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물주의 영역을 도전해가는 인공심장. 1982년 최초의 수술후 획기적인 발전을 이뤘다. 제1단계 공압식은 서서히 물러가고…
‘바니 클라크’와 ‘윌리엄 슈로더’란 이름을 기억하고 있는 사람이 적지 않을 것이다. 둘다 인공심장을 지닌 채 삶의 마지막 순간을 맞은 사람들이다. 그래서 혹자는 그들을 실험인간이었다고 말한다.
치과의사였던 클라크씨는 심근병변증으로 고통을 받다가 지난 82년 인간으로서는 최초로 인공심장을 가슴에 부착, 세상을 들썩이게 했으나 수술받은지 1백12일만에 숨진 사람이다. 슈로더씨는 두번째로 인공심장을 장착, 6백20일간 생명을 연장시킴으로써 그 동안 인공심장을 이식했던 20명의 환자중에서 가장 오래 생존한 기록을 가진 퇴직공무원이었다. 비록 이들의 생명은 길게 지속되지 못했지만 인공장기시대의 새 획을 긋는 일에 크게 기여하고 숨을 거둔 것이다.
인공심장의 역사는 50여년 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1930년 깁스(Gibbs)라는 학자가 인공심장을 개발, 개와 고양이에게 실험을 한 것이다. 이어 여러 학자들의 연구를 거치면서 시행착오를 해오다가 1971년 콜프박사의 소에 대한 인공심장이식 성공으로 큰 전기를 맞았다. 인공심장을 이식받은 소가 최고 6달까지 생존한 것. 이때부터 연구는 급진전, 1975년에는 인공심장이식의 전단계인 심실보조장치이식을 하게 된다.
당대의 대가들이 머리를 맞대고
![국내에서도 송아지를 이용, 인공심장이식에 성공했다. 호스와 연결된 TV수상기 같은 상자가 공기압축기다.](https://images.dongascience.com/uploads/article/Contents/198804/S198804N044_IMG_01.jpg)
인간에게 최초로 인공심장을 이식한 사건은 1982년 12월 2일 미국의 유타대학에서 이뤄졌다. 당시의 진용은 그야말로 초호화멤버였다. 각 분야에서 당대의 대가들이 모여 인공심장사의 분기점을 성취해 나간 것이다.
인공신장기를 제조, 이미 국제적 명성을 얻고 있었던 ‘윌렘 콜프’박사가 유타대학 생체의학연구소장으로 재직, 이 세기적 수술을 통솔했다. 또 FDA(식품의약국)로 부터 미국내에서 유일하게 인공심장수술 허가를 받은 외과의(医) ‘드브리스’박사, 인공심장을 디자인한 ‘자비크’박사, 인공심장의 재질로 가장 좋은 플래스틱인 폴리우레탄을 찾아낸 ‘앤드레이드’박사, 인공심장의 전자회로를 연구한 ‘제이콥슨’교수 등으로 연구진을 짠 것이다.
이 막강한 연구팀에서 빼 놓을 수 없는 사람중에 한국인이 포함돼 있어 국내에서도 큰 화제가 되었었다. 화제의 주인공은 재미 화학가인 김성완박사였다. 그는 인공심장의 최대난점인 혈액응고를 해결하는데 큰 역할을 했다. ‘앤드레이드’박사와 공동연구해 내 놓은 폴리우레탄은 생체 적응성이 크고 피가 엉겨붙는 현상이 적어 지금까지도 인공심장을 비롯한 각종 인공장기에 최적의 기초재료로 활용되고 있다.
그러나 이 폴리우레탄도 아직 완벽하지는 못하다는 평이다. 피속에 있는 칼슘등 광물질이나 지방등이 폴리우레탄에 스며들어 재질을 변화시킬 가능성이 남아 있기 때문이다. 또 실제로 혈전증에 의해 사망한 인공심장이식자도 있었으므로 계속적인 개질이 요구되고 있는 분야다.
유타대학 인공심장 연구진의 부단한 노력의 결과, 최초의 인공심장이식은 일단 성공했지만, 이식자의 생명을 오래 지속시키는 데는 실패했다. 어쩌면 예상된 결과였다. 재수술과 혼수상태를 거듭하던 클라크씨가 복합적 신체기능 악화로 인해 ‘평화와 존엄속에서’ 숨을 거둔 것이다. 하지만 인공심장의 설계자인 ‘자비크’박사의 이름을 딴, 알루미늄과 폴리우레탄으로 만든 ‘자비크7’은 주인의 죽음도 모르는 채 힘차게 요동을 계속하고 있었다.
