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천년 견오백(紙千年 絹五百)”이라는 말이 있다. ‘종이는 천 년을 가고 비단은 오백 년을 간다’는 의미다. 실제로 우리나라에서는 1200년 전에 만들어진 종이 인쇄물이 발굴됐다. 바로 1966년에 경주 불국사 석가탑을 보수하기 위해 해체하는 과정에서 발견된 ‘무구정광대다라니경(無垢淨光大陀羅尼經)’이다.
일명 다라니경이라 불리는 이 ‘닥종이 두루마리’는 신라 경덕왕 시대인 751년에 만들어진 세계에서 가장 오래된 목판 인쇄물이자 가장 오래된 종이다. 우리 조상은 삼국 시대에 이미 닥나무(뽕나무의 일종)를 종이의 원료로 사용해 현대 기술로도 만들기 어려울 정도로 내구성이 뛰어난 종이를 제조했다. 빗물이 스며들고 좀벌레가 나오는 탑 속에서 1200년을 보내고도 형체를 보존하고 있는 ‘다라니경’은 우리 제지 기술의 우수성을 말해주는 문화유산이다.
신라의 유산 ‘다라니경’
다라니경이 발굴되기 전까지 세계 최고(最古)의 인쇄물은 770년에 새겼다고 추측되는 일본의 ‘백만탑다라니경’으로 알려져 있었다. 또한 868년에 만들어진 중국의 목판 인쇄물 ‘금강반야바라밀경’은 간행연도가 기록된 세계 최고의 인쇄물이었다. 이 유물을 앞세워 종이의 종주국이라 내세우는 중국과 뛰어난 종이 제조술을 지녔다고 자부한 일본은 우리나라에서 다라니경이 발굴되자 당혹스러워 했다.
특히 중국은 당시 신라에는 종이 제조술과 목판 인쇄술이 중국만큼 발달하지 않았으며, 석가탑에 보관돼 있던 다라니경이 중국에서 제작돼 신라로 건너간 것이라는 주장까지 펼쳤다. 그러나 다라니경의 종이 성분을 분석해본 결과 중국의 주장은 설득력을 잃었다. 석가탑에서 발굴된 다라니경의 종이는 우리의 전통 종이 원료인 닥나무를 원료로 만든 데 반해, 다라니경이 편찬될 당시 중국에서는 대마의 섬유를 원료로 한 황마지가 사용됐다는 사실이 밝혀진 것이다.
오히려 우리나라의 종이 제조술이 뛰어나다는 사실은 종이의 종주국인 중국에도 널리 알려져 당나라 때 이미 우리나라의 종이가 주요 무역품에 포함돼 있었다. 닥나무의 섬유질에 닥풀뿌리즙을 혼합해 수공으로 만든 전통 한지는 결이 곱고 질기며 보관 수명이 길기로 유명했다. 송나라 사람들은 고려에서 수입한 종이를 비단처럼 귀하게 여겼고, 고려 종이를 선물받는 일을 최고의 기쁨 중 하나로 꼽았다.
1600년 전부터 이어온 한지의 역사
105년경 중국 후한 시대의 채륜이 세계 최초로 종이를 발명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중국의 종이 제조술이 우리나라에 전해진 시기를 고구려 소수림왕 시대인 372년으로 추정해 왔는데, 그 근거는 불교가 전파되며 종이에 인쇄된 경전이 수입됐을 것으로 보기 때문이다. 그러나 고구려 소수림왕 이전에 만들어진 낙랑 고분에서 출토된 닥종이 뭉치 등으로 미뤄볼 때, 우리의 종이 역사는 372년보다 훨씬 앞선 시기에 시작된 것으로 보인다. 삼국 시대의 제지법은 나무의 섬유를 잘게 갈아서 만드는 중국의 제지법과 달리 긴 섬유를 두드려 조직을 균일하게 만드는 방법이었다.
우리 선조는 이러한 독창적인 방법을 개발해 종이의 내구성을 한층 강화했다. 일본 역사서 ‘일본서기’에는 610년경 고구려의 승려 담징이 이 기술을 일본에 전해줬다고 기록돼 있다. 백제에서 4세기 말 역사서를 많이 편찬한 것으로 봐서 백제에도 종이가 있었을 것으로 추측된다. 신라 진덕여왕 1년인 서기 648년에는 종이로 만든 연을 띄웠다는 기록도 있어 600년을 전후해 고구려와 백제, 신라 삼국 모두에 종이가 들어와 제조되고 있었음을 알 수 있다.
