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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ot Issue] 다 쓴 원전, 때 벗기고 로봇으로 해체한다

원전에서 방사능이 가장 큰 원자로는 로봇으로 원격해체한다. 사진은 신한울 원전1호기의 원자로(작년 4월 투입 전 찍은 사진).

“철컹!”

로봇팔 끝이 물속에 잠겨있던 원자로에 닿았다. “자, 지금부터 긴장하고! 절단 시작합니다!” 로봇팔에서 엄청난 압력으로 화강암이 섞인 물이 뿜어져 나왔다. 두꺼운 쇳덩어리인 원자로 뚜껑이 날카로운 칼로 도려내지듯 잘려나갔다. 엄청난 굉음이 스피커 너머로 들려왔다. “이번엔 레이저 절단기 들어갑시다. 실수하지 말고, 연습 때처럼 한 번에 성공하자고.” 원격 조종석에 앉은 조종사의 손에는 벌써 땀이 흥건했다.

- 가까운 미래, 원격조종 로봇을 이용해 원전해체하는 장면(위 사진).


원전해체 논의가 우리나라에서도 본격적으로 시작됐다. 지난 1월 15일 원자력안전위원회는 전체회의를 열고 월성 1호기를 계속 운전할지 여부를 심사했다. 오전 10시에 시작한 회의는 저녁 8시까지 결론을 내지 못해 결국 다음 회의로 결정을 미뤘다. 만약 이날 원안위가 월성 1호기에 대해 ‘영구정지’ 결정을 내렸다면, 물 밑에 있던 ‘원전해체’ 논의가 본격적으로 시작됐을 것이다.

원전해체는 세계적으로 이미 ‘현재진행형’이다. 세계에서 수명이 끝나 가동을 멈춘 원전은 149기다. 이 중 해체가 끝난 원전은 19기, 해체 진행 중인 원전은 100기다. 나머지 30기는 해체를 앞두고 있다. 운영 중인 원전 437기도 2050년이면 대부분 작동을 멈춘다. 원전 수명이 30~60년인 걸 생각해보면 놀라운 것도 아니다. 국내에도 2017년 수명이 끝나는 고리 1호기(수명연장 심사 중)를 비롯해 가동 25년을 넘긴 원전만 9기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 원전 종료를 주장해온 탈핵 진영은 말할 것도 없고, 원전해체를 오랫동안 터부시해 온 친핵 진영에서도 해체 이야기가 슬며시 흘러나오고 있다. 게다가 국제원자력기구(IAEA)에서 이 분야의 시장 가치가 2050년까지 1000조 원에 이를 것으로 전망하는 바람에 원전해체를 새로운 시장으로 보는 시각마저 생겨났다.

하지만 원전해체 기술을 가진 나라는 아직 많지 않다. 미국과 일본, EU(유럽연합) 정도다. 해체 경험도 미국 15기, 독일 3기, 일본 1기뿐이다. 우리나라는 경험도 없고 기술도 부족하다. 다만 한국원자력연구원이 연구용 원자로(TRIGA MARK-2,3) 해체 경험을 바탕으로 그동안 꾸준히 해체기술을 쌓아왔다. 원전해체에 필요한 핵심기술 38개 중 17개를 현재 확보했는데, 나머지 21개 기술을 2021년까지 개발해 2030년까지 상용화시킨다는 계획이다. 여기에 필요한 해체종합 연구센터도 2019년이면 문을 열 계획이다. 좀더 알아보기 위해 대전에 있는 한국원자력연구원을 찾았다.

 
  PLUS  

즉시해체 vs 지연해체

원전해체가 결정되면 즉시해체와 지연해체 둘 중 하나를 선택하게 된다. 즉시해체는 영구정지 후 바로 해체하는 방식으로 시간을 단축하는 대신 작업자가 피폭될 위험이 있다. 해체는 ①해체준비 ②제염 ③절단/철거 ④폐기물 처리 ⑤부지 복원 등 다섯 단계로 진행되며 약 20년이 걸린다. 지연해체는 한동안 방사능이 줄어들기를 기다렸다가 해체에 들어가는 방식이다. 역시 다섯 단계며 약 60년이 걸린다. 우리나라는 원전에 대한 주민들의 불안이 높아 즉시해체를 선택할 가능성이 높다. 세계적으로도 즉시해체를 선택하는 추세다.

 


원전 하나에 방사성폐기물만 6000t

‘만들기도 하는데 해체를 못하나?’ 혹시 이런 의문이 들지 않는가. 어릴 때 로봇 장난감 만들던 걸 떠올려 봐도 조립하느라 끙끙댔지 해체하느라 머리 쓴 기억은 별로 없다. 그런데 원전은 그렇지 않다. 방사성폐기물 때문이다. 110만kW급 원전 1기를 철거하면 폐기물이 50~55만t 가량 나오는데, 그 중 약 6000t이 방사성폐기물이다.

