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하 10℃를 오르내리는 추위와 20cm나 쌓이는 폭설에 시달리는 한겨울에는 몸도 마음도 만신창이다. 주머니 사정이 팍팍해서 머릿속도 복잡하다. 그런데 사람과 달리 날씨가 추워져야 활기를 띠는 물고기가 있다. 맛과 영양이 뛰어나 축 늘어진 사람들에게 자신의 기운을 나눠주기까지 하는 고마운 물고기 ‘대구’다. 대구는 겨울마다 우리 곁으로 찾아와 지친 속을 훈훈하게 달랜다.
대구로 만든 음식 중에는 대구탕이 가장 유명하다. 쌀뜨물에 토막 친 대구와 다진 마늘, 파, 고추 등을 넣고 맑게 끓인 대구탕은 맛이 담백하고 비리지 않아서 우리나라 사람들에게 특히 인기가 높다. 얼큰하게 끓인 대구매운탕은 술을 마신 뒤 속을 푸는 음식으로 최고이며, 말린 대구에 갖은 양념을 얹어 만드는 대구찜도 정말 맛있다.
이 밖에도 대구를 이용한 요리법은 매우 다양하다. 포를 떠서 전을 부쳐 먹기도 하고, 내장, 알, 아가미 등으로 젓을 담기도 한다. 말린 대구포는 술안주로 유명하며, 대구 머리로 만든 뽈국과 뽈찜은 쫄깃한 볼살이 예상할 수 없는 맛을 선사한다.
대구는 한약재로도 쓰인다. 산모가 젖이 잘 안 나올 때 대구포를 먹는 풍습이 전해 오며, ‘동의보감’에는 대구가 기를 돋우는 데 효험이 있다고 기록돼 있다. 경남 지방에서는 알이 든 채로 뱃속에 소금과 진간장, 약재를 채워 넣고 통째로 말린 대구를 약대구라 부르며 보양음식이나 고급 술안주로 삼는다.
대구는 명태의 형님?
대구(Gadus macrocephalus)는 대구목 대구과에 속하는 바닷물고기다. 한국의 전 연안과 일본, 알래스카의 북태평양 연안에 서식한다. 같은 대구과에 속하는 친척으로는 빨간대구, 명태, 모오케 등이 있다.
얼핏 봐도 대구는 명태와 비슷하게 생겼다. 몸의 앞부분이 뒷부분에 비해 잘 발달했으며, 등지느러미 3개와 뒷지느러미 2개가 달려 있다. 같은 과에 속하는 친척이다 보니 당연한 일이다. 그러나 대구는 명태에 비해 몸집이 훨씬 크고 두툼하며, 위턱이 아래턱에 비해 길게 튀어나와 있다는 점, 턱 아래쪽에 한 가닥의 수염이 나 있다는 점 등으로 쉽게 구분할 수 있다. 대구는 몸통만 큰 것이 아니라 머리도 크다. 큰 머리에 어울리게 눈도 크고 입도 큰데, 바로 여기서 대구(大口)라는 이름이 유래했다.
몸 빛깔은 등이 갈색 또는 회갈색이며, 배는 흰색이다. 등과 옆구리에는 모양이 고르지 않은 반점이 많이 흩어져 있다.
일본에서는 대구를 ‘마다라(眞魚雪)’라고 부른다. 이름에 ‘눈 설(雪)’ 자가 들어간 이유는 눈이 내리는 겨울철에 잘 잡히기 때문이다. 이처럼 대구는 차가운 물을 좋아하는 냉수성 어종이다. 따라서서해나 남해보다는 수온이 낮은 동해에 많은 수가 서식한다. 그런데 조선시대 인문지리서인 ‘신증동국여지승람(新增東國輿地勝覽)’에는 대구가 경남 창원시 연안에서 어획된다고 기록돼 있다. 도대체 어떻게 된 일일까.
그 비밀은 대구의 독특한 산란 습성에 있다. 동해산 대구는 알을 낳기 위해 겨울철 냉수층을 따라 남해안의 진해만까지 이동했다가 봄이 되면 북쪽 해역 또는 깊은 수층으로 이동한다(산란 회유). 대구의 어획시기가 산란기에 집중되다 보니 대구라고 하면 남해안이라는 공식이 성립하게 된 것이다. 대구가 먼 남쪽바다까지 내려와 산란을 하는 이유는 이곳의 수온이 산란에 적합한 6~7℃ 정도이기 때문으로 짐작된다.
