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나만 더 찾으면 완성인데 퍼즐의 마지막 조각이 보이지 않는다. 조금만 더 잘 찾아보면 곧 나올 것 같은데, 나올 듯 말 듯하면서 자꾸 사람 애간장을 태우고 있다. 퍼즐은 입자물리학에서 이야기하는 표준모형이고, 마지막 조각은 17개의 기본 입자 중에서 아직 유일하게 발견되지 않은 힉스다.
지난해 12월 13일 세계 입자물리학자들의 시선은 유럽입자 물리연구소(CERN)로 몰렸다. 공개 세미나를 통해 거대강입자가속기(LHC)에 있는 두 대의 검출기 ATLAS와 CMS의 실험 결과를 발표하겠다고 예고한 날이었다. 힉스 발견 여부가 이 자리에서 드러날지 몰라 주목을 많이 받았다. 발표의 수위를 놓고도 이런저런 예측이 많았다. 마침내 힉스를 찾아냈을 거라는 이야기부터 또 변죽만 울리는 게 아니냐는 이야기까지. 과연 이제 슬슬 끝이 보이는 걸까.
발표 결과는 그 사이 어딘가였다. CERN은 “힉스의 ‘흔적’을 발견했다”고 발표했다. ATLAS와 CMS가 힉스로 생각할 수 있는 신호를 125Gev 에너지 영역 부근에서 찾아냈다는 것이다. 두 검출기가 각각 비슷한 신호를 포착했다는 점에서는 신뢰도가 높다고 볼 수 있지만, 아직 확정은 아니다. CERN은 올해 이 에너지 구간을 집중적으로 탐색해 결론을 내릴 전망이다. 과연 올해 안에 퍼즐의 마지막 조각을 찾을 수 있을지, 아니면 또 예상치 못한 결과가 나올지 관심이 쏠리고 있다.
[ATLAS실험그룹 책임자인 파비올라 지아노티 박사가 지난해 12월 13일 CERN에서 열린 세미나에서 실험 결과를 발표하는 모습.]
흔히 힉스라고 부르는 ‘힉스 보손’은 다른 입자가 질량을 갖게 해 주는 이론상의 입자다. 1964년 ‘힉스 메커니즘’을 제안한 물리학자 피터 힉스의 이름에서 따왔는데, 힉스 메커니즘은 게이지 대칭성이 깨져서 게이지 입자가 질량을 갖는 과정을 말한다.(게이지 입자의 대칭성 깨짐에 대해서는 과학동아 2011년 6월호 ‘우주에 질량을 선물한 신의 입자, 힉스’ 참조) 보손은 양이자이론에서 나오는 입자의 고유 성질인 스핀이 정수인 입자다. 참고로 스핀이 반정수(정수+0.5인 형태)인 입자는 페르미온이라 부른다.
표준모형에는 17개의 기본 입자가 있다. 쿼크 6개, 렙톤 6개, 게이지 입자 4개, 그리고 힉스다. 이들은 세상의 모든 물질과 세상을 움직이는 힘을 만든다. 쿼크는 바리온과 메손을 이룬다. 바리온은 양성자와 중성자처럼 쿼크 세 개로 이뤄지는 강입자로 우리 눈에 보이는 물질의 대부분을 이룬다. 메손은 쿼크 하나와 반쿼크 하나로 이뤄진 강입자다. 렙톤에는 전자와 중성미자 등이 있으며, 이들은 자연계 4대 힘의 하나인 강한 상호작용의 영향을 받지 않는다. 나머지 3개인 약한 상호작용, 중력, 전자기력(전기적으로 중성인 중성미자는 제외)만 렙톤에 영향을 끼친다.
이 같은 4대 힘은 게이지 입자에 의해 생긴다. 광자는 전자기력을 매개하고, 글루온은 강한 상호작용을, W보손과 Z보손은 약한 상호작용을 매개한다. 중력을 매개하는 입자는 아직 발견되지 않았다. 여기까지 설명하면 입자가 총 16개다.
