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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콜릿의 원료는 ‘신의 음식’이라는 뜻을 가진 카카오 나무에서 얻는다. 이 나무에 달린 ‘카카오 빈’으로 불리는 열매의 씨가 바로 초콜릿을 만드는 핵심 재료이다. 카카오 빈을 발효시키고 말리는 과정에서 초콜릿만의 달콤하며 쌉싸래한 맛을 갖게 되는 것이다. 초콜릿을 얼마나 만들 수 있느냐는 전적으로 카카오 빈이 그해 얼마나 수확되느냐에 달려 있다.

세계적으로 초콜릿에 대한 수요는 계속해서 늘고 있지만 최근 카카오 수확에 노란 불이 켜졌다. 해마다 병에 걸린 카카오 나무가 늘면서 이미 세계 카카오 농장의 3분의 1이 문을 닫은 실정이다. 문제는 병이 더 확산되면서 위협을 받고 있는 카카오 농장이 급속도로 늘고 있다는 점이다. 지금 추세라면 초콜릿 공급은 조만간 차질을 빚을 것으로 예상된다.

‘마녀의 빗자루’에 쓸려간 카카오 농장

카카오 나무는 따뜻하고 비가 많이 내리는 열대우림 지대에 주로 살고 있다. 그런데 카카오 나무는 뿌리가 땅에 얕게 퍼지는 성질 탓에 가뭄에 몹시 약하다. 최근 수년간 카카오 재배 지역에 가뭄이 닥치면서 카카오 농가들은 수확에 애를 먹기도 했다. 게다가 최근 기후 변화로 가뭄이 잦아지면서 상황은 더 악화되고 있다.

카카오 나무의 원산지는 중앙아메리카로 알려져 왔다. 하지만 최근 대서양 건너 아프리카가 카카오의 최대 산지로 떠오르기 시작했다. 유엔식량농업기구(FAO)에 따르면 카카오 나무 가운데 70%가 아프리카에서 자란다. 특히 아프리카의 최빈국 코트디부아르와 가나는 대표적인 카카오 산지로 손꼽히고 있다. 두 나라의 카카오 생산량은 아프리카의 총 생산량과 맞먹을 정도다. 세 번째로 생산량이 많은 곳은 동남아시아의 인도네시아다.

1980년대 중반까지만 해도 카카오 생산국의 판도가 지금과는 달랐다. 브라질을 비롯해 아메리카 대륙이 카카오 빈 공급에 중요한 위치를 차지하고 있었다. 당시 브라질은 세계에서 두 번째로 많은 카카오를 생산했다. 하지만 브라질이 카카오 대국의 반열에서 추락한 이유는 ‘마녀의 빗자루’가 쓸고 갔기 때문이다. 마녀의 빗자루란 곰팡이병의 일종으로, 한국에서는 빗자루병이라는 또 다른 이름으로 불린다. 이 병에 걸리면 나무 형태가 이상해지면서 열매가 제대로 영글지 못한다.

아메리카에서의 불행은 여기서 그치지 않았다. 콜롬비아와 코스타리카에도 위기가 잇따라 찾아왔다. 마녀의 빗자루보다 더 악질인 ‘서리꼬투리썩음병(frosty pod)’이 번지기 시작한 것이다. 결국 이들 지역의 카카오 농장은 얼마 버티지 못하고 순식간에 초토화됐다.


초콜릿 수요 늘수록 카카오는 멸종 위기

아메리카 대륙을 카카오 수출국에서 수입국으로 전락시킨 두 종류의 병은 다행히도 바다를 건너는 데는 실패했다. 하지만 전문가들은 다른 대륙으로 병이 확산하는 것은 시간문제라고 보고 있다. 극한의 오지인 남극에도 곤충이나 세균이 비행기를 타고 넘어가는 마당에 병균이 바다를 건너지 못할 이유는 없다.

문제는 아프리카에는 이에 대응할 능력이 없다는 점이다. 카카오 나무는 아프리카에서도 아주 가난한 사람들의 손에서 자라고 있다. 만에 하나 병이 건너오면 약 한 번 제대로 쓰지 못하고 카카오 나무를 잃을 가능성이 그만큼 크다. 최근 30년간 카카오 빈의 수확량은 2배 이상 늘었다. 초콜릿의 수요 증가와 함께 카카오 빈의 수확량도 증가한 것이다. 하지만 재배기술이 발달해 단위면적당 생산량이 늘어난 것은 아니다. 세계 최대 초콜릿 제조회사 마스(Mars)의 식물학자 호와드 샤피로 박사는 “30년간 단위면적당 카카오 생산량은 거의 변함이 없다”고 말한다. 결국 카카오 빈의 수확량을 늘리기 위해 재배지를 크게 확대했다는 뜻이다.

