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국에서 온 유학생 존이 기숙사에 들어서자 오디오 세트에 불이 켜지고 잔잔한 음악이 흘러나온다. 오늘의 곡은 요한 파헬벨의 ‘캐논 변주곡’. 높은 습도와 낮은 기온 그리고 “아, 피곤해”라는 존의 음성 정보를 인식한 오디오 세트가 그에게 가장 적절하다고 판단한 곡이다.
존은 한국어 발음이 정확하진 않지만 오디오에 외국인 특유의 어조와 발음을 고려하는 음성 인식 프로그램이 장착돼 있어 이용에 큰 무리가 없다. 지금 듣는 음악파일은 두 개의 스피커로 듣는 스테레오 2.0 타입이지만 존은 이를 주파수별로 음원을 분리해 스테레오 5.1 타입, 즉 좌우, 앞뒤 스피커와 진동을 전달하는 우퍼 스피커로 듣는다.
이때 존의 여자 친구에게서 전화가 온다. ‘아차, 오늘 만나기로 했었지!’ 부리나케 약속 장소로 이동하던 존이 잠시 분수대 앞에서 ‘셀카’로 깜짝 영상을 준비한다. 캠코더의 버튼을 누르려고 일부러 장갑을 벗을 필요는 없다. “야경”이라고 외치기만 하면 캠코더가 야경을 찍기에 적당한 모드로 바뀌기 때문이다.
“어떻게 나와의 약속에 늦을 수 있냐”며 서운해 하는 여자 친구에게 존이 살며시 캠코더를 내민다. 재생버튼을 누르자 분수대 앞에서 사랑 고백을 하는 존의 모습이 아름다운 음악과 함께 펼쳐진다. 존이 말할 때마다 음악소리가 작아지는 영상을 보고 여자 친구는 “언제 음악 편집까지 했느냐”며 놀라지만, 사실 이 기능은 원래부터 캠코더에 장착된 음악 서비스 기능이다. 존은 어느새 화가 풀린 여자 친구와 함께 맛있는 저녁을 먹으러 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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밖에서 소리 나는 것처럼 느껴지는 이어폰
비록 가상이긴 하지만 존이 행복하고 편리한 유학생활을 만끽하는 데에는 음향과 청각 기술의 도움이 크다. 광주과학기술원 정보통신공학과의 휴먼컴퓨팅연구실에서는 이런 일상을 구현하기 위해 음성과 통신 신호를 처리하고 멀티미디어를 개발하는 연구에 힘쓰고 있다.
이 중 일반 음원을 3차원으로 변환해 재생하는 음향 프로그램과 외국인 음성을 구분하는 프로그램은 현재 기술의 타당성을 인정받고 시험 운영되고 있다. 특히 사람의 음성으로 촬영 모드가 변하는 카메라와 사람의 목소리가 나올 때마다 배경 음악의 볼륨이 저절로 작아지는 캠코더는 삼성전자와 기술 제휴를 통해 얼마 전 제품화됐다. 여기에는 주변 환경의 잡음과 사람의 음성을 구분하는 고도의 기술이 담겨 있다.
휴먼컴퓨팅연구실의 김홍국 교수는 “요즘 청각 기술은 사람의 귀에 더 듣기 좋고, 실감 나는 쪽으로 진화하고 있다”고 말했다. 영화나 게임을 좋아하는 젊은이들이 화려하고 정밀한 영상에서 실제처럼 생생한 음향 효과 쪽으로 관심을 돌리는 것도 이런 추세를 따른다. 이에 휴먼컴퓨팅연구실은 중고등학생들이 즐겨 쓰는 이어폰에 주목했다.