고려 시대는 한지가 가장 왕성하게 발전한 시기로 국가적으로 닥나무 재배를 널리 장려하기도 했다. 고려의 국교였던 불교가 성행함에 따라 불경을 만들기 위해 종이 사용량이 크게 늘어난 데 따른 것이다.
고려 시대가 제지술의 발전 단계였다면 조선시대는 대량 생산 체제로의 발전 단계였다. 조선 초 금속활자의 개량과 서적 간행이 대량으로 이어지면서 종이의 수요가 크게 늘었다. 이런 수요에 맞춰 조선에서는 태종 15년(1415년)에 제지장들을 관장하고 직접 종이도 만드는 조지소(造紙所)가 설치돼 제지기술의 보급, 지질의 개량, 합리적인 생산 관리가 본격화됐다.
태종실록에서 그 내용을 확인할 수 있다. 세종 대에는 수요가 크게 늘어난 종이의 생산량을 늘리기 위해 종이의 원료를 닥나무뿐 아니라 볏짚, 솔잎, 댓잎, 대마와 굴껍질 등으로 다양화했다. 이러한 시도는 종이의 용도에 따라 다양한 품목을 개발하는 계기가 됐다.
백 번 손이 가야 비로소 완성
한지를 만들 때 중요한 요소는 원료가 되는 질좋은 닥나무, 혼합액인 닥풀뿌리즙 그리고 차갑고 깨끗한 물이다. 닥나무는 매년 10월에서 이듬해 3월 사이에 채취한다. 베어낸 닥나무를 솥에 담고 밀봉해 수증기로 껍질이 벗겨질 때까지 6~7시간 쪄낸다. 부드러워진 껍질은 벗겨 말린다. 말린 껍질을 다시 물에 불려 발로 밟은 다음 하얀 속껍질 부분만 가려내 천연 잿물을 넣은 솥에 약 2시간 정도 삶는다. 이렇게 삶은 닥나무 속껍질을 평평한 돌 위에 놓고 방망이로 2~4시간 두들겨 죽처럼 흐물흐물하게 만든다. 이것을 닥죽이라 부르는데, 닥죽을 물과 함께 통에 넣어서 대나무 막대로 200번 정도 세차게 저어준 다음 닥풀뿌리즙을 섞어서 다시 휘젓고 대나무발로 통 속의 액체를 걸러서 종이를 뜬다.
한지는 전통방식인 외발로 뜨는데 물을 가로, 세로 방향으로 번갈아 흘려보내 우물정(井)자 모양으로 종이결을 얽히게 만든다. 특히 두 장의 습지를 하나로 합쳐 합지를 만들기 때문에 종이가 더욱 질기고 강해진다.이렇게 해서 대나무발 위에 물기가 남아 있는 상태의 종이가 만들어진다. 이렇게 만들어진 종이는 평평한 곳에 400~500장 정도를 쌓고 무거운 돌을 올려놓아 서서히 물기를 뺀다. 수분이처럼 전통 방식으로 한지를 만드는 과정에는 복잡하고 어려운 단계를 여러 차례 거친다.
그래서 예전에는 한지를 ‘사람 손이 백 번 가야 완성된다’는 의미의 ‘백지(百紙)’라 부르기도 했다. 그만큼 한지를 만들기 위해서는 많은 정성과 노력이 필요하다는 의미다. 한지는 닥나무, 뽕나무 등 천연 재료로 만들어지기 때문에 자연이 주는 질감이 살아 있고, 사람이 일일이 모든 공정을 다 손을 써서 하는 섬세한 방식으로 만들어지기 때문에 곱고 질긴 느낌을 준다. 또한 한지를 만들기 위한 필수요소가 차가운 맑은 물인데, 차가운 물은 섬유질을 탄탄하게 해 종이에 빳빳한 감촉과 힘을 주고 박테리아와 같은 미생물 번식을 막아준다. 첨가제인 닥풀은 한지 표면을 매끄럽게 하고 광택을 더한다.