그러면 힉스가 남는다. 힉스는 어떻게 다른 입자가 질량을 갖게 할까. 먼저 게이지 입자 중 광자와 글루온은 질량이 0이다. 나머지 게이지 입자는 게이지 대칭성이 깨지면서 질량을 얻고, 그 과정에서 힉스가 생긴다. 쿼크와 렙톤의 질량은 힉스와 결합하는 세기에 비례한다. 기본 입자는 모두 힉스와 상호작용하면서 질량이 생기는 것이다.
좀 더 쉽게 설명하기 위해 대가의 표현을 빌려보자. 미국의 물리학자 레너드 서스킨드는 저서 ‘우주의 풍경’에서 힉스가 입자에 질량을 부여하는 원리를 다음과 같이 표현했다.
“전자, 쿼크, W보손, 그리고 Z보손과 같은 입자들의 실제 질량은 힉스 입자들의 흐름을 통과할 때 그것들이 어떻게 운동하는가에 따라 결정된다. 잘못된 비유로 독자들을 오도하고 싶지는 않지만, 힉스의 흐름은 힉스 유체가 입자들의 운동에 저항한다는 것이다. 그러나 그 저항은 운동하는 입자들을 느리게 해서 결국은 멈추게 하는 마찰력과는 다르다. 대신 그것은 속도의 변화에 대한 저항, 즉 관성 또는 질량을 의미한다.”(‘우주의 풍경’ 154쪽, 사이언스북스)
입자가 힉스와 상호작용해 운동을 방해받는 정도가 클수록 질량도 크다는 얘기다. 질량을 부여하는 힉스가 없다면 입자는 모두 광자처럼 빛의 속도로 날아다닐 것이다. 그러면 원자도 분자도 있을 수 없다. 우리도 존재할 수 없다. 즉, 표준모형이 옳다면 힉스는 있어야 하며, 힉스가 없거나 예측과 다르다면 표준모형은 바뀌어야 한다.
가속기로 힉스 사냥한다
입자물리학자들이 힉스를 본격적으로 찾기 시작한 건 1989년 CERN이 대형 전자-양전자 충돌기(LEP)를 만들었을 때부터다. LEP는 전자와 전자의 반입자인 양전자를 가속해 충돌시키는 장치다. W보손과 Z보손의 성질을 자세히 탐구science하는 게 목적이었다. W보손과 Z보손의 질량은 양성자의 80~90배다. 이처럼 무거운 입자를 만들기 위해서는 엄청나게 큰 에너지가 필요했다. LEP는 둘레가 27km로 당시 세계 최고 크기였다.
전자와 양전자를 90GeV의 에너지로 충돌시키려면 각각 45GeV로 가속해야 한다. 이때 입자의 속도는 빛의 99.999%다. LEP는 W보손과 Z보손의 질량을 정확히 측정했다. 또한 전자기력과 약한 상호작용을 통합해 설명하는 전자기-약작용 이론을 검증하는 데 성공했고, 표준모형이 맞다는 사실을 확인했다.
하지만, 힉스는 여기서 빠져 있었다. LEP는 2001년 가동이 끝날 때까지 에너지를 209GeV까지 올리며 알려지지 않은 입자를 탐구했다. 거의 마지막 무렵에 115GeV 부근에서 힉스일지도 모르는 신호가 나왔지만, 발견했다고 확신하기에는 신뢰도가 낮았다. 결국, LEP는 114GeV 이자이론에서 하의 에너지 구간에 힉스가 없다는 사실만 확인했다. 힉스의 질량은 115GeV/c2 이상이라는 뜻이었다. 아인슈타인의 질량-에너지 등가법칙에 따르면 에너지(E)는 질량(m) 곱하기 광속(c)의 제곱이므로 에너지(GeV)를 광속의 제곱(c2)으로 나눈 GeV/c2는 질량을 나타내는 단위가 된다.
미국 쪽에서는 테바트론 가속기가 나섰다. 테바트론은 양성자와 반양성자를 충돌시키는 장치로, 최대 1TeV까지 에너지를 올릴 수 있다. 이름이 테바트론(TeVatron)인 것도 사상 처음으로 에너지가 테라전자볼트 단위에 도달했기 때문이다. 테바트론은 1995년 질량이 양성자의 170배가 넘는 톱쿼크를 발견했다. 톱쿼크는 가장 무거운 입자로 LEP에서도 발견되지 않았다. 2011년 9월 30일 가동을 중지한 테바트론은 156~177GeV에는 힉스가 없다는 결과를 얻었다.