이 거창한 수술을 전후해서 찬사와 비난이 동계올림픽이 열린 바있는 솔트레이크시의 한 조그만 대학에 집중되었다.
인공심장을 비난하는 측에서는 인공심장의 윤리성과 효율성을 따지고 들었다. 인공장기에 의한 생명연장이 자연법칙에 합당한 것인지 질문을 던졌다. 그것이 장차 인류의 미래에 끼칠 영향에 대한 의문들도 제기되었다. 또 1회 수술비용으로 25만달러(당시가)가 드는 인공심장수술이 사회전체의 의료비용과 균형이 맞지 않는다는 비난의 소리가 컸다. 영양부족으로 죽어가는 어린이가 아직 지구상에 수없이 많다는 사실과 관련, 인공심장의 개발과 이식에 드는 엄청난 투자가 비효율적이라는 비난이었다.
또 클라크씨의 가슴에서 고동쳤던 ‘자비크7’형 인공심장이 생활하기 불편하게 디자인되었다는 소리도 있었다. ‘자비크7’의 크기는 건장한 남자성인의 심장크기와 유사한 3백g정도였으나 부속물이 지나치게 크고 무거워서 움직이는데 부담스러웠다는 것. 인공심장의 부속장치라면 몸밖으로 나와 있는 1.8m짜리 2개의 호스와 호스에 연결된 공기압축기를 뜻한다.
호스주변의 세균감염도 신경이 많이 쓰이는 일이었다. 이를 근원적으로 해결하기 위해서는 호스를 없애는 방법이 최선. 무(無)호스 인공심장이란 바꿔 말하면 모든 심장기능이 몸안으로 들어간다는 것을 의미하는데 현재 상당한 수준의 연구가 진행되고 있다.
인공심장은 심장이식의 교량
인간의 가슴 한복판에 기계가 뛰기 시작한지 약 6년이 흘렀다.
86년 말 현재까지 인공심장이식수술을 받은 사람은 불과 20명, 생각보다 적은 숫자다. 이들의 수술은 모두 미국에서 실시되었으며, ‘자비크 7’ ‘자비크 70’ ‘페닉스’ ‘팬 스테이트 하트’등 4종류의 인공심장이 이식에 사용되었다. 이처럼 인공심장의 이용률이 낮은 것은 막대한 비용과 FDA의 철저한 규제에 따른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더 큰 이유는 인공심장을 달더라도 생명을 잠시 연장시킬 뿐이라는 인식이 환자들 사이에 널리 퍼져있기 때문일 게 분명하다.
그렇다면 많은 학자들이 인공심장의 연구에 집요하게 메달리고 있는 까닭은 무엇일까? 이를 이해하기 위해서는 우선 심장병을 이해해야 한다.
심장병은 관상동맥, 전기자극의 전도시스팀, 심장밸브, 그리고 심장근육자체 등 4가지중 어느 하나가 손상을 입으면 발생한다. 그중 처음 세가지는 그 치료방법이 잘 개발돼 있다. 하지만 심장 근육(심근)에 이상이 생겼을 땐 문제가 심각해진다.
심근에 이상이 생긴 환자에게 할 수 있는 치료방법으로 대개 3가지가 꼽히고 있다. 동맥내 풍선주입법, 심실보조장치이식, 인공심장이식 등인데 3단계라 표현해도 무방할 정도다. 상태가 심해지면 다음 단계를 곧 고려해야 하기 때문이다.
동맥내 풍선주입법은 파트2에서 자세히 설명하고 있다. 대체로 심근의 손상이 가벼울 때 사용한다. 심근에 상당한 이상이 생겼을 때는 심실보조장치나 인공심장을 이식해야 살 수 있다. 둘중 어떤 방법을 택해야 하는지는 심장병의 종류와 정도, 그리고 동작 가능한 심근이 얼마나 남아있는 가에 따라 결정된다. 즉 회복될 가능성이 있고 일부 심근기능이 남은 환자는 심실보조장치를, 회복이 불가능한 환자는 인공심장을 이식해야 한다.
물론 인공심장을 이식하는 것보다 심장이식을 하는 것이 보다 안전하다. 허나 심장제공자가 적시에 나타날 확률이 적고 이식거부반응도 아직 완전히 해결되지 않은 상태이므로 인공심장의 출현이 불가피하다고 관계자들은 입을 모은다. 서울의대 의공학교실 김희찬연구원은 인공심장의 2가지 부수적인 용도를 들려주었다. “인공심장은 심장이식의 브릿지(bridge) 역할을 하고 있지요. 심장기증자가 나타날 때까지 임시로 인공심장을 달고 있다가 바꿔치기하는 거예요”라고 주장했다. 아울러 “인공심장보다 심실보조장치의 활발한 활용이 기대된다”고 밝혔다. 심실보조장치로 손상된 심장에 무리가 가는 것을 분담시켜 치료효과를 거둔다는 것이다.
