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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귀걸이 단 남자가 좋다

개성을 기르는 연구실

좋은 연구결과는 어떤 곳에서 나올까. 나만의 헤어 스타일, 나만의 패션을 주장하는 개성이 강한 사람과 이를 허용하는 분위기에서 나오지 않을까. 이제 창의적인 연구에도 귀걸이를 달 필요가 있지 않을까.

"귀걸이 단 남자를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3년 전 대학원생들과 함께 식사하던 자리에서 불쑥 나온 질문이었다. 이외의 질문에 다소 당황했지만 생각하는 바를 이야기했다. "모든사람은 각기 다르다. 그런데도 무조건 다른 사람과 같은 차림새를 하는 것은 개성적이지 못하다. 따라서 각자 멋있게 개성을 연출하는 것은 바람직하다고 본다."

이런 대답이 나오자 열댓명의 학생들은 일제히 어느 학생을 쳐다보며 웃었다. 사정을 들어보니 그 학생은 평소에 귀걸이를 달고 다니는데, 연구실에 올 때는 빼고 다녔다는 것이다. 그런데 이제 교수가 허락했으니 그 학생은 마음놓고 달고 다닐 수 있게 됐다고 좋아했다.
 

창의성은 기존의 지식을 바탕으로 세워진다. '우물안 개구리'처럼 남들이 해놓은 것도 모르고 혼자 끙끙대선 안된다.


창의성은 남과 다른데서

우리가 살아가는데는 많은 능력을 필요로 한다. 기억력, 이해력, 계산력, 분석력 등 다양하다. 그 중에서도 창의력은 어느 것 못지않게 중요하다. 창의력이 있어야 새로운 아이디어가 나오고 새롭게 발전해 재미있는 사회가 만들어지기 때문이다. 앞으로 다가올 21세기는 더욱 빠른 속도로 변화할 것이고, 이런 변화의 주인공은 창의력을 가진 사람이 될 것이다. 따라서 미래의 주역을 기르는 우리 교육은 창의성 개발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

그러면 창의력은 무엇이고 어떻게 길러지는가? 창의성 개발에는 왕도가 있는가? 수학 문제를 많이 풀면 길러지는가? 생각을 많이 하면 늘어나는가?

창의력은 기존의 사물이나 사고의 형식에서 새로운 것을 찾아내는 능력이라고 말 할수 있다. 창의력이 있는 사람은 기존의 사고방식이나 지식을 무작정 받아들이지 않고, 거기에서 나름대로 새로운 생각을 한다.

그렇다면 기존의 지식을 배우는 이유는 무엇인가? 첫째는 현대사회를 이해하고, 인류가 어디까지 발전해왔는지 알기 위해서 필요하다. 둘째는 새로운 것을 고안해내기 위해서 필요하다. 새로운 아이디어는 갑자기 나오는 것보다 기존의 것들을 응용하거나 비판하는 가운데 나오는 경우가 많다. 기존의 것을 많이 활용하기 위해서는 지식이 많아야 유리하다. '우물안 개구리'처럼 남들이 해놓은 것도 모르고서 혼자서 고민하는 일을 막기 위해서는 현재까지 발전해온 첨단을 알아야 한다.

이와 같이 새로운 것을 찾아내기 위해서는 어떻게 해야 하는가? 창의성은 기본적으로 '남과 다른데서' 출발한다고 생각한다. 남이 생각하고 남이 하는 행동을 보고서 그것들과 다른것을 고안해 내는 것이 창의력의 출발이라고 할 수 있다. 어떤 사물을 보고 들으면 즉각적으로 '왜?'라는 생각을 하는 가운데서 남과 다른 것이 나올 수 있다. 그렇지 않고 남이 하는 행동을 무조건 따라하든지 유행을 맹목적으로 추종하는 사람은 창의력이 있을 가능성이 적다.