이어폰은 내가 원하는 소리를 간편하게 이동하면서 들을 수 있다는 장점이 있다. 하지만 오래 듣고 있으면 머리와 귀가 멍멍해지거나 콕콕 찌르는 듯한 통증을 유발하곤 한다. 왜냐하면 이어폰에서 나오는 소리가 정수리나 귀 부근에 맺혀 자연스러운 울림과 잔향을 느끼지 못하게 만들기 때문이다.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휴먼컴퓨팅연구실에서는 ‘머리전달함수’를 통해, 음이 귀에 바로 들리는 것이 아니라 귀에서 멀리 떨어진, 외부의 어느 지점에서 나는 것처럼 만들었다. 머리전달함수는 음원에서부터 청취자의 고막까지 소리가 전파되는 효과를 수학적으로 정의한 것이다. 여기에는 머리, 귀, 가슴 등에서의 반사와 회절 효과가 변수로 작용한다. 이 함수를 반대로 적용해 귀에 직접 전달되는 소리를 오히려 외부 스피커에서 나오는 것처럼 듣게 했다. 이를 ‘음원의 외재화’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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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 교수는 “음원을 외재화시킨 이어폰은 귀에서 30cm 이상 떨어진 곳에서 소리가 나오는 것 같기 때문에 음향이 자연스럽고 고막에 무리를 주지 않는다”며 “실제와 같은 음향을 제공하기 때문에 게임할 때도 훨씬 실감 날 것”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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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즐기며 아이디어 얻어
휴먼컴퓨팅연구실에 딸린 실험실 겸 스튜디오에는 대형 스크린과 7.1 서라운드 스피커가 마련돼 있다. 그야말로 영화 한 편 보기에 ‘딱’인 환경. 김 교수도 연구원들이 스튜디오에서 영화 보는 걸 막지 않는다. 언제, 어디서나 소리를 많이 들으라는 게 그의 지론이기 때문이다. 영화를 많이 보라는 이유는 또 있다.
“과학기술 중에는 영화에서 영감을 얻은 게 참 많습니다. 예술도 마찬가지예요. 행위예술, 전시예술이 디지털 액자를 발명하는 모티브가 됐지요.” 이번 새해에도 일반적인 신년회 대신 공연을 보러갈 예정이라는 휴먼컴퓨팅연구실 연구원들의 신바람 나는 연구 활동을 기대해본다.
존은 한국어 발음이 정확하진 않지만 오디오에 외국인 특유의 어조와 발음을 고려하는 음성 인식 프로그램이 장착돼 있어 이용에 큰 무리가 없다. 지금 듣는 음악파일은 두 개의 스피커로 듣는 스테레오 2.0 타입이지만 존은 이를 주파수별로 음원을 분리해 스테레오 5.1 타입, 즉 좌우, 앞뒤 스피커와 진동을 전달하는 우퍼 스피커로 듣는다.
이때 존의 여자 친구에게서 전화가 온다. ‘아차, 오늘 만나기로 했었지!’ 부리나케 약속 장소로 이동하던 존이 잠시 분수대 앞에서 ‘셀카’로 깜짝 영상을 준비한다. 캠코더의 버튼을 누르려고 일부러 장갑을 벗을 필요는 없다. “야경”이라고 외치기만 하면 캠코더가 야경을 찍기에 적당한 모드로 바뀌기 때문이다.
“어떻게 나와의 약속에 늦을 수 있냐”며 서운해 하는 여자 친구에게 존이 살며시 캠코더를 내민다. 재생버튼을 누르자 분수대 앞에서 사랑 고백을 하는 존의 모습이 아름다운 음악과 함께 펼쳐진다. 존이 말할 때마다 음악소리가 작아지는 영상을 보고 여자 친구는 “언제 음악 편집까지 했느냐”며 놀라지만, 사실 이 기능은 원래부터 캠코더에 장착된 음악 서비스 기능이다. 존은 어느새 화가 풀린 여자 친구와 함께 맛있는 저녁을 먹으러 간다.