한 가지 이상한 점이 있다. 낚시꾼들 중에는 서해에서 대구 낚시를 즐긴다는 이들이 적지 않다. 사실 서해에도 부분적으로 발달한 냉수대에 대구가 서식하는데, 이 서해대구는 동해산 대구와는 다른 계군에 속하므로 서로 아무 상관없이 독립적인 무리를 지어 생활한다. 계군이란 같은 종이면서 지역에 따라 조금씩 다른 형질을 보이는 개체군을 뜻한다.
자기 새끼까지 잡아먹는 먹성
대구는 알을 많이 낳는 물고기다. 수컷은 3년, 암컷은 4년이면 성적으로 성숙하는데, 성숙한 암놈은 200만 개 이상의 알을 낳을 수 있다. 게다가 대구는 먹을 것을 밝힌다. 대구라는 이름이 부끄럽지 않게 물고기, 연체동물, 갯지렁이, 게, 새우 등을 가리지 않고 먹어치우며, 심지어 자신의 새끼마저 닥치는 대로 잡아먹는다. 왕성한 식욕에 걸맞게 성장도 빨라서 태어난 지 2~3년이면 50cm, 6년이면 90cm 내외로 자라며 최대 몸길이는 1m에 이른다.
빨리 자라고 알을 많이 낳으니 자손이 번성할 수밖에 없다. 실제로 대구가 엄청난 개체 수를 자랑하던 때가 있었다. 과거에는 겨울철만 되면 대량으로 잡혀 남해안의 어시장이 대구로 넘쳐나곤 했다.
그러나 대구도 다른 물고기들과 마찬가지로 남획의 운명을 피해갈 수 없었다. 해마다 어획량이 줄기 시작하더니 1993년에는 아예 씨가 말라버릴 지경에 이르렀다. 이에 많은 비용과 노력을 투자해 인공 수정란을 방류하고 일정한 어민들에게만 어업허가를 내 금어기를 철저히 관리했다. 이런 각고의 노력을 기울인 결과, 다행히 대구의 개체 수가 조금씩 늘어나기 시작했다. 결국 경상남도 내 어획량 자료에 따르면 대구 어획량은 2000년대 들어서는 수만 마리, 2007년 이후에는 30만 마리가 넘을 정도로 회복됐다.
큰 떼 이루던 대서양대구, 전설로 남나
대구의 가까운 친척으로 대서양대구(Gadus morhua)라는 종이 있다. 대서양대구는 대구와 생김새가 거의 비슷하지만 몸집이 훨씬 커서 다 자란 놈은 몸길이가 1.8m에 이르기도 한다. 한때 대서양대구는 지구상에서 가장 큰 떼를 이루던 물고기 중 하나였다.
먼 옛날 캐나다에서 미국 북동부에 걸친 대서양 바다를 항해하던 이들은 바다를 가득 메운 대서양대구 떼를 만날 수 있었다. 북유럽에 살던 바이킹족도, 스페인과 프랑스에 흩어져 살던 바스크족도, 메이플라워호를 타고 미국으로 건너왔던 청교도들도 어김없이 대서양대구 떼를 만났고, 이를 사냥해서 허기를 채우고 생계를 유지했다.
그러나 아무리 잡아도 끝이 없을 것 같던 대서양대구 떼도 남획의 힘 앞에서는 굴복할 수밖에 없었다. 새로운 어구와 어법이 발달하면서 어자원은 급속히 줄어들었고, 줄어든 어자원을 둘러싸고 나라 사이에 전쟁까지 벌어졌다.
결국 마지막에 남은 것은 멸종 위기에 처한 대서양대구와 대구잡이 금지령, 그리고 일자리를 잃은 어부들뿐이었다. 인간은 자연을 파괴하는 일은 순간이지만 이를 되돌리는 일은 너무나도 힘들다는 사실을 충분히 경험해 왔다. 대서양대구도 우리나라의 대구처럼 생존의 길을 맞이할 수 있을지 궁금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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