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릴때부터 일본인들은 어떤 일이든 흐지부지 하지 않고 철저하고 완벽하게 해내도록 교육받는다.
미래학자 앨빈 토플터는 21세기의 미래사회를 대량생산 체제에서 새로운 아이디어가 깃들인 소량 특성화산업으로 바뀔 것이라고 예측했다. 또 탐구적이고 창조적인 사고훈련을 유도하는 나라가 미래의 세계경제를 지배하게 될 것이라고 예언했다.
제2차세계대전에서 패망한 일본이 오늘날 첨단기술산업을 주도하게 된 것은 일본 국민이 한 직업에 몰두하는 민족적 근성을 갖고 있는 데에도 그 큰 원인이 있지만 다른 나라에 비해 기초과학교육에 성공한 것도 중요한 원동력이 됐다고 볼 수 있다.
1970년 초에 필자가 오시카대학 기초공학부를 방문했을 때 머리를 산발한 비틀즈 차림의 대학생들이 캠퍼스에 가득한 것을 보고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그들이 실험실에서도 비틀즈 차림을 한 채 실험에 열중하고 있는 것을 보고 또 한번 크게 놀란 적이 있다. 우리나라의 대학생 비틀즈는 머리도 마음도 온통 흐트러진 비틀즈인 반면 이들은 머리만 비틀즈이지 정신은 비틀즈가 아니구나하는 생각을 하고 퍽 착잡한 심정이었다.
이와 같이 일본은 외국기술을 따올 때에도 그대로 받아 들이는 것이 아니라 여기에 무엇인가 새로운 아이디어를 덧붙여 생산하는 슬기를 터득하고 있다. 뿐만 아니라 학교교육이 국가 산업발전을 위해 어떻게 이뤄져야 하고 국가와 사회가 이를 어떻게 지원해야 하며, 학생들은 무엇을 공부해야 하고, 교사는 이를 어떻게 지도해야 하는가를 분명히 알고 있는 것 같다.
일본이 첨단기술산업을 주도하게 된 힘이 어디에 있느냐 하는 문제는 여러가지 측면에서 살펴볼 수 있겠으나 필자 나름대로 다음 몇가지 관점에서 찾아 보기로 한다.
머리는 비틀즈이지만…
일본의 초중등 과학교육은 교육제도나 교육과정상으로 보면 한국과 비교했을 때 크게 다른 점을 찾아보기 힘들다. 그러나 과학교육을 지원하는 체제 즉 학교시설이 우리보다 훌륭하고, 학급당 학생수가 30~40명으로 학습하기에 적당한 규모다. 또 대부분의 학생들이 과학실험 기자재를 문부성 기준령의 100% 이상씩 확보하고 있어 초중등 과학교육이 잘 이뤄지고 있다.
그러나 이보다 더 근본적인 것은 학부모들의 자녀교육관에서 찾아 볼 수 있다. 일본의 학부모는 그들의 자녀를 과보호하거나 방치하지 않고 강인한 정신력을 길러주려고 노력하고 있다. 그 한 예로 추운 겨울에도 국민학교 학생들을 반바지를 입혀 등교시키고 있으며, 중고등학교 학생에게는 아직도 교복을 입히고 있다. 머리는 어른과 같이 기르면서 교복을 입은 우스꽝스러운 남학생, 무릎 아래까지 내려온 스커트를 입고 있는 볼품없는 여학생들을 일본에서는 흔히 볼 수 있다. 어릴 때부터 추위에 견디는 훈련을 시키고 교복을 입혀 질서와 본분을 지키게 하는 것이다.
또 그들의 자녀가 어떤 능력과 적성을 가졌는지를 파악해 능력이 떨어진다 싶으면 무리하게 대학진학을 권유하지도 않는다. 대학에 가지 않더라도 어떤 분야에서 일하든지 제일인자가 되면 된다고 가르친다.
그래서 어릴 때부터 일본인들은 어떤 일이든 흐지부지하지 않고 철저하고 완벽하게 해야 한다는 습성을 몸에 익히게 된다. 소위 일본인의 '곤조'(根性)를 형성시켜 가업을 이어받거나 한 직업에 평생을 바치는 정신을 길러준다. 이렇게 길러야만 이공계대학에 입학한 뒤에도 교수의 지시에 따라 힘들고 어려운 실험에 몰두할 수 있는 태도가 형성된다고 그들은 믿고 있다. 이런 부모들의 교육관이 첨단기술인을 기르는 정신적 지주가 돼 있는 것이다.
대학원 중심으로
일본의 첨단과학기술 인력양성의 특징은 대학교육제도에서도 찾아 볼 수 있다. 그 첫째로는 교수제도를 들 수 있다.
