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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도 과천에 사는 가정주부 백경애 씨는 평소 절약 정신이 투철한 주부로 불린다. 꼼꼼한 살림살이 솜씨는 물론이거니와 보이지 않는 낭비까지 철저하게 찾아내는 세심함이 돋보인다. 그의 가족은 지난해 환경부가 선정한 모범 저탄소 가정에 뽑혔다. 전년도보다 전기와 수도, 가스를 더 적게 쓰기 위해 노력한 덕분이다.

그렇다고 백 씨의 가족이 지독하리만치 안 쓰기만 하는 ‘자린고비’ 다이어트를 한 것은 결코 아니다. 백 씨는 “손님이 오거나 온 가족이 모였을 때는 어쩔 수 없이 소비할 수밖에 없는 경우가 많다”며 “쓸 때는 쓰면서 불필요한 낭비를 없애는 방향으로 감량에 힘썼다”고 말한다. 올해 중학교 3학년인 딸 주인이와 초등학교 3학년인 태건이의 엄마이자 네 가족의 살림을 책임지고 있는 그녀는 생활 속 조그만 습관을 고치는 데서 방법을 찾았다.

내 집안의 탄소 어디서 새나

백 씨는 탄소 감량에 들어가기에 앞서 집안 곳곳을 세심하게 관찰하기 시작했다. “중앙난방을 하는 아파트나 아이가 여럿인 가정에서 가스나 수도 사용량을 획기적으로 줄이기는 힘들어요. 오히려 잘 드러나지 않는 곳에서 빠져나가는 게 의외로 많더라고요.”

마침내 눈에 띈 것이 불필요하게 사용되고 있는 집안 내 ‘대기전력’. 컴퓨터와 TV, 충전기처럼 항상 전원 콘센트에 꽂혀 있는 전자기기가 탄소 감량 대상에 올랐다. 집집마다 조금씩 차이가 나지만 우리나라 4인 가정에서 플러그만 뽑아놔도 한 달에 이산화탄소 5.18kg를 덜 배출할 수 있다.

백 씨 가족은 나들이를 할 때는 반드시 냉장고를 제외한 대부분의 전자기기 플러그를 뽑아 놓는 것을 원칙으로 삼았다. 보통은 컴퓨터 본체만 끄고 모니터를 잘 안 끄게 된다는 사실을 알고 감량 초반에는 컴퓨터를 끌 때마다 특히 신경을 썼다. 항상 꽂혀 있는 휴대전화 충전기도 충전할 때만 꽂아 쓰기로 했다. 백 씨는 또 살림살이 패턴에 조금 변화를 줬다. 가장 쉽게 할 수 있는 부분이 세탁 횟수를 줄이는 일이었다. 매주 평균 10번 넘게 사용하던 세탁기를 한 주에 4번만 쓰기로 했다.

“탄소 다이어트를 하기 전에는 거의 매일 두 번씩 세탁기를 돌렸어요. 아이들이 뛰어노는 나이이다 보니 빨랫감이 많이 나왔지요. 하지만 10번 돌릴 때나 4번 돌리는 때나 실제 빨랫감 양이 별로 차이가 나지 않는다는 사실을 알게 됐어요.”


세탁기로 한 번 빨래를 할 때 배출되는 이산화탄소는 약 309g. 여기에는 모터를 돌리는 데 사용된 전기는 물론이고 수돗물을 생산하기 위해 상수도펌프장의 모터를 돌리고, 세탁이 끝난 뒤 배출되는 하수를 처리하는 데 필요한 전기를 생산하는 과정에서 배출된 이산화탄소까지 포함된다. 빨랫감을 앞으로 넣는 드럼세탁기냐, 위로 넣는 세탁기냐에 따라 탄소배출량은 또 달라진다.

물론 백 씨 가족은 다이어트 과정에서 잠시 위기를 겪기도 했다. 사계절 중 여름철은 가장 견디기 힘든 시기다. 고온다습한 여름이 계속되면서 에어컨과 선풍기를 사용하는 횟수가 어쩔 수 없이 늘어나게 됐다. 백 씨는 에어컨을 켜자고 보채는 아이들에게 대신 샤워를 권했다. 샤워를 할 경우 체감온도가 2~3℃ 떨어지기 때문에 냉방기를 켜는 시간을 그만큼 줄일 수 있다는 생각에서다. 53m2(16평)형 에어컨을 1시간 켤 때 배출되는 탄소는 764g. 샤워를 했을 때 평균 19~30L의 물을 쓰는 것을 고려하면 약 70배가 넘는 탄소가 더 배출되는 셈이다.


서양식 아침 식사는 ‘탄소 제조기’

일상에서 작은 실천으로 온실가스를 줄이는 방법은 많다. 궁전 같은 호텔에서 근사한 아침식사를 꿈꾸는 사람에겐 조금 서글픈 얘기일 수 있지만 서양식 아침식사는 온실가스 제조기나 다름없다. 일본 산업기술종합연구소(AIST)에 따르면 토스트와 계란 프라이, 샐러드, 요구르트, 커피로 구성한 서양식 아침식사가 상위에 오르기까지 무려 1200g나 배출된다. 이는 휴대전화를 66시간을 쉬지 않고 통화하거나 냉장고를 48시간 돌릴 때 나오는 양과 맞먹는다. 전열기나 불을 사용하는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콜라 한 병을 마실 때도 조심스럽다. 한국에너지경제연구원에 따르면 가게에서 파는 콜라 500mL를 사서 마시면 제조에서 폐기 단계까지 총 168g의 이산화탄소가 배출되는 것으로 나타났다. 이는 라디오를 10시간 청취하거나 텔레비전을 3시간 시청한 것과 같으며 3세대(3G) 휴대전화를 9시간 조금 넘게 사용한 것과 같은 양이다. 양적인 면에서 그보다 절반 정도인 오렌지주스 250mL 팩 1개에선 콜라 500mL 페트병보다 2배 이상(360g)의 탄소가 나온다.


