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벌써 20년 가까운 옛날의 이야기이다. 정부에서는 중화학공업정책수립에 열중하고 있었고 항간에서는 석유화학 콤비나트라는 새로운 단어가 나돌고 있을 무렵이라고 생각된다.

모 신문사에 있는 친구와 우연히 자리를 함께 하게 되어 이런 이야기 저런 이야기를 나누게 되었다. 그래서 나는 석유화학 콤비나트의 이야기를 하게 되었고 언론에서 지나치게 이 방면을 등한시하고 있는 것이 아니냐는 질문을 던졌다. 그랬더니 그 친구 이야기가 그 방면에 대해서 무엇 하나 아는 것이 있어야 다룰 것이 아니냐라는 답변이었다. 그래서 모르면 물어보면 되지 않느냐라고 되물었더니 누구한테 물어보아야 할지 그것부터 모르니 어쩌느냐는 대답에 웃음을 터뜨린 일이 있었다.

"당신은 셰익스피어를 아십니까"라는 질문을 던지면 얼굴을 붉히며 노발대발하는 신사에게 "당신은 열역학 제2법칙을 아십니까?"라는 질문을 하면 눈썹하나 까닥하지 않고 '모른다'라는 대답을 하는 일이 비일비재하다. 이미 1959년에 'C.P.스노(snow)'는 지적한 바있다. 유명한 '두개의 문화와 과학혁명'이라는 리드강연에서 스노가 한 말이다. 이와같은 두 문화가 아직까지도 우리 사회에 엄존하고 있는 것이 아닐까.

세기의 대논쟁으로서 유명한 스노의 이 강연은 당시 많은 물의를 불러 일으켰고 그 이후로 많은 사람들에 의해서 '두 文化'는 화제에 오르내리고 있다. 그러나 여전히 '두 文化'는 그 모습을 드러 내놓고 있는 것이다. 스노는 소위 과학기술의 발달로 인하여 격변하고 있는 상황에서 한때 전세계를 호령하던 영국이 이대로 나가다가는 그야말로 세계의 뒷자리로 물러나게 될 것이 아니냐라는 충정에서 당시의 영국의 교육제도 특히 과학교육제도를 개선해야만 한다는 입장을 밝혔던 것이다. 지금 다시 스노의 강연내용을 읽어 보아도 수긍이 가는 점이 많은 것은 부인할 수가 없다.

며칠 전에 어느 대학에서 특별강연을 한 적이 있었다. 강연 주제는 '과학과 인간'이었다. 나는 그 강연에서 과학의 인간성 그리고 역사성을 말하였다. 그리고 강연중에 학생들에게 1972년에 발간된 로마클럽의 제1보고서인 '성장의 한계'를 읽은 사람은 손을 들어 보라고 했더니 손을 드는 사람은 한 사람도 없었다. 청중은 공과대학생들이었다.

여기서 우리는 또하나의 문제점을 볼 수 있다. 일반적으로 공과대학생이라면 자연계의 학생들이라고 볼 수 있다. 그런데 그들이 로마클럽의 제1보고서 하나도 읽고 있지 않은 것이다.

17세기 이후에 발달을 거듭한 소위 오늘의 기술문명이 어떻게 보면 이 책으로 그 방향을 바꾸어가고 있다고도 볼 수 있는데 이 책을 읽고 있지 않다는 사실은 무엇을 의미하는 것일가. 이것은 단순히 요즘 학생들이 독서를 하지 않고 있다는 이야기와도 다른, 또하나의 문제라고 하지 않을 수 없다. 즉 오늘의 과학교육 또는 기술교육에 있어서 하나의 방향감각이 무시되고 있다는 단적인 표현이 될 수 있다고 해석되는 것이다. 이것은 비단 우리나라에 한한 문제만은 아니다. 전세계적인 문제일지도 모른다. 과학의 비인간화 그리고 기술의 비인간화의 문제인 것이다. 문제는 '두 문화'에서 그치는 것이 아니라 단절된 여러 문화가 서로 병존하고 있다고나 할까. 따라서 오늘의 과학교육은 하나의 완성된 인간을 만드는데 있는 것이 아니라 하나의 특수한 기계를 만드는데 치중하고 있는 것이다.

작년에 미국에서 발간된 〈Order out of Chaos〉라는 저서는 1977년에 노벨화학상을 탄 '일리야 프리고진'이라는 물리학자에 의해서 쓰여진 책이다. 그런데 저자는 서문에서 스노의 '두 문화'를 언급하면서 이렇게 두 문화가 존재하지 않으면 아니 되었던 이유중의 큰 원인은 지금까지의 과학이 인간이 일상생활의 주변에서 만나는 현상을 설명하는데 너무나도 부족했기 때문이라고 잘라 말하고 있다. 그래서 그는 지금까지는 하나의 잡음이요 혼돈에 불과했던 여러가지 현상을 이제부터는 과학의 대상으로 끌어 들여야만 한다고 강조하고 있다.

이번에 월간 '과학동아'가 동아일보사에서 새로 선을 뵌다고 한다. 나는 이 과학동아가 이상에서 몇가지 지적한 문명사회가 지니고 있는 문제점을 풀어 나가는데 하나의 지침돌이 되어 주었으면 하는 마음 간절하다. 어떻게 보면 '두 문화'일 뿐만 아니라 '많은 문화'가 아무런 소통없이 그저 돌맹이처럼 무표정하게 병존하고 있다고나 할까.

여기에 생명을 불어 넣고 피를 흐르게 해서 하나의 완성된 기계가 아니라 생기가 넘치는 생명체로서의 '하나의 문화'를 이룩하는데 크게 이바지 해 줄 것을 간절히 바라 마지 않는다.
 

두개의 문화를 하나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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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6년 01월 과학동아 정보

  • 김용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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