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장 오른 쪽에 보이는 검은 부분이 ‘위난의 바다’에요. 아래쪽에 풍요의 바다가 보이죠? 그 위 그림자에 반쯤 가린 부분이 ‘맑음의 바다’에요. 닐 암스트롱과 버즈 올드린이 처음 발을 디딘 곳이죠.”
기자가 달나라 여행 삼매경에 빠진 이곳은 경기도 양평에 있는 양평국제천문대다. 천문대의 ‘별지기’ 이효산 과장이 망원경 조작부터 달의 지형까지 친절하게 설명해 준 덕분에 30분이 넘도록 천체망원경 접안렌즈에서 눈을 떼지 못했다.
“이참에 천체사진 작품 하나 남기시죠.”
이 과장은 천체망원경을 이용해 디지털 카메라로 천체사진을 직접 찍어보라고 권했다. 태어나서 천체망원경을 처음 만져보는 기자에게 작품사진을 찍어보라니…. 하지만 이 과장은 능숙한 솜씨로 망원경과 카메라를 조작하더니 셔터를 누르라고 했다.
‘찰칵.’
“이 천체사진의 촬영자는 기자님이에요. 망원경이나 카메라가 자기 것이 아니어도, 또 모든 망원경 조작을 다른 사람이 해 줘도 사진의 작가는 셔터를 누른 사람이거든요.”
이렇게 망원경을 이용해 찍은 기자의 첫 천체사진이 탄생했다. 제목도 붙였다. ‘봄날의 달빛을 좋아하세요?’라고.
날개를 활짝 편 불사조 같은 오리온자리 대성운, 신비한 토성의 고리, 말의 머리와 똑같이 생긴 말머리성운….
각종 공모전에 출품된 천체사진을 보면 그 화려한 모습에 넋이 나갈 정도다. 저 멀리 헤아릴 수도 없을 만큼 멀리 떨어진 곳에서 수천수만 년 달려온 빛을 한 장의 사진에 담는 일은 비단 천체사진에 취미가 있는 사람이 아니더라도 한번 쯤 도전해보고 싶은 일이다.
물론 디지털 카메라와 삼각대, 릴리스만 있어도 훌륭한 천체사진을 찍을 수 있다. 하지만 신비로운 우주의 ‘속살’을 포착하려면 수십~수백만 원에 이르는 천체망원경이 필요하다.
예약하면 맑은 날 천문대에서 ‘콜’
‘큰돈’ 들이지 않고 우주에 가까이 다가갈 수 있는 방법은 없을까. 이럴 땐 가까운 천문대를 활용하자. 도심에서 볼 수 없는 깜깜한 밤하늘을 배경으로 반짝반짝 빛나는 별들과 그곳으로의 여행을 안내하는 별지기들이 방문객을 기다리고 있다.
서울에서 자동차로 약 1시간 거리에 있는 양평국제천문대는 아마추어용부터 전문가용까지 다양한 망원경을 빌려 주고 방문한 사람이 직접 관찰할 수 있도록 한다. 망원경을 처음 접하는 사람들에게는 사용법을 자세히 설명해준다.
하지만 무턱대고 찾아가면 날씨가 흐려 밤하늘 여행은 고사하고 헛걸음을 할 수도 있다. 특히 황사가 누렇게 하늘을 뒤덮고 일교차가 심해 안개가 자주 끼는 봄철에는 예약이 필수다. 전화로 예약을 하면 하늘이 맑게 갠 날 천문대에서 오라는 전화를 준다.
“양평국제천문대는 단순히 천체관측시설이나 전시물을 관람하는 프로그램은 운영하지 않습니다. 그런 활동이라면 도심에 있는 천문대나 과학관에서 훨씬 저렴한 비용으로 이용할 수 있으니까요. 당연한 얘기지만 천문대에서는 밤하늘에 실제로 떠 있는 별을 관측해야겠죠.”
양평국제천문대 유주상 대장은 멀리서 별을 보러 천문대에 왔다가 날이 흐려 그냥 돌아가는 방문객을 볼 때가 가장 아쉽다고 했다.
기자가 양평국제천문대를 찾은 4월 11일은 구름이 조금 꼈지만 다행히 별을 관측하기에는 큰 무리가 없었다.
천체망원경이 카메라 렌즈?
“보통 3~4명으로 이뤄진 한 팀에 구경 10cm짜리 굴절망원경을 한 대씩 드려요. ‘별사냥’을 하기 위한 도구죠. 대포처럼 생긴 돕소니언 망원경이나 경통이 짧은 슈미트카세그레인 망원경은 초보자가 다루기 어려워 강사가 직접 천체를 잡아주기도 합니다.”