질기고 오래 가는 비밀
종이에 구멍을 낸 다음 잡아당겼을 때 어느 정도의 힘까지 버티는가를 측정하는 것을 ‘인열강도’라 한다. 높은 수치를 보일수록 질긴 종이가 되는데, 섬유 폭이 좁은 삼지닥나무를 사용해서 만든 화지(和紙-일본 전통 종이)나 잡목과 볏집을 함께 섞어 만든 중국의 선지(宣紙)와 한지를 비교하면 한지가 9배 이상 높은 수치를 나타낸다. 한지는 종이를 위아래로 잡아당겼을 때 버티는 정도인 인장강도에서도 월등할뿐더러 탄성도 뛰어나다.
오늘날 만들어지는 종이는 PH 4.0 이하의 산성지로서 수명이 대개 50년에서 길어야 100년이다. 10년 정도 지나면 누렇게 변색되는 황화 현상을 일으키면서 삭아버린다. 이에 비해 한지는 PH 7.0 이상의 알칼리성 종이로서 세월이 가면 갈수록 오히려 결이 고와진다. 그래서 수명이 1000년이 넘는다. 그 이유는 한지를 만들 때 잿물과 닥풀뿌리즙이 쓰이는데, 잿물의 적당한 알칼리성이 닥나무에서 추출한 섬유를 손상시키지 않고 견고한 내구성을 만들어 주기 때문이다. 물에 잘 녹고 녹말 성분이 들어 있는 닥풀뿌리즙은 한지의 수명을 연장하는 데 결정적인 역할을 한다.
종이 섬유의 결을 가로와 세로가 얽히게 만드는 ‘외발뜨기’라는 우리 고유의 제지 방식과 두 장의 종이를 붙여 한 장의 종이로 만드는 합지 방식도 한지의 강도를 높이는 이유 중 하나다. 합지 방식으로 만들어진 종이를 음양지(陰陽紙)라 부른다. 또한 한지는 사람의 손에 의해 만들어지므로 같은 장소에서 같은 방법으로 만들었다 할지라도 같은 품질과 크기를 찾기가 힘들다. 각각의 종이가 고유성을 갖고 있다. 닥나무 외 나뭇잎이나 꽃잎 등 다양한 자연 재료를 첨가해 독특한 한지를 만들 수도 있다.
이러한 특성의 한지는 다양한 데 쓰이며 활용도가 강하다. 엮고 구기고 비틀어 다양한 효과를 낸다. 회화에서부터 종이 공예, 서예, 조소의 영역에 활용될 뿐만 아니라 다른 매체와 혼합해 다양한 형태로 변화시킬 수 있다. 이러한 성질을 이용해 한지는 옛날부터 우리의 일상에서 거의 모든 재료를 대신하는 다양한 용도로 사용됐다. 유리 대신 창문에 바르고 조명을 만드는 데 사용했고, 장판을 바르고 부채를 만들었으며, 지폐 재료로도 활용됐다. 한지의 강한 특성은 한지를 몇 겹으로 바른 갑옷의 예에서도 볼 수 있다. 수 겹의 한지를 겹쳐서 옻칠을 입힌 갑옷은 화살도 뚫지 못했다고 한다.
한지의 기능에 세계가 주목하다
원래 한지의 종류는 원료인 닥피 지류에 따라, 방법에 따라, 용도에 따라, 크기와 두께에 따라, 생산지에 따라 각지, 창지, 삼첩지, 시전지, 황국지, 초록지 등 100가지가 넘는 명칭으로 분류돼 있었다. 그러나 지금은 한지산업이 기울면서 대부분 자취를 감추고 창호지, 장판지, 화선지, 배접지, 소지(초배지) 정도가 겨우 명맥을 이어오고 있는 실정이다. 다행히도 최근 한지에 대한 관심이 다시 높아져서 원주와 전주에서는 한지 문화제가 성황리에 개최되고 있다.
외국의 패션학교 학생들이 주축이 돼, 한지를 가늘게 잘라서 면이나 실크와 함께 직조한 ‘한지사(韓紙絲)’ 직물로 만든 패션쇼를 열기도 한다. 한지사 직물 의류는 종이로 만들어서 세탁이 어려울 것이라는 편견과는
달리, 물에 여러 차례 세탁해도 직물에 변화가 없고 통기성과 흡습성이 좋은 데다 몸에 이로운 원적외선이 방출된다고 한다. 이러한 점에 외국인들이 크게 주목해 미래의 섬유 소재로 적합하다는 평가가 나오고 있다.