테바트론이 가동을 멈춘 지금 힉스 사냥은 LHC의 손에 달렸다. 2008년 완공된 LHC는 LEP가 있던 원형 터널에 들어섰다. 7TeV의 에너지로 양성자를 가속해 충돌시킬 수 있고, 때때로 납 이온을 충돌시키는 실험을 한다.
힉스의 질량이 현재 예상하고 있는 범위에 있다면 LHC로 발견해야 한다. 만약 힉스를 LHC로 발견할 수 없다면 표준모형도 바뀔 수밖에 없다. 더 나아가 모든 에너지 구간을 샅샅이 뒤졌는데도 힉스가 없다는 결론이 나오면, 현대물리학의 뼈대인 표준모형은 심각하게 수정해야 한다. 그래서 LHC가 완공된 이래 과연 언제쯤 힉스가 발견될지는 초미의 관심사였다.
[ATLAS검출기에서 관찰한 충돌로 녹색 선 두 개가 광자를 나타낸다.]
거대하면서도 정교한 LHC
양성자를 충돌시키는 건 고에너지를 얻기 위해서다. LEP가 썼던 전자-반전자 같은 기본 입자의 충돌이 좋지만, 전자는 가벼워서 가속할 때 에너지를 잃기 쉽다. 반면, 양성자의 질량은 전자의 2000배 가까이 커 높은 에너지를 얻을 수 있다. 박성찬 전남대 물리학과 교수는 “양성자는 기본 입자가 아니라 충돌할 때 잡음이 많이 나오지만, 가장 만들기 쉬운 입자라 충돌 횟수를 늘려 이를 해결한다”고 설명했다.
LHC는 양성자 빔을 연속적으로 충돌시킨다. 양성자 빔은 양성자가 평균 1조개가 들어 있는 뭉치 수~수백 개로 이뤄져 있다. 이런 뭉치가 기차처럼 나란히 터널을 도는 것이다. 양성자끼리 충돌시키려면 양성자 빔 두 개를 서로 반대 방향으로 회전시켜야 한다. 가느다란 양성자 빔이 수 km를 달려와서 서로 부딪치게 하려면 빔의 위치를 정밀하게 조종해야 한다.
양성자 뭉치가 부딪친다고 해서 교통사고가 나듯이 충돌하는 건 아니다. 한국CMS실험사업팀 책임자인 박인규 서울시립대 물리학과 교수는 “양성자 뭉치 두 개가 충돌할 때 실제로 충돌하는 양성자의 수는 20~25개”라고 설명했다. 양성자가 조 단위로 있어도 충돌할 확률은 매우 낮기 때문이다. 그래도 거의 빛의 속도로 달리는 양성자 빔은 둘레 27km인 터널을 1초에 1만 바퀴 돌 수 있다. 수백 개의 뭉치가 1초에 1만 번씩 충돌하면 1초에 충돌하는 양성자의 수는 수천만 개 이상이다.
양성자 빔이 지나가는 파이프 안은 진공에 가깝다. 파이프 안을 움직이는 양성자가 산소나 질소 원자와 부딪치면 실험에 방해가 되기 때문이다. 온도도 매우 낮다. 우주 공간이 2.7K(영하 270.5℃)인데 파이프 안은 더 낮은 1.9K다. 빔의 움직임을 조종하는 전자석이 아주 낮은 온도에서만 가능한 초전도 현상을 이용하기 때문이다. 입자를 빠르게 가속하기 위해서는 강력한 자기장이 필요한데, 전자석의 세기는 전류에 비례한다. 하지만, 전류가 많이 흐르면 저항 때문에 열이 많이 발생해 금속이 버틸 수 없으므로 저온에서 저항이 0이 되는 초전도 현상을 이용하는 것이다.
95% 신뢰도도 부족해
충돌 결과는 ATLAS와 CMS라는 두 개의 검출기로 관찰한다. 이 둘은 크기는 다르지만 역할은 비슷해 서로 결과를 검증하고 보완해준다. 힉스는 수명이 매우 짧아 직접 관측할 수는 없다. 약 1조 분의 1초 만에 더 가벼운 입자로 붕괴하는데, 질량에 따라 다양한 입자의 조합으로 붕괴한다. 따라서 힉스를 찾으려면 힉스가 붕괴할 때 생기는 입자가 통계적으로 어느 구간에서 많이 생겼는지를 관찰해야 한다.