망원경의 종류도 여러 가지다. 천문대는 지름 6m짜리 관측돔 2개와 30여개의 실습용 망원경을 갖추고 있다. 이 과장은 기자에게 뉴턴식 반사망원경과 비슷하지만 접안부가 경통 뒤에 붙은 슈미트카세그레인 망원경을 추천했다.
망원경 선택을 마친 뒤 사방이 트인 관측장소로 나가 맨눈으로 밤하늘을 보며 관측 대상을 선택했다. 도심에서 멀지 않은 곳에 이렇게 많은 별을 볼 수 있는 곳이 있다는 사실이 놀라웠다. 이 과장은 밤하늘에 레이저 빔을 쏴 프리젠테이션 하듯 별을 가리키며 설명했다.
초승달이 남서쪽 하늘에 자리 잡고 있었고, 동쪽 하늘에는 사자자리가 포효하듯 쌍둥이자리나 마차부자리 같은 겨울철 별자리들을 서쪽 하늘로 몰고 있었다. 그 별들 사이에서 토성과 화성은 밝은 빛을 더하고 있었다.
보통 별은 지구에서 워낙 멀리 떨어져 있어서 아무리 좋은 망원경으로 봐도 반짝이는 점으로 밖에 보이지 않는다. 먼저 망원경을 달을 향해 겨눴다. 워낙 큰 대상이라 찾기는 그리 어렵지 않았다. 시야에 꽉 찬 달은 눈이 부실 정도로 밝았다. 초승달이라 달 전체 지형을 볼 수 없어 아쉬웠지만, 이 과장은 “보름일 때는 달빛이 너무 밝아 울퉁불퉁한 지형이 오히려 안 보인다”고 설명했다.
토성은 낮은 배율로 볼 때는 타원형의 UFO(미확인비행체)처럼 보였다. 자신이 직접 만든 망원경으로 처음 밤하늘을 본 사람으로 알려진 갈릴레오 갈릴레이가 토성을 처음 보고 ‘귀가 달렸다’고 보고했다는 얘기가 떠올랐다. 하지만 배율을 높이자 고리가 명확하게 분리돼 보였다.
이런 장면을 카메라에 담으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 카메라는 렌즈가 분리되는 SLR형 카메라를 사용해야 한다. 망원경의 접안렌즈 대신 렌즈를 분리한 카메라 본체를 붙이면 된다. 망원경을 카메라 렌즈로 사용하는 셈이다.
카메라를 망원경에 연결하려면 카메라어댑터(망원경 접안부에 끼는 보조경통)와 T링(카메라 몸체를 카메라어댑터에 연결하는 링 모양의 보조경통)이 필요하다.
카메라어댑터는 망원경 종류에 따라, T링은 카메라 종류에 따라 다르지만 천문대에는 거의 모든 종류의 카메라어댑터와 T링이 준비돼 있다.
망원경을 처음 다루는 초보자라도 강사의 설명을 듣고 몇 번 반복하면 요령이 생긴다. 봄바람이 살랑살랑 부는 5월. 가까운 천문대를 찾아 ‘디카’를 들고 별사냥에 나서보는 건 어떨까.
이달의 천문현상
● 5월 6일 새벽 물병자리 별비 쏟아져
6일 새벽하늘에 별비가 쏟아진다. 물병자리 에타(η) 유성우는 10월 20일 경 쏟아지는 오리온자리 유성우와 함께 핼리혜성이 모혜성이다. 핼리혜성이 지나가면서 우주공간에 뿌린 부스러기가 지구 대기권에서 불타면서 별똥별이 된다. 올해 물병자리 에타 유성우의 예상 극대 시각은 새벽 3시다. 물병자리 에타 별 근처를 중심으로 한 시간에 최대 70개의 별똥별을 볼 수 있다. 유성은 보통 새벽에 잘 보이는데, 극대시각이 동쪽 하늘에서 물병자리가 떠오르는 시점이라 관측하기 좋다.
게다가 달은 전날 밤 8시 44분 쯤 지기 때문에 관측에 영향을 주지 않는다.
●5월 10일 달과 화성의 랑데부
10일 초승달과 붉은색 화성이 밤하늘에서 나란히 행진한다. 해가 진 뒤 서쪽하늘을 보면 초승달과 붉은색 화성이 나란히 떠 있는 모습을 볼 수 있다. 밤 11시 쯤 두 천체는 겉보기 거리 45′(보름달이 1개 반 정도 들어갈 거리)로 접근한 뒤 자정 무렵 지평선 아래로 진다. 근처 천문대를 방문해 망원경으로 달과 화성의 조우를 카메라로 찍어보자.
독자사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