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블랙홀을 연료 삼아 우주 여행한다


1980년대 안방극장에서 인기리에 방영된 ‘은하철도 999’의 주인공 철이는 신비로운 여인 메텔과 함께 우주를 횡단하는 기차를 타고 모험의 세계로 떠난다. 미국 인기 SF드라마 ‘스타트렉’에서 거대한 우주함선 엔터프라이즈호의 대원들은 광속보다 빠른 속도로 우주 이곳저곳을 누빈다. 하지만 현실은 상상과는 너무나도 동떨어져 있다. 아직 인류는 가장 가까운 행성조차도 가보질 못했으니 말이다. 고작 달을 밟아본 게 전부다. 우리에게서 가장 가까이에 있는 별, ‘프록시마 센타우리(Proxima Centauri)’만 해도 지구에서 빛의 속도로 4.2년을 날아가야 한다. 과연 인간이 태양계 밖의 다른 행성을 밟을 날이 올까.

인간이 태양계를 넘어 먼 우주로 날아갈 수 있다면 프록시마 센타우리는 아마 첫 번째 목적지가 될 것이다. 이 별까지의 거리는 지구와 태양 사이 거리의 20만 배 이상이고, 달을 5000만 번 왔다 갔다 하는 거리와 맞먹는다. 현재 인류의 우주선 기술로는 이 별까지 얼마나 걸릴까. 지금까지 인류가 만든 우주선 가운데 가장 빠른 보이저 1호로 따져보자. 보이저 1호는 1977년 지구를 출발해 현재는 태양계의 가장자리쯤을 지나치고 있다. 초속 약 17km의 속도로 날아가고 있다. 만에 하나 보이저 1호를 얻어 탈 수 있다면 프록시마 센타우리까지는 7만 4000년이 걸린다.

유인우주선을 타고 가면 상황은 더 난감해진다. 지금까지 개발된 유인우주선 가운데 가장 빠른 것은 미국의 달 탐사선 아폴로 10호로, 우주를 초속 11km로 날아간다. 시간으로 환산하면 프록시마 센타우리까지 약 12만 년이 걸리는 셈이다.

그렇다면 살아서 이 별을 구경해볼 방법은 정말 없는 걸까. 도저히 극복할 수 없는 자연의 한계가 가로놓여 있는 걸까. 그렇지 않다. 작가들이 은하철도 999를 만들어내고 스타트렉을 창조했다면 한편에선 과학자들이 별나라 여행을 가능하게 할 방법을 진지하게 고민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동안 몇 가지 구체적이고 실현 가능한 아이디어도 나왔다. 예를 들어 원자폭탄 제조에 쓰이는 핵분열 에너지를 활용하거나 태양의 에너지원인 핵융합 에너지를 쓰면 된다는 이론이 있다. 물질과 만나면 100% 에너지로 바뀌는 ‘반물질’을 이용하자는 의견도 있다. 그뿐만이 아니다. 바람 대신 햇빛이나 레이저 빔으로 추진되는 우주범선도 등장했다.

그렇게 지난 수십 년 동안 발표된 온갖 별나라 여행 방법은 10가지가 넘는다. 여기에 얼마 전 새로운 우주여행 기술 두 가지가 추가됐다. 공통점은 우주에 보이지 않는 깜깜한 존재를 이용한다는 것. 아직 정체가 밝혀지지 않은 미스터리한 암흑물질과 뭐든지 다 빨아들이는 블랙홀이 바로 그것이다. 암흑물질과 블랙홀로 어떻게 우주를 여행할 수 있을까.

연료 싣지 않는 암흑물질 우주선

지난해 8월 미국 뉴욕대 물리학과의 중국계 대학원생 지아 류 씨는 암흑물질로 추진되는 신개념 우주선을 미국 코넬대의 물리학 아카이브 ‘arXiv’에 발표했다. 암흑물질은 눈에 보이는 별이나 은하와 달리 빛을 내지 않는 물질이다. 하지만 질량을 갖고 있어서 주변에 미치는 중력을 통해 그 존재를 간접적으로 확인할 수 있다. 우주에는 암흑물질이 빛을 내는 물질보다 6배나 더 많이 존재한다. 우주에서 아주 흔한 존재가 암흑물질인 셈이다.

류 씨는 암흑물질을 이용할 수만 있다면 어마어마한 무게의 연료를 싣지 않고도 우주를 자유롭게 이동하는 우주선을 개발할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했다. 암흑물질 우주선이라면 이동 중에 연료를 보충할 필요가 없기 때문이다.

