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80년대 초에 ‘전격 Z작전(Knight Rider)’이라는 미국 드라마가 있었다. 훤칠하게 잘생긴 주인공도 멋있었지만 주인공을 도와 악당을 물리치는 ‘키트(KITT)’라는 자동차는 당시 학생들의 마음을 온통 뒤흔들었다. 키트는 주인공이 “도와줘!”라고 외치면 순식간에 위치를 파악해서 가장 빠른 길로 찾아왔다. 스스로 주변을 검색해 인질이 붙잡혀 있을 것 같은 위치를 추정할 수도 있었다. 한 마디로 키트는 첨단 전자지도가 장착된 인공지능 슈퍼카였다.
드라마에서나 가능할 것 같던 이 첨단 전자지도는 21세기가 되면서 더 멋지고 간편한 모습으로 등장했다. 구글(google)과 마이크로소프트(MS)가 2005년에 각각 발표한 ‘구글어스(google earth)’와 ‘버추얼어스(virtual earth, 지금은 빙맵스(bing maps)로 바뀌었다)’는 전 세계를 한눈에 볼 수 있는 영상지도서비스를 제공한다. 평균 해상도가 60cm에 달하는 이 영상지도는 마당에 있는 강아지 집 지붕 색깔까지 구분할 만큼 정교하다. 구글어스의 서비스 중 하나인 ‘스트리트뷰(streetview)’는 지상 사진을 파노라마 형식으로 재생하기 때문에 그 지역을 직접 걷고 있는 듯한 현장감을 제공한다. 지구 표면에 그치지 않는다. 구글은 달과 화성의 모습을 담은 우주 지도와 심층 해저세계를 담은 해양 지도까지 제공한다. 아마 21세기형 키트가 재현된다면 화성으로 붙잡혀간 주인공을 구출하러 로켓으로 변신한다는 이야기로 전개되지 않을까.
그런데 이 영상지도가 전 지구를 감시하는 파수꾼임을 자처하고 나섰다. 천 마디 말보다는 사진 한 장이 더 큰 감동과 메시지를 전달하는 법. 구글지도는 아프리카 최고봉 킬리만자로산의 만년설이 줄고 있는 사진을 보여줌으로써 지구가 위험한 상태에 있다는 사실을 극명하게 보여줬다. 그런데 과학자들이 이 영상을 가지고 연구하기 시작했다. 북극이 정량적으로 얼마나 녹았는지, 그로 인해 피해를 얼마나 입었는지 분석한 것. 인터넷 영상지도라는, 누구나 쉽게 접할 수 있는 콘텐츠가 과학자들에게는 새로운 과학적 영감을 불러일으켜 줄 대상이 된 셈이다.
신종플루 환산 막은 수호신 전자지도
이에 세계보건기구(WHO)는 실시간 지도의 중요성을 인식하고 구글지도를 공공보건 정책에 활용하는 방안을 2008년 발표했다. 특히 질병이 만연한 저개발국가에서는 질병지도를 통해 공공보건 정책에 기초를 삼을 정도로 주목받았다. 아프리카 콩고에서는 소아마비 환자 발생지도를 통해 소아마비 바이러스의 이동과 취약성을 분석하고 있다.
얼마 전에는 전자지도가 아이티의 구호팀에게 ‘비밀무기’라고 불리며 활용성을 인정받았다. 아이티는 지진 피해로 수도인 포르토프랭스가 거의 완전하게 파괴된 상황이다. 살아남은 시민들은 도시의 공터에 천막촌을 만들어 생활하고 있는데, 구호팀이 생존자들에게 구호품을 중복되지 않게, 비교적 빠짐없이 전달하고 있다고 한다. 이는 국제구호기구(Mercy Corps)가 구글지도를 활용해 복구 진전 상황을 모니터링하기 때문이다. 특히 UN을 비롯한 여러 국제기관, 국가의 정부조직들이 복구와 구호 활동을 동시에 벌이고 있는 상황에서 지도는 정보를 공유하고 효과적으로 업무를 협력하는 데 필수불가결하게 이용되고 있다.
영상지도로 호주 원주민의 전설 밝혀내기도
과학의 발전 때문에 우리는 지구의 대부분을 이미 알고 있는 듯한 환상에 빠져 있다. 그러나 인류는 아직까지 지하공간은커녕 지구 표면에 대해서도 제대로 알지 못한다.
2008년 가을 영국 큐 왕립식물원의 줄리안 베일리스 박사는 우연히 구글어스로 지구의 여기저기를 둘러보던 중 남아프리카 모잠비크의 북쪽에서 7000ha(헥타르, 1ha=1만m2) 넓이의 지형이 주변과 다른 색을 띤다는 사실을 발견했다. 논과 밭의 색이 다르듯이, 지형의 색이 다르다는 것은 지형의 식생 또는 성질이 주변과 다름을 의미한다. 베일리스 박사는 ‘마부’라는 이름의 산이 있는 이 지형에 대해 지금까지 어떠한 탐험이나 조사가 이뤄진 바가 없다는 사실을 확인하고 영국, 탄자니아, 스위스 등에서 자원한 28명의 과학자들과 팀을 꾸려 현장조사를 떠났다.
탐험 3주 만에 베일리스 박사팀은 수천 가지의 열대식물과 200여 종의 나비, 맹독의 독사, 푸른 영양, 사망고 원숭이, 코끼리땃쥐 등 다양한 생물종을 발견했다. 이 중 나비 3종과 뱀 1종은 지금껏 기록된 바 없는 새로운 종인 것으로 드러났다. 아무도 신경 쓰지 않던 모잠비크의 한 외곽 지역이 아마존에 버금가는 다양한 생물종을 보유하고 있었던 것이다.