지금까지 개발된 인공심장은 2종류로 나눌 수 있다. 공압식과 전기구동식이 그것이다.
공압식은 체외에서 압축공기를 발생시켜 인공 심장의 에너지원으로 이용하고 있다. 서로 분리된 좌·우 심실로 구성되며 내부에 인공판막을 가지고 있다. “인공심장이 심실만으로 이뤄진 것은 실제로 심장에서 심실이 하는 일이 심방보다 훨씬 많기 때문이죠. 심장의 아래 부분인 심실을 절개한 뒤 피가 들어오는 쪽은 심방에, 나가는 쪽은 대동맥과 폐동맥에 연결해서 사용하지요. ”김희찬연구원의 설명이다. 이렇게 놓고 보면 심방과 심실을 모두 갖춘 완전한 인공심장의 탄생은 아직 요원한 것으로 느껴진다.
현재까지 수술받은 인공심장이식자는 모두 이 공압식을 달고 있다. 공압식의 단점은 앞서 말한 클라크씨의 경우에는 보듯이 부속기가 몸밖으로 노출되었다는 점과, 너무 크다는 점을 들 수 있다. 거대한(?) 인공심장의 크기가 여성, 어린이, 동양인의 인공심장이식을 가로막고 있는 것이다.
피부를 통해 무선으로 에너지 전달
![전기구동식 인공심장에 쓰일 모터. 소형화가 최대의 과제이다.](https://images.dongascience.com/uploads/article/Contents/198804/S198804N044_IMG_02.jpg)
이런 약점을 해소시키기 위해 등장한 것이 제2세대 인공심장이라고 일컬어지는 전기구동식 인공심장이다. 이는 전기에너지를 동력으로 하는 인공심장으로서 현재 모터구동형이 주류를 이루고 있다. 다른 한쪽에서는 솔레노이드(solenoid)를 이용한 변환장치도 시도하고 있다. 궁극적으로는 인공심장을 부속물까지 부착해 몸안으로 완전히 들어가게 할 의도로 제작되고 있으므로 소형화가 지상과제다.
“전기구동식을 이용하면 소형화가 가능해집니다. 모터의 크기를 줄여가는 경쟁이 한창이지요. 미국이나 일본에서 개발된 것을 보면 좌·우 심실에 모터가 고정된 모터고정식이에요. 하지만 우리 연구팀이 이번에 내놓은 모델은 모터이동식이어서 더욱 작게 제작할 수 있어요. 모터고정식보다 약 3분의 1의 크기가 되지요”
서울의대 민병구교수(의공학)는 세계적인 소형화경쟁을 역설하면서 우리나라 연구인력의 아이디어와 엔지니어링기술이 서구보다 오히려 앞서 간다고 자랑했다.
전기구동식 인공심장을 인체에 직접 적용한 예는 아직 없지만 세계적인 추세임에는 틀림없다. 이 전기구동식의 장점에 대해 한 관계자는 "에너지원으로 축전기를 사용할 수 있고, 전자제어장치를 활용하지요. 또 외부로 노출된 공압식에 비해 세균감염의 기회가 적고 에너지전달방법만 해결되면 완전 이식도 가능해지지요. 그런가 하면 펌프의 작동에 대한 제어가 쉽고, 심장이 뛰는 소리가 공압식보다 상대적으로 조용하고 부드럽지요"라고 밝혔다.
전기구동식 인공심장이 풀어야 할 가장 시급한 과제는 에너지의 전달방식이다. 이에 대해 김희찬연구원은 “열에너지를 이용하는 방법, 핵배터리가 연구되고 있어요. 피부를 통해 전기에너지를 무선으로 전달하는 것까지 시험중이지요”라고 외국의 연구현황을 소개했다.
미국외에 인공심장에 대한 연구를 진행하고 있는 나라로는 일본, 프랑스, 독일, 이태리, 소련, 아르헨티나, 오스트리아, 체코, 중공 등이다. 미국은 유타대학과 팬실베니어 주립대학을 중심으로 10여개 대학과 연구소에서 연 1천만달러 이상을 지출하며 보다 완전한 인공심장제조에 열을 올리고 있다. 일본은 도쿄여자의과대학, 오사카 국립심장센터 등에서 개발에 박차를 가하고 있는데 아직은 공압식에 주력이다.