일본의 대학에는 부교수제도가 없고 철저한 교수중심제인 교실제를 채택하고 있다. 모든 예산이 교수실로 배정되며 조교수는 교수에 예속돼 있고 독자적인 연구나 활동을 할 수 없게 돼 있다. 한 교수 밑에 조교수 2, 3명, 조교수 한사람에 조수 2, 3명, 조수 한 사람에 석 박사과정 몇사람이 소속돼 있다. 이들이 몇개의 주제를 분담해 연구하는 완전한 피라미드식 연구중심체제를 갖추고 있는 것이다.
일본의 조수는 우리나라의 조교와는 다르다. 대개 조수는 박사학위를 소지하고 길게는 20여년간 조수생활을 하는 경우도 있는데 자기가 맡은 한 분야에서는 교수와 같은 수준의 실력을 갖고 있다. 교수에게는 비서 한 사람과 기능직 인원 한 사람이 붙어 있어 교수의 연구와 사무를 보조한다.
이렇게 조직된 교수실은 특정 연구과제와 그와 인접한 과제를 수십년간 집중적으로 연구한다. 그들은 적어도 그 분야에서는 세계 제일이어야 한다는 슬로건을 내걸고 매주 토요일이면 그에 관한 토론회를 벌인다. 대개 이 토론회에서 다음 1주간에 집중적으로 검토해야 할 과제를 결정한다.
교수의 강의수는 대개 한 강좌 정도에 불과하고 주로 외부 학술활동과 연구에만 몰두한다. 대학에서도 연구실적에 따라 예산이 배정되며, 실험실도 그 능력에 따라 배정된다. 대학별로 기계공작실과 액체질소나 헬륨가스제조공장을 갖고 있어 기본재료는 항상 충분하게 공급된다.
이와 같이 일본의 대학은 학부중심이 아니라 대학원 연구중심 체제로 운영되고 있다. 또 대학예산에 버금가는 국책연구소가 대학에 부설돼 있어 항상 대학과 연구공동체를 이루고 있다. 약간의 문제점이 없는 것은 아니지만 이 제도가 대학과 산업체가 공동으로 참여하는 산학협동연구를 가능하게 해준다. 아울러 기업이 해결하지 못하는 실험연구를 대학연구실에서 수행할 수 있도록 한다.
두번째 일본 이공계대학의 특징은 교양과 정부와 전공과정으로 나누어 운영되고 있다는 점이다. 대학 1, 2학년은 교양과정으로서 전공과는 무관한 교육을 받고 3학년때 전공과정으로 넘어온다. 교양과정부에서 전공과정으로 옮겨 올 때 20%정도의 학생이 유급되고 있으며, 4학년이 되면 2, 3명씩 연구실험실로 배치돼 석박사과정 학생들과 함께 같은 주제로 연구에 임한다. 졸업논문은 필수적이며 엄격한 심사를 받아야 하는데 학부학생이라 하더라도 석사학위 논문과 별 차이가 없는 수준이다.
졸업 후 취업을 할 때는 교수의 추천이 필수적이다. 교수는 추천서를 이무렇게나 쓰는 것이 아니라 그 학생의 모든 것을 소상히 알 수 있도록 장단점을 모두 다 기록한다. 따라서 기업체는 지원자들의 입사시험성적보다 더 큰 비중을 교수의 추천서에 두고 있다. 따라서 대개는 교수가 추천하면 문제없이 채용이 확정되는데 교수나 학생이 그들의 전공과 다른 기업에 추천하거나 입사하는 일은 거의 없다. 따라서 대학에서 배운 지식이 기업에서도 곧 바로 응용되는 것이 일본의 교육이다.
미국 분교에 잠식 당하고
지금까지 언급한 바와 같이 일본의 이공계 대학은 기초과학교육보다 응용과학에 치중, 산업계와 긴밀한 협조체제를 이루고 있다. 그러나 일본의 한 조사연구에 따르면 기초과학기술을 담당하고 있는 일본의 대학이 서서히 무너지기 시작하고 있다고 한다. 그 원인은 자금부족이 아니라 경영의 부실 때문이며 이대로 방치할 경우에는 미국 대학들의 일본 분교에 의해 그 위치를 빼앗기고 말 것이라고 경고하고 있다. 조사팀은 그 원인을 다음과 같이 구체적으로 설명하고 있다.
첫째로 일본의 이공계 대학들은 국제 수준에 비교했을 때 70% 이상이 중위권에 머물고 있다고 밝히고 있다. GNP 대비 투자 규모도 미국이 1.6% 인데 비해 일본은 0.8%에 지나지 않는다고 분석하고 있다. 또 도쿄대학의 이공계 연구예산이 1백억엔에 불과한데 이는 한 대기업의 연구개발비의 30%에 불과하다는 것이다.
