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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 2월 19일 네덜란드 원자로가 가동을 멈추면서 한국에는 비상이 걸렸다. 병원에서 암 세포가 뼈로 전이됐는지 알아보는 뼈 스캔 검사가 축소되거나 연기될 형편이고, 국내 유일의 연구용 원자로 하나로는 만에 하나 발생할지 모를 상황에 대비해 비상 태세에 들어갔다. 보건복지가족부는 종전 방식과 다른 새 진단법을 개발하기 위한 채비에 들어갔고 비상진료 대책을 수립하기로 했다. 지난해 11월 남아프리카공화국의 사파리(SAFARI) 원자로가 가동을 멈췄을 때도 대전 한국원자력연구원에 있던 연구용 원자로 하나로가 비상 가동에 들어갔다. 당시 수도권 한 대학병원은 하루 20여 회 하던 뼈 스캔 검사 횟수를 절반으로 줄였다.

현재 전국 병원의 검사량은 평소 때의 80~90%로 거의 정상 수준이다. 하지만 수개월 내에 검사 대란으로 이어질 것으로 보고 있다. 서울대 의대 핵의학교실 정재민 교수는 “대부분의 병원에서 검사 일정을 몰아넣거나 겨우겨우 검사를 진행하고 있다. 의원급 병원은 거의 검사를 진행하지 못하고 있다”고 말한다. 하루하루 마음이 급한 암 환자들의 불편과 불안도 커지고 있다.


원인은 동위원소 생산 원자로 노후화

이 같은 상황은 의료용 동위원소인 몰리브덴-99의 수급 차질에서 비롯됐다. 수급 차질은 지난해 5월 세계 생산량의 34%를 맡고 있는 캐나다 온타리오의 초크 리버 원자로가 가동을 멈추면서 본격적으로 시작됐다. 올해로 건설된 지 53년 된 이 원자로는 시설이 노후화되면서 균열이 일어나 가동을 멈췄다.

몰리브덴-99 같은 의료용 동위원소를 생산하는 원자로를 갖고 있는 나라는 현재 캐나다를 비롯해 네덜란드, 벨기에, 남아프리카공화국, 프랑스, 호주, 러시아, 아르헨티나 등 8개국. 이 중 5대의 원자로가 전 세계 몰
리브덴-99 방사성 동위원소 가운데 95%를 생산하고 있다. 하지만 대부분 건설된 지 30~40년이 넘어 가동과 중단을 반복하고 있다. 이번에 가동을 멈춘 네덜란드 원자로는 운용한 지 48년이 지났고 프랑스, 남아공, 벨기에 원자로도 지어진 지 각각 42년, 43년, 47년이 됐다. 이번에 네덜란드 원자로는 노후화된 부품을 교체하기 위해 6개월간 동위원소를 생산하지 못한다. 결국 수급 불안이 비단 캐나다나 네덜란드 때문에 일어난 것은 아니라는 얘기다.


몰리브덴-99의 중요성을 알기 위해서는 방사성 동위원소를 이해해야 한다. 동위원소란 같은 종류지만 질량수가 다른 원소를 말한다. 원자 종류는 질량수와 원자번호에 의해 결정되는데, 질량수는 양성자와 중성자가 결정한다. 주기율표에서 보면 원자번호는 같지만 질량수가 다른 물질이 바로 동위원소다. 쉽게 말해 양성자 수가 같고 중성자의 수가 다른 원자핵으로 이뤄진 원소를 지칭한다. 지금까지 발견된 핵종(核種)은 통틀어 1370종으로, 이 중 자연에서 발견되는 것은 286종에 이른다. 이 가운데 방사선을 방출하면서 안정적으로 붕괴하는 14종을 방사성 동위원소라고 부른다.