연료의 보급 문제는 별나라를 여행하는 우주선을 개발하는 데 큰 장애가 되고 있다. 예를 들어 핵분열이나 핵융합 에너지를 쓸 경우, 프록시마 센타우리까지 가는 데 무려 200만t에 가까운 연료가 필요하다. 물론 여기엔 우주선이 갖춰야 할 안전장치와 생명유지장치의 무게를 포함하지 않은 것이다. 참고로 미국항공우주국(NASA)이 만든 우주왕복선은 고작 2000t에 지나지 않는다.

연료 무게만 획기적으로 줄여도 장거리 우주여행의 가능성이 조금이나마 열리는 셈이다. 그렇다면 암흑물질을 어떻게 우주선의 연료로 사용할 수 있을까. 암흑물질의 정체도 아직 밝혀지지 않았는데 말이다. 류 씨는 여러 가지 암흑물질 가운데 ‘초중성소자(neutralino)’를 후보로 꼽았다. 물론 이 입자는 누구도 존재를 확인하지 못하고 있어 가상의 입자로 남아 있다.

하지만 초중성소자는 조만간 그 실체가 밝혀질 것으로 보인다. 영국의 과학잡지 ‘뉴사이언티스트’ 최근호는 2010년에 기대되는 10대 과학 이슈 가운데 하나로 초중성소자의 발견을 꼽았다. 올해 상반기부터 가동될 예정인 유럽입자물리연구소(CERN)의 거대강입자가속기(LHC)에서 이 입자의 실체가 처음으로 규명될 것이라는 전망이다.

류 씨가 초중성소자를 선택한 이유는 이 입자가 입자이면서 동시에 반입자이기 때문이다. 반입자는 보통 입자와 같은 질량을 가지면서 반대 전하를 띤다. 입자와 반입자가 서로 만나면 소멸되면서 100% 에너지로 바뀐다. 연료의 효율성 측면에서 입자와 반입자 간의 소멸을 따라올 것은 없다.

연소를 통해 질량이 에너지로 전환되는 비율은 100억 분의 1에 불과하다. 핵융합의 경우도 1%에 미치지 못한다. 반물질을 이용하는 방안은 류 씨가 발표하기 훨씬 전부터 제기됐다. 하지만 당시만 해도 반물질을 만드는 데는 한계가 많았다. 과학자들이 만들어낸 반물질은 반수소 수백만 개로, 고작 10-12g 정도밖에 안 된다. 그러나 류 씨가 선택한 초중성소자가 정말 암흑물질이라면 굳이 반물질을 만들 필요가 없다. 암흑물질이 있는 곳을 지나가면 그만이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암흑물질 우주선은 어떻게 작동될까. 류 씨는 우주선이 진행하는 방향으로 문이 열려 있는 상자 모양의 엔진을 상상했다. 이 문으로 암흑물질이 들어오면 문을 닫는다. 그런 다음 암흑물질을 압축시켜 암흑물질이 서로 만나 소멸되게 한다. 일단 소멸이 시작되면 반대쪽 문을 열어 에너지를 분출시킨다. 이런 과정을 여러 차례 반복하면서 우주선은 앞으로 나아가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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암흑물질, 너무 먼 곳에~

암흑물질 우주선은 얼마나 빨리 가까운 별로 우리를 실어나를까. 이는 우주선이 얼마나 빨리 가속되느냐에 달렸다. 우주선 주변에 암흑물질이 얼마나 많이 분포해 있고, 우주선이 암흑물질을 얼마나 끌어 모을 수 있으며, 우주선 무게가 얼마나 나가느냐에 따라서도 달라진다. 류 씨는 우주선의 무게를 100t으로 하고 엔진이 암흑물질을 끌어 모으는 면적을 100m2라고 가정하면 우주선이 광속에 도달하는 데는 불과 며칠밖에 걸리지 않을 것으로 예상했다. 따라서 프록시마 센타우리까지 가는 시간을 수년으로 대폭 줄일 수가 있다.

그러나 여기서 문제가 하나 있다. 우주선이 반드시 암흑물질이 밀집된 곳을 지나가야 한다는 점이다. 그런데 그곳은 너무나도 멀다. 지금까지 과학자들이 파악한 결과로는 암흑물질이 가장 밀집해 있는 지역은 우리 은하 중심에서 2만 6000광년이나 떨어져 있다.그럼에도 류 씨는 포기하지 않았다. 그는 아직까지 아무도 우리 은하에서 암흑물질에 대한 정밀한 지도를 그린 적이 없다는 사실을 지적했다. 좀 더 가까운 곳에서 암흑물질이 발견된다면 실현 가능성은 있다.