이번에 흔적을 발견한 125GeV 에너지 영역에서는 힉스가 보텀 쿼크 2개로 붕괴할 확률이 가장 크다. 그러나 실험에서는 광자 두 개로 붕괴하는 신호를 찾았다. 박성찬 교수는 “쿼크가 많이 생기는 양성자 충돌에서는 어떤 쿼크가 힉스에서 나왔는지 알기 어려워 대신 광자로 붕괴하는 현상을 관찰했다”고 말했다. 그 대신 힉스가 광자로 붕괴할 확률은 낮기 때문에 자료를 더 많이 모아야 한다.
이번 발표는 두 검출기가 비슷한 에너지 구간에서 힉스로 추정되는 신호를 발견했다는 데서 주목을 받았다. ATLAS는 115~130GeV 바깥에서는 힉스가 없다고 결론 내렸고, CMS의 결과에서 이 범위는 117~127GeV였다. ATLAS는 힉스의 존재 가능성을 125~126GeV에서 2.6시 그마 수준으로 추정했다. CMS의 결과는 124GeV에서 최대 1.9시그마 수준이었다. 시그마는 표준편차를 나타내며 2시그마는 약 95.5%의 신뢰도를 갖는다. 이번에 발견한 흔적이 힉스가 맞다면 힉스의 질량은 약 125GeV/c2이 된다. 양성자 하나의 질량이 0.938GeV/c2이므로 양성자 133개와 맞먹는 무게다. 철 원자보다도 2배 이상 무겁다.
그러나 95% 이상의 신뢰도라고 해도 입자물리학에서는 한참 부족한 수치다. 힉스를 발견했다고 확신하기 위해서는 5시그마(99.99994%)가 필요하다. CERN의 경쟁자로 지난해까지 테바트론을 운용했던 미국 페르미연구소는 “두 결과를 각각 놓고 보면 주사위를 두 번 굴려 연속으로 6이 나온 수준에 불과하지만 124~126GeV를 가리키는 신호가 독립적으로 여러 번 나왔다는 점이 흥미롭다”고 논평했다.
[2011년 12월 13일 공개 세미나 현장. 이 자리에서 CMS와 ATLAS의 실험 결과가 발표됐다.]
빠르면 올해… 그 이후는?
물리학자들은 예상하던 결과였다는 반응이다. ‘LHC, 현대 물리학의 최전선’이라는 책을 쓴 이강영 건국대 물리학부 연구교수는 “물리학자들이 예상하던 범위라 뜻밖의 결과는 아니다”라며 “올해부터 에너지를 더 높여 자료를 쌓으면 1~2년 안에 힉스를 찾을 수 있다고 예상하는 분위기”라고 말했다. 박성찬 교수도 “예상했던 범위 안에서 어디가 확률이 높은지 더 정확하게 알 수 있게 돼 표준모형이 잘 들어맞고 있음을 알게 됐다”고 밝혔다.
힉스는 빠르면 올해 정체를 드러낼 전망이다. 힉스를 발견하면 우주를 이루는 근본 물질의 비밀을 설명하는 표준 모형이 과학자들의 예측대로 완성된다. 오랜 세월 동안 수 많은 지성이 함께 다듬어 온 지식의 승리인 셈이다. 입자 물리학 용어만 들어도 어려워하는 일반인들에게는 과학자들이 우리가 사는 세상을 올바르게 설명하고 있다고 신뢰할 수 있는 증거가 된다.
마지막 퍼즐을 찾아 표준모형을 완성해도 숙제는 남는다. 암흑물질이나 중성미자의 질량은 표준모형으로 설명하지 못한다. 표준모형이 더 근본적인 모형의 일부일 수도 있다. 이를 알아보기 위해서는 더 높은 에너지를 낼 수 있는 가속기가 필요하다. 박성찬 교수는 “현실적으로 더 큰 가속기를 만들기는 힘들어 당분간은 LHC로 이런 근본적인 모형의 실마리를 찾고 얼마나 더 높은 에너지가 필요한지 논의할 것”이라고 설명했다.