우리나라는 최근 서울의대 의공학교실 민병구 교수팀이 우리 체형에 맞는 전기구동식 인공심장을 개발, 개가를 올렸다. 아직 동물실험을 거치지 않았으므로 실용성은 미지수이지만, 미국의 특허를 무리없이 따내 성가를 올렸다. 과기처의 특정연구과제로 4년간 집중연구한 결과 탄생한 이 한국형 인공심장은 종래의 모터고정식에서 한단계 발전된 형태인 모터이동식이어서 주목을 끈다. 좌·우 심실사이를 모터가 이동할 수 있도록 설계된 것이다. 게다가 심장용적이 5백cc, 무게 6백g정도로 한국인의 체형에 알맞다는 장점도 지니고 있다.
한편 송아지에 인공심장을 이식, 성공한 사례가 국내에서 보고되었다. 작년 10월 부천세종병원 흉부외과 송명근박사팀이 일본에서 개발한 인공심장을 송아지에 이식, 45일간 생존하게 한 것이다. 수술을 맡았던 송박사는 “45일만에 송아지가 죽은 것은 송아지의 덩지가 커진 때문이었어요. 사람의 것을 송아지의 가슴에 넣으니 배기지 못하는 건 당연하지요. 송아지는 성장속도가 무척 빠르거든요”라고 밝히면서 자신감을 펴보였다.
![국내에서 개발된 모터이동식 인공심장.](https://images.dongascience.com/uploads/article/Contents/198804/S198804N044_IMG_03.jpg)
인공심장 쯤이야 했다가
심장은 상상 이상으로 구조나 기능이 간단한 장기이다. 간이나 뇌처럼 동시에 여러 기능을 떠맡지 않고 오직 혈액을 전신에 보내고 모아들이는 일만 담당한다. 연구가 시작될 무렵엔 심장을 인공물로 대체하는 것도 그리 어려운 일이 아닐 것으로 보았다. 하지만 클라크씨나 슈로더씨 등이 죽음으로 중명한 것처럼 인공심장으로 자연심장의 기능을 대신한다는 것은 지극히 어려운 일이다.
이 난제를 풀기 위해선 여러 학문분야의 협력을 필요로 한다. 예컨대 재료분야에선 생체적응성이 뛰어나고 내구성이 강한 고분자물질을 만들어 주어야 한다. 설계분야에선 고도의 설계기법을 확립시켜줘야 한다. 그 뿐인가. 전자와 전기, 제어계측분야의 협력도 필수적이다. 이들이 초소형에너지원과 생체내로의 에너지전달방식을 해결해주어야만 완전 이식형 인공심장으로 발전을 꾀할 수 있는 것이다.
또 아무리 성능이 좋은 인공심장을 만들었다 할지라도 외과의의 숙달된 수술솜씨가 없으면 헛일이 되고 만다. 이처럼 인공심장은 기초의학, 임상의학, 전자공학, 기계공학, 재료공학 등 여러학문과 관련을 맺고 있으며 각 분야의 기술축적에 적잖은 도움을 주고 있다.
더불어 생체의 요구에 부응하는 제어기술의 개발도 핵심 과제이다. 한 인공심장관계자는 “완전한 인공심장을 제조하는데 최후까지 남아 있을 문제로는 하드웨어에서 에너지원의 문제이고 소프트웨어에서 제어방법이 될 것입니다”라고 말해 제어방법의 중요성을 대변했다. 인공심장의 제어의 요체는 시시각각으로 변화하는 생체의 요구에 알맞는 양의 혈액을 지체없이 제공하는 것이다. 덧붙여 혈압의 지나친 상승과 저하가 없어야 함은 물론이다.
이런 것들 말고도 인공심장이 극복해야 할 게 또 있다. “혈전증과 인공심장을 체내에 이식했을 때 발생하는 마찰열의 처리문제도 심각합니다”송명근박사의 얘긴데 그는 뜻밖의 낙관론을 폈다.
“의학의 모든 분야가 그렇듯이 초기에 해결이 불가능하리라고 생각되던 문제점들도 결국은 풀려나가리라고 봅니다. 현재는 인공심장이식이 심장이식을 기다리는 환자의 생명유지술로 사용되고 있으나 머지않아 인공심장을 이용, 평생 문제없이 생활하게 될 날이 올겁니다”
인공심장, 어쩌면 이것은 신(神)의 기술에 대한 도전이다. 하지만 인공간장이나 인공뇌 보다는 훨씬 용이한 과업임에 틀림없다. 펜실베니어 주립대의 ‘피어스’교수에 따르면 앞으로 수년내에 미국에서만 연간 1만7천개~3만5천개가 소요될 것으로 보이는 인공심장은 끊임없이 신의 영역을 잠식해 갈 것이다.