지금도 아프리카에서는 농작물을 재배하기 위해 나무를 자르고 숲을 태우는 모습을 흔히 볼 수 있다. 산림을 파괴해 만든 경작지는 처음에는 카카오 나무를 기르기에 충분한 영양분을 함유하고 있다. 하지만 점차 영양분이 줄어들면 농부들은 다른 곳으로 경작지를 옮긴다. 초콜릿 소비가 늘수록 아프리카의 산림 파괴는 더욱 가속화되는 셈이다.

카카오 경작은 단순히 산림의 황폐화만 불러오진 않는다. 카카오 나무 스스로를 위협하는 역설적인 상황도 펼쳐진다. 오로지 카카오 나무 한 종류만을 키우다 보면 나무는 병에 더 취약한 상태가 돼 버린다. 아프리카에서는 지금도 카카오 나무를 위협하는 전염병이 돌고 있다. ‘흑점병’이라는 이 병 때문에 세계 카카오 공급량의 40%를 책임지는 코트디부아르의 생산량은 최근 수년간 제자리에 머물고 있다. 2008년 12월 영국 런던 오로넥스트 거래소에서 카카오 빈의 가격은 23년 만에 최고치를 경신하기도 했다. 그해 카카오 빈의 거래 가격은 전년도보다 무려 70%나 올랐다.

심지어는 카카오 나무의 생명을 위협하는 새로운 생물도 발견됐다. ‘CSSV(Cacao Swollen- Shoot Virus)’라는 바이러스는 최근 아프리카의 카카오 나무를 호시탐탐 노리는 악명 높은 천적으로 떠올랐다. 전문가들은 이 바이러스로 인해 아메리카에서 벌어졌던 최악의 시나리오가 아프리카에서 재현되지 않을까 노심초사하고 있다. CSSV가 아프리카에서 확산될 경우 3년 안에 모든 카카오 농장이 문을 닫을 것으로 전문가들은 보고 있다.


과학계, 게놈 지도 만들어 ‘카카오 나무 구하기’ 나서

위기에 처한 카카오 나무를 구하지 못하면 어떤 일이 벌어질까. 결국에는 언젠가 눈물을 머금고 ‘초콜릿의 유혹’을 뿌리쳐야 하는 상황을 맞게 되는 날이 올 것이 분명하다. 그런 날이 오지 않도록 과학계도 카카오 나무를 구하기 위한 특급 작전에 들어갔다.

마스는 미국농무부(USDA), 첨단 정보기술(IT) 회사인 IBM과 함께 ‘카카오 게놈 프로젝트’를 대대적으로 벌이고 있다. 2008년부터 시작된 이 프로젝트는 5년간 1000만 달러가 투자되는 대규모 연구 사업이다. 연구가 진행되면서 카카오에 대한 종전 상식을 뒤집는 결과가 나오기 시작했다. 그중 하나가 카카오 원산지와 종류에 관한 것이다. 얼마 전까지만 해도 카카오 나무는 중앙아메리카가 원산지이고 3개종으로 이뤄져 있다고 알려져 왔다. 학자들이 중앙아메리카를 카카오의 근원지로 꼽은 이유는 카카오와 관련해 가장 오래된 흔적이 발견됐기 때문이다. 기원전 900년경부터 중앙아메리카 토착민들이 초콜릿 음료를 마셨다는 증거도 발견됐다.

하지만 마스의 후안 카를로스 모타마요르 박사팀은 2008년 이 학설이 틀렸다는 사실을 알아냈다. 연구팀은 카카오 빈을 1200개 이상 모아 유전자 검색법으로 분석하는 과정에서 그전까지 카카오 빈 구분에 사용된 표본 가운데 잘못된 것이 많다는 사실을 발견했다. 결과적으로 카카오 나무는 3종이 아니라 10종이나 된다는 것. 가장 다양한 종이 분포해 있는 곳이 종전에 알려진 중앙아메리카가 아니라 남아메리카 아마존 상류의 페루라는 점도 확인했다. 이는 카카오의 기원이 중앙아메리카가 아니라 남아메리카라는 점을 시사한다.


카카오 나무의 기원과 종의 개수를 알게 되면서 카카오 나무 구하기에도 탄력이 붙었다. 과학자들은 빗자루병이나 서리꼬투리썩음병에 강한 카카오 나무가 분명 있을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고무적인 사실은 10종의 카카오 가운데 하나가 서리꼬투리썩음병이 발생한 지역에서 발견됐다는 점이다. 전문가들은 이 나무의 유전자를 분석하면 서리꼬투리썩음병을 이겨낸 유전인자를 찾아낼 수 있을 것으로 보고 있다.