어쩌면 힉스는 마지막 퍼즐이 아니라 더 큰 퍼즐의 첫 조각일 수도 있다. 우주의 비밀을 밝히는 일은 그렇게 호락호락하지 않다.
지난해 12월 13일 세계 입자물리학자들의 시선은 유럽입자 물리연구소(CERN)로 몰렸다. 공개 세미나를 통해 거대강입자가속기(LHC)에 있는 두 대의 검출기 ATLAS와 CMS의 실험 결과를 발표하겠다고 예고한 날이었다. 힉스 발견 여부가 이 자리에서 드러날지 몰라 주목을 많이 받았다. 발표의 수위를 놓고도 이런저런 예측이 많았다. 마침내 힉스를 찾아냈을 거라는 이야기부터 또 변죽만 울리는 게 아니냐는 이야기까지. 과연 이제 슬슬 끝이 보이는 걸까.
발표 결과는 그 사이 어딘가였다. CERN은 “힉스의 ‘흔적’을 발견했다”고 발표했다. ATLAS와 CMS가 힉스로 생각할 수 있는 신호를 125Gev 에너지 영역 부근에서 찾아냈다는 것이다. 두 검출기가 각각 비슷한 신호를 포착했다는 점에서는 신뢰도가 높다고 볼 수 있지만, 아직 확정은 아니다. CERN은 올해 이 에너지 구간을 집중적으로 탐색해 결론을 내릴 전망이다. 과연 올해 안에 퍼즐의 마지막 조각을 찾을 수 있을지, 아니면 또 예상치 못한 결과가 나올지 관심이 쏠리고 있다.
[ATLAS실험그룹 책임자인 파비올라 지아노티 박사가 지난해 12월 13일 CERN에서 열린 세미나에서 실험 결과를 발표하는 모습.]
질량의 근원, 힉스
흔히 힉스라고 부르는 ‘힉스 보손’은 다른 입자가 질량을 갖게 해 주는 이론상의 입자다. 1964년 ‘힉스 메커니즘’을 제안한 물리학자 피터 힉스의 이름에서 따왔는데, 힉스 메커니즘은 게이지 대칭성이 깨져서 게이지 입자가 질량을 갖는 과정을 말한다.(게이지 입자의 대칭성 깨짐에 대해서는 과학동아 2011년 6월호 ‘우주에 질량을 선물한 신의 입자, 힉스’ 참조) 보손은 양이자이론에서 나오는 입자의 고유 성질인 스핀이 정수인 입자다. 참고로 스핀이 반정수(정수+0.5인 형태)인 입자는 페르미온이라 부른다.
표준모형에는 17개의 기본 입자가 있다. 쿼크 6개, 렙톤 6개, 게이지 입자 4개, 그리고 힉스다. 이들은 세상의 모든 물질과 세상을 움직이는 힘을 만든다. 쿼크는 바리온과 메손을 이룬다. 바리온은 양성자와 중성자처럼 쿼크 세 개로 이뤄지는 강입자로 우리 눈에 보이는 물질의 대부분을 이룬다. 메손은 쿼크 하나와 반쿼크 하나로 이뤄진 강입자다. 렙톤에는 전자와 중성미자 등이 있으며, 이들은 자연계 4대 힘의 하나인 강한 상호작용의 영향을 받지 않는다. 나머지 3개인 약한 상호작용, 중력, 전자기력(전기적으로 중성인 중성미자는 제외)만 렙톤에 영향을 끼친다.
이 같은 4대 힘은 게이지 입자에 의해 생긴다. 광자는 전자기력을 매개하고, 글루온은 강한 상호작용을, W보손과 Z보손은 약한 상호작용을 매개한다. 중력을 매개하는 입자는 아직 발견되지 않았다. 여기까지 설명하면 입자가 총 16개다.
그러면 힉스가 남는다. 힉스는 어떻게 다른 입자가 질량을 갖게 할까. 먼저 게이지 입자 중 광자와 글루온은 질량이 0이다. 나머지 게이지 입자는 게이지 대칭성이 깨지면서 질량을 얻고, 그 과정에서 힉스가 생긴다. 쿼크와 렙톤의 질량은 힉스와 결합하는 세기에 비례한다. 기본 입자는 모두 힉스와 상호작용하면서 질량이 생기는 것이다.
