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일에서 공학을 전공하는 대학생은 방학을 이용해 총 26주의 공장실습과정을 의무적으로 이수해야 한다.
'지금 유학 현장에서는'이라는 제목의 글을 '과학동아'로부터 부탁받고난 뒤의 몇 주는 이제 근 6년에 접어드는 나의 독일 유학생활을 다시 한번 정돈해보는 기회가 되었다.
유학이 소수의 선택된 사람들의 특권인 양 여겨졌던 과거와는 달리 많은 사람들이 유학을 하고 있는 요즘에, 어떤 한 개인의 유학생활을 전한다는 것이 어떤 의미가 있을 지 모르겠다. 단지 어떻게 생각하면 또 다른 유형으로 유학을 시작했던 나의 경험이 하나의 예로서라도 읽는 사람들에게 조그만 도움이 되었으면 하는 생각에서 이 곳에서의 유학생활을 전해본다.
내가 독일을 유학지로 선택한 동기는 한국에서의 대학 생활과 관계가 있다. 그렇다고 내가 한국에서 기계과를 졸업했고, 그 전공을 더 발전시키려 했던 것은 아니다.
한국에서의 내 전공은 공학과는 거리가 먼 독문학이었다. 그러나 대학 진학 후 줄곧 전공에서 느껴야했던 몸에 맞지 않는 옷과 같은 느낌때문에 결국 3학기가 끝나갈 무렵 나는 독일 유학을 선택하게 됐다. 독문학도였던 내게 독일은 그리 낯선 곳이 아니었기 때문이다.
일반적으로 독일에서 대학에 진학하려면 4년 간의 국민학교 과정(grundschule)과 9년제 인문계 중·고등학교(gymnasium)를 마치고 대학진학 시험(abitur)에 합격해야 한다. 한국의 인문계 고등학교에서 문과반과 이과반으로 나뉘어 대학 진학 준비를 하는 것과 마찬가지로 독일 학생은 11학년 부터 자기가 하고자 하는 전공에 따른 필수과목을 이수하게 된다. 예를 들어 공과대학으로 진학하기 위해서는 특별히 수학 물리 화학을 집중적으로 공부한다.
그래서 문과 전공이던 나는 기계공학이라는 새로운 전공을 시작하기 전 위에서 말한 필수과목들을 1년간의 특수과정(Studienkolleg)에서 이수해야 했다.
독일 공과대학의 학제는 일반적으로 4학기의 기초 과정(vordiplom), 5학기의 전문과정(hauptdiplom)과 박사과정(doktorant)으로 나누어져 있다. 기초 과정에서는 전문과정에 필요한 전반적인 것을 다루며, 전문과정에서는 자기 전공 분야의 방향을 결정한다. 한국의 학제와 다른 점은 전문과정에서 한국의 석박사과정에서 필요한 모든 과목을 이수하고, 박사과정에서는 반드시 전공분야에 대한 새롭고 독창적인 연구를 한 뒤 그 주제에 대한 박사논문만 쓰면 된다는 것이다.
주임교수가 이끄는 연구팀
독일 공과대학의 구조적 특징은 각 학과마다 전문 분야에 따라 상당수의 주임교수(lehrstuhl)가 있다는 점이다. 한 주임교수는 특정 분야에 대한 연구를 책임지고 있기 때문에 일개의 팀을 이루고 있다. 이와 같은 연구팀은 주임교수를 비롯하여 여러 명의 평교수, 박사과정생과 전공과정에 있는 학생들을 포함히여 2, 30명으로 구성되어 있다.
대부분의 공과대학은 이와같은 연구팀을 중심으로 이루어지고 있는데, 주임교수와 평교수들은 학생들의 수업지도 이외에 외부로부터 의뢰받은 연구를 수행하며, 과정 중에 있는 요원들은 연구에 대한 보조와 학생들을 위한 이론에 대한 철저한 연습을 담당한다.