실제로 한지를 수입해 가는 나라들이 들어나고 있다. 미국, 영국, 일본 등에서 책의 수명을 늘리고 보존하는 방법으로 한지를 활용하고 있다. 중국에서는 아직도 ‘고려지’라는 이름의 한지가 예술가들에게 각별한 사랑을 받고 있고, 우리의 방식을 그대로 배워서 고려지를 전문으로 만드는 종이 공장도 있다. 이처럼 전통방식으로 제조된 한지는 질기면서도 유연해, 앞으로 다양한 분야에서 활용될 가능성이 큰 재료다. 1600년 전부터 이어온 우리 고유의 문화이자 앞으로 더 많은 세월을 활용할 값진 자산으로서 가꿔나가야 할 것이다.
일명 다라니경이라 불리는 이 ‘닥종이 두루마리’는 신라 경덕왕 시대인 751년에 만들어진 세계에서 가장 오래된 목판 인쇄물이자 가장 오래된 종이다. 우리 조상은 삼국 시대에 이미 닥나무(뽕나무의 일종)를 종이의 원료로 사용해 현대 기술로도 만들기 어려울 정도로 내구성이 뛰어난 종이를 제조했다. 빗물이 스며들고 좀벌레가 나오는 탑 속에서 1200년을 보내고도 형체를 보존하고 있는 ‘다라니경’은 우리 제지 기술의 우수성을 말해주는 문화유산이다.
신라의 유산 ‘다라니경’
특히 중국은 당시 신라에는 종이 제조술과 목판 인쇄술이 중국만큼 발달하지 않았으며, 석가탑에 보관돼 있던 다라니경이 중국에서 제작돼 신라로 건너간 것이라는 주장까지 펼쳤다. 그러나 다라니경의 종이 성분을 분석해본 결과 중국의 주장은 설득력을 잃었다. 석가탑에서 발굴된 다라니경의 종이는 우리의 전통 종이 원료인 닥나무를 원료로 만든 데 반해, 다라니경이 편찬될 당시 중국에서는 대마의 섬유를 원료로 한 황마지가 사용됐다는 사실이 밝혀진 것이다.
오히려 우리나라의 종이 제조술이 뛰어나다는 사실은 종이의 종주국인 중국에도 널리 알려져 당나라 때 이미 우리나라의 종이가 주요 무역품에 포함돼 있었다. 닥나무의 섬유질에 닥풀뿌리즙을 혼합해 수공으로 만든 전통 한지는 결이 곱고 질기며 보관 수명이 길기로 유명했다. 송나라 사람들은 고려에서 수입한 종이를 비단처럼 귀하게 여겼고, 고려 종이를 선물받는 일을 최고의 기쁨 중 하나로 꼽았다.
1600년 전부터 이어온 한지의 역사
105년경 중국 후한 시대의 채륜이 세계 최초로 종이를 발명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중국의 종이 제조술이 우리나라에 전해진 시기를 고구려 소수림왕 시대인 372년으로 추정해 왔는데, 그 근거는 불교가 전파되며 종이에 인쇄된 경전이 수입됐을 것으로 보기 때문이다. 그러나 고구려 소수림왕 이전에 만들어진 낙랑 고분에서 출토된 닥종이 뭉치 등으로 미뤄볼 때, 우리의 종이 역사는 372년보다 훨씬 앞선 시기에 시작된 것으로 보인다. 삼국 시대의 제지법은 나무의 섬유를 잘게 갈아서 만드는 중국의 제지법과 달리 긴 섬유를 두드려 조직을 균일하게 만드는 방법이었다.
우리 선조는 이러한 독창적인 방법을 개발해 종이의 내구성을 한층 강화했다. 일본 역사서 ‘일본서기’에는 610년경 고구려의 승려 담징이 이 기술을 일본에 전해줬다고 기록돼 있다. 백제에서 4세기 말 역사서를 많이 편찬한 것으로 봐서 백제에도 종이가 있었을 것으로 추측된다. 신라 진덕여왕 1년인 서기 648년에는 종이로 만든 연을 띄웠다는 기록도 있어 600년을 전후해 고구려와 백제, 신라 삼국 모두에 종이가 들어와 제조되고 있었음을 알 수 있다.