방사성 동위원소가 의료 분야에 사용된 것은 1930년대로 거슬러 올라간다. 마리 퀴리의 사위인 프레드릭 졸리오 퀴리와 딸 이렌느 졸리오 퀴리는 폴로늄을 이용한 실험 과정에서 질소, 규소, 인의 동위원소에 해당하는 인공 방사성 동위원소를 만들어 1934년 2월 ‘네이처 메디신’에 발표했다. 1946년에는 미국 오크리지국립연구소가 방사성 핵종을 본격적으로 생산하기 시작하면서 지금의 핵의학으로 발전하는 발판을 마련했다. 그 뒤로 테크네튬-99m과 요오드-123과 131, 탈륨-201, 인듐-111처럼 오늘날 치료와 진단에 사용되는 동위원소가 잇따라 만들어졌다.

의사들은 물리적으로 불안정한 동위원소를 환자의 몸에 넣어 상태를 보거나 항암 치료에 사용한다. 몸에 들어간 동위원소가 붕괴되면서 알파입자, 베타입자, 감마입자를 내놓으며 안정적인 원소로 바뀌는데, 그 순간을 민감한 카메라로 포착하면 응혈, 종양 등의 위치를 파악할 수 있다. 또 치료용으로도 활용되는데, 미국의 핵의학자인 샘 세이들린 박사는 1946년 요오드(I-131)를 갑상샘암 환자에게 투여해 치료에 성공했다는 결과를 의학전문지 ‘미국의사협회’에 소개했다. 지금도 이 방법은 암 환자 치료에 사용되고 있다.

이번에 문제가 된 몰리브덴-99는 진단용으로 사용되는 테크네튬-99m을 만드는 재료로 쓰인다. 테크네튬-99m은 연구용 원자로에서 천연 몰리브덴이나 우라늄을 넣고 중성자 빔을 쏴서 만든 몰리브덴-99가 붕괴하는 과정에서 생긴다. 테크네튬-99m은 뼈와 뇌, 심장을 비롯한 각종 장기에 발생한 난치성 질환을 진단하는 핵의학 영상 검사에 사용된다. 특히 반감기가 6시간으로 짧아 방사선 피폭량이 매우 적고 정확도가 높아 전체 의료 진단용 동위원소 사용량의 80%를 차지한다.



방사선 진료 대란 속수무책

방사성 동위원소를 생산하는 데는 원자로나 가속기가 이용된다. 고에너지 입자를 충돌시켜 동위원소를 생산하는 방식은 가격이 비싸 대다수 동위원소는 대량 생산이 가능하고 저렴한 원자로를 이용한다.

하지만 국내에는 한 해 평균 1590만 건의 의료 진단에 사용되는 의료용 동위원소를 생산하는 전문 시설이 없다. 연구용 원자로 하나로 역시 동위원소 생산시설이 있지만 의료용 물질을 안정적으로 생산하기엔 생산량이 턱없이 부족하다.

한국원자력연구원 동위원소이용기술개발부 최선주 부장은 “하나로 시설을 풀가동해도 국내 수요의 10%를 공급하기에도 벅차다”며 “국내 수요량을 맞추려면 다른 연구를 중단해야 한다”고 말한다. 결국 이번 사례처럼 해외 원자로가 가동을 멈추면 몰리브덴을 100% 수입에 의존하는 한국에는 불똥이 튈 수밖에 없는 상황이다. 게다가 3월초까지 가동하기로 했던 네덜란드 HFR 원자로가 일정을 앞당겨 2월 가동을 중단함에 따라 상황은 더 악화됐다. 올해 4월 중 캐나다의 NRU 원자로가 재가동되더라도 2개월간은 꼼짝없이 부족 현상을 겪을 것으로 예상된다.

캐나다와 네덜란드 원자로는 현재 세계 의료용 동위원소 수요의 64%를 공급하고 있다. 더 우려되는 것은 새로운 원자로가 개발되지 않는 한 앞으로도 부족 현상은 지속될 것이란 점이다. 교육과학기술부는 “앞으로 최소 6년간 부족현상은 계속될 것”으로 내다보고 있다.