밖에서 소리 나는 것처럼 느껴지는 이어폰
비록 가상이긴 하지만 존이 행복하고 편리한 유학생활을 만끽하는 데에는 음향과 청각 기술의 도움이 크다. 광주과학기술원 정보통신공학과의 휴먼컴퓨팅연구실에서는 이런 일상을 구현하기 위해 음성과 통신 신호를 처리하고 멀티미디어를 개발하는 연구에 힘쓰고 있다.
이 중 일반 음원을 3차원으로 변환해 재생하는 음향 프로그램과 외국인 음성을 구분하는 프로그램은 현재 기술의 타당성을 인정받고 시험 운영되고 있다. 특히 사람의 음성으로 촬영 모드가 변하는 카메라와 사람의 목소리가 나올 때마다 배경 음악의 볼륨이 저절로 작아지는 캠코더는 삼성전자와 기술 제휴를 통해 얼마 전 제품화됐다. 여기에는 주변 환경의 잡음과 사람의 음성을 구분하는 고도의 기술이 담겨 있다.
휴먼컴퓨팅연구실의 김홍국 교수는 “요즘 청각 기술은 사람의 귀에 더 듣기 좋고, 실감 나는 쪽으로 진화하고 있다”고 말했다. 영화나 게임을 좋아하는 젊은이들이 화려하고 정밀한 영상에서 실제처럼 생생한 음향 효과 쪽으로 관심을 돌리는 것도 이런 추세를 따른다. 이에 휴먼컴퓨팅연구실은 중고등학생들이 즐겨 쓰는 이어폰에 주목했다.
이어폰은 내가 원하는 소리를 간편하게 이동하면서 들을 수 있다는 장점이 있다. 하지만 오래 듣고 있으면 머리와 귀가 멍멍해지거나 콕콕 찌르는 듯한 통증을 유발하곤 한다. 왜냐하면 이어폰에서 나오는 소리가 정수리나 귀 부근에 맺혀 자연스러운 울림과 잔향을 느끼지 못하게 만들기 때문이다.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휴먼컴퓨팅연구실에서는 ‘머리전달함수’를 통해, 음이 귀에 바로 들리는 것이 아니라 귀에서 멀리 떨어진, 외부의 어느 지점에서 나는 것처럼 만들었다. 머리전달함수는 음원에서부터 청취자의 고막까지 소리가 전파되는 효과를 수학적으로 정의한 것이다. 여기에는 머리, 귀, 가슴 등에서의 반사와 회절 효과가 변수로 작용한다. 이 함수를 반대로 적용해 귀에 직접 전달되는 소리를 오히려 외부 스피커에서 나오는 것처럼 듣게 했다. 이를 ‘음원의 외재화’라 한다.
김 교수는 “음원을 외재화시킨 이어폰은 귀에서 30cm 이상 떨어진 곳에서 소리가 나오는 것 같기 때문에 음향이 자연스럽고 고막에 무리를 주지 않는다”며 “실제와 같은 음향을 제공하기 때문에 게임할 때도 훨씬 실감 날 것”이라고 말했다.
영화 즐기며 아이디어 얻어
휴먼컴퓨팅연구실에 딸린 실험실 겸 스튜디오에는 대형 스크린과 7.1 서라운드 스피커가 마련돼 있다. 그야말로 영화 한 편 보기에 ‘딱’인 환경. 김 교수도 연구원들이 스튜디오에서 영화 보는 걸 막지 않는다. 언제, 어디서나 소리를 많이 들으라는 게 그의 지론이기 때문이다. 영화를 많이 보라는 이유는 또 있다.
“과학기술 중에는 영화에서 영감을 얻은 게 참 많습니다. 예술도 마찬가지예요. 행위예술, 전시예술이 디지털 액자를 발명하는 모티브가 됐지요.” 이번 새해에도 일반적인 신년회 대신 공연을 보러갈 예정이라는 휴먼컴퓨팅연구실 연구원들의 신바람 나는 연구 활동을 기대해본다.