‘바니 클라크’와 ‘윌리엄 슈로더’란 이름을 기억하고 있는 사람이 적지 않을 것이다. 둘다 인공심장을 지닌 채 삶의 마지막 순간을 맞은 사람들이다. 그래서 혹자는 그들을 실험인간이었다고 말한다.
치과의사였던 클라크씨는 심근병변증으로 고통을 받다가 지난 82년 인간으로서는 최초로 인공심장을 가슴에 부착, 세상을 들썩이게 했으나 수술받은지 1백12일만에 숨진 사람이다. 슈로더씨는 두번째로 인공심장을 장착, 6백20일간 생명을 연장시킴으로써 그 동안 인공심장을 이식했던 20명의 환자중에서 가장 오래 생존한 기록을 가진 퇴직공무원이었다. 비록 이들의 생명은 길게 지속되지 못했지만 인공장기시대의 새 획을 긋는 일에 크게 기여하고 숨을 거둔 것이다.
인공심장의 역사는 50여년 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1930년 깁스(Gibbs)라는 학자가 인공심장을 개발, 개와 고양이에게 실험을 한 것이다. 이어 여러 학자들의 연구를 거치면서 시행착오를 해오다가 1971년 콜프박사의 소에 대한 인공심장이식 성공으로 큰 전기를 맞았다. 인공심장을 이식받은 소가 최고 6달까지 생존한 것. 이때부터 연구는 급진전, 1975년에는 인공심장이식의 전단계인 심실보조장치이식을 하게 된다.
당대의 대가들이 머리를 맞대고
![국내에서도 송아지를 이용, 인공심장이식에 성공했다. 호스와 연결된 TV수상기 같은 상자가 공기압축기다.](https://images.dongascience.com/uploads/article/Contents/198804/S198804N044_IMG_01.jpg)
인간에게 최초로 인공심장을 이식한 사건은 1982년 12월 2일 미국의 유타대학에서 이뤄졌다. 당시의 진용은 그야말로 초호화멤버였다. 각 분야에서 당대의 대가들이 모여 인공심장사의 분기점을 성취해 나간 것이다.
인공신장기를 제조, 이미 국제적 명성을 얻고 있었던 ‘윌렘 콜프’박사가 유타대학 생체의학연구소장으로 재직, 이 세기적 수술을 통솔했다. 또 FDA(식품의약국)로 부터 미국내에서 유일하게 인공심장수술 허가를 받은 외과의(医) ‘드브리스’박사, 인공심장을 디자인한 ‘자비크’박사, 인공심장의 재질로 가장 좋은 플래스틱인 폴리우레탄을 찾아낸 ‘앤드레이드’박사, 인공심장의 전자회로를 연구한 ‘제이콥슨’교수 등으로 연구진을 짠 것이다.
이 막강한 연구팀에서 빼 놓을 수 없는 사람중에 한국인이 포함돼 있어 국내에서도 큰 화제가 되었었다. 화제의 주인공은 재미 화학가인 김성완박사였다. 그는 인공심장의 최대난점인 혈액응고를 해결하는데 큰 역할을 했다. ‘앤드레이드’박사와 공동연구해 내 놓은 폴리우레탄은 생체 적응성이 크고 피가 엉겨붙는 현상이 적어 지금까지도 인공심장을 비롯한 각종 인공장기에 최적의 기초재료로 활용되고 있다.
그러나 이 폴리우레탄도 아직 완벽하지는 못하다는 평이다. 피속에 있는 칼슘등 광물질이나 지방등이 폴리우레탄에 스며들어 재질을 변화시킬 가능성이 남아 있기 때문이다. 또 실제로 혈전증에 의해 사망한 인공심장이식자도 있었으므로 계속적인 개질이 요구되고 있는 분야다.
유타대학 인공심장 연구진의 부단한 노력의 결과, 최초의 인공심장이식은 일단 성공했지만, 이식자의 생명을 오래 지속시키는 데는 실패했다. 어쩌면 예상된 결과였다. 재수술과 혼수상태를 거듭하던 클라크씨가 복합적 신체기능 악화로 인해 ‘평화와 존엄속에서’ 숨을 거둔 것이다. 하지만 인공심장의 설계자인 ‘자비크’박사의 이름을 딴, 알루미늄과 폴리우레탄으로 만든 ‘자비크7’은 주인의 죽음도 모르는 채 힘차게 요동을 계속하고 있었다.
이 거창한 수술을 전후해서 찬사와 비난이 동계올림픽이 열린 바있는 솔트레이크시의 한 조그만 대학에 집중되었다.