이 발견은 고해상도의 위성영상이 없었다면 불가능한 일이다. 이전에는 고해상도 위성의 고도가 600~800km 정도였으나 최근에는 400km까지 낮아지고 센서기술이 발전한 덕분에 위성영상의 해상도가 30cm까지 좋아졌다. 이는 위성영상으로 야구장의 홈플레이트를 정확히 판독할 수 있는 수준이다. 위성의 자체 위치 조절 능력이 향상된 점도 고해상도를 얻는 발판이 됐다. 위성은 센서의 방향이 불과 몇″(1″는 3600분의 1o)만 틀어져도 목표 지점을 정확히 촬영할 수가 없다. 좁은 지역을 정확하게 촬영하기 위해서 위성은 가로, 세로, 높이 세 축을 조절하는 동시에 세 축으로 움직이는 센서의 방향까지 정밀하게 조정해야 한다.
이런 노력의 결과일까. 고고학에서는 구글지도를 새로운 연구수단으로 이미 인정하고 있는 분위기다. 요즘 고고학 연구는 실제 탐사현장이 아닌 연구실의 컴퓨터 앞에서 이뤄지는 경우가 많다. 미국 앨라배마대의 새라 파캑 교수도 구글의 사진지도를 활용해 100개가 넘는 이집트의 고고학 유적지를 찾아냈다. 파캑 교수는 발견한 자료를 통해 강력했던 고대 이집트왕국이 멸망한 이유가 급격하게 변한 기후와 나일강에 있는 삼각주의 변화, 그리고 이로 인한 농업기반 경제의 붕괴 때문이라고 주장했다.
원주민들 사이에 전해지던 전설이 사실로 증명되는 일도 있었다. 지난해 12월 호주 매쿼리대의 박사과정에 있는 두안 해머처는 호주 원주민의 전설 중에 하늘에서 별이 떨어졌다는 이야기를 듣고 혹시 이 증거가 남아 있지 않을지 궁금해졌다. 그는 구글지도로 핀케 국립공원을 둘러보던 중 둥그스름하게 홈이 파 있는 지형을 발견했다. 현장을 방문한 결과 이 구덩이는 크레이터(운석이 떨어지면서 생기는 거대한 구덩이)임이 확인됐다.
과거에는 확보하기 어려웠던 사막지역에 대한 조사도 영상지도를 통해 가능해졌다. 2007년에 미국 미시간대 고생물학자 필립 깅그리치 교수와 동료들은 이집트에서 수출되고 있는 대리석에서 고래화석의 흔적이 발견되고 있다는 사실을 접하고 그 위치를 구글지도로 찾아냈다는 보고서를 발표했다. 이집트 사막지역에서 아직 알려지지 않았던 대규모의 화석군을 발견한 것이다. 이 지역에서 발견된 화석을 분석한 결과 아시아에서 아프리카로 이동한 것으로 알려진 고생물이 이집트지역을 거쳐 아프리카로 전파된 것도 추론할 수 있었다.
모바일시대의 필수 아이템 지도
구글지도는 그 자체로도 훌륭한 콘텐츠이지만 과학의 새로운 발견과 연구에 기여하고 있다. 하지만 단지 콘텐츠를 확보하기 위해서 또는 과학의 발전과 재미를 위해서 구글이 막대한 비용을 들여 지도제작 사업을 시작했을까. 비즈니스 세계에서 목적 없는 투자는 없다. 이윤을 추구하는 기업인 구글 또한 현대사회에서 지도가 차지하는 경제적인 가치를 찾았을 뿐이다. 중요한 점은 지도가 우리의 삶에 필수적인 아이템으로 자리잡아가고 있다는 사실이다. 모바일 기기 속으로 들어온 지도는 우리의 삶을 혁신적으로 바꿀 대표적인 인프라로 주목 받고 있다.
2007년 맥월드 행사장에서 아이폰을 소개하던 애플 최고경영자 스티브 잡스는 아이폰이 인식해낸 자기위치를 청중에게 보여주고, 주변에 있는 스타벅스 커피숍들을 검색해서 바로 커피를 주문하는 기능을 선보였다. 이런 서비스는 바로 나의 위치정보, 그리고 지도를 기반으로 세상의 정보가 정리돼 있을 때 가능한 일이다.
‘신촌’에서 파스타 식당을 찾는 내게 ‘잠실’에 있는 유명한 파스타 식당에 대한 정보는 의미가 없듯이 내 모바일 기기에 정보를 제공하게 될 포털은 나와 관련된 정보를 최우선으로 보내줘야 한다. 아이폰이 인기를 끄는 이유도 컴퓨터와 통신, 위치추적기능들이 지도와 유연하게 연결돼 있기 때문이다. 현재 구글과 마이크로소프트를 비롯한 몇몇 기업들도 이런 영상지도서비스에서 우위를 차지하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
지도는 이제 선택이 아니라 모바일 시대의 우리 생활에 필수적인 아이템이 되고 있다. 또 과학은 이런 지도와 연계해 우리 지구를 지키고 있다. 매일매일의 생활과 직접 연결된 생활 도구가 된 지도, 우리 삶의 공간인 지구와 우리를 지켜줄 지도가 우리 옆에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