좀 더 쉽게 설명하기 위해 대가의 표현을 빌려보자. 미국의 물리학자 레너드 서스킨드는 저서 ‘우주의 풍경’에서 힉스가 입자에 질량을 부여하는 원리를 다음과 같이 표현했다.
“전자, 쿼크, W보손, 그리고 Z보손과 같은 입자들의 실제 질량은 힉스 입자들의 흐름을 통과할 때 그것들이 어떻게 운동하는가에 따라 결정된다. 잘못된 비유로 독자들을 오도하고 싶지는 않지만, 힉스의 흐름은 힉스 유체가 입자들의 운동에 저항한다는 것이다. 그러나 그 저항은 운동하는 입자들을 느리게 해서 결국은 멈추게 하는 마찰력과는 다르다. 대신 그것은 속도의 변화에 대한 저항, 즉 관성 또는 질량을 의미한다.”(‘우주의 풍경’ 154쪽, 사이언스북스)
입자가 힉스와 상호작용해 운동을 방해받는 정도가 클수록 질량도 크다는 얘기다. 질량을 부여하는 힉스가 없다면 입자는 모두 광자처럼 빛의 속도로 날아다닐 것이다. 그러면 원자도 분자도 있을 수 없다. 우리도 존재할 수 없다. 즉, 표준모형이 옳다면 힉스는 있어야 하며, 힉스가 없거나 예측과 다르다면 표준모형은 바뀌어야 한다.
가속기로 힉스 사냥한다
입자물리학자들이 힉스를 본격적으로 찾기 시작한 건 1989년 CERN이 대형 전자-양전자 충돌기(LEP)를 만들었을 때부터다. LEP는 전자와 전자의 반입자인 양전자를 가속해 충돌시키는 장치다. W보손과 Z보손의 성질을 자세히 탐구science하는 게 목적이었다. W보손과 Z보손의 질량은 양성자의 80~90배다. 이처럼 무거운 입자를 만들기 위해서는 엄청나게 큰 에너지가 필요했다. LEP는 둘레가 27km로 당시 세계 최고 크기였다.
전자와 양전자를 90GeV의 에너지로 충돌시키려면 각각 45GeV로 가속해야 한다. 이때 입자의 속도는 빛의 99.999%다. LEP는 W보손과 Z보손의 질량을 정확히 측정했다. 또한 전자기력과 약한 상호작용을 통합해 설명하는 전자기-약작용 이론을 검증하는 데 성공했고, 표준모형이 맞다는 사실을 확인했다.
하지만, 힉스는 여기서 빠져 있었다. LEP는 2001년 가동이 끝날 때까지 에너지를 209GeV까지 올리며 알려지지 않은 입자를 탐구했다. 거의 마지막 무렵에 115GeV 부근에서 힉스일지도 모르는 신호가 나왔지만, 발견했다고 확신하기에는 신뢰도가 낮았다. 결국, LEP는 114GeV 이자이론에서 하의 에너지 구간에 힉스가 없다는 사실만 확인했다. 힉스의 질량은 115GeV/c2 이상이라는 뜻이었다. 아인슈타인의 질량-에너지 등가법칙에 따르면 에너지(E)는 질량(m) 곱하기 광속(c)의 제곱이므로 에너지(GeV)를 광속의 제곱(c2)으로 나눈 GeV/c2는 질량을 나타내는 단위가 된다.
미국 쪽에서는 테바트론 가속기가 나섰다. 테바트론은 양성자와 반양성자를 충돌시키는 장치로, 최대 1TeV까지 에너지를 올릴 수 있다. 이름이 테바트론(TeVatron)인 것도 사상 처음으로 에너지가 테라전자볼트 단위에 도달했기 때문이다. 테바트론은 1995년 질량이 양성자의 170배가 넘는 톱쿼크를 발견했다. 톱쿼크는 가장 무거운 입자로 LEP에서도 발견되지 않았다. 2011년 9월 30일 가동을 중지한 테바트론은 156~177GeV에는 힉스가 없다는 결과를 얻었다.
