존재하기 때문이다. 특허청 유전공학과 이성우 과장은 “생명공학기술 수준이 뛰어난 선진국에서 인간 유전자와 세포에 대해 국내에서 특허를 획득할 경우 한국 생명공학계나 국민에게 적지 않은 경제적 타격을 입힐 가능성이 있다” 라고 말한다.

물론 모든 특허가 돈으로 연결되는 것은 아니다. 특허를 받은 1천명 가운데 1명 정도가 돈을 버는데 성공한다는게 관련 전문가들의 중평이다.

하지만 확실한 것은 한가지 있다. 현재까지의 추세를 볼 때 앞으로 인간 신체의 어느 범위까지 특허의 대상이 될지에 대해 아무도 장담할 수 없다는 점이다. 누군가 인간 유전자 10만개 모두에 대해 특허를 따내지는 않을까. 세포 수준을 넘어 내장기관까지 특허의 대상이 될 것이라면 과연 지나친 상상일까. 특허 제도가 어느 정도까지 ‘생명에 대한 소유’를 보장하는게 타당할지 진지하게 따져봐야 한다.

특허 생쥐 한마리에 수억달러 가치 - 1988년 탄생한 '하버드 마우스'가 최초

살아있는 동물에게 특허를 부여한다면 어떨까. 일반인에게 다소 생소하게 들릴지 모르지만 이미 10여년 전부터 세계적으로 진행되고 있는 일이다.

1988년 미국에서 최초의 특허동물 '하버드 마우스'가 탄생했다. 하버드대학교의 레더 박사팀이 만든 생쥐로, 암세포의 증식이 쉽게 일어나도록 유전자를 변형시켰다. 인간의 암 발병에 대한 연구를 진행시키기 위해 특별히 만들어진 '질환모델' 동물이다.

최근 미국의 생명공학 벤처기업들은 이처럼 특정 용도로 사용될 수 있는 생쥐를 만드는 일에 눈독을 들이고 있다. 잘만 함녀 생쥐 한마리 만들고 수억달러를 금새 벌어들일 수 있기 때문이다.

현재까지 특허를 얻은 동물은 주로 생쥐다. 하지만 돼지, 소, 양 등을 포함한 2백여종 이상의 동물들이 미국에서 특허를 신청해놓은 상태이기 때문에 조만간 '특허 돼지'나 '특허 송아지'가 언론 매체에 등장할 전망이다. 최초의 복제동물인 돌리는 탄생시킨 윌머트 박사팀은 자신이 사용한 기술을 이용해 만들어진 모든 복제 포유동물에 대해 소유권을 청구하는 특허를 신청했다고 알려졌다.

한국의 경우 지난 98년 3월부터 동물 특허가 인정되기 시작했다. 기존에는 '생명창조는 신만이 할 수 있다'는 관념에 따라 동물 특허를 인정하지 않았지만, 외국에서 앞다퉈 동물 특허가 발생하는 조류에 발맞추기 위해 제도를 도입했다. 동물 특허가 가능한 국가는 98년 현재 미국, 일본, 오스트레일리아, 헝가리, 남아프리카공화국 등 5개 국가이며, 등록된 특허 건수는 미국이 82건, 일본이 13건이다. 현재까지 국내에서 특허를 신청한 경우는 10여건 내외로 알려졌으며, 조만간 국내 동물 특허 1호가 탄생할 것으로 예상된다.

1999년 11월 과학동아 정보

  • 사진

    동아일보사 조사연구팀
  • 김훈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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