머리로는 그럴 필요가 없다는 걸 잘 알고 있었다. ‘나도 전문의인데 아직도 뭘 두려워하는 건가’ 싶기도 했다. 하지만 몸이 먼저 무의식적으로 반응하는 것을 어쩌랴. 내 몸이 이미 그 공포를 기억하고 놓아주지 않았던 것이다.
그간 마음은 뇌의 영역이므로 뇌에서만 생각하고 느낀다고 여겨왔다. 하지만 최근 들어 몸 전체가 생각하고 느낀다는 것이 밝혀지고 있다. 뇌에서 생각하고 느낀 것들이 우리 몸에 퍼져 있는 신경계를 타고 몸 전체에 전달된다는 뜻이다. 뇌는 자신의 생각과 감정을 억제해도 몸에 기억된 생각과 감정까지 억압할 수는 없다. 오히려 생각과 감정이 더 깊숙이 저장된 것이 몸이라고 할 수 있다. 몸이 먼저 무의식을 알아차린다는 것도 그런 이유 때문이다.
실제로 몸 여기저기가 아파서 병원에 갔더니 이상이 없다며 정신과로 가보라고 할 때가 있다. 이처럼 몸에 기질적인 병변(病變)은 없지만 마음의 문제로 신진대사가 원활하지 않은 현상을 흔히 ‘신경성’이라고 한다. 신경성이 좀 더 심각한 형태로 발전하면 신체형장애 가 된다. 마음의 문제가 오로지 몸으로만 나타나는 증상이다. 우리가 흔히 신경성이라고 하는 신체화장애, 전환장애 , 의학적으로 도저히 설명될 수 없는 통증장애 그리고 지나치게 병에 대해 걱정하는 건강염려증이 여기에 속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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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스트리아의 정신분석학자 지그문트 프로이트의 가장 뛰어난 업적 중 하나는 신체장애가 심리적 원인으로 올 수 있다는 사실을 밝혀낸 것이다. 그는 심리적 원인으로 눈이 멀거나 몸을 움직일 수 없다는 사실을 알아냈다. 실제로 그런 증상으로 고통받는 사람들이 있다. 계속 목에 뭐가 걸려 있는 것 같다고 호소하는 ‘히스테리성 이물감’도 대표적인 신체형장애의 하나다.
우리나라에만 있다는 화병(火炳)도 광범위하게 보면 신체형장애로 볼 수 있다. 화병은 서양의학에서 말하는 불안이나 우울증과 다르다. 화병이란 이름 자체가 의미하듯이 몸에 불덩이가 돌아다니는 것 같이 더워서 견딜 수가 없고 불방망이가 불쑥불쑥 치밀어 오르는 것 같이, 주로 불과 관련된 증상을 호소한다.
역시 해결되지 못한 여러 가지 심리적 억울함, 분노, 피해의식이 몸으로 나타난 결과다. 우리말에는 마음의 문제가 몸으로 나타나는 현상을 표현하는 어휘가 매우 풍부하다. ‘애간장이 녹는다’, ‘속이 터질 것 같다’, ‘애가 끊어진다’ 등등. 우리 선조들이 몸과 마음의 관계에 대해 선견지명이 있었던 결과가 아닌가 싶다.
몸과 마음의 조화가 필요해
몸은 자신에 대해 미처 알지 못하는 것들을 말해준다. 몸 곳곳에 분포하는 수용체가 도파민, 노르에피네프린, 세로토닌과 같은 신경전달물질을 받아들이고 전달해주기 때문이다. 그래서 몸의 신호를 잘 받아들이면 오히려 자기 마음 어딘가에 문제가 생겼는지 알 수 있다. 이를 무시하거나 아예 감정 자체를 억압하면 고속도로가 정체되는 것처럼 몸과 마음의 단절이 일어나 결국엔 신체형장애라는 심각한 일이 벌어지기도 한다. 몸이 보내는 신호를 잘 받아들이는 것이 더 건강하게 살 수 있는 비결이 아닌가 싶다.
바쁜 현대인들은 몸이 보내는 신호를 무시한다. 위에서는 그만 먹으라고 하는데 계속 먹어 탈이 나고, 몸은 잠을 자라고 하는데 계속 일하다가 잠을 못 자 탈이 나기도 한다. 지나치게 몸에 민감해도 안 되지만 지나치게 몸을 무시해도 문제다. 자신을 귀하게 여기고 발전시키려면 마음과 몸 모두를 귀하게 여겨야 한다. 흔한 예로 어릴 적 학교에 가기 싫으면 배가 아프지 않았는가. 그때 꾀병이라고 야단치는 엄마보다는 ‘네가 힘들구나’하고 다독여주는 엄마가 훨씬 더 고맙지 않던가. 그런 것처럼 자기 몸의 소리에 귀를 기울이고 그것이 주는 신호를 잘 받아들이는 것이 중요하다.
우리 몸은 스스로 치유 능력을 갖고 있다. 우리가 살기 위해 필요한 것들은 다 분비된다. 가장 대표적인 사례가 몸 안에 있는 엔돌핀이다. 엔돌핀만 잘 활용해도 기분 좋게 살 수 있다. 그런데 그것을 무시하거나 경시하고 밖에서 구하려다 보니 약물중독이나 알코올중독이 되는 것이다.
다시 한 번 강조하지만 몸이 보내는 신호를 제때 알아차리고 적절하게 반응할 필요가 있다. 그래야 몸의 문제뿐 아니라 마음의 문제까지도 치유할 수 있다. 궁극적으로는 몸과 마음의 조화와 균형을 이루기 위해 노력해야 한다. 그것이 바로 자신의 잠재능력을 발휘해 창조적으로 살아갈 수 있는 지름길이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