원자로와 파이프 라인, 증기발생기 등 원전 핵심설비(1차 계통)에서 주로 나오는 방사성폐기물 6000t은 결코 적은 양이 아니다. 원자로를 제외하면 대부분 중저준위 폐기물인데 경주 방사성폐기물처분장에 드럼당 1310만 원을 들여 보관해야 한다. 폐기물 6000t을 200L 드럼에 넣으면 2만 개가 넘게 나온다. 비용은 약 2470억 원(2012년 산업통상자원부 추정). 원전 1기 해체 비용 6033억 원의 41%다. 그래서 방사성폐기물 양을 줄이는 게 원전해체의 핵심이다.

이제 원전해체를 시작해 보자. 집에서 쓰레기를 줄일 때 가장 손쉬운 방법은 분리수거다. 원전도 마찬가지다. 방사능 물질에 오염된 부위만 골라서 떼어내는 기술을 ‘제염’이라고 하는데, 제염을 잘할수록 방사성폐기물 양은 줄어든다. 윤지섭 융복합기술개발본부장은 “원전해체로 나오는 방사성폐기물을 3000t으로 줄이는 게 목표”라고 말했다. 제염으로 오염부위를 제거하고 남은 폐기물은 다른 원전을 지을 때 재활용할 수 있다.


거품목욕으로 방사능 때 벗긴다

제염 과정은 몸에서 때를 벗겨내는 일과 비슷하다. 원전도 오래 가동하다보면 냉각수 파이프라인 안쪽에 수 마이크로미터(μm=100만분의 1m) 두께로 때(산화막)가 생기는데, 여기에 오염물(방사성코발트)이 끼어 들어간다. 고온고압에서 생긴 얇고 단단한 때인데다 사람이나 로봇이 접근할 수 없는 위치에 있어 벗겨내기가 어렵다. 이런 방사능 때를 밀기 위해 철․니켈 산화물을 녹이는 환원제, 크롬 산화물을 녹이는 산화제 등 제염제를 넣은 물을 번갈아 투입한다. 그러면 산화막이 녹으면서 방사성코발트가 95%~98% 제거된다. 이후 분사연마․전해연마․화학침수제염․레이저제염 등 복잡한 작업을 거쳐 방사능을 완전히 없애면 파이프라인을 재활용할 수 있다.

제염액에서 오염물을 거르는 여과물질도 방사성폐기물이 된다. 원전을 해체할 때 1차 계통에서 제염액을 수십 만 L씩 쓰는데, 여기서 나오는 방사성 ‘땟국물’을 거르는 데 상당한 양의 이온교환수지가 필요하다. 방사성 때를 품은 이 수지가 최종 방사성폐기물이다. 제염제의 화학적 성질을 조정하면 이온교환수지를 적게 쓰고도 효과적으로 방사성물질을 분리할 수 있다. 최왕규 원전제염해체기술개발부 책임연구원은 “세계에서 가장 앞선 프랑스 회사 아레바도 제염액 1000L 당 이온교환수지가 30L 정도는 나온다”면서 “우리는 20L로 줄이는 게 목표”라고 말했다.

원자력연구원에서는 욕실에서 쓰는 곰팡이제거제처럼 거품 형태로 제염액을 만드는 연구도 진행하고 있다. 표면적을 수십 배 넓힐 수 있고 벽면에 붙일 수도 있는 거품은 사용후핵연료 저장조를 제염할 때도 요긴하다. 저장조는 원전에서 1차 계통 다음으로 방사능 오염이 심한 곳인데, 가로․세로 15m에 높이가 10~15m다. 저장조를 제염액으로 채우는 대신 거품으로 벽면만 제염하면 폐기물을 확 줄일 수 있다. 거품목욕으로도 벗겨내지 못한 벽면의 방사능 때는 제염패치를 개발해 붙일 계획도 세우고 있다.


  PLUS  

로봇팔의 힘이 손끝에 그대로

아직 비닐도 채 벗겨내지 않은 ‘신상’ 조종석에 앉으니 기분이 묘했다. 기자는 1월 6일 원자력연구원을 방문해 원전해체용 가상시뮬레이터를 직접 체험해봤다. 시뮬레이터는 작년 10월에 완성해 시험테스트 중이었다. 고리 1호기 내부를 재현한 영상이 눈앞에 나타나자 조종간을 잡은 손에 긴장이 느껴졌다.

“너무 일찍 오셨어요. 봄에 오셨으면 철거작업 시켜드릴 수도 있었는데, 아직 완성이 다 안 됐거든요.” 시뮬레이터를 개발한 최병선 책임연구원이 말했다. 아쉬운 마음에 애꿎은 조종간만 이리저리 움직였다.