과학자들은 최근에는 새로운 종의 카카오 나무를 찾는 일에 관심을 갖기 시작했다. 가뭄에 강하고, 생산량이 많으며, 병에 대한 저항성이 강한 종을 찾아낸 뒤 유전적 특성을 조사해 카카오 경작에 활용하기 위해서다.
마스의 샤피로 박사는 “단위면적당 카카오 생산량을 지금보다 3배로 높일 수 있다면 수확량이 적은 카카오 나무를 뽑아내고 대신 과실나무와 목재용 나무를 심을 수 있다”고 설명했다.

또 카카오 연구는 초콜릿의 맛에도 변화의 바람을 몰고 올 것으로 보인다. 과학자들은 유전자 재조합을 통해 새로운 맛과 향을 내는 카카오 빈을 탄생시킬 수 있을 것으로 보고 있다. 현재까지 마스 측은 연구를 통해 얻은 유전자 지도를 모두 공개한다는 입장이다.

카카오 게놈 분석이 끝나면 좀 더 맛있고 달콤하며 건강에 좋은 ‘슈퍼 카카오’가 나올 날도 머지않을 것으로 보인다. 올해 밸런타인데이에는 카카오 게놈 분석이 카카오 나무를 위기에서 구할 수 있기를 기원하며 초콜릿을 맛보는 것도 의미가 있을 듯하다.
 


카카오에서 초콜릿 얻는 마법

19세기 독일의 자연 과학자였던 알렉산데르 폰 훔볼트는 초콜릿의 주원료인 카카오(Theobroma cacao)에 대해 “작은 씨앗 하나에 다양한 풍미가 들어 있다니 놀라울 따름”이라고 감탄했다. 카카오를 갈면 하얗고 끈적끈적한 섬유질 속에 하얀 씨(카카오 빈, 이하 콩)가 20개 정도 들어 있는데, 씹으면 빳빳하고 씁쓸할 뿐이다. 도대체 어떤 마법을 부리기에 단단한 열매에서 부드럽고 향긋하며 달콤 쌉쌀한 ‘사랑의 메신저’가 탄생하는 걸까.

카카오 열매는 원래 연두색이지만, 열매가 익어가면서 점점 노란색, 주황색으로 바뀐다. 열매에서 꺼낸 콩은 하얀 색이다. 초콜릿의 맛과 향을 결정하는 데 가장 중요한 과정은 바로 콩 발효와 볶기다. 잘 익은 열매를 수확한 뒤 콩만 분리해 발효시킨다. 콩을 발효시키는 이유는 쓰고 떫은 맛을 내는 탄닌을 없애고 유기산을 증가시켜 특유의 맛과 향을 내기 위해서다. 하얗던 콩은 발효가 끝나면 갈색이 된다. 콩을 물로 씻고 곰팡이가 생기지 않도록 바짝 말려 외양과 풍미가 좋은 것만 고른다. 그런 뒤 콩을 볶으면 갈색이 짙어지는데, 바로 ‘마이아르 반응’ 때문이다. 즉 당과 아미노산을 가열하면 각각의 카르복실기와 아미노기가 서로 반응해 갈색을 띠는 멜라노이딘 색소가 형성되면서 맛과 향이 짙어진다. 또 초산이 날아가 신맛이 줄어든다.

볶은 콩을 잘게 부숴 껍질과 배젖, 배아로 분리한다. 단단하고 맛없는 껍질과 배아는 버리고 배젖만 남긴다. 배젖을 으깬 반죽(카카오 매스)을 데우면 상온에서 고체였던 카카오 버터가 녹아 흘러나온다. 카카오 매스와 카카오 버터를 55~60℃로 따뜻하게 데워 설탕과 분유, 유화제와 함께 섞는다. 너무 뜨거우면 유화제의 분자가 파괴돼 굉장히 거친 초콜릿이 된다.

초콜릿의 결정을 가장 안정한 분자 구조로 만들기 위해 온도를 약 31℃로 조절한다(템퍼링). 템퍼링을 하면 수분과 휘발성 산이 날아가 풍미가 더욱 좋아진다. 또 초콜릿의 표면에서 빛이 나고 입 안에서 녹일 때 부드럽다. 완성된 초콜릿 반죽을 온도 20~22℃, 습도 60% 이하에서 틀에 넣어 굳힌 뒤 분리하면 초콜릿이 완성된다. 결정의 구조가 안정할수록 초콜릿이 단단해져 분리가 잘 된다고 한다. 콩의 발효와 볶기, 미묘한 온도 조절까지 예민하고 섬세한 ‘마법’을 부려 카카오에서 초콜릿을 얻는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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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년 02월 과학동아 정보

  • 박미용 객원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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