고려 시대는 한지가 가장 왕성하게 발전한 시기로 국가적으로 닥나무 재배를 널리 장려하기도 했다. 고려의 국교였던 불교가 성행함에 따라 불경을 만들기 위해 종이 사용량이 크게 늘어난 데 따른 것이다.
고려 시대가 제지술의 발전 단계였다면 조선시대는 대량 생산 체제로의 발전 단계였다. 조선 초 금속활자의 개량과 서적 간행이 대량으로 이어지면서 종이의 수요가 크게 늘었다. 이런 수요에 맞춰 조선에서는 태종 15년(1415년)에 제지장들을 관장하고 직접 종이도 만드는 조지소(造紙所)가 설치돼 제지기술의 보급, 지질의 개량, 합리적인 생산 관리가 본격화됐다.
태종실록에서 그 내용을 확인할 수 있다. 세종 대에는 수요가 크게 늘어난 종이의 생산량을 늘리기 위해 종이의 원료를 닥나무뿐 아니라 볏짚, 솔잎, 댓잎, 대마와 굴껍질 등으로 다양화했다. 이러한 시도는 종이의 용도에 따라 다양한 품목을 개발하는 계기가 됐다.
백 번 손이 가야 비로소 완성
한지를 만들 때 중요한 요소는 원료가 되는 질좋은 닥나무, 혼합액인 닥풀뿌리즙 그리고 차갑고 깨끗한 물이다. 닥나무는 매년 10월에서 이듬해 3월 사이에 채취한다. 베어낸 닥나무를 솥에 담고 밀봉해 수증기로 껍질이 벗겨질 때까지 6~7시간 쪄낸다. 부드러워진 껍질은 벗겨 말린다. 말린 껍질을 다시 물에 불려 발로 밟은 다음 하얀 속껍질 부분만 가려내 천연 잿물을 넣은 솥에 약 2시간 정도 삶는다. 이렇게 삶은 닥나무 속껍질을 평평한 돌 위에 놓고 방망이로 2~4시간 두들겨 죽처럼 흐물흐물하게 만든다. 이것을 닥죽이라 부르는데, 닥죽을 물과 함께 통에 넣어서 대나무 막대로 200번 정도 세차게 저어준 다음 닥풀뿌리즙을 섞어서 다시 휘젓고 대나무발로 통 속의 액체를 걸러서 종이를 뜬다.
한지는 전통방식인 외발로 뜨는데 물을 가로, 세로 방향으로 번갈아 흘려보내 우물정(井)자 모양으로 종이결을 얽히게 만든다. 특히 두 장의 습지를 하나로 합쳐 합지를 만들기 때문에 종이가 더욱 질기고 강해진다.이렇게 해서 대나무발 위에 물기가 남아 있는 상태의 종이가 만들어진다. 이렇게 만들어진 종이는 평평한 곳에 400~500장 정도를 쌓고 무거운 돌을 올려놓아 서서히 물기를 뺀다. 수분이처럼 전통 방식으로 한지를 만드는 과정에는 복잡하고 어려운 단계를 여러 차례 거친다.
그래서 예전에는 한지를 ‘사람 손이 백 번 가야 완성된다’는 의미의 ‘백지(百紙)’라 부르기도 했다. 그만큼 한지를 만들기 위해서는 많은 정성과 노력이 필요하다는 의미다. 한지는 닥나무, 뽕나무 등 천연 재료로 만들어지기 때문에 자연이 주는 질감이 살아 있고, 사람이 일일이 모든 공정을 다 손을 써서 하는 섬세한 방식으로 만들어지기 때문에 곱고 질긴 느낌을 준다. 또한 한지를 만들기 위한 필수요소가 차가운 맑은 물인데, 차가운 물은 섬유질을 탄탄하게 해 종이에 빳빳한 감촉과 힘을 주고 박테리아와 같은 미생물 번식을 막아준다. 첨가제인 닥풀은 한지 표면을 매끄럽게 하고 광택을 더한다.
