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장 쓸모없어 보이는 연구가 우리의 삶을 바꾸기도 한다. 미국과학진흥협회(AAAS)와 짐 쿠퍼 미 하원의원(테네시)은 2012년 미국 정부의 기초과학 예산 삭감에 반발하는 의미로 허황돼 보이지만 인류에게 큰 영향을 끼친 연구에 수여하는 ‘황금거위상’을 만들었다. 올해 9월 9일 ‘제8회 황금거위상’은 5명의 수상자에게 돌아갔다.
잭 레빈 미국 샌프란시스코 캘리포니아대(UC샌프란시스코) 의대 교수와 고(故) 프레드릭 방 전 미국 존스홉킨스대 의대 교수는 투구게의 혈액을 연구해 ‘LAL(Limulus Amebocyte Lysate)’이라는 독성시험법을 개발한 공로로 수상의 영예를 안았다.
방 교수는 1956년 투구게의 혈액이 백혈구를 포함하고 있지 않은 대신, 독성 박테리아가 침투하면 독소와 반응해 응고됨으로써 독소로부터 몸을 방어한다는 사실을 밝혀냈다.
이듬해부터 그는 레빈 교수와 연구를 진행해 1964년 마침내 투구게 혈액에서 추출한 물질로 LAL 기법을 완성했다. LAL 기법은 45분 이내에 미세한 양의 독소도 검출할 수 있으며, 현재 세계적으로 활용되고 있다.
데이비드 새처 미국 마운틴시나이대 의대 교수는 1965년 개구리의 피부를 이용해 콜레라 환자의 장 활동을 실험하는 실험 기구를 개발해 수상자 명단에 이름을 올렸다.
본래 새처 교수는 콜레라를 생물학적으로 연구하기 위해 이 기구를 개발했다. 그런데 이 기구가 치료제 개발을 위한 임상연구에 활용되면서 콜레라 치료제 개발을 앞당겼다. AAAS는 “새처 교수의 연구로 전 세계 약 5000만 명이 생명을 구했다”고 평가했다.
한편 노엘 로즈 미국 존스홉킨스대 의대 교수와 그의 지도교수였던 고(故) 어니스트 위트브스키 교수는 1950년대 세포가 자신의 조직을 공격하는 자가면역질환의 존재를 밝힌 공로로 황금거위상 수상자로 선정됐다.
로즈 교수는 토끼에서 추출한 갑상선호르몬을 다시 토끼에게 주입해도 항체가 만들어지며 면역 반응이 일어난다는 사실을 처음으로 확인했다. 로즈 교수는 AAAS와의 인터뷰에서 “처음에는 실험 설계가 잘못된 줄 알았다”며 “그 때문에 졸업이 몇 년은 더 늦어졌다”고 회상했다.
9월 12일 미국 하버드대 샌더스 극장에서 29번째 ‘이그노벨상’ 시상식이 열렸다. 1991년 하버드대 과학유머잡지인 ‘황당무계 리서치 연보(AIR·Annals of Improbable Research)’가 노벨상을 패러디해 만든 이그노벨상은 매년 10개 분야에서 웃기면서도 생각할 거리를 주는 연구를 선정해 시상한다.
올해 물리학상은 웜뱃의 똥이 네모난 이유를 밝힌 데이비드 후 미국 조지아공대 기계공학과 교수팀에게 돌아갔다. 연구팀은 신축성이 있는 웜뱃이 장의 모서리 부분에서 더 잘 늘어나기 때문에 대장 끝에서 직육면체 모양의 똥이 만들어진다는 사실을 알아냈다.
이들은 무려 두 번째 수상이다. 후 교수팀은 2015년 포유류가 평균 21초에 한 번 방광을 비운다는 연구로 이그노벨상 물리학상을 수상한 바 있다. 연구팀은 이번 시상식에 네모난 웜뱃 똥 모양 탈을 쓰고 등장해 웃음을 안겼다.
의학상은 이탈리아 연구팀이 수상했다. 실바노 갈루스 이탈리아 마리오 네그리 약학연구소 연구원팀은 이탈리아 피자를 먹으면 심근경색과 유방암을 예방할 수 있음을 의학적으로 증명했다.
강아지 훈련용 ‘클리커’로 외과 수련의를 교육하는 방법을 발표한 미국 연구팀은 의학교육상을 수상했다. 생물학상은 죽은 바퀴벌레와 살아 있는 바퀴벌레의 자기적 특성을 연구한 싱가포르 연구팀에게 돌아갔다.
해부학상은 프랑스 우체부를 대상으로 왼쪽과 오른쪽 고환 중 왼쪽의 온도가 더 높다는 결과를 내놓은 프랑스 연구팀이, 화학상은 5세 아이가 하루 동안 0.5L의 침을 흘린다는 사실을 밝혀낸 일본 연구팀이 수상했다. 공학상은 육아를 위한 ‘아동 세척기’와 ‘자동 기저귀 교환기’를 발명한 이란 연구팀이, 경제학상은 어느 나라 지폐가 박테리아를 가장 잘 옮기는지 조사한 터키 연구팀이 수상했다. 참고로 답은 루마니아 지폐였다.
평화 증진에 기여한 사람에게 수여하는 평화상은 어느 부위를 긁었을 때 가장 쾌감이 좋은지를 분석한 미국 등 국제공동연구팀에게 돌아갔다. 연구팀은 가려움 증상을 정량화해 발목과 등이 가장 가려우며 긁었을 때 쾌감도 크다는 사실을 증명했다. 심리학상은 웃으면 실제로 행복해진다는 사실을 밝혀낸 독일 연구팀이 수상했다.
시상식은 유튜브를 통해 생중계됐다. 수상자들은 익살스러운 트로피(아래 사진)와 함께 부상으로 10조 짐바브웨 달러를 받았다. 짐바브웨 달러는 급격한 인플레이션으로 2009년 4월부터 사용이 중지됐는데, 당시 100조 짐바브웨 달러의 가치는 우리 돈으로 350원 정도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