한국환경산업기술원이 지난해 11월 발표한 ‘저탄소생활양식’은 세계에서 처음으로 정부 차원에서 마련한 가이드라인을 제시하고 있다. 한국 가정을 대표하는 67~99m2 규모의 일반아파트에 사는 4인 가족을 기준으로 마련된 이 가이드라인은 일반 가정 1000개와 저배출 가정 79개의 탄소 배출 패턴을 비교 분석한 것이다. 조사 결과에 따르면 일반 가정이 매월 난방과 취사, 전기, 수도, 폐기물을 통해 배출하는 탄소량은 매월 평균 414.5kg. 백 씨 가족처럼 저배출 가정은 82.1% 수준인 338kg을 배출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그렇다면 일반 가정과 저배출 가정은 어디에서 그런 차이가 날까. 저배출 가정은 먼저 수도 사용량에서 일반 가정의 절반 수준에 머문다. 저배출 가정은 매월 1.2t 가까이 덜 사용한다. TV 시청 시간에서도 차이가 나 일반 가정이 하루에 4시간 24분 TV를 시청하는데 비해 저배출 가정은 1시간 적은, 3시간 31분을 시청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가전제품 가운데 가장 전기를 많이 소비하는 에어컨도 저배출 가정이 하루에 24분 덜 사용하고 연간 사용기간도 10일이 더 적다. TV시청 시간을 하루 1시간씩, 컴퓨터나 에어컨 사용시간을 하루 2시간씩, 실내 난방온도를 평균 1.04℃만 줄이면 연간 약 13만 7000원을 절약할 수 있다.


몸에 습관 배어야 감량 성공

탄소 다이어트는 몸무게를 빼는 일반 다이어트와 유사한 면이 많다. 늘리기는 쉽지만 빼기는 어렵다는 점이 그렇다. 다이어트를 시작한 지 얼마 뒤 나타난다는 ‘요요현상’까지 똑같이 나타난다. 실제로 탄소 감량에 성공한다고 해도 이를 획기적으로 줄이거나 현 상태를 유지하는 데는 상당한 노력이 필요한 것이 사실이다.

저배출 가정에 포함됐던 주부 이영희 씨의 가족 역시 2008년부터 2009년까지 탄소 감량에 성공했지만 최근 이사를 하면서 탄소 배출량이 다시 늘어난 경우다. 4인 가족인 이 씨 가족은 얼마 전 공동주택으로 이사를 갔다가 전기료 영수증을 보고 깜짝 놀랐다. 많이 나와 봤자 1만 4000원이던 한 달 전기사용료가 몇 달 새 2만 4000원으로 껑충 뛰었기 때문이다.

이 씨 가족 역시 대기전력을 포함해 불필요한 전기소비를 줄여 탄소 감량에 성공한 경우다. 컴퓨터 사용시간을 1주일에 4시간으로 줄이고, 책 읽는 환경을 만들기 위해 TV를 과감히 없앴다. 물론 외출할 때마다 집안에 안 쓰는 전기 코드를 모두 뽑고 나가는 것도 잊지 않았다. 하지만 새로 이사한 공동주택은 바깥에서 빛이 들어오는 계단을 비롯해 집안 곳곳에 불필요한 전등이 너무 많았다. 또 김치냉장고를 쓰고 난방비를 아끼기 위해 전기장판을 쓰게 됐다. 아이들이 크면서 컴퓨터를 사용하는 시간과 빈도도 예전보다 늘었다는 것.


실제 특별한 계기가 없어도 배출되는 탄소량이 갑자기 늘어나는 경우는 많다. 같은 면적이라도 주택 유형에 따라 달라지기도 하고 난방 방식에 따라 또 달라지기도 한다. 같은 면적이라도 주택 유형에 따라 배출되는 이산화탄소의 양은 달라진다. 예를 들어 같은 67~99m2의 면적을 가진 주택이라도 4인 가족 기준으로 아파트는 한달 평균 371kg의 탄소를 배출하는 것에 비해 단독주택은 486.9kg, 다세대주택은 464kg을 각각 배출한다. 집안의 구조와 단열 방식, 난방 방식에 따라 차이가 나기 때문이다.

하지만 두 가정의 사례에서 공통적으로 드러났듯 대부분 생활 속 작은 변화가 탄소 배출 감소로 이어지는 경우가 많다. 한국환경산업기술원 탄소경영팀 서민석 연구원은 “모범 가정과 일반 가정이 사소한 생활습관에서 차이가 생긴다”며 “사소한 습관만 바꿔도 가정에서 배출되는 온실가스량을 조금씩이나마 줄일 수 있다”고 말한다. 지난해 한국 가정에서 배출된 온실가스량은 국내에서 배출된 온실가스의 10.6%를 차지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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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년 03월 과학동아 정보

  • 박근태 기자 · 사진 istockphot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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