질기고 오래 가는 비밀
오늘날 만들어지는 종이는 PH 4.0 이하의 산성지로서 수명이 대개 50년에서 길어야 100년이다. 10년 정도 지나면 누렇게 변색되는 황화 현상을 일으키면서 삭아버린다. 이에 비해 한지는 PH 7.0 이상의 알칼리성 종이로서 세월이 가면 갈수록 오히려 결이 고와진다. 그래서 수명이 1000년이 넘는다. 그 이유는 한지를 만들 때 잿물과 닥풀뿌리즙이 쓰이는데, 잿물의 적당한 알칼리성이 닥나무에서 추출한 섬유를 손상시키지 않고 견고한 내구성을 만들어 주기 때문이다. 물에 잘 녹고 녹말 성분이 들어 있는 닥풀뿌리즙은 한지의 수명을 연장하는 데 결정적인 역할을 한다.
종이 섬유의 결을 가로와 세로가 얽히게 만드는 ‘외발뜨기’라는 우리 고유의 제지 방식과 두 장의 종이를 붙여 한 장의 종이로 만드는 합지 방식도 한지의 강도를 높이는 이유 중 하나다. 합지 방식으로 만들어진 종이를 음양지(陰陽紙)라 부른다. 또한 한지는 사람의 손에 의해 만들어지므로 같은 장소에서 같은 방법으로 만들었다 할지라도 같은 품질과 크기를 찾기가 힘들다. 각각의 종이가 고유성을 갖고 있다. 닥나무 외 나뭇잎이나 꽃잎 등 다양한 자연 재료를 첨가해 독특한 한지를 만들 수도 있다.
이러한 특성의 한지는 다양한 데 쓰이며 활용도가 강하다. 엮고 구기고 비틀어 다양한 효과를 낸다. 회화에서부터 종이 공예, 서예, 조소의 영역에 활용될 뿐만 아니라 다른 매체와 혼합해 다양한 형태로 변화시킬 수 있다. 이러한 성질을 이용해 한지는 옛날부터 우리의 일상에서 거의 모든 재료를 대신하는 다양한 용도로 사용됐다. 유리 대신 창문에 바르고 조명을 만드는 데 사용했고, 장판을 바르고 부채를 만들었으며, 지폐 재료로도 활용됐다. 한지의 강한 특성은 한지를 몇 겹으로 바른 갑옷의 예에서도 볼 수 있다. 수 겹의 한지를 겹쳐서 옻칠을 입힌 갑옷은 화살도 뚫지 못했다고 한다.
한지의 기능에 세계가 주목하다
원래 한지의 종류는 원료인 닥피 지류에 따라, 방법에 따라, 용도에 따라, 크기와 두께에 따라, 생산지에 따라 각지, 창지, 삼첩지, 시전지, 황국지, 초록지 등 100가지가 넘는 명칭으로 분류돼 있었다. 그러나 지금은 한지산업이 기울면서 대부분 자취를 감추고 창호지, 장판지, 화선지, 배접지, 소지(초배지) 정도가 겨우 명맥을 이어오고 있는 실정이다. 다행히도 최근 한지에 대한 관심이 다시 높아져서 원주와 전주에서는 한지 문화제가 성황리에 개최되고 있다.
외국의 패션학교 학생들이 주축이 돼, 한지를 가늘게 잘라서 면이나 실크와 함께 직조한 ‘한지사(韓紙絲)’ 직물로 만든 패션쇼를 열기도 한다. 한지사 직물 의류는 종이로 만들어서 세탁이 어려울 것이라는 편견과는
달리, 물에 여러 차례 세탁해도 직물에 변화가 없고 통기성과 흡습성이 좋은 데다 몸에 이로운 원적외선이 방출된다고 한다. 이러한 점에 외국인들이 크게 주목해 미래의 섬유 소재로 적합하다는 평가가 나오고 있다.
실제로 한지를 수입해 가는 나라들이 들어나고 있다. 미국, 영국, 일본 등에서 책의 수명을 늘리고 보존하는 방법으로 한지를 활용하고 있다. 중국에서는 아직도 ‘고려지’라는 이름의 한지가 예술가들에게 각별한 사랑을 받고 있고, 우리의 방식을 그대로 배워서 고려지를 전문으로 만드는 종이 공장도 있다. 이처럼 전통방식으로 제조된 한지는 질기면서도 유연해, 앞으로 다양한 분야에서 활용될 가능성이 큰 재료다. 1600년 전부터 이어온 우리 고유의 문화이자 앞으로 더 많은 세월을 활용할 값진 자산으로서 가꿔나가야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