인공심장을 비난하는 측에서는 인공심장의 윤리성과 효율성을 따지고 들었다. 인공장기에 의한 생명연장이 자연법칙에 합당한 것인지 질문을 던졌다. 그것이 장차 인류의 미래에 끼칠 영향에 대한 의문들도 제기되었다. 또 1회 수술비용으로 25만달러(당시가)가 드는 인공심장수술이 사회전체의 의료비용과 균형이 맞지 않는다는 비난의 소리가 컸다. 영양부족으로 죽어가는 어린이가 아직 지구상에 수없이 많다는 사실과 관련, 인공심장의 개발과 이식에 드는 엄청난 투자가 비효율적이라는 비난이었다.
또 클라크씨의 가슴에서 고동쳤던 ‘자비크7’형 인공심장이 생활하기 불편하게 디자인되었다는 소리도 있었다. ‘자비크7’의 크기는 건장한 남자성인의 심장크기와 유사한 3백g정도였으나 부속물이 지나치게 크고 무거워서 움직이는데 부담스러웠다는 것. 인공심장의 부속장치라면 몸밖으로 나와 있는 1.8m짜리 2개의 호스와 호스에 연결된 공기압축기를 뜻한다.
호스주변의 세균감염도 신경이 많이 쓰이는 일이었다. 이를 근원적으로 해결하기 위해서는 호스를 없애는 방법이 최선. 무(無)호스 인공심장이란 바꿔 말하면 모든 심장기능이 몸안으로 들어간다는 것을 의미하는데 현재 상당한 수준의 연구가 진행되고 있다.
인공심장은 심장이식의 교량
인간의 가슴 한복판에 기계가 뛰기 시작한지 약 6년이 흘렀다.
86년 말 현재까지 인공심장이식수술을 받은 사람은 불과 20명, 생각보다 적은 숫자다. 이들의 수술은 모두 미국에서 실시되었으며, ‘자비크 7’ ‘자비크 70’ ‘페닉스’ ‘팬 스테이트 하트’등 4종류의 인공심장이 이식에 사용되었다. 이처럼 인공심장의 이용률이 낮은 것은 막대한 비용과 FDA의 철저한 규제에 따른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더 큰 이유는 인공심장을 달더라도 생명을 잠시 연장시킬 뿐이라는 인식이 환자들 사이에 널리 퍼져있기 때문일 게 분명하다.
그렇다면 많은 학자들이 인공심장의 연구에 집요하게 메달리고 있는 까닭은 무엇일까? 이를 이해하기 위해서는 우선 심장병을 이해해야 한다.
심장병은 관상동맥, 전기자극의 전도시스팀, 심장밸브, 그리고 심장근육자체 등 4가지중 어느 하나가 손상을 입으면 발생한다. 그중 처음 세가지는 그 치료방법이 잘 개발돼 있다. 하지만 심장 근육(심근)에 이상이 생겼을 땐 문제가 심각해진다.
심근에 이상이 생긴 환자에게 할 수 있는 치료방법으로 대개 3가지가 꼽히고 있다. 동맥내 풍선주입법, 심실보조장치이식, 인공심장이식 등인데 3단계라 표현해도 무방할 정도다. 상태가 심해지면 다음 단계를 곧 고려해야 하기 때문이다.
동맥내 풍선주입법은 파트2에서 자세히 설명하고 있다. 대체로 심근의 손상이 가벼울 때 사용한다. 심근에 상당한 이상이 생겼을 때는 심실보조장치나 인공심장을 이식해야 살 수 있다. 둘중 어떤 방법을 택해야 하는지는 심장병의 종류와 정도, 그리고 동작 가능한 심근이 얼마나 남아있는 가에 따라 결정된다. 즉 회복될 가능성이 있고 일부 심근기능이 남은 환자는 심실보조장치를, 회복이 불가능한 환자는 인공심장을 이식해야 한다.
물론 인공심장을 이식하는 것보다 심장이식을 하는 것이 보다 안전하다. 허나 심장제공자가 적시에 나타날 확률이 적고 이식거부반응도 아직 완전히 해결되지 않은 상태이므로 인공심장의 출현이 불가피하다고 관계자들은 입을 모은다. 서울의대 의공학교실 김희찬연구원은 인공심장의 2가지 부수적인 용도를 들려주었다. “인공심장은 심장이식의 브릿지(bridge) 역할을 하고 있지요. 심장기증자가 나타날 때까지 임시로 인공심장을 달고 있다가 바꿔치기하는 거예요”라고 주장했다. 아울러 “인공심장보다 심실보조장치의 활발한 활용이 기대된다”고 밝혔다. 심실보조장치로 손상된 심장에 무리가 가는 것을 분담시켜 치료효과를 거둔다는 것이다.