그렇다고 해도 문제가 모두 사라지는 건 아니다. 우주선에서 암흑물질이 새어나가는 것도 골칫거리다. 암흑물질은 보통 물질과 거의 반응하지 않는다. 우리가 아는 물질로 우주선을 만들 경우 암흑물질은 무사통과할 가능성이 높다. 따라서 암흑물질을 가둘 수 있는 엔진을 만드는 것도 여전히 과제로 남아 있다.


장거리 우주여행에는 미니블랙홀이 제격

류 씨가 신개념 우주선을 발표하고 하루 뒤, 미국 캔자스주립대 루이스 크레인 교수와 박사과정생인 숀 웨스트모어랜드 씨는 블랙홀 우주선이라는 또 다른 신개념 모델을 코넬대 물리학 아카이브(arXiv)에 발표했다.

두 사람은 천재 물리학자인 스티븐 호킹 박사가 1970년대 발표한 블랙홀 증발이론에 기초를 두었다. 이 이론에 따르면 블랙홀은 모든 것을 빨아들이기만 하는 것이 아니라 에너지를 방출하며 결국 언젠가는 완전히 증발해 사라진다. 여기서 블랙홀이 방출하는 에너지가 바로 ‘호킹 복사’라고 부르는 빛에너지이다. 크레인 교수팀은 이 에너지가 우주선의 추진력으로 쓰기에 딱 좋다고 생각했다.

그러기 위해 블랙홀은 큰 것보다 작은 것이 더 좋다. 블랙홀이 작을수록 블랙홀이 내놓는 호킹 복사가 많기 때문이다. 그만큼 추진력도 커지는 셈이다. 물론 작은 것이 무조건 능사는 아니다. 너무 작으면 큰 에너지를 너무 짧은 시간에 내놓기 때문이다. 자칫 우주여행이 끝나기 전에 연료가 떨어져 버릴 수 있다는 얘기다. 크레인 교수팀은 100년 정도 우주여행을 한다고 가정하면 100만t 정도의 미니 블랙홀이 이상적이라는 결과를 얻었다.

SF거장 아서 클라크는 미니 블랙홀에 대한 아이디어를 최초로 창안했다. 그는 자신의 저서 ‘지구제국(Imperial Earth)’에서 우주 어딘가에 있을 미니 블랙홀을 활용하는 우주선을 처음으로 선보였다.

그렇다면 이런 블랙홀은 어디에서 구할 수 있을까. 크레인 교수는 “우리 태양계에서는 미니 블랙홀을 찾을 가능성이 거의 없기 때문에 미니 블랙홀을 직접 만들어야 한다”고 주장한다.


크레인 교수팀은 우주공간에 너비 250km의 태양전지판을 짓고 감마선 레이저로 미니 블랙홀을 만드는 데 필요한 에너지를 얻을 수 있다고 보고 있다. 감마선은 전자기파 가운데 에너지가 가장 높다. 워낙 강력해서 핵융합 반응이 일어날 정도로 연료를 뜨겁게 해줄 수 있다. 물론 말이 쉽지 실제로 구현되기는 어려워 보인다. 크레인 교수 자신도 “막대한 노력이 들 것”이라고 인정했다. 어쨌건 이렇게 만들어진 100만t짜리 미니 블랙홀은 고작 원자핵 하나 정도의 크기밖에 안 된다.

다음으로 할 일은 인공 블랙홀을 우주선의 반대편 끝에 달려 있는 포물면 모양의 거울의 초점에 놓는 작업이다. 블랙홀에서 나오는 호킹 복사가 포물면 거울을 치면 우주선이 앞으로 나아간다. 블랙홀 우주선이 빛의 속도 수준에 다다르는 데에는 수십 년이 걸린다. 따라서 최소 수십 년 안에는 프록시마 센타우리까지 갈 수 있다는 계산이 나온다. 만약 이 정도가 성에 차지 않는다면 더 작은 블랙홀을 쓰면 된다.

지난해 크레인 교수팀은 외계생명체 탐색에 대한 새로운 안을 내놨다. 블랙홀 우주선에서 착안한 아이디어였다. 고도로 발달한 외계문명이라면 이미 블랙홀 우주선을 타고 우주를 돌아다닐 거라는 생각에서다. 그래서 크레인 교수팀은 블랙홀 우주선을 탐색하는 게 외계의 지적생명체를 추적하기에 좋은 방법이라고 주장한다.