‘턱’, 조종간에 뭔가 닿은 느낌이 들었다. 3D 그래픽 화면에서 로봇팔도 벽에 부딪혀 멈춰 있었다. 다시 한번 움직여봤다. 로봇팔이 느끼는 힘이 조종간을 타고 손에 전달됐다. “가상현실 공간에서 연습할 때는 물론 실제 현장에서 철거할 때도 조종사가 힘을 느낄 수 있도록 설계했습니다. 그래서 이름이 ‘실감형’ 시뮬레이터지요.”


원자로는 로봇이 철거한다

아무리 제염을 해도 방사능이 없어지지 않는 곳이 있다. 원전의 심장, 원자로다. 오염이 너무 심해 전부 고준위 폐기물 처분장으로 보내야 하는데, 문제는 지름 4m, 높이 13m, 두께 약 30cm인 이 쇳덩어리를 어떻게 옮기는가다. 결국 잘라서 버려야 하는데, 이 과정에서 방사선에 피폭될 수 있다. 더구나 물속에서 해체를 해야 한다. 그래서 원자로는 처음부터 끝까지 로봇이 해체한다(로봇이라고 무적은 아니라서 방사선에 오래 노출되면 망가진다). 원자로 주변에 원격으로 작동하는 크레인과 로봇팔, 톱날, 띠톱 등을 설치해놓고 사람은 모두 철수한다. 그런 다음 조종실에서 로봇을 움직여 원자로를 하나하나 절단한다. 잘라낸 조각은 바로 드럼에 넣어서 방사성폐기물처분장으로 보낸다.

로봇 작업은 굉장히 어렵다. 오염된 부위를 정확하게 잘라낸 다음 200L 드럼에 꽉 들어차게 차곡차곡 넣는 일은 사람이 직접 하기에도 어려운 일이다. 숙달될 때까지 훈련이 필요한데 이를 위해 원자력연구원은 ‘실감형 원격절단 시뮬레이터’를 개발할 계획이다. 최병선 책임연구원은 “고리 1호기 도면을 구해 원자로를 3D 그래픽으로 재구성했다”면서 “원격조종 시뮬레이터는 나중에 실제 원자로를 철거할 때도 똑같이 쓴다”고 말했다(앞장 Plus 참조).


 
  PLUS  
 

 
38개 기술이 모인 해체 오케스트라

‘원전해체의 꽃’은 제염과 철거작업이다. 하지만 두 단계만 있다고 해체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먼저 방사선이 어디에 얼마나 남아있는지 정확히 측정해야 한다. 또 제염 후 철거한 폐기물을 용광로에 녹여서 마지막 남은 방사능물질까지 제거해야 하고, 원전으로 오염된 토양을 깨끗이 복원하는 기술도 필요하다. 이런 기술 38개가 깨알같이 모여야 원전을 해체할 수 있다. 여기에는 화학공학, 전자기계, 원자력공학, 로봇공학, 환경공학, 화학, 토목, 건축 등 온갖 과학기술이 총집합돼 있다. 윤지섭 본부장은 “원전해체는 융합과학”이라면서 “본격적인 연구를 하려면 해체센터가 건립되고 현재 20여 명에 불과한 연구인력이 확충돼야 한다”고 말했다.

세계원전안전해체학회 준비위원장인 서균렬 서울대 원자핵공학과 교수는 “학계에서도 원전해체기술 개발에 관심이 많지만 아직 초기인력 양성 수준”이라고 말했다. 하지만 모든 기술을 확보해야 원전을 해체할 수 있는 건 아니다. 이헌석 에너지정의행동 대표는 “고리 1호기를 만들 때도 우리나라에 아무 기술이 없었다”면서 “그때 미국이 만드는 걸 어깨 너머로 보며 원전건설 기술을 배운 것처럼, 원전해체도 먼저 외국기업과 합작해 진행하면서 부족한 기술을 확보하면 된다”고 말했다.

최근 원전해체 논의는 엉뚱한 곳으로 불이 튀었다. 부산, 울산 등 8개 지자체에서 원전해체센터를 유치하겠다고 발 벗고 나선 것이다. 서균렬 교수는 “원전해체 산업을 ‘황금알을 낳는 거위’로 오해한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전체 시장이 1000조 원 규모인 것은 맞지만, 우리 기술 수준을 감안하면 잘해야 5~10조 원을 우리나라가 챙길 수 있을 것”이라며 “그것도 2050년까지 모두 합친 비용으로, 햇수로 나누면 1년에 1조 원도 안 된다”고 말했다. 하지만 거품이든 아니든, 원전해체는 여전히 뜨겁다. 그리고 발등의 불은 시간이 갈수록 점점 커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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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년 02월 과학동아 정보

  • 변지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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