지금까지 개발된 인공심장은 2종류로 나눌 수 있다. 공압식과 전기구동식이 그것이다.
공압식은 체외에서 압축공기를 발생시켜 인공 심장의 에너지원으로 이용하고 있다. 서로 분리된 좌·우 심실로 구성되며 내부에 인공판막을 가지고 있다. “인공심장이 심실만으로 이뤄진 것은 실제로 심장에서 심실이 하는 일이 심방보다 훨씬 많기 때문이죠. 심장의 아래 부분인 심실을 절개한 뒤 피가 들어오는 쪽은 심방에, 나가는 쪽은 대동맥과 폐동맥에 연결해서 사용하지요. ”김희찬연구원의 설명이다. 이렇게 놓고 보면 심방과 심실을 모두 갖춘 완전한 인공심장의 탄생은 아직 요원한 것으로 느껴진다.
현재까지 수술받은 인공심장이식자는 모두 이 공압식을 달고 있다. 공압식의 단점은 앞서 말한 클라크씨의 경우에는 보듯이 부속기가 몸밖으로 노출되었다는 점과, 너무 크다는 점을 들 수 있다. 거대한(?) 인공심장의 크기가 여성, 어린이, 동양인의 인공심장이식을 가로막고 있는 것이다.
피부를 통해 무선으로 에너지 전달
![전기구동식 인공심장에 쓰일 모터. 소형화가 최대의 과제이다.](https://images.dongascience.com/uploads/article/Contents/198804/S198804N044_IMG_02.jpg)
이런 약점을 해소시키기 위해 등장한 것이 제2세대 인공심장이라고 일컬어지는 전기구동식 인공심장이다. 이는 전기에너지를 동력으로 하는 인공심장으로서 현재 모터구동형이 주류를 이루고 있다. 다른 한쪽에서는 솔레노이드(solenoid)를 이용한 변환장치도 시도하고 있다. 궁극적으로는 인공심장을 부속물까지 부착해 몸안으로 완전히 들어가게 할 의도로 제작되고 있으므로 소형화가 지상과제다.
“전기구동식을 이용하면 소형화가 가능해집니다. 모터의 크기를 줄여가는 경쟁이 한창이지요. 미국이나 일본에서 개발된 것을 보면 좌·우 심실에 모터가 고정된 모터고정식이에요. 하지만 우리 연구팀이 이번에 내놓은 모델은 모터이동식이어서 더욱 작게 제작할 수 있어요. 모터고정식보다 약 3분의 1의 크기가 되지요”
서울의대 민병구교수(의공학)는 세계적인 소형화경쟁을 역설하면서 우리나라 연구인력의 아이디어와 엔지니어링기술이 서구보다 오히려 앞서 간다고 자랑했다.
전기구동식 인공심장을 인체에 직접 적용한 예는 아직 없지만 세계적인 추세임에는 틀림없다. 이 전기구동식의 장점에 대해 한 관계자는 "에너지원으로 축전기를 사용할 수 있고, 전자제어장치를 활용하지요. 또 외부로 노출된 공압식에 비해 세균감염의 기회가 적고 에너지전달방법만 해결되면 완전 이식도 가능해지지요. 그런가 하면 펌프의 작동에 대한 제어가 쉽고, 심장이 뛰는 소리가 공압식보다 상대적으로 조용하고 부드럽지요"라고 밝혔다.
전기구동식 인공심장이 풀어야 할 가장 시급한 과제는 에너지의 전달방식이다. 이에 대해 김희찬연구원은 “열에너지를 이용하는 방법, 핵배터리가 연구되고 있어요. 피부를 통해 전기에너지를 무선으로 전달하는 것까지 시험중이지요”라고 외국의 연구현황을 소개했다.
미국외에 인공심장에 대한 연구를 진행하고 있는 나라로는 일본, 프랑스, 독일, 이태리, 소련, 아르헨티나, 오스트리아, 체코, 중공 등이다. 미국은 유타대학과 팬실베니어 주립대학을 중심으로 10여개 대학과 연구소에서 연 1천만달러 이상을 지출하며 보다 완전한 인공심장제조에 열을 올리고 있다. 일본은 도쿄여자의과대학, 오사카 국립심장센터 등에서 개발에 박차를 가하고 있는데 아직은 공압식에 주력이다.