테바트론이 가동을 멈춘 지금 힉스 사냥은 LHC의 손에 달렸다. 2008년 완공된 LHC는 LEP가 있던 원형 터널에 들어섰다. 7TeV의 에너지로 양성자를 가속해 충돌시킬 수 있고, 때때로 납 이온을 충돌시키는 실험을 한다.
힉스의 질량이 현재 예상하고 있는 범위에 있다면 LHC로 발견해야 한다. 만약 힉스를 LHC로 발견할 수 없다면 표준모형도 바뀔 수밖에 없다. 더 나아가 모든 에너지 구간을 샅샅이 뒤졌는데도 힉스가 없다는 결론이 나오면, 현대물리학의 뼈대인 표준모형은 심각하게 수정해야 한다. 그래서 LHC가 완공된 이래 과연 언제쯤 힉스가 발견될지는 초미의 관심사였다.
[ATLAS검출기에서 관찰한 충돌로 녹색 선 두 개가 광자를 나타낸다.]
거대하면서도 정교한 LHC
양성자를 충돌시키는 건 고에너지를 얻기 위해서다. LEP가 썼던 전자-반전자 같은 기본 입자의 충돌이 좋지만, 전자는 가벼워서 가속할 때 에너지를 잃기 쉽다. 반면, 양성자의 질량은 전자의 2000배 가까이 커 높은 에너지를 얻을 수 있다. 박성찬 전남대 물리학과 교수는 “양성자는 기본 입자가 아니라 충돌할 때 잡음이 많이 나오지만, 가장 만들기 쉬운 입자라 충돌 횟수를 늘려 이를 해결한다”고 설명했다.
LHC는 양성자 빔을 연속적으로 충돌시킨다. 양성자 빔은 양성자가 평균 1조개가 들어 있는 뭉치 수~수백 개로 이뤄져 있다. 이런 뭉치가 기차처럼 나란히 터널을 도는 것이다. 양성자끼리 충돌시키려면 양성자 빔 두 개를 서로 반대 방향으로 회전시켜야 한다. 가느다란 양성자 빔이 수 km를 달려와서 서로 부딪치게 하려면 빔의 위치를 정밀하게 조종해야 한다.
양성자 뭉치가 부딪친다고 해서 교통사고가 나듯이 충돌하는 건 아니다. 한국CMS실험사업팀 책임자인 박인규 서울시립대 물리학과 교수는 “양성자 뭉치 두 개가 충돌할 때 실제로 충돌하는 양성자의 수는 20~25개”라고 설명했다. 양성자가 조 단위로 있어도 충돌할 확률은 매우 낮기 때문이다. 그래도 거의 빛의 속도로 달리는 양성자 빔은 둘레 27km인 터널을 1초에 1만 바퀴 돌 수 있다. 수백 개의 뭉치가 1초에 1만 번씩 충돌하면 1초에 충돌하는 양성자의 수는 수천만 개 이상이다.
양성자 빔이 지나가는 파이프 안은 진공에 가깝다. 파이프 안을 움직이는 양성자가 산소나 질소 원자와 부딪치면 실험에 방해가 되기 때문이다. 온도도 매우 낮다. 우주 공간이 2.7K(영하 270.5℃)인데 파이프 안은 더 낮은 1.9K다. 빔의 움직임을 조종하는 전자석이 아주 낮은 온도에서만 가능한 초전도 현상을 이용하기 때문이다. 입자를 빠르게 가속하기 위해서는 강력한 자기장이 필요한데, 전자석의 세기는 전류에 비례한다. 하지만, 전류가 많이 흐르면 저항 때문에 열이 많이 발생해 금속이 버틸 수 없으므로 저온에서 저항이 0이 되는 초전도 현상을 이용하는 것이다.
95% 신뢰도도 부족해
충돌 결과는 ATLAS와 CMS라는 두 개의 검출기로 관찰한다. 이 둘은 크기는 다르지만 역할은 비슷해 서로 결과를 검증하고 보완해준다. 힉스는 수명이 매우 짧아 직접 관측할 수는 없다. 약 1조 분의 1초 만에 더 가벼운 입자로 붕괴하는데, 질량에 따라 다양한 입자의 조합으로 붕괴한다. 따라서 힉스를 찾으려면 힉스가 붕괴할 때 생기는 입자가 통계적으로 어느 구간에서 많이 생겼는지를 관찰해야 한다.