블랙홀 우주선은 호킹 복사를 계속 내보낸다. 그리고 호킹 복사는 시공간에 잔물결을 일으킨다. 이 잔물결이 바로 중력파 라는 것이다. 크레인 교수는 “블랙홀 우주선을 찾기 위해 새로운 중력파 관측시설이 필요하다”고 말한다. 현재의 관측시설은 블랙홀과 중성자별이 합쳐지면서 나오는 진동수가 적은 중력파를 탐지할 수 있다. 크레인 교수팀은 블랙홀 우주선이 내는 중력파는 진동수가 많은 고주파이기 때문에 이에 적합한 관측시설이 있어야 한다고 주장한다.
 
중력파

질량을 가진 물체가 움직이거나 진동할 때 내는 파동. 마치 전하가 운동하면 전자기파를 내는 것과 비슷하다. 하지만 중력파는 워낙 세기가 약해서 검출하기가 매우 어렵다. 실제 중력파의 세기는 전자기파의 10의 수십제곱 분의 1 정도로 약하다.

크레인 교수의 주장이 얼마나 타당한지는 아무도 모른다. 하지만 외계의 고등생명체가 정말로 이 별, 저 별을 돌아다닐 정도의 우주선을 개발했을지도 모른다. 물론 그것은 블랙홀에 의해서 작동되는 게 아닐 수도 있다. 우리에게 장거리 우주여행이 머나먼 미래의 일이 아니라 가까운 장래에 실현될 가능성이 있다. 고작 100년이 조금 넘은 과거로 되돌아간다면 하늘을 나는 것조차도 그저 상상 속의 일이었을 뿐이니까 말이다. 100년 뒤쯤이면 혹시 장거리 우주여행이 현실이 될지 누가 알겠는가.

우주를 여행하는 다양한 아이디어
 
핵분열 로켓

원자폭탄과 원자력 발전에서 쓰는 핵분열 에너지를 활용하는 방식. 가장 실현 가능한 기술이다. 프록시마 센타우리까지 가려면 연료로 아메리슘을 썼을 때 200만t이 필요하다. 우라늄이나 플루토늄을 쓸 경우는 이보다 더 많은 양이 필요. 최대 속도는 광속의 12% 정도. 프록시마 센타우리까지 가는데 46년 정도 걸린다.
 
핵융합 로켓

연료가 중수소와 원자량이 3인 헬륨원자다. 이들은 달 표면이나 목성 대기에 풍부하다. 때문에 핵융합 방식의 경우, 핵분열보다 연료를 구하기 쉽고 우주에서 재충전도 가능하다. 문제는 기술이 아직 성숙하지 못했다는 점이다. 최대 속도는 광속의 12% 정도로 핵분열 방식과 같다. 프록시마 센타우리까지 가려면 200만t의 연료가 필요하다.
 
반물질 로켓

가장 효율이 높은 방식. 반물질 로켓의 경우 프록시마 센타우리까지 가는 데 드는 연료가 90만t. 기간은 41년 정도다. 핵분열과 핵융합 방식과 달리 더 먼 거리를 갈 수 있다. 문제는 우리가 반물질을 만들거나 어떻게 다뤄야 할지에 대해 모르는 게 많다는 점이다.
 
버사드 램젯

1960년 물리학자 로버트 버사드 박사가 제안한 우주기술. 우주공간에 떠 있는 수소기체를 빨아들인 다음, 핵융합 반응을 일으켜 에너지를 얻는다. 연료를 싣고 다니지 않아도 된다. 문제는 보통 수소기체로 핵융합 반응을 일으키는 방법을 아직 모른다는 점이다.
 
우주범선

태양풍 또는 레이저로 우주선을 먼 우주로 날려 보내는 방식. 이 역시 우주선에 연료통을 달 필요가 없다. 태양풍을 쓸 경우 태양으로부터 멀어지면 소용이 없다. 레이저 빔의 경우는 막대한 레이저 인프라가 필요하다.
 
 
웜홀

빛보다 빠른 우주여행방식. 우주 시공간에 생긴 구멍인 웜홀을 이용함으로써 빛보다 빠른 시간여행이 가능하다는 것. 웜홀은 지름길인 셈이다. 하지만 아직 웜홀의 존재도 밝혀지지 않았다. 이 외에도 미국 SF 드라마 ‘스타트렉’에 나오는 워프 드라이브(warp drive, 공간 이동 추진)도 빛보다 빠른 우주여행기술이다. 이 기술은 암흑에너지를 이용해 빛보다 빠른 속도로 별들을 오간다. 실현 가능성이 거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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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년 02월 과학동아 정보

  • 박미용 객원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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