우리나라는 최근 서울의대 의공학교실 민병구 교수팀이 우리 체형에 맞는 전기구동식 인공심장을 개발, 개가를 올렸다. 아직 동물실험을 거치지 않았으므로 실용성은 미지수이지만, 미국의 특허를 무리없이 따내 성가를 올렸다. 과기처의 특정연구과제로 4년간 집중연구한 결과 탄생한 이 한국형 인공심장은 종래의 모터고정식에서 한단계 발전된 형태인 모터이동식이어서 주목을 끈다. 좌·우 심실사이를 모터가 이동할 수 있도록 설계된 것이다. 게다가 심장용적이 5백cc, 무게 6백g정도로 한국인의 체형에 알맞다는 장점도 지니고 있다.
한편 송아지에 인공심장을 이식, 성공한 사례가 국내에서 보고되었다. 작년 10월 부천세종병원 흉부외과 송명근박사팀이 일본에서 개발한 인공심장을 송아지에 이식, 45일간 생존하게 한 것이다. 수술을 맡았던 송박사는 “45일만에 송아지가 죽은 것은 송아지의 덩지가 커진 때문이었어요. 사람의 것을 송아지의 가슴에 넣으니 배기지 못하는 건 당연하지요. 송아지는 성장속도가 무척 빠르거든요”라고 밝히면서 자신감을 펴보였다.
![국내에서 개발된 모터이동식 인공심장.](https://images.dongascience.com/uploads/article/Contents/198804/S198804N044_IMG_03.jpg)
인공심장 쯤이야 했다가
심장은 상상 이상으로 구조나 기능이 간단한 장기이다. 간이나 뇌처럼 동시에 여러 기능을 떠맡지 않고 오직 혈액을 전신에 보내고 모아들이는 일만 담당한다. 연구가 시작될 무렵엔 심장을 인공물로 대체하는 것도 그리 어려운 일이 아닐 것으로 보았다. 하지만 클라크씨나 슈로더씨 등이 죽음으로 중명한 것처럼 인공심장으로 자연심장의 기능을 대신한다는 것은 지극히 어려운 일이다.
이 난제를 풀기 위해선 여러 학문분야의 협력을 필요로 한다. 예컨대 재료분야에선 생체적응성이 뛰어나고 내구성이 강한 고분자물질을 만들어 주어야 한다. 설계분야에선 고도의 설계기법을 확립시켜줘야 한다. 그 뿐인가. 전자와 전기, 제어계측분야의 협력도 필수적이다. 이들이 초소형에너지원과 생체내로의 에너지전달방식을 해결해주어야만 완전 이식형 인공심장으로 발전을 꾀할 수 있는 것이다.
또 아무리 성능이 좋은 인공심장을 만들었다 할지라도 외과의의 숙달된 수술솜씨가 없으면 헛일이 되고 만다. 이처럼 인공심장은 기초의학, 임상의학, 전자공학, 기계공학, 재료공학 등 여러학문과 관련을 맺고 있으며 각 분야의 기술축적에 적잖은 도움을 주고 있다.
더불어 생체의 요구에 부응하는 제어기술의 개발도 핵심 과제이다. 한 인공심장관계자는 “완전한 인공심장을 제조하는데 최후까지 남아 있을 문제로는 하드웨어에서 에너지원의 문제이고 소프트웨어에서 제어방법이 될 것입니다”라고 말해 제어방법의 중요성을 대변했다. 인공심장의 제어의 요체는 시시각각으로 변화하는 생체의 요구에 알맞는 양의 혈액을 지체없이 제공하는 것이다. 덧붙여 혈압의 지나친 상승과 저하가 없어야 함은 물론이다.
이런 것들 말고도 인공심장이 극복해야 할 게 또 있다. “혈전증과 인공심장을 체내에 이식했을 때 발생하는 마찰열의 처리문제도 심각합니다”송명근박사의 얘긴데 그는 뜻밖의 낙관론을 폈다.
“의학의 모든 분야가 그렇듯이 초기에 해결이 불가능하리라고 생각되던 문제점들도 결국은 풀려나가리라고 봅니다. 현재는 인공심장이식이 심장이식을 기다리는 환자의 생명유지술로 사용되고 있으나 머지않아 인공심장을 이용, 평생 문제없이 생활하게 될 날이 올겁니다”
인공심장, 어쩌면 이것은 신(神)의 기술에 대한 도전이다. 하지만 인공간장이나 인공뇌 보다는 훨씬 용이한 과업임에 틀림없다. 펜실베니어 주립대의 ‘피어스’교수에 따르면 앞으로 수년내에 미국에서만 연간 1만7천개~3만5천개가 소요될 것으로 보이는 인공심장은 끊임없이 신의 영역을 잠식해 갈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