이번에 흔적을 발견한 125GeV 에너지 영역에서는 힉스가 보텀 쿼크 2개로 붕괴할 확률이 가장 크다. 그러나 실험에서는 광자 두 개로 붕괴하는 신호를 찾았다. 박성찬 교수는 “쿼크가 많이 생기는 양성자 충돌에서는 어떤 쿼크가 힉스에서 나왔는지 알기 어려워 대신 광자로 붕괴하는 현상을 관찰했다”고 말했다. 그 대신 힉스가 광자로 붕괴할 확률은 낮기 때문에 자료를 더 많이 모아야 한다.
이번 발표는 두 검출기가 비슷한 에너지 구간에서 힉스로 추정되는 신호를 발견했다는 데서 주목을 받았다. ATLAS는 115~130GeV 바깥에서는 힉스가 없다고 결론 내렸고, CMS의 결과에서 이 범위는 117~127GeV였다. ATLAS는 힉스의 존재 가능성을 125~126GeV에서 2.6시 그마 수준으로 추정했다. CMS의 결과는 124GeV에서 최대 1.9시그마 수준이었다. 시그마는 표준편차를 나타내며 2시그마는 약 95.5%의 신뢰도를 갖는다. 이번에 발견한 흔적이 힉스가 맞다면 힉스의 질량은 약 125GeV/c2이 된다. 양성자 하나의 질량이 0.938GeV/c2이므로 양성자 133개와 맞먹는 무게다. 철 원자보다도 2배 이상 무겁다.
그러나 95% 이상의 신뢰도라고 해도 입자물리학에서는 한참 부족한 수치다. 힉스를 발견했다고 확신하기 위해서는 5시그마(99.99994%)가 필요하다. CERN의 경쟁자로 지난해까지 테바트론을 운용했던 미국 페르미연구소는 “두 결과를 각각 놓고 보면 주사위를 두 번 굴려 연속으로 6이 나온 수준에 불과하지만 124~126GeV를 가리키는 신호가 독립적으로 여러 번 나왔다는 점이 흥미롭다”고 논평했다.
[2011년 12월 13일 공개 세미나 현장. 이 자리에서 CMS와 ATLAS의 실험 결과가 발표됐다.]
빠르면 올해… 그 이후는?
물리학자들은 예상하던 결과였다는 반응이다. ‘LHC, 현대 물리학의 최전선’이라는 책을 쓴 이강영 건국대 물리학부 연구교수는 “물리학자들이 예상하던 범위라 뜻밖의 결과는 아니다”라며 “올해부터 에너지를 더 높여 자료를 쌓으면 1~2년 안에 힉스를 찾을 수 있다고 예상하는 분위기”라고 말했다. 박성찬 교수도 “예상했던 범위 안에서 어디가 확률이 높은지 더 정확하게 알 수 있게 돼 표준모형이 잘 들어맞고 있음을 알게 됐다”고 밝혔다.
힉스는 빠르면 올해 정체를 드러낼 전망이다. 힉스를 발견하면 우주를 이루는 근본 물질의 비밀을 설명하는 표준 모형이 과학자들의 예측대로 완성된다. 오랜 세월 동안 수 많은 지성이 함께 다듬어 온 지식의 승리인 셈이다. 입자 물리학 용어만 들어도 어려워하는 일반인들에게는 과학자들이 우리가 사는 세상을 올바르게 설명하고 있다고 신뢰할 수 있는 증거가 된다.
마지막 퍼즐을 찾아 표준모형을 완성해도 숙제는 남는다. 암흑물질이나 중성미자의 질량은 표준모형으로 설명하지 못한다. 표준모형이 더 근본적인 모형의 일부일 수도 있다. 이를 알아보기 위해서는 더 높은 에너지를 낼 수 있는 가속기가 필요하다. 박성찬 교수는 “현실적으로 더 큰 가속기를 만들기는 힘들어 당분간은 LHC로 이런 근본적인 모형의 실마리를 찾고 얼마나 더 높은 에너지가 필요한지 논의할 것”이라고 설명했다.
어쩌면 힉스는 마지막 퍼즐이 아니라 더 큰 퍼즐의 첫 조각일 수도 있다. 우주의 비밀을 밝히는 일은 그렇게 호락호락하지 않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