하지만 이런 상황에 대한 대책은 아직까지 뚜렷하게 나온 것이 없다. 2월 16일 교과부에는 교과부 원자력국 관계자와, 보건복지가족부, 관계기관과 기업 관계자가 이에 대한 대책을 논의하기 위해 모였다. 이 자리에서 관계자들은 수급이 부분적으로 중단된 경우와 일시 중단된 경우, 장기화될 경우 등 3가지 시나리오에 맞는 대응 전략을 논의했다.

부분적으로 중단된 경우 하나로 가동률을 높여 국내 수요 10%를 공급하고, 중단이 일시적일 경우에는 몰리브덴-98을 이용해 대체하는 방안이 제시됐다. 또 공급 중단 사태가 장기화될 경우에는 현재의 하나로 설계를 변경해 대량 생산 체계를 갖춘다는 계획이다. 하지만 하나로의 가동률을 높이고 대체생산을 하기 위해서는 최소 연구 기간이 2년 가까이 걸리는 데다, 대량 생산을 하기 위해 1년 안에 하나로 설계를 변경한다고 해도 다른 연구를 전면 중단해야 하기 때문에 막심한 손해를 감수해야 하는 실정이다. 또 2500억 원을 들여 새 원자로를 짓는다고 해도 2016년 이후에야 공급이 가능한 상황이다.


따라서 현재의 검사 대란을 막기 위해 해외 여유분을 수입하는 한편, 국내 기관에서 부족분을 돌려 막을 수밖에 없는 실정이다. 그 사이 국제시장에서 몰리브덴 가격은 5배 가까이 폭등했다. 방사성동위원소 부족은 장기적으로 의료비 상승으로 이어진다. 국내에서는 2007 방사성 동위원소 시장의 수급 불안에 따라 이듬해 검사 부분의 의료보험 수가를 인상했다.

현재 국내에 의료용 동위원소를 공급하는 삼영유니텍은 남아공과 공급 계약을 체결했지만 50% 이상의 가격 인상을 요구하고 있는 실정이다. 업체 측은 국제 공급가격 인상으로 가격 인상을 요구하고 있지만 의료비 인상을 우려한 정부는 속병을 앓고 있는 상황이다. 그나마 남아공의 사파리 원자로 역시 언제 다시 멈출지도 모르는 상황이다.


방사선 진단 외에 대체 진단 기술이 없는 것은 물론 아니다. 하지만 양전자방출컴퓨터단층촬영(PETCT)검사를 통해 암세포가 뼈로 전이된 것을 보려면 뼈 스캔보다 7배 이상 비싼 진료비를 내야 한다. 뼈 스캔은 12만 원이지만 PET은 75만~100만 원에 이른다. 특히 허혈 심근 검사나 심근 스펙트 같은 심장 검사, 뼈 스캔처럼 다른 방식에 비해 값이 월등히 싼 진료가 중단되거나 축소될 경우 환자의 의료비 부담은 가중될 것으로 보인다.

학계 일각에서는 2007년 대란이 예고됐을 때 충분히 대책을 마련하지 못한 정부의 늑장 대처가 이번 사태를 불러왔다는 비판이 나오고 있다. 원전 해외 수출에만 주력한 채 국민 보건을 등한시했다는 비난도 면치 못하게 됐다.

핵의학 전문가들은 이번 기회에 안정적으로 동위원소를 공급할 수 있는 전용 원자로 건설에 나서야 한다고 주장한다. 문제는 약 2500억 원이 드는 설립 비용 확보와 건립 지역의 수용 가능성 여부다. 2005년 정부가 전북 지역에 연구용 원자로 건설을 추진한 적이 있으나 지역 주민의 반대에 부딪혀 건립 계획이 무산된 바 있다. 교과부는 중장기적으로 동위원소를 대량 생산하는 전용 원자로 건설을 추진하는 방안을 마련하고 기획재정부에 타당성 조사를 받을 계획이다.

정재민 교수는 “진료용 동위원소 공급이 불안해짐에 따라 요오드-131 같은 암 치료용 동위원소의 수급도 불안해지고 있다”며 “당장 몇 달 뒤부터 상당 기간 동안 수급불안은 계속될 것”이라고 우려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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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년 03월 과학동아 정보

  • 박근태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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