루르대학(Ruhr-Universität) 기계공학과를 예로 들어보면 기초과정에는 주당 24시간(12시간의 이론과 그에 대한 12시간의 연 습시간)에 걸친 수업이 이루어진다. 10여개의 필수 과목은 학기 중 평가고사를 치르게 되며, 이 고사에 합격해야 방학 중에 있는 과목 수료 시험에 응시할 수 있다. 일반적으로 이 필수 과목은 2~4학기 동안 수강해야 하고 몇 번의 평가고사를 본다. 그렇기 때문에 첫 학기에 기계과를 수강하는 학생 수는 4백50명 정도인데 평가고사에 합격해 과목 수료시험을 보는 숫자는 채 2백명도 안되는 편이다.
전문과정에서는 6개의 일반 필수 과목과 3개의 전공 필수, 1개의 일반 실습과 1개의 전공 실습을 이수해야 한다. 그리고 최종적으로 기계설계에 대한 연구 보고와 전공에 관한 논문 제출로 모든 과정을 마치게 된다.
독일 공대의 또 하나의 특성은 이론과 실습이 병행된다는 점이다. 공학을 전공하는 학생은 학기 중의 수업 이외에도 방학을 이용한 총26주의 공장실습 과정(기초과정에서 13주, 전문과정에서 13주)을 의무적으로 이수하여야 한다. 이와 같은 현장 실습은 학생들에게 이론과 실제를 연결시킬 수 있는 능력을 키워주는 기능을 갖고 있다.
1980년대 후반기부터 급격하게 발전한 독일의 컴퓨터 분야는 기계 분야 발전에도 많은 가능성을 제시하고 있다. 특히 정보처리 속도의 증가로 날로 각광을 받고 있는 컴퓨터를 이용한 수리적 계산방법은 지금 기계과는 물론이고 대부분의 공과대학에서 연구의 주류를 이루고 있다. 가장 많이 쓰이는 방법 중의 하나는 '피니테 - 엘레멘트 - 방법(Finite-Element-Methode)'으로 기계설계의 안정성 계산, 유체역학에서 기체와 유체의 흐름 연구, 열역학의 열전도 상태, 토목 분야에서의 토양·교량 및 댐의 안정성 검사 등 다방면에서 이용되고 있다.
내가 일하고 있는 연구실에 작년부터 도입되어 사용하고 있는 병렬식 컴퓨터(Transputer)는 컴퓨터를 이용한 수리적 연구방법에 새로운 차원을 열었다. 종래의 직렬식 컴퓨터에서는 모든 계산 과정을 하나의 CPU(중앙처리장치)에서 프로그램의 작성 차례에 따라 순서대로 실행하느라 시간이 걸린 반면에, 이 병렬식 컴퓨터는 36 비트(bit)의 마스터(Master) CPU와 다수의 슬래브(Slave) CPU로 구성되어 여러가지 계산과정을 동시에 수행하므로 종전의 정보처리 속도보다 수십배나 빠르다. 그래서 이러한 병렬식 컴퓨터를 효과적으로 사용하려는 연구가 지금 독일 내에서는 활발히 진행 중이다.
기계공학 분야에서의 컴퓨터의 활용은 특히 기계 제도(CAD)와 컴퓨터를 이용한 자동생산(CIM) 연구에 크게 활기를 주고 있다.
현대의 급격한 과학발전은 인근 학문과의 상호 협력연구를 필연적으로 요구하게 됐다. 독일에서의 기계공학은 전자 정보 토목 의학 등 인접 이공계 학문 분야 뿐만이 아니라, 인문사회학과도 공동 연구의 기회를 확대하고 있다. 이러한 학문의 전반적인 협조 체계는 현대 사회에서는 과학의 발전이 결코 어 떤 특정한 학과 내지 분야의 발전으로는 완성될 수 없다는 사실을 반영하는 현상이리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