그러면 남과 다른 생각을 많이 하는 사람은 외적으로 어떻게 보일까? 사람에 따라서 내적으로 큰 소용돌이가 일고 있어도 겉으로는 잔잔한 사람이 있다. 또는 내적인 변화나 갈등이 외적으로 표출되는 사람도 있다. 내적 소용돌이가 표현되는 방식은 다양하다. 어떤 사람은 잔잔하게 보이지만 대부분은 겉으로도 특이함이 보이는 경우가 많다. 그러나 내적으로 남과 같이 생각하는 사람은 겉으로도 남과 같을 것이다. 외적으로 남과 다르다고 해서 내적으로도 남과 다르다고 할 수는 없지만, 그럴 가능성은 높을 것이다.

따라서 외적으로 나타나는 특이함을 억누르면 내적인 특이함이 잘못 표출되는지, 또는 특이함이 잠들어버릴 염려가 있다. "학생은 이래야 하고 저래야 한다"는 획일적인 교육이 창의성의 싹을 자르고 있다는 주장의 근거가 바로 여기에 있다.

그래서 우리 연구실에서는 '남과 다른 생각과 행동'을 최고선으로 간주한다. 그런면에서 3년 전에 학생들과 나눈 이야기는 살아있는 교훈으로 통한다. 내적인 엔탈피를 높여야 하겠지만 이것은 어렵기 때문에 분위기 형서에 노력한다. 겉으로 나타나는 차림새도 개성을 가장 중요시한다. '나'만의 헤어 스타일이나 장식품을 연출하는 학생이 부러움을 산다. 귀걸이를 달아도 한쪽에만 두개씩 달기도 한다. 뒷머리를 짧게 하고 앞머리는 노랗게 물들여 길게 늘어뜨리는 학생도 있다. 오케스트라 멤버도 있고 수영대표선수도 생겼다.
 

창의성은 남다른 생각에서 출발. 사진은 미국에서 개발한 핵융합 램프.


개성시대의 연구실

이런 식으로 우리 연구실에는 개성과 학생들이 늘어가고 그에 비례해서 창의적인 아이디어도 많이 나오는 듯하다. 그동안 퍼지엘리베이터, 퍼지컴퓨터, 인공지능 교통제어기 등을 개발한데 이어 최근에는 지하철 운행 간격을 자동으로 조절해주는 퍼지시스템을 개발해 실용화했다. 이런 연구결과들은 자유로운 연구실 분위기와 무관하지 않다고 본다. 정말 창의적인 생각은 자유롭게 열어놓고 풀어놓아야 나오는 것이다. 그리고 교육의 가장 큰 목적은 창의성 개발과 스스로 할 수 있는 능력을 기를는데 있다는 사실을 다시 한번 실감한다.

지난 봄에는 이런 연구실 분위기에 나만 뒤질 수 없다는 생각에 가족들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승용차를 스포츠카로 바꾸었다. 요즘에는 가르마를 오른쪽으로 바꾸고 흰머리에 갈색물감을 들이니 비로소 차에 어울리는 느낌이다. 백바지를 입고 검정색 티뷰론에 오르니 '남과 다른'내가 된 것 같아 기분이 좋다. 새로운 아이디어도 저절로 나오는 듯하다.

이처럼 괴짜들이 모여 있으니 "연구를 왜국내 사람들하고만 해야 하는가"라는 의문도 제기됐다. 그래서 96년부터 미국의 실리콘밸리에 있는 반도체장비 제조회사인 AIO와 공동으로 새로운 반도체장비의 소프트웨어를 개발하고 있다. 이를 위해 방학이면 대학원생들이 미국에 가서 연구한다. 또한 97년1월부터는 프랑스브장송대학의 바티스트교수가 1년간 초빙교수로 와 있으며, 9월에는 프랑스 학생 다비드제구군이 박사학위를 받기 위해 입학했다. 외국사람들과 어울려 연구해 보고 학생들은 "코쟁이들도 별거 아니구나"하는 자신감을 갖는 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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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7년 09월 과학동아 정보

  • 이광형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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