둘째로 대학의 예산을 문부성이 관장, 총장에게 전혀 예산권을 부여하지 않음으로써 대학의 특성화를 도모하지 못하고 있으며, 총장의 선출이나 교수인사제도의 비(非)민주성에도 문제점이 많다고 지적하고 있다, 참고로 교수 1만명, 학생 20만명을 가진 미국 뉴욕시립대학(CUNY)의 경우 학외인사로 구성된 평의회에서 총장을 선출하기 위해 1년 반 이상을 노력하고 있고, 교수인사를 단과대학 학장에게 위임하고 있으며, 교수의 급료도 능력별 계약제로 하고 있다.
셋째로 거대한 세력으로 밀려오는 외국대학의 일본 상륙이 동맥경화증에 걸려있는 일본의 국립대학과, 재정난에 봉착해 있는 사립대학들을 압살할 것이라는 예측이다. 분석자들은 1971년에 도쿄의 긴자(銀座)에 맥도날드가 1호점을 개설했을 때 이 햄버거가 매상고 1위를 차지하는 식품이 될 줄은 아무도 몰랐지 않았느냐를 예로 제시하고 있다.
넷째로 고 3학부모들에게는 가위 신앙으로 돼 있는 대학이 기업들에게는 외면당하고 있다는 사실이다. 기업이 일본의 대학에 제공하는 연구비의 10배 이상이 미국으로 흘러가고 있을 뿐만 아니라 우수한 두뇌도 미국으로 유출되고 있다고 지적하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대학들은 그들의 위상을 정확히 평가해 개선하려 들지 않고 안주한 결과, 악순환이 계속되고 있다고 분석하고 있다.
대학에 대한 이러한 불신은 최근 가속화돼 일본에서도 점점 기업체들이 자체교육에 치중하게 되었다. 기업마다 앞다투어 자체연구소에 집중투자하고 있으며 대학에 투자하는 것을 꺼려하고 있어 대학이 개방될 경우 미국대학들의 일본 분교에 밀려날 위기를 맞고 있다는 것이 이 조사보고서의 결론이다.
한 우물을 파고
지금까지 단편적으로 일본의 기초과학 기술교육의 일면을 살펴 보았다. 일본 이공계 대학의 위기라는 한 분석에도 불구하고 필자는 일본이 계속 첨단과학 기술교육의 선두주자가 될 것임을 의심하지 않는다.
그 이유는 앞에서도 열거한 바와 같이 일본인들의 합리적인 국민성과 무엇이든 한 우물을 파서 세계제일이 되려는 근성과 국가가 지향하는 정책에 국민들이 잘 따르는 복종심이 있기 때문이다. 병역의무가 없는 일본의 어린 학생들이 실험실에서 밤을 새며 연구에 몰두하는 모습, 교수의 말이라면 죽는 시늉이라도 하는 복종심을 보노라면 일본은 영원히 죽지 않을 나라임을 새삼 느끼게 된다.
이에 비해 우리나라는 정말 대학이 고사(枯死)직전에 있음은 의심할 여지가 없다. 대학 교육의 개혁이라는 주제를 가지고 열렸던 최근의 한 간담회에서는 석사학위를 줄 수 있는 대학은 전국에서 두서너곳 밖에 없으며, 입학이 곧 졸업이라 할 정도로 대학의 학점이 무르고, 실제 총장의 일을 하는 총장은 한 사람도 없을 뿐 아니라 30대 초반에 대학 교수가 되면 65세까지 아무런 평가없이 계속 그 권좌를 누리고 있고, 교수들의 논문이 국제수준에 전혀 따라가지 못한다고 지적하고 있다.
따라서 기업체들은 국내의 대학에서 배운 지식이 회사에 아무런 도움이 안된다고 생각해 전공에 관계없이 사원들을 채용하고 있다. 연구비를 주려고 해도 줄만한 대학이 없다고 불만을 터뜨리고 있다. 그 한 예로 대우자동차 한 회사가 연간 지출하는 연구개발비는 1천억원에 달하지만 우리나라에는 자동차공학을 연구하는 대학이 하나도 없어 모두를 외국연구소에 투자하고 있는 실정이라 한다.
미국이나 일본이 첨단과학 기술교육의 선두주자이면서도 이공계대학의 문제점을 들어 개선책이 시급하다고들 아우성인데 우리는 무엇이 문제이고 어떻게 해야 하는지 조차도 모르고 있으니 침통한 일이 아닐 수 없다. 이런 상태로 어떻게 2,000년대에 과학기술 선진 7위권 내에 진입하려는 국가목표가 달성될 수 있을 것인가를 묻고 싶다.
이제라도 대학을 대학답게 해야 한다. 간단한 치료가 아니라 일대수술을 단행해야 할 것이다. 그리하여 이제는 로열티를 지불하는 첨단과학기술의 노예가 아니라 아이디어를 파는 선진의 정상에 올라서는 발판을 마련해야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